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대사님, 몸조심하십시오
‘세상에나. 신수 승려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무섭군. 그는 도대체 어떤 괴물인 것인가…….’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늙은 감정도 한주먹 감인가?’
“이해했습니다. 알고 보니 죽여도 죽지 않는 자이기에 시체를 토막 내서 봉인해야 했군요.”
허칠안은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왜 상백을 선택했죠?”
그는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게 무서운 반역자는 잠재된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할 만하다. 동맹국인 대봉 관내에 봉인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히 부득이한 이유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등잔 밑에 봉인하는 편이 더 안전하고 확실하지 않은가?
“이 문제는 빈승 역시 알고 싶습니다. 오는 길에 도액 사숙에게 여쭤보았지요. 사숙께서는 제게 이건 500년 전 대봉 무종 황제의 한 가지 약속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진이 말했다.
‘500년 전의 약속이라……. 그해 불문이 대봉 곳곳에서 선교하여 절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 배후에 역시 또 다른 내막이 있었군……. 하지만 500년 전 자료의 대부분이 모두 불타고 수정되어 비밀로 감춰져 있다. 근본적으로 찾을 수가 없단 말이지.’
허칠안은 다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정보를 캐내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자 일어서서 작별을 고했다.
정진 승려가 직접 그를 배웅하려고 막 방을 나섰는데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수려한 외모의 승려가 보였다.
“사형!”
준수한 외모의 승려가 두 손으로 합장하였다.
정진은 답례를 하고 소개했다.
“이분은 청룡사의 항원 사제네. 자네 사형이라고 부르게.”
이어 허 항원에게도 소개했다.
“정사 사제입니다.”
“항원 사형.”
준수한 외모의 승려가 예를 갖추었다.
허칠안은 답례를 한 뒤 정진을 향해 말했다.
“사형, 배웅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사는 허칠안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사제, 왜 그러는가?”
정진이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사람을 친근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사가 말했다.
* * *
허칠안은 역참을 나와 큰길을 따라 질주했다.
“비록 여전히 신수 승려의 신분은 모르지만 적어도 몇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 그가 불문의 반역자라는 점, 명확한 증거가 있다. 둘, 그의 수련 경지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높다. 부처조차 그를 죽일 수 없을 정도다. 비록 부처가 나섰다는 걸 증명하는 증거는 없지만……. 우선은 이렇게 가설을 세우자.
셋, 나는 그를 도와 신분을 조사하고 기억을 찾는 일만 책임질 뿐이다. 내가 무신이 되지 않는 이상 그와 불문의 원한에는 죽어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지. 넷, 이렇게 든든한 빽은 반드시 붙잡고 그의 장점을 빼먹을 수 있을 만큼 빼먹을 것이다. 다섯, 신수 승려의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된다. 위연도 안 된다. 이 일은 너무 크다. 여섯, 시간이 아직 이르니 기루에서 노래를 들어야겠다.”
갑자기 허칠안은 전방의 무리들 속에서 나타난 익숙한 형체를 보았다.
그건 기골이 크고 장대한 승려였다. 막 수염을 깎은 듯 아래턱이 거무튀튀했다.
그가 헐렁한 승려 도포를 입으니 몸에 딱 맞는 듯했다. 그는 도포 안에 간직해 둔 근육을 숨겼다.
“제기랄, 항원!”
허칠안은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쏜살같이 지나갔다.
항원 대사도 그를 보았다. 그는 놀랍고 기쁘면서도 허칠안의 차림새에 다시 한번 놀랐다.
“허 대인, 왜 이렇게 입고 계십니까?”
“행위 예술입니다…….”
허칠안이 정색했다.
“?”
“대사께서는 삼양 역참에 가시려는 겁니까?”
“본종 동문이 왔으니 빈승이 당연히 만나러 가야지요.”
“만, 만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까?”
허칠안은 입꼬리에 경련이 나지 않도록 억제했다.
“왜지요?”
항원은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마 한 대 흠씬 맞을지도 모르거든…….’
허칠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항원은 그를 몇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방금 허부에서 사찰음식을 먹고 오는 길입니다.”
‘잉? 네가 우리 집에 왜 간 거야……? 아, 신년의 회원 급제를 축하하러 간 거군. 신년이 쫓아내지 않았어?’
허칠안은 갑자기 강렬한 죄책감이 들었다. 자신이 아우를 속이고 또 인정이 많고 소박한 항원 대사를 속였다는 가책이 들었다. 정말 인간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대사님…….”
허칠안은 품속에서 열 냥 가치의 은표 한 장을 꺼내 간절한 마음으로 항원 승려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제가 양생당의 노인과 아이에게 전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자신에게 준 거라면 항원이 받지 않았겠지만, 이 돈은 마음씨가 좋은 허 대인이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도우려 준 셈이니 항원 대사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아미타불. 허 대인께서는 정말 참 선하십니다.”
항원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당연한 일인걸요…….”
허칠안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대사님!”
항원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말했다.
“허 대인, 또 일이 있습니까?”
“……몸조심하십시오!”
* * *
허칠안은 외지고 조용한 골목을 찾아 야경꾼 차복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길을 따라서 한 기루에 들어갔다.
“손님, 묵으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쉬러 오신 건가요?”
청의를 입은 어린 하인이 맞이했다.
“여기서 가장 예쁜 낭자를 불러 나리의 어깨를 주무르라고 하거라.”
허칠안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특실은 vip 손님 룸에 속했다. 신분과 지위가 있는 자들은 모두 2층에서 극을 보고 노래를 들었다.
* * *
한편 항원 대사는 역참 입구에 이르렀다.
문을 지키던 두 승려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불문이 대봉에서 이렇게 왕성하단 말인가?’
“사형께서는 어느 곳에서 도를 닦으시는지요?”
문지기 승려가 속으로 의심을 품고 항원을 막았다.
항원 대사는 두 손으로 합장하고 말했다.
“빈승은 청룡사 항원으로 본종 동문이 경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만나 뵈러 왔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두 승려가 눈을 부릅뜨고 귀신을 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걸 예리하게 알아챘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항원은 의심하며 말했다.
“허허, 별문제 없습니다. 사형께서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가서 통전하겠습니다.”
문을 지키는 승려는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그는 무표정을 하고 나와서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항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소 이상했다. 그가 이름을 알렸을 때부터 두 문지기 승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통전한 후에는 또 어렴풋이 적의가 전해졌다.
“번거롭겠지만 길을 안내해 주시지요!”
항원은 눈을 내리깔고 순종적으로 굴었다.
문지기 승려의 안내를 받아 앞마당과 본채를 지나쳐 뒷마당에 도착했다.
처마 아래, 복도에 중년의 승려가 서 있었다. 그는 먼 길을 고행하기에 편한 납의(*衲衣: 낡은 헝겊을 모아 기워 만든 승려의 옷) 차림이었는데 동글반반한 얼굴에 귓불이 두툼했다.
그는 무표정으로 항원을 쳐다보았다.
“청룡사 항원입니까?”
정진 승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항원을 주시했다.
“빈승입니다.”
항원 승려 역시 정진을 살폈다. 그는 이 지경까지 오자 서역에서 온 동문들이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적의를 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항원은 이 적의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지 못했다. 양측은 이전에 전혀 접촉한 적이 없었다.
“출가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정진 승려가 나지막이 말했다.
항원은 이 말을 듣자, 자신의 직감이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귀에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빈승입니다.”
항원은 양손을 합장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정진 승려는 침묵했다.
그는 방금 율사의 능력을 사용하여 항원이라 자칭하는 이 승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방 역시 율사라 스스로 계율을 바꿀 수 있지 않은 이상.
문제가 생겼다. 눈앞의 이자가 항원이라면 방금 그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는 무슨 목적이 있는 건가?
정진은 담화 과정을 세세히 돌이켜보다가 오싹해졌다. 상대는 상백의 봉인물 때문에 왔을 터였다.
그렇다면 일의 성질이 항원을 사칭하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마승(魔僧)과 관련된 일이니 그는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방금 그 무승도 불문의 사자후를 할 줄 알았다. 항원이 아니라 해도 불문 사람이 틀림없다……. 눈앞에 있는 이자가 설령 진짜 항원이라고 해도 그가 온 게 과연 방문하기 위함일 뿐이란 말인가? 다른 의도는 없는가?’
정진 승려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곧 결정을 내리고 항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체포해라!”
즉시 푸른색 납의를 입은 승려 둘이 다가와 항원의 어깨를 눌렀다.
펑!
항원이 기기를 뒤흔들어 두 승려를 아주 쉽게 날려 보냈다.
정진 승려는 복도에서 양손을 날인(捏印)한 채로 읊었다.
“신체를 옮길 수도, 손을 움직일 수도, 입으로 말을 할 수도 없으니.”
그가 말을 마치자 손도장에 물결 문양의 금색 물결이 출렁이면서 부드럽고 꼿꼿하게 항원을 쓸어갔다.
찰나, 항원은 몸이 늪에 빠진 듯 생각을 운행했다. 그의 신체는 이미 통제를 잃었다.
펑펑펑…….
항원의 몸 주변에서 소형 불꽃처럼 공기 파문이 터졌다.
그는 뚝심으로 계율에 맞서 늪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정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칭 항원 승려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강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속히 체포하거라!”
방안에서 몇 명의 무승과 법사 그리고 선사(禪師) 몇이 더 뛰어나왔다. 법사와 선사의 전투력은 보잘것없어서 무승의 싸움에 기대어 체포해야 했다.
하지만 항원은 무승들에게 포위되기 전에 ‘계율’을 돌파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잔영을 끄집어내 정진 승려에게 달려들었다.
항원은 화가 났다. 서역에서 온 동문을 혼쭐내기 위해 나서려 했다.
바로 이때, 한 그림자가 정진의 앞을 막아섰다. 푸른색 납의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정사 승려였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달려드는 항원을 바라보면서 뺨을 한 대 갈겼다.
내리치는 힘이 막 작용했을 때는 이상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금칠이 손바닥 가운데를 기점으로 자욱해지면서 재빠르게 손바닥과 팔뚝을 덮었고, 뒤이어 사람 전체가 마치 금칠한 조각처럼 변했다.
땅!
그가 손바닥으로 가슴을 밀치자 항원은 마치 성을 공격하는 나무처럼 가슴을 들이받아 날아갔고, 안뜰 벽을 부수고 본채 담을 뚫었다.
역참 안의 역졸들은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방 안에 숨어서 벌벌 떨며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승려들은 이제 막 묵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때리다니. 며칠 더 지나면 역참을 허물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콜록콜록…….”
항원 승려는 말 못할 고통을 동반한 기침 소리와 함께 걸어 나와 정사를 주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분간 역참에 머무십시오. 도액 사숙께서 돌아오시면 친히 말씀을 물으실 겁니다.”
항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는 ‘좋다’라는 말의 끝소리와 함께 다시 잔영이 되어 사납게 달려들었다. 목표는 정진이 아니라 정사였다.
정사는 몸 표면이 금속 질감이었는데 그는 다시 손을 들어 항원의 뺨을 갈겼다. 이번에는 명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원이 그의 팔뚝 관절을 끊고, 뚝배기만 한 주먹을 얼굴에 연거푸 내리쳐 ‘퍽퍽퍽’ 거대한 소리를 냈다.
정사는 얼굴을 공격당하자 망치 같은 머리로 항원을 내리쳤다. 두 사람이 탁탁탁탁 수차례 맞붙어 싸운 뒤 정사는 다시 제압당했다.
항원은 그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한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어깨 너머로 정사를 바닥에 내리 꽂았다.
쿵!
마당에 깔린 푸른 벽돌들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하늘로 튀어 올랐고, 바닥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