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합격자 발표
“여기에 문제가 있는데…….”
종리가 말했다.
“용오천의 이름은 금기를 깼네. 천정을 숭상하는 책 속의 배경에 따르면 이런 이름은 나오지 않아야 하네.”
허칠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희 이런 사소한 부분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이야기는 계속 됐다.
하지만 신분 격차가 너무 큰 이 두 남녀는 뜻밖에도 서로 사랑에 빠졌다. 선계(仙界)에서 자란 아름다운 꽃과 결점 없는 아름다운 옥이었다.
“잠깐.”
종리가 붓끝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선계에서 자란 아름다운 꽃이 가리키는 건 자하 선녀겠지? 그렇다면 결점 없는 아름다운 옥이 용오천……. 하지만 그는 태생이 천한 요족이야. 출신을 보면 ‘결점 없는 아름다운 옥’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네만.”
‘편집자냐고…….’
허칠안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지금 제게 책 집필을 가르치는 겁니까?”
종리는 ‘부적’의 기분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약삭빠르게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야야기는 계속 됐다.
두 사람은 천궁에서 밀회를 가졌다. 손을 잡고 해가 지는 노을을 보러 가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고 밀실에 가서 침상 위를 뒹굴거렸다. 허칠안은 이 일련의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소한 대목을 완전무결하게 묘사했다.
이 시대에 유사한 금서 역시 시구까지 곁들여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허칠안은 시를 베끼는 일은 가능하지만 스스로 시를 짓는 건 불가능했기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않았다.
하지만, 자하 선녀와 용오천의 사랑은 자하 선녀의 미색을 탐하는 신관(神官)에게 발각됐고, 두 사람은 고발당했다.
진노한 천제는 용오천의 살가죽을 벗기고 뼈를 뽑아서 윤회하게 하고 자손 대대로 가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하 선녀 역시 영원히 광한궁(廣寒宮)에 감금되어 추위와 적막 속에 살아갔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뚝 끊긴다.
“몇 자입니까?”
허칠안은 찻잔을 받치고 목을 축였다.
종리는 잠시 속으로 계산하더니 말했다.
“대략 팔천 자쯤이네.”
종리는 글을 아주 빠르게 썼다. 한 번 쓰기 시작해서 두 시진 동안 조금도 쉬지 않았다. 허칠안이 한마디 하는 사이에 그녀는 다 썼다. 보통 사람은 이 정도로 하지 못했다.
‘역시 5품 술사답군…….’
허칠안은 아주 만족스럽게 남몰래 혀를 내둘렀다.
사실 이야기는 아주 평범했다. 적어도 허칠안이 보기에는 아주 평범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아직 상업 소설이 등장하지 않았다. 설령 허칠안의 조잡한 이야기일지라도 대부분의 화본보다도 아주 흥미로웠다.
‘반년 전에 종리를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얘기하고 그녀는 쓰는 거지. 그녀가 바로 내 음성 인식 시스템이다. 서점을 하나 차리고 화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겠어…….’
허칠안은 즉시 이 생각을 부정했다. 우선 그의 현재 지위로는 장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치킨스톡의 수입과 매년 받는 배당금으로도 처와 첩이 무리 지어 사는 무미건조한 생활을 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런 화본이 만약 그의 전생에 있는 건 별일 아니지만 이 시대에서는 목이 떨어질 일일 터였다.
‘할 가치가 없다, 할 가치가.’
“좋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볼게요. 저희 계속해서 다음 권을 쓰시죠.”
종리는 손가락이 떨렸다…….
* * *
두 번째 책은 마계 여군(女君)과 인족 서생의 사랑 이야기였다. 허칠안은 전생에 보았던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님 스타일을 직접 모방하여 응용했다. 다만 남녀 주인공의 역할만 바꿨다.
여군은 포악하고 용맹스러우며 예지로우면서도 냉혹했다. 인족의 서생은 정치적 포부로 가득 찼지만, 선량하고 온화하며 예절에 밝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vs 바보같이 순수한 서생.
의심할 여지없이 이건 회경에게 보여줄 책이었다.
그가 임안에게 보여줄 책은 남녀 주인공이 천정의 공주와 시위로, 임안의 애정관과 가치관을 그릇되게 인도하려는 허칠안의 음흉한 심보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소설에 깊이 빠지면, 마음속에 영민하고 소탈하며 능력이 뛰어나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시위’형 인물이 떠오를 것이다.
그럼 임안은 알 것이다. 아, 내 개자식이 바로 이런 남자가 아니던가? 알고 보니 천명을 받은 천자가 바로 내 곁에 있었구나!
아주 가능성 높은 일이다. 규방에서 자란 아가씨들이 재자가인의 화본에 사로잡히면 꿈에서도 미래의 남편과 화본 속의 남자를 동일시한다……. 가장 좋은 예 아닌가!
반면 회경은 다루기 힘든 사람이다. 똑똑하고 도도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이런 사람은 인도하기 어렵다.
허칠안은 심지어 그녀가 저질스러운 소설을 보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었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 회경은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성격의 공주다. 그리고 남존여비 세계에서는《위엄 넘치는 여장군이 사랑에 빠지다》와 같은 소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허칠안은 반드시 이 화본이 회경공주의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 * *
황혼이 지나고 허신년은 식탁에서 큰형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마치 보물을 훑어보듯 말 한마디 없이 심오한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형님, 뭣 때문에 계속 저를 주시하는 거예요?”
허신년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요즘 꽂힌 그림이 있는데 너를 모사하고 싶더구나.”
허칠안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변명하면서도 여전히 허신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랬군…….’
허신년은 아래턱을 살짝 치켜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이 제 준수한 외모를 조금이라도 그려낼 수 있다면 기초를 터득한 셈이겠네요.”
허평지는 못 들어 주겠어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듣자 하니 어제 네가 단칼에 6품 무사를 베었다며?”
허칠안은 어색하게 말했다.
“애송이일 뿐이에요.”
허평지는 아들을 쳐다보고 다시 조카를 쳐다보더니 속으로 말했다.
‘자신을 높이 치켜세우고 거만하게 우쭐대는 기풍은 우리 허씨 집안의 전통이 아닌데 말이야.’
“내일이 급제자 발표하는 날이구나.”
숙모가 신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는 반드시 회원일 게다.”
숙모가 기뻐하며 아들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
허평지는 오연한 아내를 쳐다보더니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 속으로 말했다.
‘우리 마누라가 가풍을 망쳐 놓았어.’
“행방(杏榜)이 붙으면 온 가족이 함께 보러 가요.”
허칠안이 말했다.
허영음이 ‘행방’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즉시 고개를 들었다.
“먹을 거 아니야.”
허영월이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허영음은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
* * *
허칠안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세수하고 양치질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도자기 병의 나무 마개를 뽑아서 맑고 깨끗한 물을 섞어 얼굴을 씻고 10분 동안 물에 담갔다. 그러자 피부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목구비가 ‘용해’되려는 징조가 나타났다.
그는 즉시 구리거울 앞으로 가서 미숙한 행기 법문을 운행하여 자신의 이목구비를 바꾸려 했다.
“입술은 좀 더 얇게, 코는 좀 더 좁게……. 얼굴뼈는 수축돼야 해……. 눈 모양은 좀 더 둥글게…….”
일각 뒤, 짝퉁 허신년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해 그는 허신년과 흩어진 지 여러 해 된 친형제 같았다.
“거의 다 왔군.”
허칠안은 구리거울을 보며 자신의 외모에 감탄했다.
‘이 모습으로 숙모를 붙잡고 엄마라고 부르면 온 가족이 믿겠지……. 아니, 아니. 이런 위험한 생각은 거두자. 숙부와 숙모가 이혼하겠다고 난리 치면 큰일이니까…….’
허칠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머릿속에 예상하기 힘든 행동이 여러 가지 스쳤다.
물론 앞으로 신년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지서 단체 채팅방의 친구와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는 것도 아주 재미있을 듯했다.
사회적 매장이 두려워서가 아니니 순전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으니 스스로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해……. 기루에 노래를 들으러 간 지 오래됐군.”
* * *
춘방(春榜)은 ‘행방’이라고도 하는데 이때가 마침 살구꽃이 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월 27일, 희미하게 먼동이 텄다.
오늘 밤에는 야간 통행 금지 없이 성문이 활짝 열렸고, 길거리에 병사들이 왔다 갔다 하며 순찰을 돌았다. 야경꾼 관아의 동라들은 거의 총출동했다.
수많은 선비들이 내성으로 몰려들어 와 공원(貢院) 대문 앞에 모여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올해 춘방은 유난히 떠들썩했다. 간절히 바라는 수천 명의 선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문의 천인 간 전쟁과 맞물려 무수한 강호 인사들이 벌떼처럼 성으로 몰려들었다.
강호인들에게는 가장 큰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들이 바로 눈팅족이라는 점이었다!
구경거리가 있다면 그들은 그곳으로 모였다.
이는 경성 오위, 부아와 야경꾼 관아에 아주 큰 치안 스트레스를 초래했다.
결국에 허평지 역시 아들과 함께 행방을 보러 갈 수 없어졌다. 그가 맡은 구역이 공원과는 거리가 좀 멀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허칠안 역시 다른 지역의 치안을 책임져야 했다.
강호인은 각양각색의 사람이 섞여 있어 만일 첩자나 반사회적인 인사가 존재할 경우 서생들이 위험해진다.
숙모와 영월, 영음 세 여인들도 따라가서 함께 즐기려 했기에 숙부는 어쩔 수 없이 저택에 수행 호위병을 안배했다. 허칠안은 자신이 순찰하는 구역이 공원과 멀지 않아서 언제든지 두루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 * *
“지난번 춘시 급제자 방을 붙이는 날도 이처럼 떠들썩했지. 조정에서 여러 해 동안 관리를 양성해 왔는데 바로 오늘이구나.”
중년의 검객은 류 공자 등의 후배들을 데리고 꽉 막힌 거리를 걸으며 당당하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이 스승이 경성을 돌아다니던 그해 마침 춘시를 맞닥뜨려 운 좋게 이 광경을 본 적이 있지. 그때의 회원은 아마 초원진이라는 자였는데 나중에는 장원에 급제했단다. 이번에 경성에 와서 알아보니 그 장원랑은 이미 관직에서 물러났다더구나. 에휴, 세월이 덧없이 흘러 벌써 10년이 지났다.”
“엇? 관직에서 물러났다고요?”
소혼수 용용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왜요? 60년 전에 한림원에 들어가면 재상이 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주 탄탄한 앞길을 왜 포기했을까요?”
중년의 검객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더 걸어가면 곧 막다른 길이었다. 곳곳이 유삼을 입은 서생들과 강호 인사들로 붐볐다.
관병들이 힘겹게 질서를 유지하며 큰 소리로 호통 쳤다.
“사부님, 아니면 저희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가서 보시죠.”
류 공자가 제안했다.
“야경꾼에게 단칼에 베여 떨어지고 싶은 게냐, 아니면 어도위의 화살에 심장이 뚫리고 싶은 게냐?”
중년의 검객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공원(貢院)에서 비교적 가까운 공터에 붉은 비단을 늘어뜨린 가마 한 대가 멈춰 있었다. 칼을 찬 시위대와 아리따운 여종 둘이 가마 주위를 둘러쌌다.
“춘아(春兒), 얼마나 더 있어야 급제자 방이 붙니?”
가마 안에서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이각 더 기다리셔야 해요.”
왼쪽에 있는 춘아라는 여종이 발돋움하여 먼 곳의 해시계를 보며 말했다.
가마 안의 소저는 당조 재상 왕정문의 딸이었다. 평소에 지식인들이 개최하는 시회, 문회에 참석하길 가장 좋아하고, 또 한데 모여 떠들썩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니 당연히 춘시의 급제자를 발표하는 이런 성대한 행사를 놓칠 리가 없었다.
왕 소저의 재명(才名)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다. 회경공주처럼 재능이 출중하지는 못하지만,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향시 합격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