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대답
항원은 무릎으로 정사의 목구멍을 누르고 오른쪽 주먹을 잔영으로 만들어 한 차례씩 그의 머리를 미친 듯이 내리쳤다.
퍽퍽퍽퍽……. 마치 종을 치는 듯한 소리에 충격파가 섞여 마당 구석구석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기와가 와르르 무너지고, 화단이 폭발하고, 버드나무가 부러졌다……. 한순간에 주변이 난잡하게 어질러졌다.
정사는 반항할 능력이 조금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감싸고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충분합니다!”
정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항원은 그때서야 손을 떼고 피범벅이 된 주먹을 흔들며 냉담하게 정사를 주시했다.
“거칠고 야만스러울 뿐이군.”
이쯤 되자 무승의 불같은 성미도 마침내 다 풀렸다.
허칠안은 항원을 줄곧 오해했다. 허칠안은 그가 부드럽고 꾸밈없는 ‘노지심’이라 여겼지만, 사실 항원은 두텁고 소박한 외투를 걸친 폭도였다.
성질이 난폭하지 않은 사람은 한밤중에 평원백부에 뛰어들어 남을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훌쩍 떠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다만 항원의 마음속에서 허 대인은 선행을 즐기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좋은 사람은 자신이 부드럽게 대할 가치가 있었다.
그는 역참에 들어온 후 곳곳에서 겨냥 당했다. 그가 선의를 가지고 와서 오히려 ‘곤봉’을 마주했을 때 가슴속에서 얼마나 울화가 치밀었는지 말도 하지 마라. 이 승려 놈은 이렇게 울화가 치민 상황에 나서서 허세를 부렸다. 그는 마치 항원이 유명무실한 사람인 듯 뺨 한 대로 아무렇게나 그를 날려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거칠고 야만스러운 승려일 뿐인데.
* * *
신시 초, 초봄의 태양이 미적지근하게 서쪽에 걸려 있었다.
도액 대사는 손에 선장(禪杖)을 쥐고, 몸에는 금홍색 마납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발길 가는 대로 걷다가 돌아와 역참 입구에서 멈췄다. 그런 뒤 한 걸음을 내디뎌 안마당으로 갔다.
안마당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역졸들은 사다리를 밟고 지붕 위로 올라가 기와를 깔고 있었다. 무승들은 모래흙을 날라 갈라진 땅을 다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일하는 자는 낯선 대머리였다. 도액 대사는 몇 번 훑어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액 대사는 몹시 여윈 노인네였다.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했다. 그는 바싹 마른 몸을 아주 넓은 마납으로 감싸고 있어서 다소 익살스럽게 보였다.
“사숙!”
정진 승려가 방에서 나와 서역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숙께서 입궁하신 사이에 일이 좀 생겼습니다…….”
그는 가짜 항원 사건의 전 과정을 도액 대사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항원이 정사를 조금의 반격할 힘도 없이 때렸단 말인가?”
도액 대사는 고개를 돌려 열심히 일하는 항원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정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
“허나 정사 사제가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금강경(金剛經)은 보통 사람이 때려 부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오만함이 섞인 말투였다.
도액 대사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돌아서서 물었다.
“첫 번째 항원이 자네와 대화를 나눌 때 부정한 물건에 관한 정보를 얘기한 적이 있는가? 예를 들면 그가 부정한 물건의 내력을 안다든가 부정한 물건의 어느 방면의 정보를 안다든가.”
정진은 잠시 돌이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단지 상백 밑의 봉인물이 불문과 관련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서술할 때 자신이 사제 항혜의 몸에 기숙하던 단수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숙, 이 일은 사실 검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밖에 있는 항원을 불러와서 질문하면 됩니다.”
도액은 다시 물었다.
“그가 정말 부정한 물건의 정보를 조금도 누설하지 않고, 자네가 더 많은 내막을 토로하도록 유도하지는 않았는가?”
정진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도액 대사는 ‘음’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아네. 자네 지금 야경꾼 관아로 가서 수석 수사관 허칠안을 찾게. 그에게 물을 말이 있네.”
* * *
허칠안은 기루에서 나왔다. 온몸이 가뿐하고 뼈가 다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그는 한편으로 마사지를 누리면서 연극을 보고 노래를 들었다. 정말 자유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는 한 시진 동안, 기루의 아가씨를 한 무더기씩 갈아치웠다. 아가씨들은 꽃처럼 웃는 얼굴을 한 채 들어와서는 두 손을 떨며 나갔다.
허칠안은 이미 퇴근시간이라 다시 관아에 갈 필요가 없으므로 길가에서 마차를 빌려 허부로 돌아갔다.
“첫째 공자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관아에서 공자님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택에서 한참을 기다리셨어요. 차도 이미 두 주전자나 드셨답니다.”
문지기 장 씨는 허칠안이 돌아오는 걸 보자 얼른 맞이했다.
‘관아에서 나를 찾는다라…….’
허칠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서방 불문 사람이 그를 찾으러 왔다고 짐작했다.
* * *
그가 응접실로 들어오니 검은색 옷을 입은 하급 관리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시선은 자꾸만 밖을 향했다.
“아이고, 허 대인께서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검은 옷의 하급 관리는 수차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드디어 허칠안의 모습을 보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대인께서 돌아오지 않으셔서 야간 통행 금지가 넘어가면 저는 어쩔 수 없이 귀 저택에 묵을 수밖에 없었습지요.”
“무슨 일인가.”
허칠안은 바로 주제로 넘어갔다.
“얼마 전에 불문 고승 한 분이 관아에 대인을 찾으러 오셨는데 계시지 않자 위 공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위 공께서 저택에서 대인을 기다리라고 저를 보내셨지요.”
검은 옷의 하급 관리가 말했다.
‘고작 승려 하나일 뿐인데 위연이 이렇게 정중하게 대할 것까지 있는가? 서방 놈이 뭐 대수라고. 나는 어엿한 동방 중원 놈인데 언제 일어설 수 있는 거야? 화가 나서 몸이 다 부들부들 떨리는군.’
허칠안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알겠네. 이따가 만나러 가겠네.”
검은 옷의 하급 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작별을 고하려 하다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웃으며 말했다.
“대인께서 최근에 여기저기 할 일 없이 돌아다니신다고 위 공께서 들으셨나 봅니다. 관아에서 파견을 기다리지 않고 거리를 순찰하지도 않으시니 위 공께서 화를 내시며 대인의 석 달 치 녹봉을 깎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아빠, 일이 있으면 잘 상의하면 되지요!’
허칠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허칠안은 검은 옷의 하급 관리를 배웅한 뒤 자신의 암말이 야경꾼 관아에 남겨졌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하인에게 허신년이 타는 말을 끌고 오라고 시켰다.
허부에는 말이 세 필 있었다. 각각 허평지, 허칠안, 허신년이 타는 말이었다. 마차 한 대는 여인들이 외출할 때 전용으로 사용했다.
* * *
허신년은 큰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서재에서 나와 노심초사하며 말했다.
“형님, 오늘 가신 후에 나쁜 마음을 먹은 놈 둘이 또 왔습니다.”
“뭐라고?”
허칠안은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한 명은 청삼 검객이고, 한 명은 백정 같은 승려였습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와서는 축하한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께서 온 사람은 손님이니 그들을 저택으로 들여보내 음식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항상 그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이상합니다.”
허칠안은 생각났다. 오후에 항원을 만났을 때 막 허부에서 음식을 대접받고 나왔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신년, 이런 알 수 없는 놈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너는 지금 회원이니 네 콧대는 더 높아야 한단다.”
허칠안도 아우를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서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네가 타는 말을 좀 빌려 주겠니. 내일 돌려주마.”
마침 이때 하인이 뒷문에서 말을 끌고 나와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 허칠안은 즉시 사라졌다.
* * *
그가 다시 삼양 역참에 왔을 때는 석양이 이미 서쪽 하늘에 걸려 있었다. 해 질 녘의 햇빛은 유달리 아름다운 금홍색이었다.
“당신은…….”
문을 지키는 승려 둘은 자신의 감정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선하지 않은 눈빛으로 허칠안을 주시했다.
“본관 허칠안, 상백 사건의 수석 수사관입니다. 도액 대사께서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안내하시죠.”
허칠안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고삐를 건넸다.
문을 지키던 두 승려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참았다. 한 사람은 말고삐를 받고 한 사람은 ‘청하는’ 손짓을 했다.
그는 문지기 승려를 따라 역참으로 들어가 안뜰에 이르렀다.
‘방금 싸움이 일어난 듯한 모양인데……. 항원 역시 이곳에서 일하고 있군……. 죄송합니다. 앞으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는 다소 마음이 켕겨 고개를 숙이고 항원 승려를 보러 가지 않았고, 문지기 승려의 인도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 * *
방 안에는 승려 세 사람이 있었다. 중간에 있는 승려는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피부가 까무잡잡한 늙은 승려였다.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하고 몹시 야윈 몸은 헐렁한 마납을 받치지 못해 언뜻 보면 좀 익살스러웠다.
좌우에는 각각 만난 적 있는 정진과 정사가 있었다.
정진은 선하지 않은 표정으로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도액 대사!”
허칠안은 양손을 합장하고 예를 갖췄다.
노승은 답례하더니 온화하게 말했다.
“허 대인은 무슨 까닭으로 청룡사 무승 항원을 사칭한 겁니까?”
허칠안은 엄숙한 태도로 대답했다.
“상백 사건 밑에 무슨 물건이 봉인되었는지 확실히 알고 싶었습니다.”
노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묵묵히 그를 쳐다봤다. 차분하면서도 온화한 시선은 마치 인체 스캐너 같았다.
허칠안은 이 노승 앞에서 감히 어떠한 속임수도 부릴 수 없었다. 그는 흩어지는 생각을 거두어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 뒤 말했다.
“상백 사건은 본관이 혼자서 처리하였습니다. 저는 그 속에 아주 많은 비밀이 있음을 알아차렸지요. 영진산하 사당은 큰 터 위에 세워졌고, 그 터에 부정한 물건이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영진산하 사당이 폭발하면서 부정한 물건이 곤경에서 벗어난 뒤, 본관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조사하였는데 불문이 새겨진 진법 돌기둥이 남아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는 맨 처음에 상백 밑에 봉인된 것이 전대 감정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진전되고, 항혜가 나타남에 따라 상백 밑에 봉인된 것이 단수임을 알아 냈습니다.
본관은 이러한 연유로 그 단수는 불문과 관련 있다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감정이든 황실이든 이에 대해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더군요. 저 허칠안은 경성에서 수차례 큰 사건을 해결하였습니다. 제가 밝혀내지 못한 사건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의문 때문에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 생각도 없었습니다.”
도액 대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이유로 전에 우리를 떠보았소이까?”
“그러합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는 항원을 사칭하기 전부터 이 변명을 진작 생각해 두었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단수의 내력과 배후의 숨겨진 비밀을 항상 마음에 둔, 사건 해결에 집착하는 ‘미친놈’으로 보이도록 위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서역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온 후에 항원을 사칭하며 떠보러 왔다.
그의 탐색에는 결점이 없었고, 모든 문제는 적절한 선에서 그쳤다. 그는 신수 승려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자발적으로 누설하지 않은 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수석 수사관 배역을 충분히 소화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