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임안공주의 위급한 목숨
허칠안은 금련도사와 작별한 뒤 괴로운 얼굴로 방에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종리를 노려보았다.
이 여인은 머리에도 얼굴에도 면포를 칭칭 감고 있었다. 불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의 그녀는 허칠안의 태도 변화를 알아차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도문의 고수가 자네에게 뭐라고 얘기하던가?”
“무슨 상관입니까?”
“아.”
그녀는 머리를 약간 숙였다.
하지만 허칠안은 그녀를 놓아 주지 않고 화를 내며 말았다.
“제가 예전에는 매일 은자를 주웠는데, 아십니까?”
“모르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네.”
종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오사저 때문에 감정이 저를 경성에 남겨두고 제 기운을 부분적으로 차단했습니다.”
허칠안은 여전히 종리의 재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부분 기운이라고 판단했다.
“미안하네…….”
‘미안하다고 말하면 소용이 있나? 하루에 몇백만을 손해 보는 일인데…….’
허칠안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저한테 보상하셔야 합니다.”
“나, 나는 은자가 없네.”
종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이튿날 오전, 허칠안은 활기 찬 정신으로 깨어났다. 그는 침상이 무너지지 않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이건 당연히 종리와 무관했다. 물론 감정의 행동이 그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지만, 어젯밤에는 발끈해서 화를 낸 거였다.
이 여인은 이미 충분히 비참했다. 허칠안의 양심이 그녀에게 해를 입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리는 나중에 그에게 두 가지 법기로 보상하기로 약속했다. 허칠안은 문득 기뻐져 유난히 달콤한 잠을 잤더랬다.
* * *
그는 세수하고 양치한 뒤 바깥 대청에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저 멀리서 콩알이가 엉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문턱을 넘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숙모가 허영음을 의자에 누르고 닭털로 만든 먼지떨이를 휘두르면서 작은 엉덩이를 탁탁탁 후려치고 있었다.
허평지, 허영월, 허신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밥을 먹었다. 그들은 여동생(딸)의 우는 소리는 무시한 채 한마음 한뜻으로 죽, 찐빵, 채소에만 집중했다.
허칠안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여동생을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추세요!”
숙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기 딸을 때리는데 저 자식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숙모, 너무 하세요.”
허칠안이 닭털로 만든 먼지떨이를 빼앗으며 말했다.
“영음이는 아직 어려요. 이렇게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고요.”
“큰 오라버니…….”
아이가 간이랑 쓸개를 다 내어 줄 것처럼 ‘큰 오라버니’하고 외친 소리는 친아버지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큰 오라버니.”
허영월이 설명했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난초가 떨어져서 기르지 못하게 됐어요. 어머니는 영음이 떨어뜨려서 깨트렸다고 의심하시고요.”
허칠안은 닭털로 만든 먼지떨이를 숙모에게 돌려 주고, 그녀의 손등을 툭툭 쳤다.
“아이 교육은 하루빨리 해야 해요. 지금 때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늦습니다. 숙모 잘 때리셨어요. 계속하셔요.”
“엉엉엉…….”
허영음이 아주 속상해하며 울었다.
역시 복원(福源)이 없는 아기는 순전히 억센 팔자에 의지해야 한다.
* * *
경성으로 몰려드는 강호 인사가 나날이 늘어남에 따라 경성의 치안 상태가 한순간에 떨어졌다. 위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는 외성 동서남북 각지에 견고한 한백옥고대를 세우라고 명령한 다음 그 이름은 호협대(豪俠臺)로 지었다.
바로 ‘뭘 봐?’, ‘너 보는데 어쩌라고?’하는 강호 협객들의 다툼을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곳이었다. 한순간에 경성에 도착한 각지 인사가 호협대에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경성에 원수가 있는 자는 바로 호협대로 뛰어오른 다음에 ‘XXX 자신 있으면 올라와서 맞붙자! 오지 않으면 애송이다!’라고 외쳤다.
만약 XXX가 들으면 하루 뒤에 싸움에 응하는 것이다.
강호 협객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플랫폼이 생기니 일반 백성에게 화가 미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경성 백성들이 매일 눈팅할 구경거리도 생겨 현지 요식업의 소비도 촉진할 수 있었다…….
“위연은 역시 실력이 대단해. 정치적으로 업적을 세울 수 있는 관리야.”
허칠안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이며, 허평지가 성을 순찰할 때 보고 들은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밖에 원한이 없는 강호 협객들도 무리를 지어 호협대에 올라 절차탁마하며 명성을 얻곤 했다. 하지만 여협객들은 대개 호협대에 올라 솜씨를 드러내는 데 흥미가 없었다. 그녀들은 강호에서 훌륭한 명성을 떨치는 대협객들과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술자리에 드나드는 데 더 열중했다. 그녀들에게 호협대에 올라 솜씨를 드러내는 일은 한 번이면 족했다.
그들은 경성 내에서 직위와 명성이 높은 고관에게 빌붙을 기회를 찾는 데 열중했고, 잠재력 있는 경성의 서생을 꼬시는 데 열중했다.
이렇게 보면, 자고로 남자와 여자가 추구하는 바가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단번에 성공하여 명성을 얻는 것을 추구했지만, 여자는 단숨에 팔자를 고치는 일을 추구했다.
바로 바깥에 그렇게 요염한 물건들이 많으니 허평지는 신년에게 일이 없으면 외출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우악스러운 여협객들이 그의 순결한 몸을 탐해서는 안 됐다.
‘신년이는 얌전히 집에 있으면서 요물들을 아버지에게 넘기라는 뜻이겠지…….’
허칠안은 핵심 의미를 간파했다.
“숙부, 지금 경성에 온 여협객들 중에 용모가 뛰어나다고 멀리 소문난 여인은 없던가요?”
허칠안은 말을 마친 뒤 여동생과 숙모의 경멸 어린 표정을 보더니 즉시 덧붙였다.
“혹시 모를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요.”
숙모와 여동생은 허평지를 다시 쳐다봤다. 허평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불만을 늘어놓았다.
“이놈 자식, 이런 문제를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내가 이런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더냐?”
허신년은 큰형과 부친의 합동 연기를 보면서 하찮게 여기는 마음에 ‘허’하고 콧소리를 냈다.
* * *
숙부와 조카 둘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함께 문을 나섰다. 말을 끌고 와서 탄 뒤 허평지는 암말을 어루만지며 개탄했다.
“너를 따른 후로 점점 생기발랄해지는 듯해.”
“사랑을 받아서 그렇죠 뭐.”
“응?”
허평지는 의구심을 보였다.
“야경꾼 관아의 급식이 좋아요. 농후사료를 먹이거든요. 보리, 황두, 달걀, 굵은 소금이요.”
허칠안이 설명했다.
허평지는 듣더니 갑자기 눈독을 들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바꾸는 게 어떻겠니? 내 말도 야경꾼 관아에 보내서 사료를 개선해야겠는데.”
허칠안은 연거푸 손사래를 쳤다.
“바꿔서 타지 않을 겁니다.”
“숙부, 저희 여협객들 얘기 좀 해요.”
허칠안은 강호 여협객들에게 유달리 관심이 생겼다. 아마 전생의 강호 콤플렉스가 장난치는 모양이었다.
허평지는 이 얘기를 손금 보듯 환히 꿰뚫고 있었다.
“듣자 하니 지금 경성에 아름다운 자태의 여협객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가장 뛰어난 여협객은 넷이야. 하나는 여애검각(廬崖劍閣) 각주(閣主)의 딸로 그녀의 칭호는 ‘나비검’이라 하지. 수련 경지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용모도 빼어나. 만화루(萬花樓)의 용용(蓉蓉)은 별칭이 소혼수(銷魂手)인데 동료의 얘기를 들으니 그야말로 사람을 홀리는 여우라더군. 어떠한 남자도 그녀의 매력을 막을 수 없다고 해.”
‘소혼수?! 내가 이해하는 그 소혼수인가? 손을 마구 교차한다는 그 의미인가?’
“그리고 천면여비적(千面女飛賊)이라고 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은 없지만, 변장술에 능하다고 들었다. 매번 절세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지. 마지막으로 더 굉장한 여협객이 있는데 명성이 높은 여자 칼잡이다. 사용하는 건 쌍생도(雙生刀)로 뇌주(雷州) 쌍도문(雙刀門)의 제자라고 하더구나.”
허평지는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이지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의 여협객이란다. 만약 내가 스무 살만 젊었어도……. 나는 그래도 네 숙모를 선택했을 거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속으로 숙부가 그래도 숙모를 참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여협객들은 스무 살 조카에게 양보하시죠.”
* * *
허칠안은 관아에 도착해 묘시 점호에 응한 뒤, 친분이 두터운 은라 민산의 사무실 입구에서 토납하며 반 시진 동안 도를 닦았다. 그런 후에 수하의 동라 둘을 데리고 거리를 순찰하러 갈 계획이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춘풍당은 아직 재건하지 못했다.
“대장, 저희 어디로 순찰하러 갑니까?”
“여협객들이 어디에 출몰하길 좋아하는지 아는가?”
허칠안이 물었다.
“당연히 호협대죠. 요즘 동서남북 연무대 네 군데가 아주 시끌벅적하다고요. 내성의 많은 백성이 모두 구경하기 위해 앞 다투어 외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남성의 호협대에 간다.”
허칠안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막 관아를 나섰을 때 미친 듯이 달려오는 말을 보았다. 말 등 위에 앉아 있는 건 궁정 차복을 입은 임안의 시위였다.
“허 대인!”
그 시위는 허칠안을 보자 기대 이상으로 기뻐하며 돌연 말고삐를 조이고 급히 멈췄다.
“허 대인, 마마께서 서둘러 입궁하라 하십니다.”
“무슨 일인가?”
허칠안은 침착하게 물었다.
“마마께서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마의 생사가 대인의 손에 달렸다고 말이죠.”
시위가 나지막이 말했다.
“???”
허칠안은 동라에게 말을 끌라고 분부하면서 말했다.
“궁 안에 일이 생긴 것인가?”
시위는 대답하지 않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일개 시위인 그가 어디 감히 궁중에서 일어난 일에 참견하겠는가.
허칠안은 그를 괴롭히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더니 말했다.
“오사저?”
“알겠네. 나는 우선 사천감으로 돌아가겠네.”
종리는 창가에서 머리를 내밀고 얌전하게 말했다.
“돌아가는 길에…… 뜻밖의 사고가 날까요?”
허칠안이 물었다.
“하늘에, 하늘에 운명을 맡기세.”
종리는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시위는 긴 양삼 도포를 입고 머리를 산발한 여인을 주시했다. 이 여인의 애처롭고 가련한 분위기는 유독 동정심을 유발했다.
다그닥다그닥…….
이내 동라가 암말을 끌고 돌아오자, 허칠안은 암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암말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인을 밀어젖혔다.
“오사저에게 불공의식을 드리겠습니다.”
허칠안은 종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혼자서 사천감으로 돌아간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별다른 일은 겪지 않았다. 허칠안은 작은 재앙은 있을 수 있어도, 큰 재앙은 있을 리 없다고 짐작했다. 이곳에서 사천감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다.
기껏해야 반 시진 정도의 여정이다.
* * *
그는 애지중지하는 암말에 올라타 소음원의 시위와 나란히 황성을 향해 달려갔다.
시위는 말고삐를 휘두르며 행인을 물리치면서 때로는 허 은라를 관찰했다. 공주 전하가 총애하는 부하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길을 보는 데만 집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미간 사이로 엄숙함이 묻어 나왔다.
‘틀림없이 원경제의 내궁이 엉망진창일 거야. 황후가 동생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절대 진 귀비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아니, 진 비지……. 그리고 후자는 진작에 황후에 대한 원망이 깊잖아. 애당초 그녀를 여러 해 동안 가상의 적으로 삼았으니…….’
“XX, 왜 원경제의 집안일을 나 같은 일개 은라가 신경 써야 하는 거야? 네가 딸을 예쁘게 키워서 그런 거지 뭐.”
허칠안이 남몰래 욕설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