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불문의 법상(法相) (3)
땅거미가 내려왔다.
푸른색 납의를 입은 승려가 역참으로 돌아와 곧장 도액 대사를 만나러 가더니 양손을 합장하고 말했다.
“사숙조, 감정께서 여전히 대사를 뵙지 않으려 하십니다.”
주황색 촛불 사이로 주름살 가득한 도액 대사의 얼굴이 비쳤다. 그의 얼굴은 반은 촛불에 비치고, 반은 그림자에 가려졌다.
“알겠네. 자네는 내려가게.”
승려는 물러갔다.
도액 대사가 다시 눈을 감자 정수리뼈에서 금광이 충천했다.
그 금광은 천천히 떠올라 밤하늘을 가르고 사라졌다. 몇 초쯤 지났을까. 밤하늘에 먹구름이 끊임없이 몰려오더니 세찬 천둥소리가 울렸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먹구름 사이로 금빛 한 줄기가 반짝였다. 뒤이어 세찬 조수 같은 금빛이 경성 전체를 뒤덮었다.
운무가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그 사이로 부처님 얼굴이 보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눈썹을 곧추세운 모습이었다.
이 법상은 아주 거대했다. 고작 얼굴 하나일 뿐이지만 경성의 반만큼 컸다.
* * *
경성 안, 백성들은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모든 수련자의 마음속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두렵고 오싹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들은 마치 봄날의 우레 속에 있는 작은 동물처럼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허칠안은 잠자다가 깜짝 놀라 깼다. 그가 창백한 안색을 하고 방을 뛰쳐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경성 상공에 응결된 금빛 찬란한 부처님의 얼굴이 보였다.
이런 현상은 평생에 겨우 한 번 볼까말까 했다. 마치 부처가 강림하여 구름 끝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쾅…….
동쪽 행랑채와 건너편 방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허평지와 허신년이 뛰쳐나왔다. 부자 둘은 두 다리를 끊임없이 떨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형님……. 서역 불문이 경성에서 주먹을 휘두르려는 거죠?”
허신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평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한평생 이렇게 공포스러운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감정, 왜 본좌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까?”
이때 법상이 입으로 사람의 말을 내뱉었다. 마치 격렬한 천둥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음파가 메아리쳐 경성에 울려퍼졌다.
‘이런 XX……. 과연 이 세계 고위층의 전투력은 공포스럽군…….’
허칠안은 다리를 발발 떨면서 개탄했다.
허칠안은 잠시 까불대면서 소리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여보, 얼른 나와서 석가모니를 봐!’
하지만 그는 아내가 없었다. 게다가 그 법상이 내뿜는 중후한 위압감은 어떠한 감정도 들지 못하게 했고, 본능적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고 싶게 했다.
감정, 왜 본좌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까…….
세찬 천둥소리처럼 엄한 물음 소리가 들려오자, 허평지는 열심히 버티던 중 두 무릎에 힘이 빠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허평지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모욕감이 일기도 했다.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칠안, 신년, 꿇지 말아라. 일어서라, 일어서!!”
마지막 세 글자는 포효였다.
허평지는 울부짖은 후에도 조카와 아들의 대답을 듣지 못해 고개를 들어보니…… 아들은 복도를 짚었다. 이마에 튀어나온 핏줄을 보아 전력을 다해 버티는 듯했다.
조카는 방문에 등을 기대고 양손으로 칼을 짚은 채 고집스럽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떠받드는 법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들과 조카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었다. 다행히 허신년과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시선을 옮겼다.
‘후……. 이 두 놈 자식이 내 체면을 세워줄 줄도 알고 말이야!’
허평지는 난처한 감정을 풀 수 있었다.
‘피식, 숙부께서 한껏 쫀 모습을 보니 정신력, 체력, 기력을 다 숙모한테 쏟았나 봐요!’
허칠안은 속으로 비웃었다.
‘아버지, 너무 창피해요. 혼자 꿇으려면 꿇을 것이지,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여기에 외부인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허신년은 은근히 창피한 늙은 부친을 미워했다.
“형님, 저, 저 불문 고승이 어떻게 할 계획일까요? 형, 형님은 야경꾼 관아에서 관리로 일을 하니 내막을 좀 아시죠?”
허신년은 떠듬떠듬 말했다.
그는 가급적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했다.
그는 서역과 대봉이 어떤 일들로 의견 충돌이 생겼고, 이에 서역 사절단이 경성에 왔다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 불문 고승의 행동을 보니 서역 쪽의 태도를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분노!
만약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서역과 대봉의 연맹은 결렬되고 심지어는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컸다.
허신년은 명색이 지식인으로서 이런 큰 사건에 본능적인 지식욕이 있었다.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갈등이 생겼지만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구체적인 건 나도 잘 몰라.”
그는 반 정도 얘기하다가 다시 말을 바로잡았다. 불문 고승의 반응은 마찬가지로 허칠안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갑자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신수 승려가 대봉에 봉인되던 그해, 아마도 동맹국이 순수한 마음에 서로 도왔을 뿐만 아니라 그 일에 다른 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만약 단지 동맹국이 서로 도왔을 뿐이라면 불문이 어째서 이렇게 분노하고 어째서 이렇게 일을 크게 떠벌리겠는가.
* * *
호기루!
위연은 푸른색 도포를 걸치고 요망대에 선 채 고개를 들어 경성의 절반을 가린 부처님 얼굴의 법상을 보았다. 한도 끝도 없이 큰 몸집은 끝없는 먹구름 속에 숨어 있다.
“반역자 나한 죽어라!”
차분한 눈빛에 꼿꼿하게 세운 허리,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푸른색 도포. 위연은 마치 법상과 마주 보는 듯했다.
뒤에 있는 다실에는 양연과 남궁천유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온 힘을 다해 법상의 위압에 맞섰다.
수련 경지가 높을수록 받는 압박이 훨씬 컸다.
“불문은 지난날과 다름없이 여전히 강대하구나.”
위연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그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두 아들들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허칠안이 여기에 있었다면 내가 감히 장담하는데 그는 분명히 서 있을 것이다. 무슨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서 있을 것이야.”
양연과 남궁천유는 부끄러워졌다.
* * *
황궁에서 원경제가 용포를 걸치고 늙은 태감의 수행하에 침전을 걸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두 눈썹이 곧추선 부처님 얼굴을 멀리 바라보았다. 마치 황궁 위에 매달린 듯했다.
부처님이 노여움은 없지만 위엄 있는 눈으로 원경제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황궁 안의 금군 시위대는 마치 강한 적과 맞닥뜨린 듯 손에 창을 쥐었다. 그들은 한 명도 무릎을 꿇지 않고 더욱이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황궁 전체가 법상의 위엄에서 차단된 듯했다.
“흥!”
원경제는 콧방귀를 뀌더니 돌아서서 침전으로 돌아갔다.
* * *
경성에 있는 수백만 명의 인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사, 근래에 경성으로 몰려온 강호 인사들을 포함한 모두가 오늘 저녁 종말이 곧 다가오는 듯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들 내면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가 생겨났다.
그들은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는 경성이다. 대봉의 핵심 도시인데 설마 위세를 떠는 불문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어?’
우선 승려는 나흘 동안 무술을 겨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는 또 법상이 강림하여 경성 전체를 뒤흔들더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감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감정은 대봉의 수호신으로 유일한 1품 고수다.
조정의 체면은 어디에, 감정의 체면은 어디에, 수백만의 경성 사람들의 체면은 어디에 두어야 한단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감정이 나서기를 갈망했다.
* * *
상백, 새로 지어진 영진산하 사당 안에는 개국 황제의 패검인 황동검(黃銅劍)이 웅웅거리며 흔들렸다. 마치 주인의 호출을 기다리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대 속에 청월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럽다!”
듣기 좋은 목소리에는 청량한 질감이 있었다.
낙옥형이 머리에 연화관을 쓰고, 몸에는 태극어(太極魚)를 걸치고, 미간 사이에는 주사(朱砂)가 박힌 채 정실에서 걸어 나오자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새하얀 오른팔을 뻗어 별안간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자 연못에서 녹슨 자국이 얼룩덜룩 있는 철검이 물을 가르고 나와 그녀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낙옥형은 손안에 있는 철검을 가볍게 내던지며 말했다.
“가거라!”
검기가 무지개처럼 하늘로 솟구쳐 갔다.
처음에는 마치 가느다란 불빛처럼 하늘을 거슬러 올라가는 운석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 끝에 직경 100m의 아치형 기조(氣罩)가 팽팽해졌는데 그건 공기 저항으로 형성된 기파(氣波)였다.
잠시 뒤, 붉은빛이 금빛 하늘을 비추고 금색 법상과 서로 비추면서 원래 가느다랬던 선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강대해졌다.
마치 붉은 폭포 같았다.
금신(金身) 법상은 콧방귀를 뀌더니 끝없는 먹구름 속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손바닥을 내밀어 검광을 잡으려 했다.
법상이 금색의 거대한 양 손바닥을 한데 합치자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비치는 검광이 손바닥 가운데에 끼었다.
다음 순간, 경성 상공에 우렁찬 천둥이 쳤고 법상의 두 손은 한 치씩 무너지면서 금빛이 되었다. 뒤이어 부처님 얼굴이 무너지면서 흩어지고, 붉은 검광이 금빛에 섞여 아름다운 일곱 가지 색으로 한데 어우러져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 아름다우면서도 다채로운 경관은 경성 백성들이 아마 한평생 볼 수 없는 장관일 것이다.
철퍼덕…….
허평지는 방금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다시 무릎을 꿇었다.
허칠안과 허신년은 다시 얼굴을 돌리고, 부친(숙부)의 망신스러운 장면을 보지 않았다.
‘방금 나선 자는 낙옥형? 역시 2품 도수답다. 이 검이 이렇게 나를 향해 돌진한다면…….’
허칠안은 이 순간 심정이 좀 복잡했다.
그는 낙옥형과 몇 차례 교류한 적이 있었다. 비록 상대가 도문의 2품인 걸 알았지만, 그녀의 실력에 관해서는 뚜렷한 인식이 부족했다.
허칠안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도문 2품이 얼마나 강한지 확실히 깨달았다.
“만약 처음부터 이 여인이 이렇게 사납다는 걸 알았다면, 예전에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
허칠안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자신이 죽음의 경계를 반복해서 드나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 * *
반주향 후 하늘은 적막을 되찾았다. 붉은빛과 금빛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걷히면서 초승달이 하늘가에 걸렸다.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허씨 집안의 나리 셋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허칠안은 문턱에 앉고, 허신년은 회랑 난간 위에 앉고 허평지는 느릿느릿 일어서서 나지막이 말했다.
“젊음이 좋구먼. 나와는 다르게 몸과 뼈가 아직 튼튼하니 말이야. 너무 갑작스러워서 미처 막지 못한 상태에서는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없더군. 하지만 아버지도 소싯적에는 굽힐 줄 모르는 사내대장부였단다. 천군만마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진하며 눈썹 한 번 찌푸리지 않았지.”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번에 내가 대비책이 생겼으니 만약 다시 한번 더 오면, 절대 추태를 부리지 않을 것이야…….”
그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갑자기 밤하늘에 범창(梵娼)이 울려 퍼지면서 고요한 먹구름이 다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구름층 깊숙한 곳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범창을 동반한 먹구름이 넘실대고, 다시 법상이 나타났다.
이전 법상과는 달랐다. 이 법상은 더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했다. 부처님 얼굴 역시 훨씬 흉악해졌다.
물론 기세 역시 판이했다. 전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