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두루마리 그림
류 공자 일행 역시 쉽지 않았다. 용용 낭자가 끌려간 후, 젊은 협객과 여협객들은 류 공자를 필두로 하여 즉시 객잔으로 돌아가 사건의 경위를 같은 업계의 선배들에게 알렸다.
몇몇 선배들은 상의한 끝에 바로 야경꾼 관아로 달려가 풀어 달라고 하는 대신, 각자의 인맥을 동원하여 우선 관리 사회에서 연줄을 찾았다.
그들이 야경꾼에게 잡혀갔다는 걸 알자 경성에서 지위가 낮지 않은 ‘인맥’들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결국 다들 거금을 들인 간청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하지만 그들은 잡아간 자가 허칠안이라는 야경꾼임을 안 후 하나 같이 안색이 변했다.
“못 하네, 못 해!”
그들은 이렇게 오후 시간을 헛되이 날렸다. 그런 뒤 그들은 이튿날 그 악명 높은 은라가 관대하게 처리하길 바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야경꾼 관아에 찾아갔다.
소혼수 용용 낭자의 사부는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년의 아름다운 부인으로 동글반반한 얼굴에 품격이 넘쳐흘렀다. 아마 젊었을 때도 얌전하고 수줍은 많은 미인이었으리라.
그녀의 마음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하늘 아래 남자들의 꼬락서니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룻밤이 지났다. 용용이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조를 잃는 정도라면 그나마 낫다. 탐욕스러운 그놈이 깊숙한 대저택에 가둬 놓고 노리개로 삼을까 봐 두려웠다. 그것이야말로 비극 아닌가.
류 공자의 사부는 신중한 중년 검객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깊은 팔자주름과 신들린 듯한 눈빛이었다.
두 선배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근심과 허탈함을 보았다.
고수가 넘쳐 나는 야경꾼 관아에 있으면, 아무리 사납고 고집스러운 무사라도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이고 발톱과 이빨을 움츠려야 했다.
그들이 초조하게 이각을 보내자, 은라 차복을 입고 등허리에는 남다른 패도를 메고 있는 젊은 남자가 문지방을 넘어 편청으로 들어왔다.
“여러분 중 누가 용용 낭자의 사부입니까?”
허칠안은 모든 이를 훑어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중년의 부인이 일어나 예를 갖추고 말했다.
“이 늙은이입니다.”
‘겸손하시네. 그 몸매와 그 외모가 어디 봐서 늙은이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관이 이미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여 밝혀냈습니다. 본관의 법보를 도둑질한 사람은 용용 낭자가 아니라 천면여비적 갈소정이었습니다. 지금 범인은 이미 체포되었으니 여러분께서는 용용 낭자를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두 선배는 이 말을 듣자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따라온 젊은 협객과 여협객들 역시 놀람과 기쁨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허나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어르신들에 비해 생각이 좀 단순했다. 하지만 두 어르신은 마음속에 더는 요행수가 없었다. 용용은 아마도 이미…….
그럼에도 상대방이 하룻밤 방탕하게 놀고 풀어 주었다는 것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재수 없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중년의 부인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용용 낭자가 하급 관리의 인솔하에 편청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녀는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에 ‘사부님’하고 외쳤다.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지도, 울고불며 떼를 쓰지도 않았다.
중년의 아름다운 부인은 그녀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 대인께서 꼼꼼히 조사하시어 너를 억울하게 만들지 않았단다.”
용용은 사뿐하게 절을 올린 뒤 아름다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허 대인.”
중년의 검객이 기침 소리를 내더니 읍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소매에서 은표 한 묶음을 꺼내 찻상 위에 두었다.
“은표는 가지고 가십시오.”
허칠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그 돈을 받기가 거북했다. 어쨌거나 소혼수 용용은 소란을 피우지도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오해일 뿐이었다. 그의 잘못이었다.
중년 검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쳐다봤고, 다시 읍을 올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인.”
강호 떠돌이들은 바로 떠났다. 막 편청 문턱을 넘어서는데 등 뒤에서 허칠안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조심히 가십시오!”
중년의 검객은 발걸음을 멈췄다. 좀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 썩은 세상에 은자를 받지 않는 벼슬아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돌아서는 김에 소매에서 은표를 꺼내 다시 건네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본 건 허칠안이 탁자에 선지 한 장을 펼쳐 놓고 붓을 들어 글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가 글을 다 쓴 뒤 엄지손가락에 먹을 묻혀 손도장을 찍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도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랐다.
“본관은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걸 싫어합니다. 어제 제가 저 사내의 법기를 베었으니 여러분은 이 차용증을 가지고 사천감의 송경을 찾아가십시오. 그가 본관을 대신해 법기 한 자루를 변상해 줄 겁니다.”
중년의 검객은 차용증을 받아서 작별 인사를 한 뒤 떠났다.
* * *
일행은 야경꾼 관아를 나왔다. 아름다운 부인은 용용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젊은 협객이 마침내 깨닫고 다소 걱정스러운 듯 용용을 떠보았다.
“용용, 그, 그가 어젯밤에 자네를 모욕했는가?”
젊은 협객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잇따라 반응하며 용용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중년의 검객이 큰 소리로 나무랐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비록 그와 아름다운 부인 모두 용용이 정조를 잃었다고 단정했지만, 애써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호의 아들딸이라지만 명예와 정조는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그는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네. 나는 야경꾼 곁방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냈어.”
용용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이불이 좀 냄새났을 뿐이네.”
그녀는 하룻밤이 지나자 처음처럼 무섭고 걱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그 은라가 성인군자임을 알았다.
중년 부인도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는 쉬쉬하지 않고 의심 가는 점을 물었다.
“너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너를 왜 체포했다더냐?”
“허 대인은 정말로 보물을 도둑맞았더군요. 그의 보물을 훔친 건 갈소정이고요. 그가 저를 관아에 붙잡아 온 이유는 갈소정이 제 모습으로 변신하여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런 오해가 생긴 거예요.”
용용이 말했다.
‘합리적이군…….’
아름다운 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갈소정은 또 왜 네 모습으로 변신헀다니?”
용용이 한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 저와 류 사형 등이 주루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녀 이름을 언급하면서 몇 마디 했거든요. 천면여적은 본래 강호의 하층민으로 온갖 좀도둑질은 다 하고 다니는데 나와 같이 거론되는 게 어울리냐면서요. 틀림없이 이 얘기가 그녀 귀에 들어갔겠죠. 제 모습으로 변신해서 도둑질하고 그걸로 복수하려 한 거죠.”
“그런 흐름이었답니다.”
류 공자 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의 맥락이 아주 분명해졌다. 그 은라 역시 피해자였다. 용용을 체포한 일은 순전히 오해였고, 그 은라는 절대 직권을 남용하는 호색가도 아니었다.
젊은 협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년의 검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금 그에게 은표를 건넸는데 받지 않더군. 역시 젊은 혈기가 좋아. 가슴속에 강직한 절개도 있고 말이야.”
그의 어조에 찬사가 가득했다.
류 공자는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사부님…… 법기는요?”
중년의 검객은 제자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소했다.
“경성에서 사천감은 야경꾼 위에 있어. 은라의 신분이 낮지는 않다만, 고작 종이 한 장으로 사천감더러 법기를 선물해달라고 할 수 있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야.”
류 공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그가…….”
중년의 검객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젊은이들은 체면을 중시하지 않나. 우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중년의 아름다운 부인이 눈동자를 굴리더니 제안했다.
“별일 없는데 차라리 사천감에 한 번 다녀오는 건 어떤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봉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보러 갈 겸.”
“알겠네.”
* * *
허칠안은 지하 감옥에서 꺼낸 누리끼리한 고적 한 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방금 갈소정의 심문을 마치고 ‘만천과해술’의 심오한 이치를 물었다.
“이 여비적은 인재긴 해. 우선 그녀를 남겨두면 앞으로 분명 쓸모가 있겠어. 허, 내 법보를 훔치다니. 너한테 정보를 빼내고, 장차 너를 마음대로 부려먹어야지. 물론, 네게 풀만 먹일 거지만.”
춘풍당은 아직 재건 중이었다. 그의 당 입구도 마찬가지로 보수하는 중이라 현재 사무실이 없는 은라는 민산의 금옥당(金玉堂)에 가서 빈대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편청에 이르러 하급 관리에게 따뜻한 차를 내오라 분부한 뒤 누리끼리한 고적을 펼치고 흥미진진하게 읽기 시작했다.
‘도문…… 아, 아니, 신투문의 역용술은 확실히 신기하단 말이야. 보통 역용술과는 달라. 진짜와 똑같이 모방한 사람 가죽의 탈이 결코 아니야.’
직접 생김새를 바꾸기 위해서는 특수한 약물을 제작하여 반주향의 시간 동안 얼굴에 발라야 한다. 그러면 안면의 혈육이 뜨거워지면서 ‘용해’된다. 그런 뒤 고유의 행기 법문을 곁들여 이목구비를 바꾼다.
효과는 열두 시진 동안 지속된다.
물론, 자발적인 복원도 가능하다.
동피철골경의 무사는 세 배의 약물이 필요하고, 얼굴을 우리는 시간은 일각 연장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 낯가죽이 정말 너무 두껍다.
“이 비술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자세히 관찰하고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는 데 있다. 마치 그림 그리는 것과 같다. 초급 선수는 모사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수준급 화가는 자유롭게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완벽하게 인물을 본뜰 수 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기술이구먼…….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숙부와 신년이지. 숙부는 웃어른이니까 신년부터 시작해야겠어.”
한 하급 관리가 문지방을 넘어와 공손하게 말했다.
“허 대인, 위 공께서 찾으십니다.”
* * *
위연은 7층 다실에서 책상 옆에 서서 붓을 쥔 채, 시선을 집중하여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위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며 말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는가?”
허칠안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했다.
“위 공을 따르면서 남의 미움을 사지 않는 자가 어딨겠습니까. 원수가 너무 많아서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위연은 ‘음’하더니 말했다.
“그런 각오라면 장차 어떤 일이라도 웬만하면 다 성취하겠구먼.”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자네가 어제 데리고 온 6품을 오늘 아침에 누군가 데려갔네. 누구의 미움을 산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게.”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떠오르지 않아 그 자식을 데리고 왔건만 위 공께서는 어째서 그를 풀어 주셨는지요?”
그는 위연을 원망했다.
야경꾼 관아에서 감히 위연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단 두 사람뿐이었다. 그중에 하나는 질투쟁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허칠안이다.
위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종이 위에 붓끝을 올리고 천천히 그리다가 마침내 붓을 내려놓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그렸네.”
“뭘 그리셨습니까?”
허칠안은 황급히 다가갔다.
두루마리 그림은 궁장을 입은 미인이었다. 화려한 치마를 입은 미인이 머리에는 아주 많은 장신구를 단 채 섬섬옥수로 작은 부채를 쥐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목구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기품이 남달랐다.
허칠안은 황후가 아님을 확인하더니 대담하게 물었다.
“이 누님 참 아름다우십니다. 혼사를 치렀습니까? 위 공께서 아시는 분인지요? 소직은 아직 장가를 들지 못했습니다만.”
위연은 유감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자는 없네. 나 역시 불가능하지.”
그는 끝끝내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고, 남의 미움을 산 일을 더는 언급하지도 않은 채 손을 흔들어 허칠안을 호기루에서 내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