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금강불패(金剛不敗) (1)
도액 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부정한 물건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습니까?”
허칠안은 속으로 기뻐하며 지식욕을 적당하게 내보였다.
“대사께서 알려 주길 원하시는지요?”
몹시 야윈 노승이 웃으며 말했다.
“안 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대인께서 우리 불문에 들어와 빈승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꺼져라…….’
허칠안은 얼굴을 씰룩거리며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본관이 수련하는 건 무도라 더는 불문의 심법을 수련할 수 없습니다.”
도액 대사는 이렇게 대답할 거라는 걸 진작에 알았다는 듯 여유롭게 말했다.
“무승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무승으로 전환할 수 있다라……. 역시나 무승과 무사는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은 같군. 내 추측이 맞았어. 불문의 무승 체계는 바깥에 있는 제자를 위해 준비된 거야.’
허칠안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 두었던 짐작을 실증했다.
‘그 8품 무승의 다음 품계가 뭐지?!’
“장가들고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비록 무승은 계율을 지킬 필요가 없지만 장가들고 자식을 낳을 수는 없습니다. 이건 수련과 무관한 불문의 법도입니다.”
도액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불문에 들어오면 출가인이 됩니다. 무승 역시 그러하죠. 출가인인데 어찌 가정을 꾸릴 수 있겠습니까.”
허칠안은 유감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는 불문을 아주 동경합니다만 어찌 9대에 걸쳐 독자가 하나일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 보아하니 저는 불문과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실로 한평생 한스러운 일이군요.”
도액 대사는 조금 기뻤다. 허칠안이 불문에 이렇게 우호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허 대인, 앞으로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역참에 와서 물어보십시오. 말할 수 있는 건 빈승이 대인께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불문 사제로 위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본관이 잘못했습니다.”
도액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사에게 허칠안을 배웅하라고 분부했다.
* * *
도액 대사는 허칠안을 배웅하고 정사가 방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항원을 방으로 부르게.”
“네!”
정진은 나가서 항원을 불렀다.
항원이 이내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채 정진을 따라 돌아왔다. 도액 대사는 웃으며 말했다.
“반수가 나를 사숙이라 부르고, 자네는 그의 제자이니 나를 사숙조(師叔祖)라고 부르게.”
사실 서역 불문과 청룡사는 서열 관계가 없었다. 전에 정진은 예의상 허칠안과 사형, 사제하며 서로 호칭했을 뿐이었다.
“사숙조.”
항원이 두 손을 합장했다.
도액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정진에게 들으니 은라 허칠안이 자네와 막역한 사이라고 하던데?”
항원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종전의 오해는 모두 그자 때문에 발생한 일이네. 자네 일찍이 원망의 말을 거두었지?”
도액 대사는 항원을 주시했다.
“허 대인이 무엇을 했든 간에 제자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삼호에게 두 번이나 목숨을 빚지고 허칠안에게는 목숨을 한 번 빚졌다. 전부 하늘만큼 큰 은혜다.
도액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항원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저와 허 대인은 상백 사건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항혜 사제 때문에 이 사건에 휘말렸고, 당시에 야경꾼 관아의 금라가 저와 항혜 사제가 몸을 숨긴 곳을 포위했지요……. 저는 본래 죽음은 면하더라도 감옥에 갇힐 줄 알았습니다. 이때 뜻밖에도 수석 수사관 신분의 허 대인이 나섰습니다. 그는 제가 그 사건에 연루된 게 결코 항혜 사제와 한 패거리여서가 아님을 명확하게 밝혀낸 뒤 즉시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여기서 항원은 문장을 수정하여 허칠안이 그를 낚았던 일을 숨겼다……. 물론, 항원은 지금까지도 허칠안이 그를 낚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꽤 좋은 사람이군!”
정진 승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놈이기도 하다. 전에 그가 상대방에게 허칠안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정진 승려는 돌이켜 생각하자 허칠안 몫까지 수치스러움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그렇게 태연하게 말했다니!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말하지. 그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인격적 매력이 있는데…….’
항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청룡사를 떠난 후에 줄곧 남성의 양생당에 빌붙어 살았습니다. 그곳은 돌아갈 집이 없는 노인들과 아이들을 거두고 있지요. 허 대인께서는 이 사실을 안 후에 아낌없이 보따리를 풀어 며칠에 한 번씩 은자를 보내 그들을 돕고 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이 그의 한 달 녹봉은 고작 은자 다섯 냥입니다. 당시 그는 동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불평한 적이 없을 뿐더러 제게 은자를 주웠다고 말하며 위안을 주더군요. 허, 제가 남몰래 그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는 보통의 야경꾼들과는 다릅니다. 지금껏 권리를 이용하여 사욕을 도모하거나 백성을 착취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은자들은 그가 직접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 절약한 것입니다.”
정진 승려는 여기까지 듣자 침묵했다.
그는 허칠안이 자화자찬했던 말을 떠올렸다. 허칠안은 자신이 일찍이 백성의 바늘 하나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도액 법사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선행을 한다고 반드시 선한 자는 아니네.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일세.”
항원은 눈살을 찌푸렸고,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제자가 사숙조께 한 가지 일을 더 말씀드리지요. 상백 사건 전에 그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한 소녀를 위해 그를 더럽히려 했던 상급자를 하마터면 죽일 뻔했습니다. 이 일로 그는 투옥되어 요참을 선고받았더랬죠. 만약 그해 영진산하 사당이 파괴되어 조정에서 급히 사람을 써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도액 법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또 물었다.
“그에게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가?”
‘특별한 점이라…….’
항원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선척적으로 비범한 재능을 타고나 무도를 닦는 기재(奇才)인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도액 대사는 다소 실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자네 나가서 일 보게.”
항원은 양손을 합장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사숙, 항원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허칠안 이자의 행실이 얄밉기는 하지만 확실히 선한 사람인 듯합니다.”
허칠안은 벼슬살이든 사람 됨됨이든 품성이 따뜻하고 선한 사람이다. 그는 비록 좀 밉살스럽고 교활하지만, 이는 결코 전자의 함량을 낮추지 않는다.
도액 대사는 ‘음’하고 소리를 냈다.
수려한 외모의 정사 승려가 즉시 말했다.
“그럼 그가 부정한 물건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도액 대사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사건 배후의 주동자는 만요국 잔당, 원경제와 감정이네. 만요국 잔당은 겉에서 빙빙 돌고 후자는 냉정한 태도로 방관했지. 그 은라와는 크게 관련 없네. 선한 자이니 우리가 그를 괴롭힐 필요는 없겠어.”
정진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대봉은 수차례 협약을 어겼기에 그 말에 신용이 없는데 저희가 구태여 다시 그들과 동맹을 체결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한과 보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액 대사는 나한의 일원으로서 사질(師侄)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북방의 오랑캐는 마신(魔神) 혈통이고, 북방 요족과는 수천 년 동안 동지이자 형제자매이네. 남강의 오랑캐는 부락이 아주 많지. 가장 강대한 7개의 고족 부락 역시 마신의 후손이네. 동북 무신교에서는 이미 품계를 초월하는 무신(巫神)이 나왔지. 구주 대지 곳곳을 불광으로 밝게 비추고 싶으면 대봉과 동맹을 체결하는 수밖에 없네.”
‘대봉과 동맹을 체결하는 수밖에 없다라…….’
정진과 정사 두 제자는 사숙의 이 말에서 중요한 정보를 뽑아냈다. 불문이 대봉과 동맹을 맺는 이유는 대봉에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없으면서도 마신과의 갈등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천 년 전에는 중원에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인 유가 성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대봉이 없었다.
생각을 거둔 정진이 도액 대사를 떠봤다.
“그럼 저희 앞으로 어떻게 해서 부정한 물건의 종적을 추적할 겁니까? 대봉 쪽은 이렇게 끝입니까?”
도액 대사는 헤아릴 수 없는 너무 심오한 질문에 웃었다.
“듣자 하니 근래에 도문 천인 간의 전쟁으로 많은 강호 인사들이 경성으로 몰려들어 관아에서 외성에 연무대를 네 군데 세웠다더구나. 우리가 두 군데를 취해서 쓰자꾸나. 정사, 자네 금강(金剛)의 몸으로 경성의 무사들과 맞서 싸우거라. 정진, 자네는 마음대로 연무대 한 군데를 취해 경을 읽고 설교하거라. 본좌는 기왕 대봉에 왔으니 감정을 좀 만나 봐야겠다.”
도액 대사는 말을 마치고 방을 걸어 나가 서쪽의 석양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중원에서 우리 불문의 위엄을 잊은지 오래 되었구나.”
* * *
한밤중, 허칠안은 동료들과 무리를 지어 교방사에 갔다. 예전의 소년 송정풍이 역시나 두꺼운 낯짝을 하고 따라왔다. 그중에는 ‘교방사의 침상 흔들리는 소리는 늘 고르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옥춘과 ‘나는 단지 술을 마시러 온 것뿐이네’라는 양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향은 허칠안을 향한 정이 아주 깊어서,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영매소각에 놀러 올 때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항상 칠현금을 안고 자리에 나와 한 곡 바치곤 했다.
허칠안과 관포지교의 사이인 일부 기녀들 역시 함께 즐기러 왔다. 그녀들은 허 색마가 기녀들에게 파묻혀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허 색마는 전혀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기분 좋게 밤새 술을 마시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제기랄, 이번에 적게 잡아도 은자 백 냥을 쓰겠군.’
그가 혼자 교방사에 와서 기녀들과 사랑을 속삭이는 건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저속한 금전 거래가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동료를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는 일이 공짜로 가능할 리가 없었다.
설령 부향이 사비를 털어 그에게 ‘원가비’를 보태주길 원한다 해도 허칠안은 어엿한 칠척 사나이라 백성의 바늘 하나도 가지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에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한턱낼 때 신중해야겠어. 더욱이 교방사 같이 돈 쓰면서 먹고 노는 곳은 말이야……. 내일 위 공을 찾아가서 청구해봐야겠다. 그가 내 불타는 충성심을 봐서라도 청구 문서에 서명할 수 있길 바라야지…….’
허칠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고 말했다.
“마시게, 마셔. 다들 사양하지 마시게. 오늘 저녁에는 취할 때까지 마시자고.”
‘전부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면 적어도 여인이랑 잠자리하는 돈은 아낄 수 있잖아!’
이 무사들은 결국 한밤중까지 마셨는데도 고주망태가 되지 않았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쌍욕을 퍼부으며 술자리를 마쳤다.
“우리 대장이 잘 주무실 수 있도록 밤에 침상을 흔들 때 반드시 지휘를 듣고 곡조에 맞춰 흔들어야 하네. 곡조를 이탈하면 안 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