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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23화 (323/712)

323화. 속인(贖人)

다그닥다그닥…….

암말은 널찍한 거리를 미친 듯이 내달았다. 행인들은 중간에서 부주의하게 길을 막지 않고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여긴 사람이 차를 양보하는 시대다.

“좌회전!”

황갈색 고양이가 갑자기 외쳤다.

허칠안은 말머리를 돌렸다. 암말이 멋진 드리프트를 걸고 왼쪽으로 돌게끔 컨트롤했다.

허칠안은 금련 도사의 지휘하에 북성에서 동성으로 이동하여, 한 객잔 밖에 이르렀다. 금련 도사가 말했다.

“지서 파편은 이곳에 있네.”

허칠안은 그가 말할 때 혈맥이 상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하지만, 지서 파편의 위치를 명확하게 감지했다.

지서 파편과 숙주가 근거리 내에 있으면 교감할 수 있다.

* * *

객잔의 어느 방.

짙은 화장에 커다란 살구 눈,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눈빛을 가진 여인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볼을 받친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옥석경을 쥐고 있었다.

“이 보물을 왜 사용할 수 없는 걸까?”

짝퉁 용용 낭자는 지서 파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지서 파편은 언뜻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녀는 도문(盜門)의 유일한 계승자라 보물에 관한 직감이 예리했다.

보물 수색은 도문 제자의 천부적인 기능이다.

거울에는 이상한 문양이 아주 많았다. 상자, 은표, 군노, 은괴……. 그녀는 다년간의 ‘보물찾기’ 경험을 빌어 이내 추측을 내렸다.

이건 피로써 주인을 인식하는 법보다. 게다가 자체적으로 물건을 보관하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용용’ 낭자의 가슴이 금세 뜨거워졌다. 그물 하나에 이렇게 큰 물고기가 많이 걸렸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보물을 하나 얻은 데다 그 안에는 거액의 재물이 들기까지 했다.

“안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꺼내지…….”

짝퉁 용용은 지서 파편을 쥐고 탁자에 쿵쿵쿵 내리쳤다.

그녀는 지금껏 피로써 주인을 인식해야 하는 법보를 본 적이 없어서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은 있다. 무릇 물건을 보관하는 법기는 파괴되면 안에 담긴 물건도 저절로 떨어진다.

하지만 이건 피로써 주인을 인식하는 법보이므로 그 가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눈앞의 이익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쿵쿵쿵’ 두드렸다.

“누구세요?”

‘용용’ 낭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는 물을 데울 심부름꾼을 부르지 않았다. 방세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수도 계량기 확인하러 왔습니다.”

밖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를 들은 ‘용용’ 낭자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옥석경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일어서서 성큼성큼 창가로 달려갔다.

쾅!

그녀는 창문을 열고 달아나려던 참에 창가에 웅크리고 앉은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호박색의 눈동자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용용’ 낭자의 머리에 마치 강철못이 박힌 듯했다. 그녀는 영혼이 찢겨서 머리를 감싼 채 신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문이 열렸다. 허칠안이 한 손에 칼을 쥐고는 인정사정없이 걸음을 내디뎌 방으로 들어왔다.

황갈색 고양이 역시 창가에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역시 너였군!”

허칠안은 흑금장도를 뽑아 ‘용용’ 낭자의 목덜미에 대고 콧방귀를 뀌었다.

“천면여비적.”

“대인, 무슨 말씀이신지요?”

‘용용’ 낭자는 대책을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날렵하게 굴렸다.

허칠안이 손을 내밀어 가볍게 쥐자, ‘용용’ 낭자 품에 있던 지서 파편이 날아와 저절로 그의 손에 떨어졌다.

‘용용’ 낭자는 ‘야’하고 손을 뻗어 만류하려 했지만, 곧 목덜미가 아파 괴로워하며 계획을 포기했다.

이 남자는 전투력이 막강하다. 자신이 열 명 있어 봤자 이자의 단칼에 한참을 못 미친다.

허칠안은 지서 파편 안에 있는 내용물이 분실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한시름 놓았다. 그는 체증이 가신 듯 속이 후련해졌다.

거울 속의 금은과 은표는 그의 전 재산이다. 이 세계에 온 지 반년, 모진 시련을 겪으며 어렵사리 모은 재산이다.

전부 그가 장가가기 위한 돈이란 말이다.

그는 지서 파편을 도로 품속에 넣고 칼을 거둔 뒤,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낙심한 여비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잉? 변명 안 할 건가?”

“범인을 잡고 장물을 압수했는데 무슨 좋은 변명거리가 있겠습니까.”

여비적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중얼거렸다.

“마나님이 여러 해 동안 구주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는데 경성에서 수모를 당할 줄이야. 역시 천하제일의 도시답군. 억울하지 않다…….”

말을 하는 어조, 표정과 태도만 봐도 그녀가 막무가내 떠돌이임을 알 수 있었다. 전에 주루에서 보여준 녹차녀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루 안에서는 위장이었고, 지금이야말로 그녀의 본래 성격일 터였다.

허칠안은 쥐를 잡은 고양이처럼 희롱했다.

“변명 좀 해보시지. 나리가 마음이 약해져 너를 풀어줄지도 모르잖아?”

여비적은 금세 태도를 바꾸고 애잔한 기색을 보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소녀도 박복한 사람이어요. 부모님께서 세 살인 저를 기루에 파셨고, 열 살에 접객을 강요당했지요. 열다섯 살에 사부님의 눈에 들어 마지막 제자로 거두셨습니다. 고달픈 나날이 드디어 끝난 줄 알았는데 사부 역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람이 몹시 세게 부는 어느 날 밤에 그, 그가…….”

그녀의 연기가 지나치게 실감이 나서 허칠안은 순간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다.

“됐다, 됐어. 네 처지를 아주 동정하지만, 법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지. 본관이 네게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허칠안이 말했다.

“어떻게 감쪽같이 내 보물을 훔쳐 갔지?”

“이건 소녀의 비장의 수법이어요. 4품 이하는 훔치고 싶은 대로 훔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변장했지?”

허칠안은 몸을 구부리고 그녀의 아래턱을 움켜쥐더니 자세히 훑어보며 말했다.

“사람 가죽으로 된 탈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이 얼굴은 네 것이 아니야.”

“이건 저희 도문의 독자적인 비결로 만천과해지술(瞞天過海之術)이라 합니다. 진짜로 외모를 바꾸는 것이지요. 평범한 역용술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잠깐!”

금련 도사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호박색의 눈동자가 여비적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는가? 너희가 무슨 문파라고?”

여비적은 느닷없는 어마어마한 살기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문(盜門)입니다…….”

금련 도사는 허칠안을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 여비적을 베게.”

‘이번에 도문(道門)이 가장 처참하게 해킹당했군…….’

허칠안은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눈앞의 이 분이 누구인 줄 아는가?”

여비적이 고개를 저었다.

“도문 지종의 우두머리네.”

“앞으로 저는 도문을 신투문(神偸門)으로 바꾸겠습니다.”

여비적은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문파를 바꾸겠다고 말하면 바꿀 수 있나?’

허칠안은 어리둥절했지만 금련 도사가 더는 말하지 않는 걸 보자 계속해서 방금 화제를 이어나갔다.

“비적을 내놓거라.”

여비적은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동자공(童子功)으로 어려서부터 익힌 것입니다. 사부께서 몸소 가르쳐주셨기에 비적이 없습니다. 저는 네 살부터 십여 년을 익힌 끝에 배움을 마쳤답니다.”

“방금은 세 살 때 기루에 들어가서 열 살 때 손님을 받고 열다섯 살에 사부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마 대인께서 잘못 들으셨나 봅니다?”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이런 강호의 능구렁이 말은 역시나 문장부호 하나도 믿을 수 없군.’

“역용술 비적을 내놓거라.”

여비적은 단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적은 옷장 안에 있으니 제가 지금 가지러 가겠습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일어서서 옷장 옆으로 걸어가 보따리 하나를 꺼냈다.

“비적은 바로 이 안에 있습니다.”

허칠안이 보따리를 받아서 펼친 순간 녹색의 안개가 솟구쳐 나왔다. 그와 금련 도사는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내지 못하고 숨을 몇 번 들이마시더니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여비적은 미리 호흡을 멈춘 뒤 보따리 안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 안에 있는 해독약을 복용하고 나서야 여유롭게 숨을 쉬었다. 그녀는 흥얼대며 말했다.

“이 몸과 싸우려면 너는 아직도 멀었어.”

그녀는 말을 하면서 분풀이로 허칠안을 몇 차례 걷어찼다. 그러고는 그의 품에 손을 뻗어 몇 번 더듬더니 잃어버렸던 옥석경을 되찾았다.

갑자기 그녀는 단단한 물건이 자신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었고, 뒤에서 허칠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아무래도 죽여야겠네.”

‘용용’ 낭자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니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은라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등 뒤를 칼이 받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일깨워 줬잖아? 이분은 도문 지종의 우두머리라고. 자신이 언제 환술에 걸렸는지조차 모르네.”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여비적은 철저하게 단념했다.

“참, 이름이 뭔가?”

“갈소정(葛小菁)이어요.”

* * *

허칠안은 여비적 갈소정의 혈을 막은 채 오랏줄로 포박하여 말 등 위에 내던지고 금련 도사와 작별을 고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부했다.

“조심하게.”

고양이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떠났다.

허칠안이 말고삐를 푼 뒤 아끼는 암말을 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말이 발광하면서 말머리를 돌리더니 45도 각도로 몸을 회전하여 아름다운 뒤차기로 허칠안을 날려 버렸다.

뒤이어 암말은 울부짖더니 훌쩍 떠났다.

“???”

허칠안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된 얼굴을 하고 말을 쫓아가 행인을 들이받기 전에 제압하고 한참을 달랬다. 암말은 그때서야 온순함을 되찾았다.

“너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금련 그 늙은이를 태운 뒤로 나한테 싫증 났어?”

허칠안은 말 등 위에 앉아 속으로 말했다.

‘앞으로 더는 잔꾀를 부리지 않아야겠어. 역시 나이 든 사람은 노련하단 말이야.’

* * *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로 돌아온 뒤 여비적을 감옥에 가두고 옥졸에게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자는 그에게 아직 쓸모 있었다.

이때는 야간 통행금지가 시작된 지 이각이 흐른 뒤라 날이 저물었다. 하지만 은라에게 야간 통행금지는 형식적일 뿐이었다.

“소혼수 용용을 풀어 줘도 되겠군. 하지만 지금은 야간 통행금지니 내성을 나갈 수 없잖아. 내일 그녀를 처리해야겠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말을 타고 야경꾼 관아로 왔다. 하급 관리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급 관리가 그가 오는 걸 보자 종종걸음으로 맞이하며 말했다.

“허 대인, 강호 인사 한 무리가 사람을 빼내겠다고 관아에 왔습니다. 대인께서 어제 데리고 돌아온 그 낭자입니다. 낭자는 민 은라한테 있고요.”

‘이제야 빼내러 왔다니? 내가 만약 강제로 여자를 탐하는 호색가였다면 큰일이었다고…….’

허칠안은 ‘쯧쯧’대더니 말했다.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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