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네 목을 베기가 아쉽구나!
허신년은 공사(貢士)에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공사 중에서도 1등인 회원이다!
이건 온 가족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숙모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눈꺼풀이 뒤집힐 뻔했다.
숙부도 아주 기뻐했고, 집에서 연회를 크게 베풀어 가족들과 동료들을 초대해 술을 마시기로 결정했다. 지금 허씨 집안은 씀씀이가 커서 바로 3박 3일 동안의 연회를 베푼다고 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허신년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젓가락을 내려놓고 허칠안을 보며 말했다.
“형님, 오늘도 거리를 순찰해야 하나요?”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은라인 그는 통상적으로 기분에 따라 거리를 순찰했다. 강제성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행방이 이미 게시되어 수천 명의 서생이 각자 엄마를 찾으러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치안 압박이 오전만큼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한 손은 배에 올리고 한 손은 등 뒤로 돌린 뒤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형님이 좀 고생해 주십시오. 저 대신 집 대문을 지켜 주세요. 오후에 분명히 밉살스러운 파리들이 괴롭히러 올 겁니다. 저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어요!”
이 자세는 보통 덕과 명망이 높은 샌님이나 관원에게서 나타난다.
‘참나, 이 아우님이 허세 부리기 시작했군…….’
허칠안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허신년의 오만한 성격은 바로 숙모한테서 유전된 것이다. 하지만 독설을 퍼붓는 속성은 그 스스로 만든 것이다. 숙모의 욕하는 솜씨는 보통이다. 그렇지 않고선 허칠안 때문에 화를 내며 빽빽거릴 일이 없겠지.
허칠안은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허신년의 앞날을 걱정했다.
“신년이 회원에 급제했다니. 이건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 한 달 후면 전시(殿試)지. 전시가 끝나면 내가 심어둔 후수(이부 문선사 조 낭중)를 쓸 수 있다……. 경성에 유임하는 일은 첫걸음일 뿐이다. 만약 신년이 내게 유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그에게 후원자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운록서원 서생의 신분으로는 평생 해도 텅 빈 관아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겠지…….
위 공은 이제 더는 도찰원 좌도어사가 아니고,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년은 위연에게 빌붙으면 안 된다. 그와 어떠한 관계로도 얽히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환관의 도당’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달걀은 한 바구니에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반드시 그에게 빽을 찾아줄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 형제가 앞으로 잘 어우러져 조당을 제패하리란 희망이 생긴다.”
허칠안은 예전에 허신년을 대봉의 재상으로 키울 거라고 말했었다. 이건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그는 확실히 허신년을 ‘발탁할’ 생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 이렇게 많은 이의 미움을 산 뒤, 이 생각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깊어졌다.
우선 허신년은 천부적인 자질이 아주 뛰어나고 유가의 정통 체계를 밟았다. 전략적이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이라 관리 사회에서 몇 년만 경험을 쌓으면 훌륭한 팀 메이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유가 정통 출신의 폐단 역시 뻔하다. 엄마 없는 아이!
“나는 일개 아녀자인 회경공주가 암암리에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신년에게 필요한 건 지하당이 아니라 건실한 후원자다. 복비 사건 후에 내가 장모 진비와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태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태자는 단수가 너무 낮아서 우리 신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사황자 역시 pass다.”
그는 머릿속을 한 차례 둘러봐도 문관 집단에서 적합한 후원자를 찾지 못했다.
‘후……. 됐다. 이 일은 급하지 않아. 전시가 끝난 후에 신년이 일을 우선 일단락 지으면 그다음으로 내가 경계해야 할 건 불문의 사절단 그리고 이묘진과 초원진 간의 천인 전쟁이다……. 에휴, 이런 도통(道統) 간의 다툼이 제일 골치 아프지.’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하지만 나한테는 동피철골경으로 최대한 빨리 승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 * *
그는 세수하고 집을 나섰다. 허 은라는 매일 온갖 정사(情思)로 바쁜데 한낱 허신년 대신 문을 지키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허칠안은 종리가 쓴 소설 두 권을 품속에 밀어 넣고 암말을 탄 뒤 빠르게 달려 황성에 들어가 임안이 하사한 요패를 꺼냈다. 그러고는 우림위의 안내를 받아 소음원에 도착했다.
임안은 허칠안의 갑작스런 방문에 아주 기뻐하며 궁녀들에게 가장 좋은 차와 가장 맛있는 떡을 내오라고 하여 개자식을 대접했다.
“전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임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화안마저 생기를 잃었다. 그녀는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매일 나한테 울며불며 하소연하셔. 내궁에서 황후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더는 못 살겠다고 하시더라고.”
‘진비 배후에 있는 자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나 보지……? 음, 진비는 합격한 궁중 암투의 명인이라 이렇게 쓸모없는 정도는 아닌데. 아마 임안 앞에서 일부러 불쌍한 척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구하려고 시도하고 싶은 거겠지…….’
허칠안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황후께서 지나치신데 마마께서는 눈 빤히 뜨고 진비마마가 내궁에서 모욕 당하는 걸 지켜보시는 겁니까?”
“그럼 회경이랑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는데 뭐. 게다가 나는 어머니가 말하는 것만큼 비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그녀는 억울해하며 말했다.
“폐하를 찾아가세요.”
허칠안이 슬쩍 떠보았다.
“너희 먼저 내려가거라.”
임안은 궁녀들을 내보냈다.
대청 안이 조용해졌고, 한참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개자식…….”
그녀는 한없이 무력한 목소리로 불렀다.
“네, 전하 말씀하세요.”
“태자 오라버니가 대리사에 갇혔을 때 내가 아바마마께 청하러 간 적 있거든. 그런데 아바마마께서 나를 만나지 않으셨어. 나는 추위 속에 두 시진을 서 있었다고. 그래도 회경이 나를 돌려보냈지…….”
임안은 열등감을 가진 짐승처럼 괴로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어. 아마도 아바마마께서 나를 그렇게 총애하지는 않는다고 말이야. 태자 오라버니가 일이 생긴 후로는 오라버니와 여동생들이 더는 나와 놀려고 하지 않더라고. 그제야 알고 보니 그들 역시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녀의 눈썹이 쳐지고, 맑고 어여쁜 도화안은 빛을 잃어 암담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딜 봐서 공주란 말인가. 그녀는 억울하면서도 가련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허칠안은 그를 향한 임안공주마마의 믿음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앞에서 공주의 교만함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멍청한 편은 아니면서도 똑똑하지 않은 여자아이였다.
‘분명 이 일을 마음속에 오래 담아 뒀겠지……. 적어도 태자한테 일이 생긴 후에 그녀는 이 현실을 깨달았을 거야…….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공주의 교만함을 유지했다니. 복비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그녀는 사건 배후의 진상을 깨달았다……. 그때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슬픔? 무력함? 실망?’
이 공주는 겉으로는 교만하고 제멋대로다. 사실 겉모습이 우락부락한 종이호랑이는 억울한 일을 겪으면 큰 소리로 울부짖을 뿐, 진정으로 마음속을 쿡쿡 찌르는 억울함은 또 묵묵히 감당해 낸다.
그녀의 본질은 사실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예쁘고 강해 보이지만 속은 여리다.
임안의 눈가가 점점 흐릿해졌다. 그녀는 이 말들을 내뱉으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비록 개자식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고, 그녀를 도와 회경 앞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일조차도 망설이지만, 임안은 그가 자신을 위해 회경의 미움을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기뻤다.
갑자기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누르고 쓰다듬었다.
임안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드니 개자식이 어느새 자기 곁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딱하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원망스러워하며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마마, 제가 함께할 겁니다.”
임안의 얼굴이 조금씩 빨개졌고, 그녀는 모기처럼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내 머리 쓰다듬지 마……. 나 화 낼 거야.”
허칠안은 대역무도하게 공주마마의 명령을 어기고 머리를 힘껏 문질러 헝클어뜨렸다.
임안은 도화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마치 공주인 자신의 위엄이 개자식에게 밀린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눈동자는 확실히 살상력이 없었다.
임안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 이런 성격의 여자아이를 상대하려면 적당하게 막무가내로 굴면서도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게 가장 좋은 방식이지……. 회경이었다면 단번에 찔려 죽었을 거라고…….’
그들 두 사람 사이에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흘렀다.
허칠안은 즉시 손을 떼고 품속에서《정천대성》화본을 꺼내 임안 앞에 두고 웃으며 말했다.
“이건 소직이 어쩌다가 얻은 책인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공주마마께서는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시니 이 책도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제가 선물했다고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임안의 주의력이 한순간에《정천대성》에 끌렸다.
“만약 궁에서 지내시는 일이 무료해지시면 임안부로 옮기셔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직이 매일 마마를 찾아가 놀 수 있고, 마마를 몰래 데리고 밖에 나갈 수도 있지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그는 먼저 작별을 고하고 나갔다.
“허칠안!”
임안은 그를 불러 세우더니 볼을 부풀리고 험상궂게 위협했다.
“오늘 일은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 * *
허칠안은 소음원을 나와서 우림위에게 말했다.
“본관이 중요한 일로 장공주마마를 만나 뵈려고 하니 나를 데리고 가거라.”
“법도에 어긋납니다.”
우림위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궁성 밖에 가서 기다릴 수 있네. 그렇게 하면 법도에 부합할 테지.”
허칠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은자 열 냥짜리 은표 한 장을 찔러 주었다.
우림위는 승낙했다. 그는 허칠안을 데리고 황궁을 나가 궁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통전하러 들어갔다.
우림위는 일주향의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돌아와서 말했다.
“회경공주마마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허칠안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더니 손을 뻗어 가슴을 누르고 속으로 말했다.
‘회경아, 회경.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군과 바보같이 순수한 서생의 위력을 한번 맛보자. 틀림없이 네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야.’
* * *
허칠안은 우림위를 따라 덕형원(德馨苑)에 이르렀다. 회경이 막 검술 연마를 마치고 목욕 중이라 허칠안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참 나, 내가 온다는 걸 듣고 일부러 샤워하고 목욕하나…….’
허칠안은 속으로 허풍을 떨었다.
그리하여 그가 덕향원 밖에서 이각을 기다리니 연한 노란색 치마를 입은 궁녀가 문턱을 넘고 나와서 부드럽게 말했다.
“허 대인, 마마께서 들라 하십니다.”
* * *
그가 아원에 들어가니 손님을 접대하는 바깥 대청에 회경이 보였다. 홍조가 물든 아름답고 청초한 얼굴에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오늘따라 여인의 교태가 좀 늘고 고귀한 도도함이 좀 덜해졌다.
옥미인(玉美人)이 살아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니까 여성스럽잖아. 매일같이 도도하고 고귀하게 공주 티를 내면 조금도 귀엽지 않다고…….’
허칠안은 읍을 올렸다.
“소직 전하를 알현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