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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20화 (320/712)

320화. 단칼

허칠안은 일어서서 요망대에 섰다. 그는 손으로 난간을 누른 채 연무대 위의 사나이를 실눈으로 주시했다.

더할 나위 없이 확실했다. 그는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저 사내대장부를 알지 못했다. 더욱이 동피철골경의 적은 기억하지 못했다.

‘적이 아무런 까닭 없이 나타날 리가 없다. 내가 생각나지 않는 것뿐…….’

허칠안은 아래턱을 어루만지며 자신을 겨냥할 가능성이 있는 적을 생각했다.

그는 사람 구실을 함에 있어 줄곧 선의로 남을 돕는 일을 계승하고, 덕으로써 사람들의 뜻에 따랐다.

그는 벼슬아치 노릇을 함에 있어 강직한 성격으로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대의를 신조로 삼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에게는 적이 있을 리가 없다.

‘진 귀비는 음흉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나한테 복수하려고 한다면 우선 암살을 택할 것이다. 이렇게 큰 소란을 피울 리가 없다……. 조당의 제공이라면. 물론 여러 당파에서 나를 간절히 죽이고 싶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지식인의 수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무섭나 보군.”

“헛소리. 저자는 동피철골경 고수네. 그처럼 작은 몸집은 한 주먹에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조상의 혜택을 받은 귀족 자제들이 경성에서는 거들먹거릴 수 있겠지만 정말 고수를 맞닥뜨리면 아무 것도 아니네.”

맞은편 탁자에 앉은 젊은 협객들의 눈에는 허칠안의 ‘망설임’이 주눅 들어 위축된 걸로 보였다.

젊은 협객들은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 순간 그들의 심리는 마치 90점짜리 미녀를 데리고 클럽에 갔는데 결국 중도에 재벌 2세가 와서 큰 소리로 ‘오늘 밤 술값은 조 공자가 계산한다!’라고 외친 것과 같았다.

90점짜리 미인이 조 공자의 호기로움에 굴복해 조 공자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하늘에서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진정한 우두머리가 강림하고, 손바닥을 뒤집어 조 공자의 뺨을 날리며 말한다.

넌 어울리지 않아!

비록 싸대기를 날린 건 젊은 협객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여전히 통쾌했다. 보기에만 그럴싸한 귀족의 자제가 곤경에 빠져 망신당하는 걸 보는 일은 젊은 협객들의 니즈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잇따라 고개를 돌려 용용 낭자를 쳐다봤다. 그들은 그녀의 눈에서 실망감을 보고, 부잣집 자제가 빛나는 모습을 잃어 가는 걸 보길 바랐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기대주라는 걸 깨닫고 이 품에 되돌아오길 바랐다.

용용 낭자의 단수는 분명 젊은 협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얕지 않았다. 잘생긴 것 말고는 건질 게 없는 은라가 그녀를 등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관심 어린 눈빛을 내비쳤다.

이때 허칠안이 돌아서서 한손으로 등허리에 있는 칼자루를 쥐고 말했다.

“본관이 좀 만나러 가겠소.”

“아이고!”

용용 낭자는 갑자기 가까이 다가가 허칠안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그가 미간을 찌푸리기 전에 손을 놓더니 유감의 뜻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태여 강호의 평범한 사람과 대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칠안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설령 대인의 배경이 어마어마하더라도 좌우간 우선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죠. 이렇게 올라가면 공연히 얻어맞기밖에 더하겠나요.”

용용 낭자가 중얼거렸다.

* * *

허칠안이 주루를 나와 연무대를 향해 걸어가면서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니 기기가 넘쳐흘렀다.

동피철골의 그 사나이와 군중 속의 강호 떠돌이들은 즉시 알아차리고 잇따라 돌아서서 쳐다봤다. 그들은 허칠안의 은라 차복을 제대로 확인하자 마음이 확실해졌다.

주인공이 등장했다.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구경하는 백성들은 이런 자각이 없어 여전히 바깥을 둘러싸고 있었다.

“꺼지시오!”

허칠안은 무명옷을 입은 사나이를 잡고 세게 걷어찼고, 그는 허둥대며 도망쳤다. 백성들은 그때서야 두려움에 뒤로 물러나 길을 비켜 주었다.

“꺼지시오, 모두 썩 꺼지시오!”

허칠안은 칼집을 빼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주치는 사람은 죄다 쳤다.

“모두 열장씩 물러나시오. 가까이 다가오면 안 되오……. 어이, 영감. 나이 내세워서 뻣뻣하게 굴지 마시오. 신세대의 귀싸대기를 맛보고 싶은 게요? 어느 집 녀석이오?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이 몸이 끌고 가서 팔아 버리겠소……. 울긴 뭘 우니? 이 몸이 너를 걷어차게끔 몰아붙이는 거니……? 협객, 점심 식사는 하셨소? 설거지는 하셨고요? 여기에 구경하러 오다니……. 맞으면 어쩌시려고 그러오? 스무 살만 더 젊었으면 이 몸이협객을 기생집에 팔았을 것이오.”

젊은 협객들은 주루의 요망대에서 손으로 난간을 누르고, 허칠안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광경을 보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 개새끼가 주변의 백성들에게 화풀이를 하다니.”

“자신 있으면 연무대에 올라서 싸워야지. 백성을 괴롭힐 줄만 아는 놈이 무슨 야경꾼이란 말인가?”

“머저리 같은 놈.”

허칠안이 자리에 없으니 그들은 마음껏 욕할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꽤 괜찮은 젊은 협객이 돌아서서 용용 곁으로 걸어가더니 온화하게 말했다.

“용용 낭자. 저희는 돌아가서 술 마시는 게 어떻소. 제 사부님이 검을 쥐고 북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오랑캐를 벤 경험에 관해 낭자에게 제대로 얘기해 줄 텐데.”

“그러게. 머저리 2세와 술을 마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용용 낭자 보시오. 그는 백성들을 괴롭힐 줄만 안다오.”

나머지 젊은 협객들이 맞장구쳤다.

용용 낭자는 단정하게 앉아 젊은 협객들을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여러분은 그가 백성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아니오?”

젊은 협객들이 반문했다.

용용 낭자는 눈을 깜박이더니 궁금한 듯 말했다.

“강호에 이런 말이 있죠. 고수와 겨룰 때 관계자 외인은 물러난다! 고품 무사의 기기 파동에 보통 사람은 맞아 죽기 십상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조차 모르는 건 아닐 테죠? 그렇죠? 그렇죠? 물론 저 방법이 보기 좋은 건 아닙니다.”

젊은 협객들은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상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면 그렇지만, 이 기회를 빌려 평민을 괴롭히고 불쾌한 감정을 발산하려는 거 아니오?”

용용을 초청한 젊은 협객이 달갑지 않아 하며 반박했다.

용용 낭자는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시면서 눈빛에 서린 경멸을 감췄다.

시정의 백성들이 얼마나 우매한지, 그들에게 좋은 말로 득과 실을 설명해도 그들이 듣겠는가? 그들이 ‘고수와 겨룰 때 관계자 외인은 물러난다’가 뭔지는 알겠는가?

시정의 백성들은 우매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벼슬아치만 두려워한다. 그들을 상대할 때 얼굴은 큰 거시기를 섬기는 것만 못하다.

집안 형편이나 사문(師門)이 괜찮은 젊은 협객들은 말로는 선조의 공덕에 기대어 좀 먹는 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허 은라보다도 못했다.

* * *

그가 연무대를 한 바퀴 돌면서 쳐내니 드디어 세상 물정 모르는 평민들을 먼발치로 쫓아낼 수 있었다. 허칠안은 그때서야 연무대로 뛰어올라 칼을 짚고, 그보다 머리 하나 더 큰 사나이를 흘겨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네 엄마 자식이다.”

팔척장신의 사나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말장난을 하시겠다? 좋아. 숨 돌리고, 야경꾼 지하 감옥으로 압송해서 사람 됨됨이를 다시 가르쳐야겠군. 비록 그가 고분고분 자백하지 않는다고 해도…….’

허칠안은 패도를 등허리에 도로 걸고 칼자루를 쥐고 말했다.

“너 같은 6품 개미 정도는 본관이 단칼에 상대해주지.”

‘어찌 이리 시건방지단 말인가?!’

주위의 강호 떠돌이들은 깜짝 놀랐다. 6품 무사는 강호에서도 거물에 속했다. 게다가 일부 군현에서는 무림 맹주의 지위로 일대의 우두머리였다.

설령 경성에 고수가 넘쳐흐르고, 전설 속의 1품 술사가 있다고 하지만 6품 무사는 여전히 아무나 주물럭거릴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하하하.”

팔척장신의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사나이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몸이 네 머리를 쥐고 터트릴 뿐만 아니라 네 혀를 잘라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 * *

요망청에 있던 용용 낭자는 고개를 돌려 아무 걱정 없이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는 동라를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십니까?”

상사가 곤경에 빠져 다치게 생겼는데 이렇게 맛있게 먹고 있다니. 정말이지 관아의 벼슬아치들은 믿기 어렵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니 말이다.

“참 내!”

동라는 손을 내저었다.

“동피철골경 한 놈일 뿐인데 뭐가 있겠소. 낭자는 저희 허 대인이 얼마나 센지 전혀 모르오.”

“허 대인 역시 동피철골인가요?”

용용은 돌이켜 생각했지만, 바로 자신의 추측을 부정했다. 허칠안을 관찰한 결과 그의 풍채에는 동피철골경 특유의 신광(神光)이 없었다.

동라는 젊은 협객들을 쳐다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당연히 동피철골경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가 한 번은 길거리에서 자객을 맞닥뜨린 적이 있는데 살수는 연신경 둘에 동피철골경 하나였소…….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맞혀 보겠소?”

용용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허칠안이 멀쩡히 살아 있지 않은가. 그녀는 동라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게 아님을 알았다.

“단칼이오!”

동라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뭐라고요?”

용용 낭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동라는 밖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직접 보시오.”

쾅!

연무대 표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용 낭자가 황급히 몸을 돌려 보았다. 팔척의 사나이 발밑의 한백옥이 갈라지더니 검은 잔영(殘影)으로 변했다.

허칠안이 반대편에서는 한 발을 앞으로 굽히고 무릎을 낮춘 채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쨍……. 칼날이 칼집에서 나오는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맑고 은은한 소리였다.

용용의 시력으로는 어두운 금색의 가느다란 선이 스치는 것만 보였다. 뒤이어 폭발하여 흩어지는 도기(刀氣)는 마치 보이지 않는 강철 바늘이 사방에서 난사하는 듯했다.

바닥, 연무대 표면에 얕은 구멍들이 뚫렸다.

방금 허칠안이 만약 백성들을 몰아 내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쯤 적어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경하는 백성들과 대부분의 강호 떠돌이 눈에는 허칠안이 칼을 뽑은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선을 집중해서 본 결과 어느새 얌전하게 칼집으로 들어간 칼을 발견했다.

그러나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사나이는 멈췄다. 그는 허칠안의 1장 밖에 멈춰서 고개를 숙인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가슴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가슴에 가늘고 긴 칼자국이 갈라지면서 선혈이 솟구쳐 나왔다.

사나이는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허칠안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단칼이라고 하면 단칼인 것이다.”

와글와글!

군중에서 터져 나오는 떠들썩한 소리의 물결은 얼핏 보면 이렇게 ‘와글와글’했다.

갈채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시정 백성들은 솥의 물이 끓듯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일부는 얼른 약방에 가서 의원을 부르라고 소리쳤다.

수련 품계가 있는 강호의 떠돌이들이 본 건 깊은 이치였다. 맨 처음에는 왁작거리더니 그들은 오히려 단체로 실성했다.

단칼이다!

단칼에 동피철골경의 육신을 베었다. 이 은라의 수련 경지는 5품 심지어 4품일지도 모른다.

“야경꾼 은라 허칠안…….”

그들은 이 이름을 묵묵히 새겼다.

“어떻소? 속이지 않았지요?”

동라는 웃으며 일어나더니 멍한 얼굴을 한 용용 낭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로 우리 위 공께서 발탁한 천재지요. 한낱 6품 무사가 대수라고. 조당의 제공들도 우리 허 대인을 만나면 예의를 차려야 하오.”

그는 말을 마치고 어안이 벙벙해진 젊은 협객들을 냉소로 훑어본 뒤에 패도를 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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