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33화 (333/712)

333화. 불문의 반역자

“정진 사형.”

허칠안은 두 손으로 합장했다.

“항원 사제.”

중년의 승려가 답례하였다.

그는 즉시 젊은 승려에게 차를 내오라 이르고, 허칠안이 한 모금 마시자 그때서야 말했다.

“반수 사형께서 막 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청룡사의 승려도 이제 막 사절단이 경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반수 주지가 한발 먼저 청룡사에 돌아갔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사찰의 승려가 와서 이러쿵저러쿵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허칠안은 순간 아주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고, 상대방이 떠보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진작에 구상을 해 놓았기에 허둥대지 않고 여유롭게 말했다.

“빈승은 절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정진 승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항원 사제는 어쩐 일로 온 것입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마력이 있는 듯했다. 허칠안은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거부했고, 자신의 목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밝히고 싶어졌다.

‘5품 율사?’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청룡사의 반수 주지 역시 5품으로 이 경지의 스님은 마치 움직이는 ‘규율’과도 같다. 그들은 자발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곤 한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여색과 살생을 금기하는 등등……. 율사가 일찍이 지켜온 계(戒)가 있으면 곁에 있는 자들 역시 저도 모르게 준수해 버리지.’

허칠안은 율사의 전투를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전에 청룡사에 상백 사건을 조사하러 갔을 때 특별히 불문 고수의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율사의 전투력은 전부 ‘계율(戒律)’에서 유래된다. 유가의 ‘언출법수’와 다소 비슷하지만, 유가처럼 저속하지는 않다.

통속적으로 설명하자면, 유가가 한마디 허풍떠는 건 후유증이 크지만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문의 율사는 제한이 극히 많아서 마음대로 할 수 없이, 한마디 허풍만 떨 수밖에 없다.

<허칠안, 거꾸로 담배를 피워서 누가 신선인지 겨뤄 보자.>

허칠안은 입에 물집이 잡히는 걸 제외하면 후유증이 거의 없을 것이다.

유가의 언출법수는 규칙을 바꾸지만, 율사는 규칙을 따르게 한다. 사실 본질적으로 완전히 상반된다.

허칠안은 두 손을 합장하고 불호를 외웠다.

“사형과 여러 동문께서 경성에 오신 이유가 상백 사건 때 곤경에 벗어난 봉인물 때문입니까?”

이 말은 마치 거대한 돌을 호수에 내리찍은 것 같았다.

정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수 사형께서 말씀하시던가요?”

반수 승려가 청룡사에 돌아가기 전에 도액 사숙은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경고했다. 청룡사의 승려들을 포함해서 봉인물의 존재를 외부에 발설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정진 대사는 허칠안에게 덫을 놓은 것이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빈승 역시 상백 사건에 관련된 셈입니다만…….”

정진의 온화하고 평화로운 눈빛 속에 금빛 신광(神光)이 스친 듯했다.

“빈승에게 사제가 한 명 있는데 법호는 항혜입니다. 저희 사형제(師兄弟)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서 정이 아주 깊었지요. 일 년여 전에 항혜가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절에 있던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를 훔쳐 갔더군요. 제가 여러 방면으로 조사한 결과 그가 한 거간꾼 조직에 납치되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지요…….”

허칠안은 비통함에 견디기 어려운 듯 슬픔에 잠긴 표정을 보였고, 기껏해야 불호를 외워 감정을 다스릴 뿐이었다.

“아미타불.”

정진은 넋을 잃은 채 들었다. 항원 사제의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동요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또 다른 내막이 있습니까?”

“맞습니다. 항혜 사제와 여성 참배자가 서로 감정이 싹터 평생을 함께하기로 사사로이 정했지요. 그들은 청룡사의 법기를 훔쳐 멀리 달아났습니다.”

정진이 미간을 찌푸리자 여러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사사로이 도망쳤다 해도 법기를 훔쳐 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허 항원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 여성 참배자가 예왕의 적녀였습니다. 예왕은 폐하의 아우로 버젓한 친왕이지요. 만약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가 없었으면 그들은 경성 관내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건…… 정진 대사는 순간 말이 막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어 허칠안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두 젊은 남녀가 어떻게 사기당하고 어떻게 피동적으로 당파 싸움에 휘말렸는지 또 어떻게 비명횡사했는지 간추려 얘기했다.

“아미타불!”

정진 대사는 두 손을 합장하고, 자비로운 얼굴로 불호를 외웠다.

그가 몇 초간 침묵을 지키던 끝에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이 상백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지요?”

‘좋은 질문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웃으면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이 사건은 복잡하고 불가사의하여 표면적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작년 연말에 황실 상백의 영진산하 사당이 갑자기 폭발하여 무너지면서 상백 밑에 봉인되어 있던 부정한 물건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대봉 황제가 진노하여 엄격하게 조사하라고 삼사에 명령했지요. 빈승이 이 사건에 말려든 이유는 그 부정한 물건이 항혜 사제의 몸속에 기생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요?!”

정진 대사는 갑자기 얼굴빛이 크게 변하더니 절박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 부정한 물건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항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까? 대봉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였지요? 감정이 나서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부정한 물건이 이미 감정에 의해 다시 봉인되었나요?”

그는 연거푸 아주 많은 질문을 던졌다. 고승의 태연한 기개는 남지 않았다.

“정진 사형,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천천히 말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세요…….”

허칠안은 상백 사건과 평양군주 사건을 알기 쉽게 분석하여 두 사건의 상관관계와 배후에 연루된 비밀을 정진 승려에게 낱낱이 알렸다.

정진 승려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복잡하게 뒤얽힌 사건에 크게 놀란 듯했다.

이런 내막은 반수 주지라 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서역으로 가서 상백의 봉인물이 세상에 나왔다는 소식을 불문에 전했을 뿐이었다.

‘사숙이 궁에 들어가 군자를 알현하여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려 했는데 역참에 남아서 지키던 내가 오히려 전 과정을 먼저 알아 낼 줄이야…….’

정진 승려는 감개무량하여 탄식하며 말했다.

“이 사건은 확실히 복잡하고 불가사의하군요. 게다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대단하군요. 항원 사제께서는 이 상세한 내막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허칠안은 이것이 정진 대사가 필연적으로 제기할 의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본능을 강요하며 대답했다.

“이 사건은 삼사가 주관했지만 진정으로 상백 사건과 평양군주 사건을 밝혀낸 건 야경꾼 관아의 허칠안이라고 하는 은라입니다. 빈승은 허칠안과 막역한 사이입니다. 제가 또 항혜 사제 때문에 그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때 제대로 알았습니다.”

‘은라 허칠안이라…….’

정진 승려는 그 이름을 새긴 뒤 황급히 물었다.

“허씨 성을 가진 은라는 어떤 인물입니까? 항원 사제, 제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고!”

허 항원은 말을 하는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

“빈승이 이자를 떠올리면 감개무량합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 항원은 천천히 말했다.

“사형께서 모르시는 점이 있습니다. 허칠안 그자는 빈승이 평생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재주가 출중한 자입니다. 수련 면에서 그는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요. 대봉 전체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는 보기 드뭅니다. 그는 벼슬아치로서 결단코 백성을 얕잡아 보지 않고, 정의를 바로잡는 일을 본인의 임무로 삼습니다.

사건 해결 면을 보자면, 대봉에 고수가 넘쳐 흐르지만 그의 손가락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시사 방면으로 그는 대봉 200년 제일의 시괴라 칭송받습니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교방사 기녀들이 그를 죽을 만큼 사랑하는데도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더군요.”

정진 승려는 놀라서 멍하니 있었다. 그는 경성에 이런 인물이 있는지 생각지도 못했다.

“세간에 정말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우리 불문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정진 승려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

‘……제기랄, 허풍을 너무 과하게 떨었나? 이 애송이가 나를 불문에 집어넣고 싶은 거야? 그럼 나의 이 쇠몽둥이를 어디다 쓰라고?’

허칠안은 내심 경계하면서도 아무런 내색 없이 화제를 돌려 본심을 드러냈다.

“이번에 사형을 찾아온 건 상백 밑의 부정한 물건이 도대체 무엇인지 여쭈고 싶기 때문입니다. 빈승은 이 물건이 불문과 관련 있음을 알았지만, 왜 대봉의 상백에 억눌려야 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건…….”

정진 승려는 난색을 표했다.

“사형께서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으신지요?”

허 항원은 자발적으로 물었다.

“이 일은 불문의 기밀이니 사제께서는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정진이 말했다.

“허!”

허 항원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승 이해했습니다. 빈승은 서역 본종을 내 사람으로 여겼는데 뜻밖에도 본종의 사형제 눈에 빈승은 그저 외부인이군요. 됐습니다. 빈승이 혼자 착각했습니다. 바로 떠나겠습니다. 서역 불문은 서역 불문이고 청룡사는 청룡사로 다르니까요.”

그는 말을 하면서 일어서서 걸어갔다.

“멈추십시오!”

정진은 화가 난 얼굴로 큰소리를 쳐서 제지하였다.

“사제와 나 모두 불문의 제자로 부처를 모시는 한 가족입니다. 사제가 방금 한 말은 실로 악한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얘기하지 마십시오.”

‘희망이 있군…….’

허 항원은 무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불문의 사자후를 사용하여 이 소리를 내어 방안에 콧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승의 성질은 항상 이렇게 거칠단 말이야…….’

정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손짓하며 말했다.

“사제 앉으십시오. 제가 사제에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해 드리지요.”

청룡사는 대봉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서역 불문의 불씨다. 만약 서역 불문이 계속해서 중원에 선교하고 싶다면 청룡사는 대체할 수 없는 힘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서역 불문은 청룡사와의 ‘가족’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어떠한 악감정과 균열을 모두 철저히 막고 교묘하게 회피한다.

“그 부정한 물건은 확실히 저희 불문과 관련 있습니다. 도액 사숙께서 말씀하시길 그는 불문의 반역자라고 하더군요.”

“불문의 반역자요?”

‘역시 내 예상이 맞다. 신수 승려는 불문 사람인데 불문이 직접 봉인한 거라면 반역자가 아니고서 뭐겠는가?’

“어느 반역자인지요?”

허 항원이 물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정진 승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어떻게 불문의 기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 내막은 빈승이라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망기술을 이용해서 그가 거짓말했는지 아닌지 좀 보고 싶다……. 신수야. 그 반역자의 법호는 신수라고…….’

허 항원은 다시 물었다.

“왜 봉인입니까? 그를 제도(*濟度: 중생을 고해에서 건져 내어 극락세계로 이르게 하다)하지 않고요?”

불문이 자비를 중시하지만, 일개 문파 반역자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고 모질게 구는 것인가?

“반수 주지께서 서역에 소식을 전하신 후에 나한과 보살들이 이를 아주 중시하여 뇌음(雷音)으로 서로에게 알렸습니다. 이렇게 신중한 모습을 20년 전의 산해관전역 후에 더는 본 적이 없지요.”

정진 승려가 침음하며 말했다.

“동쪽으로 오는 길에 도액 사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마귀 승려는 죽여도 죽지 않는다더군요.”

‘죽여도 죽지 않는다고?!’

이 말에 담긴 정보량은 아주 컸고,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추궁을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신수 승려가 상백에 봉인된 건 불문이 모질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그를 죽였어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수 승려가 그는 다행히 ‘불사불멸’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문에는 품계를 뛰어넘는 존재인 부처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런 부처조차 신수 승려를 죽이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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