342화. 오백년 전의 거래
약 한 시진 후, 그는 자신이 원하던 소득을 거두었다.
‘역시 차지한 면적으로 따지자면 불문은 구주에서 제일이다. 서역에는 불국이 도처에 있다. 게다가 서역의 영토는 대봉의 두 배, 북방의 세 배, 동북의 네다섯 배나 된다. 물론, 서역이 땅은 넓고 사람은 적어 비옥한 땅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남강의 십만대산(十萬大山) 영토를 더한다면, 다시 말해 원래 만요국 영토를 더하면 불문의 ‘강산’은 지나치게 무서울 정도다.’
이어 그는 하급 관리에게 문방사우를 가져오게 하여 선지 위에 ‘상백’, ‘국교’, ‘멸불’ 등의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금련도사가 그에게 말했던 개국 황제에 관한 역사를 떠올렸다.
그해 썩은 중원 황조를 뒤집어엎기 위해 대봉의 개국 황제는 일찍이 동북 무신교한테 병사를 빌렸다. 그 대가는 무신교를 국교로 삼는 것이었다.
《서역지리지》의 기록에 따르면 불문 역시 국교였다.
‘나와 회경공주가 조사한 정보로 판단했을 때 사백 년 전에 중원 도처에서 불문이 꽃을 피웠다. 분명 국교로 삼으려는 흐름이었다. 다만 그해 유가가 마침 ‘외람되지만,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은 다 쓰레기입니다’라고 말하는 최고점 단계에 위치했을 뿐이었다. 직접적으로 멸불을 추진하자 불문은 과격한 반응 없이 중원에서 물러났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추측을 한다. 첫째, 그해 유가는 법도 하늘도 업신여길 만큼 확실히 강대했다. 둘째, 불문이 바로 대봉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은 건 대봉에 봉인되어 있는 신수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가가 아직 쇠약해지지 않았다면, 유가와 사천감의 강대함으로 대봉의 국력은 구주 최고일 것임에 틀림없다.’
* * *
허칠안은 기기로 종이를 분쇄한 뒤 안독고를 나왔고, 돌아서서 호기루로 들어갔다.
그는 통전을 받고 7층으로 올라갔다. 다실에서 위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는 습관적으로 요망대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위연은 그곳에 있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대환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푸른색 도포를 입은 채 의자에 드러누워 한가로이 햇볕을 쬐며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어젯밤에 무릎을 꿇었는가?”
대환관이 웃으며 말했다.
“발조차 떨지 않았습니다.”
허칠안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와서 머리를 좀 주무르게.”
위연은 손짓했다.
허칠안은 먼저 남궁천유가 없는 걸 확인한 후에 안심하고 앞으로 갔다. 그는 이발사에 빙의된 듯 위연의 머리혈을 안마해 주었다.
“상백 봉인물이 곤경에서 벗어난 건 어쨌든 대봉의 과실이네. 불문 고승이 성질을 부린 것뿐이니 신경 쓸 필요 없네.”
위연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는 내가 어젯밤의 일을 걱정해서 온 줄 아는군……. 위 공, 당신은 내가 최하층에 있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7층에 있다고! 어제 부처가 나선 일뿐만 아니라 신수 승려의 행방도 알거든…….’
허칠안은 명료하게 물었다.
“대봉이 왜 불문을 도와 부정한 물건을 봉인해야 합니까?”
지금 그는 이미 위연의 심복이다. 밖에서 떠벌릴 수 없는 많은 비밀들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이다.
“자네 무언가를 알아 냈는가?”
위연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처음 상백 사건을 조사할 때 제가 우연히 역사 한 단락을 발견했습니다. 오백 년 전, 태자가 상백에서 놀다가 부주의하여 물에 빠졌지요. 그 뒤로 정신병을 얻어 얼마 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지요. 오백 년 전, 무종 황제가 황위를 찬탈했습니다. 오백 년 전, 서역 불문이 갑자기 중원에서 선교하여 백 년 사이에 도처에 사찰이 생겨났는데 백 년 후 유가가 멸불을 추진합니다. 상백 밑의 진법에 불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단서에 근거하여 추측했을 때 그 부정한 물건 역시 오백 년 전에 봉인되었지요?”
위연은 한참을 침음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상백 밑의 봉인물은 불문과 무종 황제의 거래에서 비롯되었네. 그해 무종 황제는 문(文)과 무(武)를 겸비하여 휘하에 정예병과 뛰어난 장수가 무수히 많았지만, 황위를 찬탈하여 황제가 되는 데에 그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방해꾼이 하나 있었네. 그리고 그 방해꾼은 심지어 그의 웅대한 패업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할 가능성이 있었지.”
허칠안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초대 감정!’
“사천감의 초대 감정은 술사 체계의 1품 고수네. 감정이 있고, 대봉의 국조(國祚)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누구도 제위를 흔들 수 없네. 이렇게 강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방해꾼을 마주한 무종 황제는 서역 불문과의 협력을 선택했지. 그때가 서역 불문과 대봉이 동맹을 맺은 발단이네.
불문은 무종 황제를 도와 초대 감정을 죽이고, 무종 황제는 불문이 중원에서 선교하고 불문 대신 부정한 물건을 봉인하기로 동의했네. 감정 그 노인네가 상백이 폭발했음에도 좌시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방관하는 건 이미 약속을 어긴 셈이네.”
‘제기랄!! 알고 보니 이렇게 된 일이었군. 내가 말했잖아. 무종 황제가 황위 찬탈에 성공했는데 그 초대 감정은 뭐하러 간 거냐고……. 그해 황위 찬탈의 다툼에 불문이 참여했다. 불문에는 품계를 초월하는 부처가 존재하니 술사 전봉인 감정을 해치우는 건 이치에 맞다. 잠깐, 그럼 당대 늙은 감정은 또 여기서 무슨 역할을 맡은 거야?’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을 부르르 떨며 위연에게 물어보러 온 일을 좀 후회했다.
“감정, 그, 그는 왜 부정한 물건이 곤경에서 벗어났는데도 좌시한댑니까……?”
허칠안은 한참을 머뭇거리던 끝에 이 의문점을 물었다.
이 문제는 자신과 연관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만요국 잔당의 계획을 알면서도 굳이 무관심한 태도로 방관하는 걸 선택했다. 감정은 만요국 잔당이 신수 승려의 단수를 몸에 기숙하게 한 걸 알면서도 굳이 무관심한 태도로 방관하는 걸 선택했다. 감정은 심지어 암암리에 그를 도와주고 있다!
감정은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는 걸까? 그는 무엇을 계획하는가?
그는 부처가 불근을 휘두르며 문 앞까지 찾아와서 미친 듯이 신호를 내뿜는 게 두렵지 않은가?
위연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누가 알겠는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복 은라의 시중을 즐기며 말했다.
“오늘 아침 조회 때 도액 대사가 궁에 왔네. 그는 감정에게 두법(斗法)을 논하자고 제안했고, 노름돈은 천기반과 금강경이라고 하더군. 폐하께서 동의하시길 바란다면서 말일세.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 사천감에 묻자 감정이 찬성했네. 오후가 되면 황방(黃榜)을 붙여 경성 전체에 알릴 테니, 볼거리가 생겼지.”
허칠안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갑자기 철렁 내려앉으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싸운답니까?”
위연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면 알겠지.”
‘불문은 이렇게 강한데 왜 자기 집안의 반역자를 대봉에 봉인해야 하는 걸까? 대봉의 상백에 특수한 점이 있다든가 신수 자체의 문제겠지…….’
허칠안은 약간 망설이더니 그래도 참지 못하고 이 의문을 짚고 넘어갔다.
“본좌는 보통 사람일 뿐이네. 이 내막에 대해서는 모르네.”
위연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른다고 의사를 표했다.
“허칠안, 자네 올해 스무 살이 되었지?”
위연이 갑자기 물었다.
“그렇습니다, 위 공.”
허칠안은 어리둥절하며 속으로 말했다.
‘오프닝 멘트에서 왜 짙은 기시감이 풍기는 거지?’
과연 위연이 다음으로 한 말은 이러했다.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었구먼.”
이 세계에서 보통 사람은 수명이 보편적으로 높다. 천재지변을 당하지 않는 경우라면 60년을 사는 데에 조금도 부담이 없다. 70~80세도 흔히 보인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의 간극이 크다. 어떤 여인들은 14살에도 시집을 간다.
반면 어떤 여인들은 스무 살 넘어서도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들은 꽃길 그대로 두고 싸리문 활짝 열어 낭군을 기다렸다. 가엾다, 가여워.
허칠안 주변에도 이런 예가 있다. 16살에 숙부에게 시집온 숙모와 25살인데도 아직인 회경이 그랬다.
수명 문제를 얘기해 보자면 허칠안은 마음속에 불가피하게 의심이 일었다. 유가 성인이 82세에 인간 세상을 떠났으니 아무래도 당연한 이치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연은 두 손에 닭을 잡을 힘조차 없는 사람이라 그와 이렇게 고차원적인 지식을 논하자면 딱히 재미도 없고 더욱이 그럴 필요도 없을 듯했다.
허칠안은 위연을 떠보며 말했다.
“위 공께서는…… 무슨 뜻인지요?”
“좌독찰어사에게 손녀가 하나 있는데 마침 출가할 나이가 되었다고 하더군. 외모가 뛰어나게 아름답다고 하네.”
위연이 말했다.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소직에게 어울리지 않을 듯합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위해백(威海伯) 가문의 넷째 아가씨가 올해 열일곱인데 위해백이 그녀에게 신랑감을 찾아주고 싶다더군. 자네는 자작이니 그럭저럭 어울리겠네만.”
위연이 말했다.
“소직이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 백작(伯爵) 집안의 아가씨는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허칠안은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조운총독(漕運總督)의 조카딸은 어떠한가? 본좌가 마침 은자가 부족하니 자네가 만약 그와 사돈을 맺는다면 내 급한 불을 해결해 주는 셈인데.”
위연은 그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비록 내시 2세라고 스스로 놀리지만, 당신이 정말 내 아빠도 아닌데 정치적인 혼인에 대한 욕구가 너무 분명하잖아…….’
허칠안은 짧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예쁩니까?”
“당연히 빼어나지. 호감이 갈 걸세.”
위연이 말했다.
허칠안은 빼어난 외모라 호감이 갈 거라는 말을 듣자 바로 pass하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직은 현재 적잖이 모은 은자로 교방사의 기녀들을 전부 속신할 예정입니다. 본처가 만약 외모가 빼어날 뿐이라면 아마 그 요염한 기녀들을 억누르지 못할 겁니다.”
위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어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가? 혹 이미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는가?”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그럼 너무 많은데…….’
허칠안은 침음하더니 말했다.
“우선 반드시 선녀만큼 아름다워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신분이 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능이 꽤 뛰어나고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여야 합니다.”
위연은 웃더니 말했다.
“그럼 차라리 본좌가 자네 대신 폐하께 혼사를 청하여 공주를 아내로 얻는 게 낫겠구먼.”
허칠안은 순간 좀 흥분했다.
“위 공, 정말입니까?”
위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구를 가리켰다.
“위 공 무슨 분부를 내리시렵니까?”
“꺼지게.”
* * *
허칠안은 호기루에서 쫓겨난 뒤 자신의 일도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돌아서서 막 수리를 마친 춘풍당으로 갔다.
이옥춘은 마침 송정풍과 주광효 등 몇몇 동라들을 데리고 거리를 순찰할 참이었다. 어젯밤에 불문 고승이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였으니 성안의 백성들이 오늘 아침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사람들은 불문 고승의 강대함에 경탄하고, 일부 사람들은 불문이 사람을 너무 깔본다고 하며 조정에서 군을 지휘하여 토벌하길 바랐다.
왕공 귀족부터 행상인과 심부름꾼까지 오늘 아침에 논하는 건 전부 이 이야기였다.
이 시대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수천만의 대봉 백성들은 큰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자!
키보드 위에서 서역 불문과 격렬한 전투를 300라운드 벌인다.
강호 인사가 이 틈을 타 소란을 피우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관아에서는 순찰 임무를 강화하였다.
“이크이크!”
허칠안은 즉시 이옥춘 일행을 막아서고 일도당으로 돌아와 자신의 부하 동라들을 불렀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무정한 걸음걸이로 걸어와서는 한패를 이루어 거리를 순찰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