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허칠안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여 황성에 들어왔으나 궁문 입구에서 우림위에게 가로막혔다. 임안의 시위는 정상적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사람을 데리고 궁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다.
허칠안이 임안이 예전에 준 요옥을 내보이자, 즉시 한 우림위가 와서 허칠안을 궁 안으로 안내했다.
황궁의 법도에 따라 궁 안에서 누군가 신하를 입궁하라고 부르면 우림위가 동행해야 했다. 그자가 아무 데나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게 동선을 확보해야 했다.
그들은 가는 내내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궁문, 광장, 궁벽을 지나 마침내 임안의 소음원에 도착했다.
우림위는 소음원의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임안의 시위가 허칠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바깥 뜰을 지나쳐 손님을 접대하는 대청에서 임안을 만났다.
임안공주마마는 여전히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붉은색 치마를 입었으며, 딴 머리에는 금보여와 마노(瑪瑙)비녀 등 화려한 장신구를 꽂고 있었다. 심지어 예법에 맞지 않는 봉관(鳳冠)도 썼다.
임안은 동글반반한 계란형 얼굴에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도화안을 뽐내며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마치 거장의 손이 빚어낸 인형 같았다.
허칠안은 별 탈 없는 그녀를 보자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임안은 손을 내저으며 시위와 수행 궁녀더러 물러가라 명하고, 허칠안 한 사람만을 남겼다.
임안은 한참 동안 그를 주시하다가 ‘와’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고, 억울하다는 듯 흐느끼며 고발했다.
“회경이 나를 죽이려고 해!”
‘……나 왠지 알 것 같아!’
허칠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랬는가. 원경제가 가장 아끼는 딸인 임안이 무슨 위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소위 생사에 관련됐다는 게 고작 이런 일이다. 정말이지 그녀가 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마마, 또 장공주마마를 찾아가서 문제를 일으켰나요?”
임안은 울면서 그를 노려봤다.
“뭘 내가 가서 말썽을 피웠다는 거야. 너 말 똑바로 해.”
허칠안은 언어를 재구성하여 말했다.
“이공주마마께서 또 회경공주마마한테 가서 정의를 주장하셨나요?”
임안은 ‘응’하고 힘껏 대답하더니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황후 그 독한 여자가 우리 어머니를 죽이려고 하니까 내가 시비를 가리러 회경을 찾아갔거든. 근데 그녀도 나쁜 마음을 먹었는지 내가 어찌 알았겠어? 나한테 손찌검할 줄이야.”
“마마를 때렸다고요?”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임안을 자세히 살펴봤다.
“어디요?”
“등나무 줄기로 날 때렸어.”
임안이 소매를 걷어붙이자 희고 보드라운 팔뚝이 드러났다. 매끈한 피부 위에 얕은 채찍 자국이 두 가닥 나 있었다.
“정말이지 혐오스럽네요!”
허칠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분노로 치를 떨며 난간에 기댔다. 그는 세찬 비바람이 멈추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했다. 임안의 치욕을 씻기도 전인데 신하의 원한은 언제 가시려나.
“마마, 안심하십시오. 소직이 반드시 정의를 지킬 겁니다. 회경을 쉽사리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네가 나설 필요 없어…….”
분노로 가득 찬 허칠안이 주인의 치욕을 씻기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듯 나오자 임안은 매우 감동하며 말했다.
“회경은 어쨌든 공주니 네가 제멋대로 움직이면 궁 안의 금군에게 사살당할 거야.”
‘하늘에 감사합니다. 마마의 지능지수가 아직은 멀쩡하시네요…….’
허칠안이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마마께서 아주 조금이라도 상처받으셨다는 게 소직에게는 크나큰 치욕입니다. 소직이 분골쇄신하는 한이 있더라도 회경을 골치 아프게 할 겁니다.”
임안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코를 훌쩍이면서 말했다.
“본 공주가 오늘 네게 입궁하라고 한 건 바로 이 일 때문이야. 본 공주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때 분명히 반항할 수 있었어. 달려들어서 회경의 얼굴을 긁을 수 있었는데 내가 실수했지 뭐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곁에 유능한 호위병이 없어서 그런 게 확실해. 나랑 같이 회경의 춘등원(春藤苑)에 다시 다녀오자.”
허칠안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것 같았다.
“콜록콜록!”
그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마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소직이 따져 봐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슬그머니 빠져나갈 수 있는지 따져 봐야겠어…….’
그는 묵묵히 생각했다.
임안은 복비 사건이 끝난 후, 내궁에서 벌어진 다툼에 관해 전부 허칠안에게 알렸다.
예상대로 황후는 진 귀비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여 사사건건 괴롭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궁의 온갖 수단에 황후마마가 누구보다도 정통하다는 걸, 이때서야 모두가 깨달았다.
예전에는 단지 실력을 발휘할 계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매일 날이 밝으면 진 귀비에게 문안을 받은 뒤 최선을 다하여 흠을 잡았다. 수하의 궁녀에게 진 비를 대신 ‘비난’하라고 분부하여 그녀가 내궁의 웃음거리가 되게 했다.
그리고 황후는 그녀에게 무릎 꿇기 등 여러 형벌도 가했다.
“황후께서 참 흉악하고 악랄하지 않니?”
임안은 한이 맺힌 대목까지 얘기하자 작은 손으로 탁자를 치며 분노했다.
‘네 어머니가 친남동생을 죽였으니 황후가 당연히 네 어머니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겠지. 물론 국구가 백번 죽어 마땅하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바로 어제 어머니가 갑자기 중독돼서 생명이 위독하셨거든. 경수궁의 하인이 서둘러 태의를 모시러 갔는데 누가 알았겠니. 봉서궁의 하인이 태의를 빼앗아 갔다더구나.”
“엇? 그럼 그 후에 어떻게 됐는데요?”
허칠안은 놀랐다.
임안이 여전히 두려운지 몸서리치며 말했다.
“다행히 어머니 궁 안에 비축해둔 해독 단약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
허칠안은 의미심장하게 ‘아’하고 소리를 냈다.
중독은 아마 황후를 모함하려는 진 비의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황후는 친남동생을 가슴 아프게 잃자 강경책을 택하여 태의를 빼앗아 갔으리라. 그래서 진 비는 어쩔 수 없이 해독약을 꺼내 스스로 목숨을 구했을 터였다.
“폐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
임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힘차게 콧방귀를 뀌어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
‘음, 원경제는 아마 훤히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그녀들끼리 소란을 피우게 놔두겠지……. 상관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은 위 공이 나선 흔적이 보이지 않아……. 만약 위 공이 나섰다면 진 비는 아마 이미 낙담했겠지.’
허칠안은 원경제가 은밀하게 위연에게 경고했으리라 추측했다.
<짐이 여인들을 죽이든 살리든 짐의 일이다. 신하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느니라!>
허칠안은 원경제가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본인은 그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최소한 내궁의 화재 사건을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는가.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더니 임안을 떠보았다.
“황후마마께서 왜 진 비를 겨냥하시는지 마마께서는 아십니까?”
못 들은 척하는 임안의 눈에 괴로움이 스쳤다.
허칠안은 이해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했다.
“가자, 본 공주는 회경을 때리러 갈 거야.”
임안은 말을 하면서 탁자 밑에서 등나무 줄기를 꺼내 들었다.
‘이미 다 준비했다니!!’
허칠안은 경악했다.
“마마, 좀 진정하세요, 진정…….”
허칠안이 타이르려 하자 임안이 입을 오므리고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나 알겠어. 사실 네 마음은 회경을 향하고 있잖아.”
“헛소리하지 마세요!”
허칠안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가슴을 치더니 말했다.
“가면 갑니다!”
* * *
두 사람은 궁녀와 시위를 데리고 회경의 춘등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이른 아침 포근하고 따뜻한 햇볕 아래,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돋고, 회경이 우아한 궁군(宮裙) 차림으로 정자에 앉아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뒷모습, 곧게 앉은 자세, 새까만 머리카락과 어우러지는 흰 궁군. 그녀에게서는 우아하고 지성미 넘치는 문사의 기질이 돋보였다.
허칠안과 임안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돌진했다. 도도한 장공주마마는 어느새 문득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 걱정 없이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면서 담담한 어조로 양쪽의 시위에게 분부했다.
“어느 잡놈이 만약 본 공주의 고상한 취미인 독서를 방해한다면 죽여도 무방하다.”
몇몇 시위 역시 한 손에 칼을 쥐고, 기세등등하게 맞이했다. 그들은 임안공주에게는 감히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적의를 허칠안에게로 돌렸다.
임안공주는 당연히 잡놈이 아니지만, 이 은라는 죽여도 무방한 잡놈이었다.
허칠안은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
임안은 밀리는 모습의 허칠안을 보자 그 자리에서 반쯤 쫄았다. 그녀는 뒤에서 받쳐 주는 개자식이 없어진다고 하면 홀로 회경과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등나무 줄기로 회경을 가리키며 콧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역겨운 회경, 나와!”
“회경, 썩 나오라고!”
“뻔뻔한 회경, 자신 있으면 와서 본 공주와 겨뤄 보자고!”
회경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었다.
* * *
일각 후, 임안은 허칠안을 데리고 의기소침하게 떠났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정색한 채로 성난 임안이 이를 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탄식했다.
“됐습니다, 마마. 격차가 너무 많이 나요.”
IQ 차이가 너무 크다.
회경은 간단한 명령 한 마디로 판을 뒤엎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그때 가면 내가 처신하기 쉽지 않았을 테니……. 회경 마마는 정말 내 금지옥엽이 따로 없다. 나를 위해 어려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 줬어……. 하지만 임안한테 손찌검한 건 너무했다고…….’
허칠안은 흐뭇했다.
반면 임안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붉은색 치맛자락을 휘날렸다.
* * *
허칠안은 임안공주마마를 소음원으로 데려다 준 뒤, 그녀와 오목을 두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정오가 다 돼서야 작별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는 신하고 임안은 출가하지 않은 공주니 너무 오랫동안 어울려서는 안 됐다. 함께 식사하는 일은 더욱이 불가능했다.
“다음에 본 공주가 다시 궁으로 호출할게.”
임안이 말했다.
같은 이치로, 그녀는 신하를 입궁하라고 자주 불러들이면 안 됐다. 유언비어가 떠돌기에 십상이다.
허칠안은 궁문을 나와 우림위의 손에서 자신의 암말을 건네받은 뒤 암말에 올라타 ‘다그닥다그닥’ 황성 밖으로 향했다.
“황후와 진 비 사이의 갈등은 분명 풀릴 방법이 없어. 진 비 이 여인이 황후를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까 임안을 종용할 거야. 황후를 대적하는 창으로 삼는 거지. 회경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임안은 지금보다도 더 멍청해서 진 비가 가리키는 대로 때렸다지. 회경이 반격하지 않고 무시당하기만 하는 건 일단 반격하는 순간 임안이 얻어맞을 테고, 이 모든 게 바로 진 비가 보고 싶어 하는 일일 테니까.
임안이 총애를 받으니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면 원경제가 앉아서 보고만 있지는 않겠지……. 임안이 만약 다시 괴롭힘을 당하면 오늘 같은 상황이 분명히 또 발생할 거야. 나 같은 어엿한 어장남이니 물고기한테 끌려다니면 안 된다고. 방법을 생각해야 해, 방법을…….”
허칠안도 야경꾼 관아로 돌아오는 내내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는 말의 엉덩이를 치며 괜히 화풀이했다. 그는 다 말 탓이라며 몸을 흔들어 댔고, 흔들다 보니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동라 둘을 데리고 외성 거리를 순찰하러 갔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걸어서 갈 수는 없었고 말을 타야 했다.
허칠안이 가장 익숙한 곳은 남성이다. 허씨 집안의 옛 저택이 바로 남쪽에 있었고, 이곳에는 육호 항원의 근거지인 양생당도 있기 때문이다.
“에휴, 운수 좋은 내 스킬을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항원 대사에게 정기적으로 은자를 보내 자선 활동을 해야 한다니…….”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매우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