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불문의 법상(法相) (2)
허칠안은 암말을 끌고 항원, 초원진과 천천히 걸었다.
“초 장원, 방금 그 검은 몇 할의 공력(功力)을 들인 겁니까?”
허칠안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초원진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동문서답했다.
“그 승려가 가는 길이 자네와 같으면서도 자네와 상반되더군.”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다. 초원진의 말은, 정사 승려는 금강불패만 할 줄 아는데 이 점이 단칼의 힘을 쓰기만 하는 허칠안과 아주 닮았다는 뜻이었다.
상반되는 점은 한 사람은 공격수고, 한 사람은 수비수라는 부분이다.
“그럼 초 장원은 제 창으로 그의 방패를 격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가능하지!”
초원진은 그를 쳐다보더니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하기도 하지.”
허칠안은 그에게 정색으로 답했다.
“지식인과 불문 사람은 똑같이 얄밉군요.”
초원진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뜻인가?”
허칠안은 웃었다.
“직접 생각해보십시오.”
초원진은 별안간 불쾌한 얼굴을 하더니 몇 초 뒤 갑자기 깨닫고서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암시는 정말 재미없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인재들이 이런 짓을 하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꺼냈다.
“자네의《천지일도참은》아주 강하네. 심검 비법과 융합한 뒤에는 더욱이 허점이 없어졌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영혼이 부족하네.”
‘영혼?!’
허칠안은 이 단어를 거절했다.
“자네가 시전하는 건 천지일도참이면서 단지 천지일도참이네. 그리고 내가 시전하는 건 검법이 아니라 내 의기(意氣)이지. 내가 게으를 때면 검기 역시 게을러지네. 내가 온화할 때는 검기 역시 온화하지. 하지만 내가 화를 내는 순간 내 검의(劍意)는 하늘을 뚫을 수 있다네.”
초원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바로 의기네! 이게 바로 영혼이고! 이게 바로 4품 무사의 진리지!”
허칠안은 관아에 있는 금라들의 ‘신위(神威)’를 떠올리며 문득 깨달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장원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그건 4품 무사의 진리입니다.”
‘나는 고작 7품 연신경의 은라일 뿐이라고.’
“내가 자네에게 양의(養意)를 가르칠 수 있네. 높은 경지까지 수련하면 4품 무사의 능력을 미리 갖추는 셈이네. 물론, 효과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천지일도참을 곁들이면 불문 금강을 가르는 데에는 충분하네.”
“절학을 수련하는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닙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제가 장원의 필살기에 무임승차할 수 있습니까’ 였다.
“입문은 아주 간단하네!”
초원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검을 배운 뒤 일 년 동안은 이 비법을 갈고닦아 그걸 익히는 데 성공했네. 이삼일이면 돼. 다만 높은 경지까지 단련하기에는 어렵지.”
“초 장원께서 가르쳐주십시오.”
허칠안이 황급히 말했다.
“내가 우선 자네에게 비법을 얘기해주겠네. 어렵지 않아. 사실 자신의 의기를 그 속에 녹여 검기나 도기로 만들면 되네. 간단한 의기는 단지 희노애락 등에 지나지 않네.”
초원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인종이 바로 이 길을 걷고 있네. 내가 인종의 기초 위에 새로운 비법을 탐색해낸 것과 다름없지.”
* * *
원경제와 국사가 풍경이 수려하고 아늑한 영보관 뒷마당 정실 안에서 바둑을 두었다. 흑발이 다시 자라는 늙은 황제는 바둑알을 쥐고 탄식하며 말했다.
“초원진도 졌습니다.”
여자 국사는 양미간 사이에 주사(朱砂)가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아름다우면서도 요염하지 않고 몸매가 풍만하여 소녀의 청초함과 젊은 부인의 매력이 완벽하게 섞여 있었다.
순진하면서도 요사스러웠다.
그녀는 머리를 쓰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바둑을 두었다. 그렇게 그녀는 탁탁탁탁 바둑알을 내려놓다가 원경제의 말을 듣더니 대꾸했다.
“손이 가는 대로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어찌 승패를 논하겠습니까?”
원경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 승려가 명성을 떨치고, 서역 불문이 명성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원경제는 비록 궁 안에 있지만, 경성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서역 사절단과 관련된 소식은 크고 작은 일에 상관없이 속속들이 파악했다.
“폐하께서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낙옥형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고, 그는 바둑을 두다가 자신이 곧 질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슬며시 바둑알 두 개의 위치를 바꿨다.
“불합리요?”
원경제는 비웃더니 이어 탄식했다.
“불합리한 것도 있지만, 유감스러운 마음이 더 큽니다. 승려는 나이도 젊고 수련 경지도 놀라운데 경성에는 뛰어난 신인이 없으니 짐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금군의 고수를 출전하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 망신스럽지요.”
낙옥형은 원경제의 말을 알아들었다. 원경제는 초원진이 나섰다는 사실을 나무랐다. 그는 시원하게 승려를 격파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그자가 명성을 떨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그 중놈이 나쁜 의도로 왔으니 이번에는 아마 쉽사리 서역으로 돌아가지 않을 듯합니다.”
원경제는 또 말했다.
“폐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씀하시지요.”
“며칠 전에 도액 대사가 감정을 만나러 왔는데 거절당했습니다. 감정은 관성루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세상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있죠. 그가 만약 서역 고승을 상대하지 않는다면…… 그때가 되면 국사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낙옥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바둑돌 두 알의 위치를 바꿨다.
원경제는 세 판 연패한 뒤 괴로워하며 영보관을 떠났다. 그는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늙은 태감에게 분부했다.
“가서 위연에게 사람을 찾으라 이르거라. 짐은 그 승려가 다시는 연무대 위에 서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늙은 태감은 공손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네!”
* * *
허칠안과 초원진은 남성, 양생당의 뒤뜰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그가 말하는 ‘양의’의 비법을 들었다.
항원 대사 역시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몰래 배웠다.
“들어 보니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어떻게 ‘의기’를 칼 속에 녹입니까?”
허칠안은 질문하면서 일어나 흑금장도를 휘둘렀다.
그는 그 과정에서 초원진의 지도 비결에 따라 자신의 의기를 칼 속에 녹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자네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기쁨도 슬픔도 걱정도 분노도 없는데…… 어떻게 양의한단 말인가?”
초원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제 잘못이지요. 제 가슴속에는 정기(靜氣)가 있어 눈앞에서 산이 무너져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을 겁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소위 의기양양하다는 건 본질적으로 일종의 감정이다.
초원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속성 방법이 한 가지 있네.”
허칠안의 눈이 반짝였다.
“초 장원 말씀하십시오.”
“자네 이리 오게.”
장원랑이 빙그레 웃으며 손짓했다.
허칠안은 즉시 걸어갔다.
탁!
초원진은 손바닥을 뒤집어 뺨을 한 대 갈겼다.
‘XX…….’
허칠안은 화가 났다.
“초 형,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의기를 베어낼 수 있겠는가?”
“전혀 효과 없습니다.”
허칠안이 얼얼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럼 적당한 때가 오지 않았다는 뜻이네.”
초원진은 갑자기 달려들어 쉴 새 없이 손바닥을 휘둘렀다. 허칠안은 애써 저항하고 피했지만 그럼에도 뺨을 십여 대나 얻어맞았다.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초원진을 마주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이때 운이 트이고 생각이 영민해지면서 울분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슉!
매우 날카로운 도기가 베어 나와 공기를 뒤틀었다.
초원진은 이 칼 끝에 대항하길 원치 않는 듯 고개를 들어 피했고, 도기는 하늘 끝으로 솟구쳐 천천히 흩어졌다.
“역시 효과가 있군요!”
허칠안은 기뻐했다.
방금 그 칼은 그의 평소 도기의 한계를 넘어섰다. 만약 그가 천지일도참을 곁들여 시전하면 그 위력은 한 층 더 강해질 터였다.
“자네는 역시 천재군.”
초원진이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그는 하루나 사흘에 걸쳐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허칠안은 고작 한 시진을 썼다.
‘아니, 사실 당신이 학생을 가르치는 데 귀재라서 그래…….’
허칠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만약 제가 매번 단칼을 시전할 때마다 우선 맞아야 한다면 너무 손해 아닙니까?”
초원진이 대답했다.
“그렇기에 내가 입문은 쉬우나 정통하는 일은 어렵다고 말했잖나. 자네의 현재 의기는 외부 자극이 필요하네. 자발적으로 시전할 수 없어.”
‘아, 수련해야 하는 비법이 하나 더 늘었군…….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단칼에 베고 죽기를 기다리는 소년이라고…….’
허칠안은 도를 닦는 길이 어떠한 불가역적인 상태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그는 배우는 게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대적하는 수법은 여전히 단조롭고 극단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분출할 수 있는 역량은 점점 강해진다. 언젠가는 내 단칼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는 진정한 천하의 고수가 될지도 모르지.”
* * *
그날 저녁, 허칠안이 예상한 대로 숙부는 남성 연무대의 대결을 얘기했다.
“듣자 하니 아주 대단한 검객이 나섰는데도 서역의 승려를 이기지 못했다더구나.”
숙부가 개탄하며 말했다.
“경성에 고수가 그렇게 많이 있는데 승려 하나를 이기지 못한단 말이에요?”
숙모는 밥을 먹으면서 되는대로 참견했다.
“경성에 고수가 많긴 하지만, 약한 자를 괴롭혔다는 말이 퍼져 나가면 듣기 좋지 않은가. 젊은 고수들이 적잖이 있지만,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게 불문의 독자적인 금강불패라 같은 경지는 둘째 치고 한 품계 더 높다 해도 반드시 깰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하더군.”
숙부는 머리는 길지만 식견은 부족한 자신의 아내에게 지식을 보급했다.
숙모는 다 듣더니 화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큰 경성에 우수한 젊은이들조차 도전하지 못하다니. 우리 신년이 무도를 닦지 않아서 그렇지, 수련했다면 한주먹으로 승려를 기절시킬 텐데.”
허신년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저는 못 해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서역 사절단이 좀 날뛰는 게 사실이긴 해요. 근래에 동창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 이야기를 하면 모두 매우 분개합니다. 북성에서는 한 승려가 매일 경전을 읽고 설법하는데 매일 수천 명의 백성들이 경전을 듣는다고 합니다. 한 번 듣기 시작하면 두 시진인데 그 빈곤한 백성들이 어떻게 세월을 허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남성의 그 승려는 거칠고 투박한 육체만 믿고 입으로는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는데 공교롭게도 경성의 무사들은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더군요. 동창들 모두 무사는 집안에서만 큰소리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허칠안과 허평지의 미움을 동시에 샀다.
“너희 서생 역시 뚫린 입 하나잖니? 팔짱 끼고 입으로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댈 뿐이지.”
허칠안이 비웃었다.
“일리 있구나.”
숙부는 조카의 말에 맞장구치는 김에 아들이 회원에 급제한 후부터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아내를 제압했다.
“신년은 무술을 연마할 그릇이 아니오. 오히려 영음이 팔이 통통하고 다리에 살이 쪄서 힘이 충분하지 않소. 그보다 훨씬 더 타고난 자질을 갖추었소.”
허영월은 머리를 파묻은 채 고기를 먹는 여동생을 힐끗 보더니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때 가면 정말 집이 거덜 나겠어요.”
그들이 몇 마디 수다를 떨던 중 숙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생은 차치하더라도 어도위의 동료들도 화가 나서 속을 끓이고 있단다. 서방의 승려가 너무 오만하게 굴더구나.”
‘불문의 오만함에도 이유가 있다고요. 그들은 본래 잘못을 따지러 왔고요…….’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