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14화 (314/712)

314화. 좋은 시

이때 문밖에서 나팔수가 작은 창을 두드리더니 웅근 목소리로 말했다.

“나리, 시험지가 왔습니다.”

춘시에 참가하는 사람은 모두 거인(*擧人: 향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거인은 관리가 될 자격이 있었기에 얼뜨기 병사들 모두 고사장에 있는 서생들을 ‘나리’라고 불렀다.

허신년은 시험지를 받아 탁자 위에 펼쳤다. 이때는 이미 날이 밝았는데도 아침 해가 아직 뜨기 전이었다.

허신년은 귤색 촛불을 빌려 시선을 집중했다. 주제는 《정자․간과(程子․干戈)》중 한 구절로 ‘군대 장수는 바뀔 수 있지만, 사나이의 포부는 바뀔 수 없네’라는 문장이었다.

시험지를 주시하는 동안 그의 표정이 하염없이 굳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형님이 그날 내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개똥을 밟은 거겠지?”

허칠안은 중얼거렸다.

그날 허신년이 제비뽑기를 한 건 성가시게 하는 큰형을 대충 상대해 주는 셈 친 것이었다. 그는 춘시의 시험 주제를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경의와 책론에 국한되었다. 어쨌건 두 가지는 어떤 측면에서는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 주제는 전적으로 시험관의 기분 상태에 좌지우지됐다. 그들은 내고 싶은 걸 냈다. 길가에 들꽃에서 이름을 따올 가능성도 있었다.

‘이것도 알아맞힐 수 있다고?!’

큰형이 그날 저녁 개똥을 밟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잠깐…….’

허신년은 놀람, 당혹, 망연 등등의 표정이 전부 광희와 분발로 바뀌었다.

‘큰형이 문제를 맞혔다, 큰형이 문제를 맞혔어!’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참을 수 없었다. 휘파람을 불어 지금 이 순간 마음속의 흥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큰형의 시재로 시험 문제를 맞힌 거라면 회시 3차는 나 허신년이 지존이다. 내, 내가 어쩌면 회원(會員)을 각축할 수 있을지도 몰라.’

회시에 합격한 사람을 ‘공사(貢士)’라고 하고, 공사의 명칭을 ‘회원’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데는 일리가 있다. 우선 회시는 답안지에 붉은 종이를 붙여 누구의 시험지인지 모르게 한다. 운록서원 서생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 배제당할 일도 없다. 두 번째로 허신년은 천생이 지식인 종자로, 대유 장진의 득의양양한 문하생이다. 게다가 그는 유가 체계를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아주 좋고, 사리에 통달하는 등 그 수준이 국자감의 서생을 훨씬 능가한다.

마지막으로 대봉은 과거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주임 시험관 세 명을 배치한다. 여러 명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니 그 출신 성분이 복잡할 테고, 주임 시험관 세 명은 분명히 서로 다른 당파 사람일 것이다.

서로 적대 관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령 누군가 주임 시험관 한 명을 매수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두 명을 매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매 차 회시마다 시험관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한 차례 치르곤 한다. 그런 뒤 그들은 서로 상의하고 타협하면서 마지막 채택을 한다.

“천하가 나를 용납하지 않으니 이후의 대봉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허신년은 거만해도 지금은 방 안에 아무도 없으니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바보처럼 웃었다.

만약 침상이 있다면 침상 위에서 뒹굴거나 구더기처럼 몸뚱이를 이리저리 비틀었을 것이다.

“형님은 정말 내 구세주야! 침착해, 침착해. 큰형이 내게 준 영지시(咏志詩)가 뭐였더라……?”

허신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냉정함을 강요했다.

다행히 유가 8품인 그는 한 번 본 건 잊어 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큰형이 준 시는 훌륭해서 깊게 기억에 남은 편이라 금방 생각해 냈다.

그가 붓을 들고 먹을 찍어 초고지(草稿紙)를 펼쳤다. 그런데 그는 바로 이때 자신의 손이 여전히 살짝 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못난 자식. 고작 회시일 뿐인데 이렇게 흥분하다니. 나는 재상의 자질이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

허신년은 스스로 한마디 조롱하니 마음이 좀 편해져 더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종이에 글을 썼다.

금준청주두십천 옥반진수직만전(*金樽淸酒斗十千 玉盤珍羞直萬錢: 금항아리 맑은 술 가득하고 옥쟁반 진수성찬 가득한데).

정배투저불능식 발검사고심망연(*停杯投箸不能食 拔劍四顧心茫然: 술잔 놓고 젓가락만 들고 먹지 못하니, 칼 뽑아 둘러 보아도 마음만 망연하네).

욕도황하빙색천 장등태행설만산(*欲渡黃河冰塞川 將登太行雪滿山: 황하를 건너려 해도 얼음이 강을 막고, 태행산을 오르자니 온 산이 눈이로다).

한래수조벽계상 홀복승주몽일변(*閑來垂釣碧溪上 忽復乘舟夢日邊: 벽계에서 한가로이 낚싯대 드리우고, 배 위에서 느닷없이 꿈 속 해를 보네).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行路難 行路難 多岐路 今安在: 인생길 고되도다. 인생길 고되도다. 갈림길도 많으니 가야 할 길 모르겠네).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長風破浪會有時 直掛云帆濟滄海: 거친 바람이 파도를 몰고 오면 구름 돛 달고 창해를 헤쳐 가리라).

그는 시를 다 쓴 뒤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자신이 틀리게 쓰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새로운 의혹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황하(黃河)가 뭐야? 태행(太行)은 또 뭐지? 한래수조벽계상, 홀복승주몽일변 이 두 구절은 무슨 고사지?’

허신년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시와 책을 많이 읽은 허신년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황하와 태행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게다가 그가 시사를 이해하기로는 ‘한래수조벽계상’과 ‘홀복승주몽일변’은 아마도 두 가지 고사일 것이다.

“형님도 참. 시를 지을 때 주석을 붙이는 법도 모르다니. 이렇게 주면 그가 시 지을 때의 심경과 그의 심오한 의도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황하와 태행은 아마 강 이름과 산 이름일 테니 이건 바꿀 수 있겠다. ‘한래수조벽계상’과 ‘홀복승주몽일변’ 이 두 구절은 설령 고사가 없다고 해도 표현하고 싶은 뜻을 이해하기에 어렵지는 않으니 문제될 게 없다.”

그래서 허신년은 ‘황하’와 ‘태행’을 바꾼 뒤 붓을 들어 제목을 달았다.

《부득행로난(賦得行路難)》

* * *

이번 춘시의 주임 시험관은 각각 동각대학사 조정방(趙庭芳), 우도어사 유홍(劉洪) 및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 전청서(錢靑書)였다.

주임 시험관 및 부 시험관들은 서생과 달리 회시가 시작할 때부터 한 발자국도 공원을 떠나지 않았다. 대문을 걸어 잠그니 날개가 자라지 않는 이상 떠날 생각을 하면 안 됐다.

시험관과 서생이 담합하여 부정행위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 시험관들은 공사 명단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원을 떠날 수 있었다.

지난 두 차시 답안지를 채점할 때에 비하면, 부 시험관들은 태도나 기분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개똥도 모르는구먼. 감히 이딴 시로 회시에서 하찮은 재주를 부리다니.”

“대나무에 빌어 사람을 비유하고 이로써 뜻을 노래하는 관점이 좋기는 하나 뜻보다 대나무를 더 노래하니 본말이 전도되었네.”

“에효, 한참 동안 봤는데 눈에 들어오는 시 한 수가 없구먼.”

“왕년에도 이러지 않았는가. 익숙하네.”

열권관(閱卷官)은 염내관(簾內官)이라고도 불렸다. 그들은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지적하며 평론했다. 언뜻 보면 분위기가 아주 격렬한 듯했으나 사실 가장 수월하고 편안했다.

시사는 중시하지 않아서 잘하면 금상첨화고,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건 다 쓰레기였다. 서생들이 지은 시는 틀에 박힌 정형화된 시이기도 어려웠다. 시험관들이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없었다.

경성에서 시에 관해 얘기하자면 절대 피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야경꾼 허칠안이었다. 그를 유림에서는 시단의 제일인자, 혹은 대봉 시단의 구원의 손길로 받들었다.

“허칠안이 만약 회시에 참가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올해 회시에서는 자손 대대로 전할 시 한 수가 탄생하겠지.”

“누가 아니라던가. 애석하게도 허칠안은 지식인이 아닐세. 훗날 사서에 원경제 시기의 시사 걸작이 전부 이자에게서 비롯됐다고 기재될 텐데 우리 지식인들의 체면은 어찌 한단 말인가.”

허칠안에 대한 지식인의 태도는 복잡했다. 그의 궐기는 축하할 만했다. 200년 사이에 이렇게 내세울 만한 시 몇 수가 있으니 후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그러면서도 그가 지식인이 아니라 무사라는 사실이 애석했다. 이 역시 후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봉 200년, 수천만의 지식인이 있지만 한 명의 무사보다도 못하다.

“모두가 허평지의 잘못이네.”

바로 이때, 한 열권관이 옮겨 쓴 답안지를 펼치고 몇 초간 자세히 본 뒤 멍해졌다. 돌처럼 굳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쉴 새 없이 무어라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이 열권관이 몇 분 동안 동작을 지속하다 돌연 일어서더니, 방 안의 모든 동료를 둘러보며 심호흡을 하고 힘차게 말했다.

“대봉 지식인이 좋은 시를 짓지 못한다고 누가 그랬나? 누가, 누가 그랬나?”

열권관들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잇달아 그를 쳐다봤다. 그가 무슨 바람이 든 건지 어리둥절했다.

시단이 쇠퇴한 지 어느덧 200년이 되었다. 당대 지식인이 시사에 능하지 않은 건 모두 사실이라 논쟁거리도 되지 않았다.

“탁!”

그 열권관이 답안지를 탁자 위에 내리쳤다. 그는 가슴을 헐떡대며 흥분해서 말했다.

“내가 감히 단정하는데 이 시가 나오면 틀림없이 천하에 명성을 떨칠 걸세. 올해 회시는 분명 사관이 기록할 게야!”

구석에서 한 열권관이 그를 쳐다보더니 궁금해하며 걸어와서는 답안지를 집어 들고 집중해서 보았다.

그 열권관은 마치 광기가 전염된 것처럼 답안지를 받쳐 들고 흥분한 나머지 온몸을 떨었다.

“좋은 시야, 좋은 시. 하하하. 대봉 지식인이 좋은 시를 짓지 못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누가 그랬어?”

이번에는 나머지 열권관이 걸작이 세상에 나왔다는 걸 깨닫고 벌떼처럼 우르르 몰려와 서로 건네면서 감상했다.

“좋은 시로군. 아주 호기로워!”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이것이야말로 지식인이 써야 할 시지.”

“일개 서생이 어찌 산전수전 다 담은 시를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누차 시험에 떨어지고 시로써 뜻을 새긴 걸지도 모르지.”

《행로난(行路難)》이란 시의 등장은 마치 촌닭 무리에 유달리 귀중한 황금 봉황이 섞여 들어간 듯했다. 방 안의 모든 열권관은 끊임없이 시를 돌려보면서 흥분 가득한 평론을 펼쳤다.

“콜록콜록!”

문 밖에서 힘차게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동각대학사가 뒷짐 지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이끌려 왔다.

방 안의 열권관들이 돌연히 입을 다물었다.

“체통 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꼴이란!”

대학사 조정방이 몇 마디 꾸짖더니 물었다.

“본관이 방금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네. 이 시가 나오면 천하에 명성을 떨친다고?”

이내 열권관이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답안지를 건넸다.

동각대학사는 우선 모든 이를 훑어보고 난 뒤에야 답안지를 받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읽었다……. 답안지를 쥔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이건 좋은 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진작시키는 좋은 시 말이다.

하지만 경험에 따라 그 감회도 달랐다.

이 시는 뜻을 노래하기도 하면서, 평탄하지 못한 인생의 한 대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발검사고심망연’부터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까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빠르게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구절은 영지(咏志)이자 압권으로 시 전체의 정취를 상당히 높은 단계로 이끌었다.

‘이자는 틀림없이 큰 인재다. 만약 경의와 책문 모두 훌륭하게 치렀다면, 본관이 반드시 그를 회원으로 점찍어야지!’

동각대학사는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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