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마지막 회시(會試)
허칠안은 몰래 낙옥형을 관찰했다.
서른 초중반 혹은 마흔 살의 성숙한 여인은 얼굴이 희고 아름다웠다. 청춘기 소녀의 활발함 그리고 젊은 부인의 고운 자태도 없지만 도도함 속에 윗사람의 위엄을 갖추었다.
허칠안은 대범하게 국사의 미모를 감상했다. 낙옥형은 자신의 매력을 가장 잘 알았다. 무릇 동성을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면, 모두 그녀의 매력에 끌리곤 했다.
그래서 허칠안은 부화뇌동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몰래 봐봤자 국사 대인의 감지를 전혀 속일 수 없기에 차라리 좀 대범하게 굴었다.
이때, 그는 금련도사가 보낸 전서를 힐끗 보았다.
[구: 내가 이미 오호를 차단했으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여러분이 좀 상의해 보게.]
‘……엇, 내가 국사의 미색을 감상하는 시간에 뭘 놓친 거지?’
허칠안은 그제야 몹시 아쉬워하며 주의력을 지서 단체 채팅방으로 돌렸다.
[구: 나는 오호를 도와줄 필요 없다고 제안하네. 그녀 스스로 강호에서 힘들게 굴러 보라지. 남강에서 경성에 도착하기까지 그녀가 아주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 믿네.]
이묘진은 금련도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문자를 보내 반박했다.
[이: 도사님, 인심은 흉악하고 강호는 복잡합니다. 오호가 비록 실력이 강하나, 그녀는 지나치게 단순하죠. 언제나 힘보다 지혜가 유용합니다.]
뒤이어 장원랑이 의견을 표했다.
[사: 오호가 비록 단순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네. 이익은 좇아도 해가 되는 건 피할 줄 알지. 무엇이 사기당할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이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인지는 더욱 잘 알지. 나는 금련도사의 제안이 좋다고 생각하네.]
‘금련 할아범이 각별하게 마음 써서 오호가 사회적 질타를 겪어보게 할 작정이구나. 그녀는 아주 빠르게 성장하겠어…….’
허칠안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제안이 아주 나이스 하다고 생각했다.
[육: 내 생각에 우리가 지금 고려할 건 장기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오늘 밤에 숙식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네.]
……이 말은 마치 채팅 끝판왕을 방불케 했다. 한참 동안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얘기하는 이가 없었다.
천지회의 이번 소회의를 총정리해 보면 이렇다.
오호: 타향에서 빈털터리로 있는데 먹고 자는 건 어떡하나? 로그인해서 기다려, 급하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모두 그저 인터넷 친구로 전국 각지에 떨어져 있는데. 이 세계에서는 오호에게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위챗과 알리페이도 없었다.
신선도 방법이 없다.
[이: 차라리 오호에게 기예를 팔아 생활하라고 하는 게 낫겠네. 손날로 큰 돌을 깨는 건 민간에서 아주 인기가 많네. 경성에 오는 길 내내 깨부수면 여비를 마련할 수 있을 걸세.]
[육: 사찰에 찾아가서 동냥하고 묵을 장소를 빌릴 수 있네. 다만 대봉에 사찰이 많지 않아 당장의 갈증을 해소하기 어려울 걸세.]
[사: 강호에서 급한 상황을 구제하면 적당하게 불로소득할 수 있을 걸세.]
초원진의 말은 호구를 좀 골라서 손을 쓰면 은자를 훔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구: 오호는 은자를 훔치지 않을 걸세. 굳이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그건 약탈이야.]
아무래도 역고부 사람이니까.
모든 이들이 막 말을 하려던 참에 갑자기 자신도 차단당해 더는 문자를 보낼 수 없고 받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허칠안은 금련도사의 전서를 받았다.
[구: 삼호, 자네 무슨 제안 있는가?]
‘말로는 오호가 사회적 질타를 받게 한다고 하지만, 금련도사는 지서 파편 소지자를 아주 신경 쓰는구나…….’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망설이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삼: 오호 예쁩니까?]
[구: 외모는 괜찮네.]
‘그럼 처리하기 쉽겠군…….’
허칠안은 문자를 보내어 말했다.
[삼: 제 제안은 어장녀가 되라는 겁니다.]
[구: 무슨 뜻인가?]
금련도사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칠안은 자신의 생각을 금련도사에게 알린 뒤 덧붙였다.
[삼: 제가 여기서 오호에게 명언 한마디를 더 전수하겠습니다. 토끼가 이렇게 귀여운데 왜 토끼를 먹으려 하나요? 강호의 협객들은 이런 수법에 가장 능합니다. 이 수를 익히면 길에서 안정적으로 먹고 잘 수 있지요.]
금련도사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금련도사는 통신이 재개된 후 천지회 구성원들의 생각을 오호에게 알렸고, 그녀가 자신을 잘 보호하여 순조로운 여정이 될 수 있길 기원했다.
금련도사는 허칠안의 제안을 무시하기로 택했다. 그 방법은 비록 비열해도 사실 유용했다. 다만 허칠안이라면 모를까 오호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스킬을 쓰지 못할 게 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원진이 돌아왔다. 그는 먼저 조용하게 앉은 낙옥형에게 읍을 올린 뒤 돌아서서 말했다.
“허 형, 자네 차례네.”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가서 변소를 갔다. 그가 변소 밖에서 한 바퀴 어슬렁거린 뒤 돌아오니 꼬마 도사가 갑옷을 입은 중년의 장수를 데리고 분주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치 무슨 일이 생긴 듯 중년 장수는 조급한 표정이었다.
꼬마 도사는 정실 밖에 멈춰서 우렁차게 말했다.
“도수, 회왕부(淮王府) 시위장이 뵙기를 청합니다.”
‘회왕부라…… 진북왕 저택?!’
허칠안은 듣자마자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갑옷을 입은 중년 장수를 훑어보았다.
혈기가 왕성한 이자는 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수련 경지가 높지만, 이 순간만큼은 미간 사이가 초조함과 불안함, 조급함으로 가득했다.
진북왕은 친왕으로, 회왕은 그의 정식 봉호다. 진북왕은 찬양하는 호칭이다.
“무슨 일인가!”
정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듣기 좋은 낙옥형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사, 왕비께서 보이지 않습니다. 소직이 황성을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국사께서 왕비와의 관계가 두터우시니 소직이 특별히 물어보러 왔습니다.”
중년의 장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진북왕의 왕비가 그 대봉 제일의 미인인가?’
허칠안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는 많은 미인을 만나 봤다. 더욱이 황후처럼 하드코어에 강하지만, 국사같은 면도 있는 유일무이한 여인도 만나 봤다. 그래서 그는 지금 왕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점점 더 기대됐다.
그녀는 어떤 덕과 어떤 재주를 갖추었길래 대봉 제일의 미인이라 불릴까.
“왕비께서 영보관에 계시지 않으니 장군은 다른 곳에 가서 찾게.”
낙옥형이 대답했다.
중년의 시위장은 걱정이 태산인 모습을 하고 떠났다.
‘왕비가 실종됐다고?’
허칠안은 시위장의 떠나는 뒷모습을 눈으로 뒤쫓았다.
* * *
허칠안은 영보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관아로 돌아와 동라들을 데리고 계속해서 거리를 순찰했다. 은라 하나에 동라 둘은 투지를 불사지르며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두 무리의 강호 떠돌이들은 이미 은표를 내고 ‘자유’를 얻었다. 허칠안은 지금 은표 육백 냥을 품고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는 거리에서 강호 떠돌이 차림새의 외지 인사를 보면 마치 호구를 포착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반나절 동안 구타 사건을 한 건도 만나지 못했다.
그가 퇴근 후 저택으로 돌아와 저녁에 밥을 먹을 때 숙부가 식탁에서 오늘의 재미있는 소식을 전했다.
“오늘 진북왕의 왕비가 가출했대. 경성 오위가 전부 출동하고 사천감의 백의도 수색에 협조하여 오후 내내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다지.”
숙모가 젓가락을 깨물며 캐물었다.
“그 뒤로는요?”
“그 후에 그녀 스스로 돌아갔다고 하오. 그래서 가출이라고 하는 거잖소. 왕부의 그 시위들은 왕비가 누군가한테 납치된 줄 알고 급박해했지.”
숙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여인보고 제멋대로라고 하는 거요! 몇천 명이 온 성을 수색했으니.”
숙모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비웃었다.
“몇천 명의 병사가 여인 하나 찾지 못하다니. 조정에서 당신들을 키우느니 차라리 개 몇천 마리를 키우는 게 낫겠네요.”
허칠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했다.
“숙모, 한 방 아주 제대로 먹이셨는데요!”
날카로운 얼굴의 숙모는 조카의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또 그에게 눈을 희번덕거렸다.
허신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맹점을 발견하고 말했다.
“회왕은 친왕이긴 하지만, 이치대로라면 왕비가 경성 오위를 떠들썩하게 하는 건 불가능해요.”
수천 명이 온성을 수색했다고 하지만, 종실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황궁에 몇몇 전하만이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허평지가 대답했다.
“이 문제는 우리도 이상하게 여겼단다. 천호(千戶)에게 물었는데 천호도 모른다고 하면서 폐하의 명령일 뿐이라고 하더구나.”
‘원경제가 제부에게 아주 신경을 많이 쓰네. 설마 옛정이 남았나?’
허칠안은 이 추측을 즉시 부정했다. 왕비가 원경제의 비빈이던 그해, 그녀는 단지 입궁을 좀 늦게 했을 뿐이었다. 그때 원경제는 이미 금욕하고 도를 닦던 중이었다.
그 후에 그녀는 진북왕에게 하사되어 회왕의 왕비가 됐더랬다.
‘사실 이건 어쩌면 또 다른 내막이 있을 수도 있어…….’
허칠안은 이런 하찮은 일들에 골머리를 앓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신년에게 말했다.
“내일이 바로 마지막 시험이지?”
허신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보렴. 큰형이 맹세하건대 시사의 길은 구주 오천 년 역사를 통틀어 내 적수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단다.”
허칠안이 호기롭게 말했다.
* * *
이튿날 희미하게 먼동이 트는 새벽, 허신년은 부친과 큰형의 동반하에 초롱을 들고 공원(貢院)에 왔다.
그는 또 한 번 대머리와 청삼 검객을 보았다. 이번에 그는 아주 침착하게 그 둘을 바보라고 여기며 심지어 냉랭한 미소로 답했다.
“삼호의 웃음이 참 오만하군요.”
초원진이 말했다.
“회시 마지막 차니 아마 십중팔구 급제하겠다는 생각인가 보군요.”
항원이 초원진에게 설명했다.
“저는 도발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항원이 허허허 웃더니 말했다.
“가시죠. 곧 합격자 발표고, 그 후에는 사호와 이묘진이 맞대결할 순서지 않습니까.”
초원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항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대머리를 보더니 물었다.
“대사, 대사 지금 전투력은 도대체 어떤 수준이신지요?”
항원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빈승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초원진은 ‘아’하고 탄식했다. 그와 육호는 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둘 다 정상적인 품계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만약 무사 체계로 보자면 그는 단지 7품 연신경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그 이상이다.
그리고 항원 대사는 8품 무승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 * *
한편 허신년은 몸수색을 거친 뒤, 사방이 폐쇄된 작은 방으로 들어가 마지막 회시를 기다렸다.
시사!
* * *
춘시 고사장은 연립된 컴컴한 방으로 ‘호사(號舍)’라고 불렸다. 서생들이 들어온 후, 감독을 책임지는 나팔수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시험지를 건네주는 작은 창만 남겨 두었다.
꼬박 하루 동안, 서생들이 먹고 마시고 싸는 문제는 모두 컴컴한 방에서 이뤄졌다.
콩알 같은 촛불이 비추어 작은 방 안이 어슴푸레하게 물들었다. 허신년은 탁자에 앉아 벼루에 맑은 물을 붓고 천천히 갈았다.
시험을 치르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러 일을 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예로부터 과거는 경의를 중시하고 시사를 경시했다. 더욱이 대봉 시단이 쇠퇴한 지 이미 오래라 이 마지막 회시는 대대수의 서생들에게 막간극일 뿐이었다.
막 호사에 들어갔을 때 서로 잘 아는 서생들끼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전에 있던 두 차시 때 마치 무장하고 출전하는 듯 진지한 표정에 긴장되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홀가분할 수 있어도, 허신년은 자신이 경솔하게 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는 운록서원의 서생이다. 조당 제공들이 운록서원 서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진사에 급제한 뒤 두메산골로 발령되거나 꾸물거리면서 벼슬을 주지 않아 보류될 것이다.
허신년은 자신만의 포부가 있다. 두메산골로 배치되고 싶지도, 경성에 남아 동결되고 싶지도 않았다.
“갈 길이 구만리군…….”
허신년은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