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합격자 발표 (2)
“올해는 회원이 누구일지 모르겠네요.”
춘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왕 소저는 웃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춘시는 부정행위를 여러 차례 금지했으나 근절되지 않았다. 대담하게 부정행위를 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 안은 거품이 많았다. 회원의 명성은 백성들이 보기에 아주 우스웠지만, 진정으로 이 분야에 정통한 자들은 공수를 올리고 이렇게 한 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귀형(貴兄), 호기로우십니다!’
물론 이따금 닭장에 황금 봉황이 날아 들어오기도 하니, 아무래도 명성에 걸맞은 수재가 우승을 쟁취할 법했다.
이때 입을 열지 않던 다른 여종이 갑자기 먼발치를 가리키며 찬사를 보냈다.
“아주 수려한 서생이셔요.”
왕 소저는 발을 젖혀 벌어진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는 이내 여종이 말한 수려한 서생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자에게서 비치는 후광에 눈이 부셨다. 북적대는 군중 사이를 밀치락달치락 하며 연신 눈살을 찌푸려도 그의 수려함은 조금도 감출 길이 없었다.
정교하고 가는 두 눈썹, 별처럼 빛나는 눈,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뽀얀 피부. 그의 겉모습은 대부분의 여인들보다도 정교하고 예뻤다.
그의 뒤에는 갸름한 얼굴의 아름다운 부인이 뒤따랐는데 화려하고 진귀한 치마를 입고, 높이 튼 머리에는 금보여를 꽂고 있었다.
아름다운 부인 곁에는 청아하고 상큼한 소녀가 있었는데 왕 소저처럼 자신의 미모에 자신감 넘치는 여인이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미모였다.
* * *
숙모는 수행원들의 보호를 받아 밀치락달치락 군중에게 떠밀리지는 않았지만, 구경하러 온 건 조금 후회했다.
시끄러운 유생들 외에 우락부락 흉악한 얼굴을 한 강호 인사들이 더 많았다. 이는 집에서 조카와 남편에게만 주먹을 휘두르는 숙모를 주눅 들게 했다.
그녀는 평소에 외출하면 못난 남자들의 은은한 시선을 자주 받았더랬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저속한 강호 떠돌이들의 시선은 너무 적나라했다.
숙모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미모는 스스로 저버리기 어려운 사실에 유감스러워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계세요.”
허신년은 멈춰 서서 설명했다.
“조금 이따가 방을 게시하면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급제자의 이름을 발표할 거예요. 저희는 여기에서 듣고 있으면 됩니다.”
숙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신년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
“이 엄마는 네 공명을 위해 갖은 애를 썼단다.”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허신년이 말했다.
공원(貢院)의 동쪽 담에 붙여지는 행방은 ‘공명장(功名墻)’이라고도 불렸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급제자를 발표하는 시진이 되었다.
먼저 게시한 건 부방(*副榜: 추가 급제자 명단)이었다.
고작 부방일 뿐인데 모든 서생들이 흥분하였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통곡하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중생상을 보였다.
“급제자 발표네. 행방을 게시할 차례일세.”
서생들이 큰 소리로 외치자 군중은 감정이 격앙됐다.
“460번, 양진(楊振), 국자감 서생. 459번, 이주명(李柱鳴), 청주 호수군(胡水郡)…….”
‘공명장’ 아래 서 있는 하급 관리가 큰 소리로 급제자의 이름을 발표했다. 그가 입을 떼는 순간 요란하던 함성이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졌다.
수천 명의 서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들릴 때면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거나 팔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신년, 왜 아직도 네 이름을 듣지 못한 거니?”
숙모는 좀 다급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백 명 좀 넘었어요.”
허영월이 위로했다.
“둘째 오라버니가 회원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숙모는 딸을 노려보았다. 나쁜 계집애가 감히 엄마조차 조롱하다니.
“신년, 아직도 네 차례가 안 됐구나.”
50번이 넘어가자 숙모는 더 조급해져서 미간을 확 찌푸렸다.
“좀 더 기다리세요.”
허신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10번까지 이름이 호명되자 숙모는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들은 십중팔구 낙방할 것 같았다.
허신년의 눈에는 불안함과 조금의 흥분이 묻어났다. 그는 급제하지 못하면 살신성인하겠다는 각오였다. 큰형의《행로난》과 평소 자신이 쌓아 온 것을 떠올리면 신년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마침내 이름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해 과거 회원, 경성 출신, 운록서원의 서생, 허신년.”
숙모의 귓가에 우렁찬 천둥이 친 듯 ‘쾅’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온몸을 세차게 떨었다.
‘우렁찬 천둥’ 소리는 마찬가지로 수천 명의 서생 귓전을 때리고 주변 야경꾼들의 귓전을 때렸다. 그들이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러했다. 불가능하다!
운록서원의 서생이 회원이 된다는 건 불가능했다. 유가의 정통 다툼은 이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다. 운록서원의 서생이 관리 사회에서 탄압받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이런 배경인데 어떻게 운록서원의 서생이 회원일 수 있단 말인가?
지난번에 ‘회원’이 된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자양거사로 무려 2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자양거사가 어떤 자인가?
바로 4품 대유다.
20년 후에 다시 봐도 그가 회원이 되고 나아가 장원이 되는 건 완전히 이치에 맞았다. 그자는 본래 잠룡이니 말이다.
하지만 발상을 바꾸어 보자. 마찬가지로 운록서원 출신인 지식인이 격렬한 싸움에서 혈로를 뚫고 회원이 된 셈이다.
그 역시 대유의 자질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순간에 여러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사람들은 모두 방하착서(*榜下捉婿: 방 아래에서 사위를 채 가는 혼인 문화)하는 부잣집 노인들이거나 사대부 계급이었다.
방하착서(*榜下捉婿: 방 아래에서 사위를 채 가는 혼인 문화)는 예로부터 있었다. 대봉 원경년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유행하지 않지만, 행방을 지키며 사위를 물색하는 가문이 여전히 적지 않았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바로 잠룡의 자질을 갖춘 지식인이었다. 예를 들면 눈앞의 ‘회원’ 허신년처럼 말이다.
방하착서는 우스개로 부르는 명칭이다. 대부호가 행방을 지키다가 마음에 드는 지식인이 생기면 집안에 사람을 보내 중매를 선다. 시간 싸움이다.
일단 중매에 성공하면 혼사가 결정된다. 다른 사람이 다시 빼앗고 싶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하늘보다도 예법이 중시됐던 시대에는 전도양양한 앞날을 원치 않는 이상 사문의 손윗사람을 데리고 취기산(聚氣散) 한 알 주면서 파혼하라고 압박한다고 파혼할 리가 없었다.
“허신년이 누구인가?”
“허신년, 허 나리가 누구신지요?”
군중 속에서 이따금 탐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서생이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끝없는 인파를 사이에 두고 멍한 얼굴을 한 허신년을 보았다. 그는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신년, 축하하네. 허신년이 저기 있습니다!”
후다다닥……. 가장 먼저 몰려든 건 서생이 아니라 방하착서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허신년을 동그랗게 둘러쌓다.
“허 회원 혼례를 치렀는가? 본관 가족 중에 딸이 하나 있는데 방년 스무 살로 꽃처럼 아름답다네. 공자의 아내로 시집보내고 싶네.”
“본관 가족 중에도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있네. 칠현금, 바둑, 서화 모두 능통하지.”
허신년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춘아는 까치발을 하고 잠시 보더니 흐뭇하게 말했다.
“방하착서는 참 재미있어요. 아가씨, 회원이 그 수려한 서생일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젖살이 오른 볼에 달콤함을 숨긴 우아한 기질의 왕 소저가 갑자기 발을 젖혀 머리를 내밀고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춘아, 돌아가자꾸나.”
한편 허신년은 여태껏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없던 터라 눈살을 확 찌푸렸다.
막 욕지거리를 내뱉어 눈치 없는 자들을 쫓아내려 하는데 갑자기 나쁜 마음을 먹고 몰려오는 강호 사람 몇몇이 보였다. 수행원이 형성한 ‘방호벽’을 들이받고 모친과 여동생의 등을 처먹으려는 의도가 보였다.
수행원들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자 숙모와 영월이 놀라서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멈춰!”
허신년이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전혀 저지할 수 없었다.
“허, 이렇게 무지막지하다니. 능력은 없는데 혼란한 틈을 타서 한 몫 챙기는 대단한 재주가 있어.”
중년의 검객은 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보며 매우 하찮게 여겼다.
하지만 그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작은 혼란은 야경꾼과 관병들에 의해 빠르게 제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태의 두 여인은 아마 한 차례 공포에 떨어야 하겠지.
“멈춰!”
갑자기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심리적인 천둥이 아니라 분명히 세찬 천둥소리였다. 자리에 있는 천여 명의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며 간간이 이명이 들렸다.
단숨에 소동이 뚝 그쳤다.
공원(貢院)의 담장 위에 은라가 수놓아진 야경꾼 차복을 입은 젊은이가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칼을 쥐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란을 피운 그 강호 떠돌이를 훑어보았다.
그와 동시에 관병과 야경꾼들이 인파를 헤치고 드디어 달려왔다.
숙모는 허칠안을 본 순간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았다. 모녀 둘은 마치 기댈 곳이 생긴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란을 피운 몇 놈들을 데리고 가겠다.”
허칠안은 강호인 몇몇을 한 명 한 명 지목했고, 주변에 있던 동라들은 즉시 체포했다.
아래에 있던 서생들이 허칠안을 알아보고 아주 기뻐하며 소리쳤다.
“허 시괴(*詩魁: 최고의 시인)다!”
“허 시괴(*詩魁: 최고의 시인)를 만났다!”
경성의 여러 서생들은 공수하며 극히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건넸다. 마치 선배나 웃어른에게 초면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사실상 허칠안은 이런 대접을 받을 만했다. 자손 대대로 전해질 뛰어난 작품 몇 수 덕분에 오만한 지식인이라도 그의 앞에서 오만불손하게 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외지에서 온 서생은 허칠안의 신분을 몰랐다. 본래는 야경꾼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데, 경성 선비들의 태도로 이 젊은 은라의 신분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귀형, 이자는 누구인데 이렇게 소문이 자자한가요? 보아하니 무사일 뿐인데.”
“그를 모르다니……. 엇, 자네는 경성 인사가 아니군. 이 대인이 허칠안이네. 암향부동월황혼의 허칠안 말일세.”
“……그였군요. 역시나 뛰어난 인재입니다. 비범한 외모에 인물이 참 훌륭하군요. 그를 보고 있으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번에 외지 서생은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허칠안의 ‘사생팬’은 의외로 많았다. 베낀 시 덕분에 대봉 지식인 집단에서 대량의 팬을 확보하였다.
순간 수많은 서생들이 공수하며 인사를 건넸고, 큰 소리로 ‘허 시괴’라고 외쳤다.
“정말 늠름하다…….”
허영월이 중얼거렸다.
“정말 위엄이 넘치네…….”
먼 곳에서 용용 낭자가 담 위의 젊은이를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내가 주인공인데…….”
허신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