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30화 (330/712)

330화. 부정행위

청운산, 운록서원.

서쪽 하늘의 잔광 속, 관도(官道) 위에 말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말은 산기슭에 멈췄고, 유삼 차림의 서생이 말 등에서 뛰어내렸다. 손에 명단을 쥐고 아주 빠르게 산꼭대기로 내달았다.

“희소식입니다, 희소식…….”

그는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달려 이내 서원으로 들어갔다.

서생들이 가는 길에 소리를 듣고는 끊임없이 나와 살펴보더니 입을 떼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서생들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대유 장진의 서재로 곧장 내달렸다.

인기척을 들은 장진은 진작에 서재 밖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소식을 알리는 서생을 바라보았다.

“지식인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네. 큰 기쁨과 큰 슬픔에도 마음이 동요해서는 안 되네.”

장진은 한마디 지적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자네 표정을 보니 이번에 춘시에 참가한 서생중에 공사(貢士)에 급제한 자가 있나 보군.”

“스승님, 어찌 공사(貢士) 급제에 그치겠습니까.”

소식을 알리는 서생이 흥분하며 외쳤다.

“허신년이 회원에 급제했습니다.”

장진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나지막이 말했다.

“회원?!”

소식을 알리는 서생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행방에서 이름이 거론된 서원 서생의 명단입니다. 허신년이 확실히 회원입니다. 틀림없어요.”

장진은 흥분하여 명단을 빼앗았다. 명단에는 이번에 춘시에 참가한 서원 서생의 이름과 서열이 적혀 있었다.

허신년은 맨 앞에 있었다. 1등, 회원이었다.

장진은 명단을 한참 동안 보다가 갑자기 ‘흠흠’ 목을 가다듬고 소리쳤다.

“원장님, 진태, 이모백……. 우리 서생이 회원에 급제했습니다. 우리 서생이 회원에 급제했어요!”

소식을 알리는 서생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내 깜짝 놀란 원장 조위와 대유 둘이 허풍을 떨며 거리를 무시한 채 장진의 서재 밖에 나타났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꾀죄죄한 원장 조위가 앞장서서 물었다.

“사실인가? 그 서생이 회원에 급제했다고?”

“허신년입니다!”

장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조위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문득 말했다.

“말다툼에 져 본 적이 없는 그 서생인가?”

“……그만큼 그의 말솜씨가 뛰어나다는 걸 의미하죠.”

장진이 말했다.

“축하하네, 축하해!”

이모백과 진태는 기뻐하면서도 시샘했다.

운록서원의 서생이 회원에 급제한 건 당연히 기쁜 일이다. 서원의 모든 선생이 기뻐할 것이다. 심지어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바탕 취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 시샘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허신년은 장진의 학생이니까.

원장 조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치대로라면 회원일 수가 없는데. 신년이 무슨 수를 쓴 건가?”

과거 회시의 경우, 첫 회차 때는 분명히 부정행위가 존재했다. 허신년은 운록서원의 서생이라 부정행위에도 그의 몫은 없었다.

하지만 실력만으로 됐다는 점도 다소 무리가 있었다.

장진은 희색을 거두고 ‘음’하더니 말했다.

“신년의 책문과 경의는 훌륭하지만, 재능이 놀랍다고 말하기에는 좀 부족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재능을 지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세 명의 주임 시험관 중에서 적어도 두 명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방금 서생이 소식을 알렸을 때 스스로 잘못 들었다고 의심했더랬다.

이모백은 소식을 알리는 서생이 아직도 자리에 있는 걸 보자 손짓하여 그를 부르더니 물었다.

“경성 쪽에 또 다른 소식이 있는가?”

본래 그는 그냥 별생각 없이 물었을 뿐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소식을 알리는 서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서생이 행방을 베껴 쓴 뒤에도 허신년의 회원 급제가 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열권관 한 분에게 밥을 사 드렸습니다. 안 그래도 ‘밥값’ 열다섯 냥을 서원에 청구하려던 참입니다.”

대유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록서원에서 길러낸 서생은 모두 일 처리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더욱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융통성이 없는 자들이 아니었다.

소식을 알리는 서생이 말을 마치고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말했다.

“그 대인께서 말씀하시길 허신년이 세 번째 회차에 시를 한 수 지었는데 동각 대학사의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시험관들 역시 진심으로 탄복한 데다가 그전 두 차례 시험 성적도 아주 좋아서 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

대유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만 봤다.

세 명의 대유는 약속이나 한 듯 받지 않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원장 조위가 이 모습을 보더니 손을 뻗어 잘 접힌 선지를 받아서 천천히 펼쳤다. 그리고 그는 아주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장진은 조위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그를 떠보았다.

“원장님?”

하지만 원장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입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원장은 어떤 감정에 빠져 잠시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조위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좋은 시로구나! 내가 직접 아성전에 이 시를 새겨 운록서원의 일부분으로 만들겠네. 장차 후손들이 이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이 시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네. 오늘 저녁 자네 셋은 내 아거(雅居)로 술 마시러 오게. 우리 날이 밝을 때까지 실컷 마시세.”

대유 셋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원장 조위는 명색이 현재 유가의 최고 권위가인데 어째서 시 한 수에 이렇게 추태를 부린단 말인가.

원장은 ‘암향부동월황혼’과 ‘만선청몽압성하’처럼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걸작에도 그저 미소를 지으며 찬사를 보냈을 뿐이었다.

“자네들이 직접 보게!”

조위는 종이를 건네 주었다.

장진은 종이를 받아서 두 대유와 함께 보았다. 세 사람은 표정이 돌연 굳어졌고, 방금 전의 조위처럼 어떠한 감정에 잠겨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이모백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비애에 잠겼다.

“이 시는 바로 우리 운록서원을 노래하고 있군요.”

장진과 진태 두 대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은 원장이 왜 그렇게 추태를 부렸는지 이해했다. 이모백의 말이 맞았다. 이 시는 운록서원을 위해 지은 글이다.

국자감이 세워진 후 이백 년을 돌이켜보면 운록서원은 최근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서생들은 등불을 켜고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분발했으나 돌아온 건 탄압이었다. 끓는 피를 분출할 곳도, 뛰어난 재능을 펼칠 곳도 없었다.

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

그리고 마지막 두 구절은 그야말로 신들린 글재주라 몇몇 대유의 호기를 북돋고, 가슴을 설레게 했다.

시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공감이다. 원장 조위와 대유 세 명의 마음을 완전히 꿰뚫었다.

“원장님…….”

장진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들끓는 감정에서 벗어나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허신년은 제 제자입니다. 제가 갖은 고생을 하며 가르쳤지요.”

“장진, 고생했네, 고생했어.”

조위가 위로했다.

“서원의 인재 양성을 위해 저 장진이 스스로 책임진 일입니다. 고생이라고 말씀하시는 건 가당치 않습니다.”

장진은 의젓하게 말했다.

“허나 저 작은 부탁이 있습니다. 원장님께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진태와 이모백은 순간 경계했다.

조위가 온화하게 말했다.

“무슨 부탁인가?”

“직접 시를 새기실 때 신년의 이름을 표기하신 후에 <스승 장진, 자 근언, 형주 인사>라고 몇 자 더 새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위는 대답하지 않았고, 진태와 이모백은 앞다투어 의사를 표했다.

“나는 반댈세!”

장진이 대노했다.

“내 서생이 지은 시인데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자네들이 반대할 군번인가?”

“개소리!”

대유 두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며 조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헐뜯었다.

“자네 서생이 어떤 수준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가? 이 시를 누가 썼는지 자네가 감히 모른다고 할 수 있나?”

장진은 당연히 알았다. 허신년은 그의 학생이다. 그는 선생으로서 자기 학생의 수준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장진은 허신년이 어떻게 문제를 맞혔는지에 관해 허칠안이 위연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생각했다.

“?”

조위의 마음속에 물음표가 스쳤다. 그는 손을 흔들어 옆에 있는 소식을 알린 서생의 청각을 차단한 뒤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들 방금 뭐라고 했나? 이 시를 허신년이 지은 게 아니라고?”

진태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허신년은 책론에 능하고 시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슴을 뛰게하는 걸작을 지었겠습니까?”

이모백이 말을 받았다.

“제 학생 허칠안이 지은 게 아니겠습니까.”

“언제 또 자네 학생이 되었던가?”

장진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 역시 내 학생이네. 그러니 어찌 됐든 간에 내 이름을 쓰는 게 맞네.”

대유 셋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원장 조위는 잠시 듣고 대충 이해했다. 이 시는 필시 허신년이 아니라 유림에게 시괴라고 칭송받는 그의 사촌 형이 지은 글일 터였다.

이렇게 보니 허신년도 부정행위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

“참, 우리 이 회원은 어떤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가?”

조위가 물었다.

유가는 인품을 중시한다. 등급이 높은 대유일수록 성품의 강직함을 중시한다. 까놓고 말하면 모든 대유는 인격의 올곧음에 대한 기준치가 아주 높다.

하지만 유가의 모든 구성원이 성모마리아라는 의미는 아니다. 입명경일 때 성모마리아의 ‘명(命)’을 좇은 게 아닌 이상. 대수롭지 않은 일은 어길 수 있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행위는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다.

“치국과 병법입니다!”

장진이 말했다. 그는 본래 병법으로 유명한 대유다.

치국은 모든 유가 서생이라면 배워야 하는 ‘기능’이다. 이 기초를 바탕으로 유가 서생은 한두 개 전공 ‘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서생은《예기(禮記)》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어떤 서생은《중용(中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허신년은《병법(兵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조위는 듣더니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병법(兵法)》을 주로 연구한다면 문제 되지 않았다. 미래의 승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자네들 시 한 수로 논쟁할 필요 없네. 내가 생각하기에 그 허칠안이라는 자가 사촌 동생의 손을 빌려 이 시를 서원에게 선물한 듯하네. 이건 우리에게 가장 큰 보답일세.”

조위가 말했다.

“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대유 셋이 일제히 소리 내어 말했다.

‘나중에 허칠안을 찾아가서 걸작을 구걸하겠군…….’

대유 셋은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속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비열한 소인 양공!’

* * *

이튿날, 허부에서는 친척들과 지인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허신년의 뜻에 따라 저택에는 세 부류의 손님을 앞마당, 뒷마당, 중정(中庭) 세 구역으로 구분했다.

중정에 앉은 사람들은 그의 동료나 벗이고, 뒷마당은 외부인이 들어가기에 불편해서 가족들이 앉았다. 앞마당에는 허평지와 허칠안의 동료들이 있었다.

세 부류의 손님들은 완벽하게 분리되어 아무 걱정 없이 술을 마시며 허세를 부렸다. 지식인들은 우악스러운 무사를 상대하지 않고, 무사 역시 지식인의 허풍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년은 역시 지식인다워. 아주 짜임새 있게 배치했어.”

허칠안이 여기저기 술을 권하러 다니는 아우를 따라다니며 감탄했다.

“우리 스승님은 왜 참석하지 않으셨지?”

허칠안이 물었다.

허신년은 술을 몇 잔 마셔 약간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술김을 내뱉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늘 오전에 초대장을 보낸 하인이 소식을 전해 왔는데 스승님께서 대유 두 분과 싸우셔서 다치셨답니다.”

“또 싸웠대?”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운록서원 지식인들은 성격이 다 이렇게 거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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