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오호의 전서
“그해는 마침 그들 종족의 수컷이 멸종한 해였네. 종족이 다시 번성하기 위해 암컷 일부분이 수컷으로 전화(轉化)하여 종족 번성이라는 중책을 용감하게 떠맡았지. 종족의 여왕이 앞장서서 성별을 전화했네. 이는 본래 그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의무지. 여왕이 국왕이 된 후 후궁을 널리 받아들여 그녀의 딸들을 모두 자신의 후궁으로 불러들였네.”
‘……내 머릿속에 가득한 비아냥을 어떻게 뱉어 내야 할지 모르겠네. 어떡하지?!’
허칠안은 개탄하며 말했다.
“만물을 창조하는 신비함에 말문이 막히는군요.”
또 일각을 이야기 나누다가 초원진이 웃으며 말했다.
“내 얘기만 듣지 말게. 허 형의 명성은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자네의 찬란한 사적은 틀림없이 주루와 찻집에서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겠지. 내게 그 사건들에 대해 좀 얘기해 주게.”
“그건 말하자면 긴데…….”
허칠안은 단정하게 앉아서 말했다.
“그럼 제가 세은 사건부터 얘기하겠습니다. 당시 숙부가 세은을 도난당한 사건에 휘말려 본인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남을 해쳤습니다. 제가 이 일을 알게 된 후 숙부에게 말했죠. ‘숙부, 당황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곳곳에 허점이 있습니다. 조카의 눈에는 얕은 수작에 불과하지만요. 일주향의 시간이면 사건을 해결할…….’ 하지만 저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는 확실히 젊고 경솔하여 천하의 영웅을 얕잡아 봤습니다.”
“엇? 무슨 말인가?”
초원진은 흥미가 생겼다.
“저는 이 주 만에 세은 사건을 풀었답니다.”
* * *
허칠안은 세은 사건부터 시작해서 복비 사건까지 얘기했고, 초원진은 찻잔을 쥔 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아주 집중해서 들었다.
그는 의심이 가는 부분을 듣고 이해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허칠안이 그 속의 내막을 얘기하면, 그는 다시 마음이 뻥 뚫리면서 미간을 펴고 미소를 지었다.
“허 형은 사건 해결의 신이구먼. 존경스럽네, 존경스러워.”
초원진은 마음이 동요했다. 그는 허 대인의 사촌 동생 삼호를 떠올렸다. 예전에 그는 삼호와 아성전의 청기 충천이 관련되어 있다고 짐작했다. 금련도사는 마침 삼호의 특수함이 마음에 들어서 지서 파편을 그에게 주었다 여겼다.
그는 그 후 삼호의 사촌 형 허칠안에 관해 깨달았고, 이자 역시 훌륭한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련도사가 표면적으로는 지서 파편을 사촌 동생에게 주었지만, 사실은 형제를 통째로 섭렵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이다.
그는 오늘 허칠안의 능력과 타고난 자질을 직접 겪으니 점점 더 이 추측에 확신이 생겼다.
‘금련도사는 역시 노련하고 용의주도하단 말이야.’
바로 이때, 초원진의 가슴에서 갑자기 진동이 전해졌다. 그가 파편 소지자가 문자를 보냈음을 알고 즉시 말했다.
“나 뒷간에 다녀오겠네.”
그가 말을 마치자 맞은편에 앉은 허칠안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저 뒷간에 다녀오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고,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초 형 먼저 다녀오십시오.”
초원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서서 정실을 나섰다. 그는 아마 천지회 구성원이 보낸 문자 때문에 단시간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허칠안이 먼저 헛간에 갔다가 금세 돌아와서 마주치면 좋을 게 없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허칠안은 옥석경을 꺼내 전서를 살펴보았다.
[오: 나 은자 사기당했네. 어떡하지?]
‘이, 이건 정말이지 예상한 대로군. 당연한 일이야…….’
허칠안은 입꼬리를 떨며 치켜올렸다가 자신이 죽은 사람의 신분이라는 걸 떠올리곤 문자를 보내 묻지 않았다.
몇 초 기다리니 초원진의 대답이 보였다.
[사: 어떻게 된 일인가? 은자를 어떻게 사기당하지?]
[육: 오호, 자네 지금 어디에 있는가. 경성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은자를 얼마나 사기 당했나? 만약 밥 먹을 곳이 없다면 근처에 사찰이 있나 살펴보게. 그곳에서 동냥하게.]
‘풉…….’
허칠안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여태까지는 중만 동냥했는데 오호가 사찰에 가서 동냥한다면 승려들은 무슨 심정일까?’
[이: 은자를 사기당한 건 그렇다 치고, 사람이 사기당하지 않았으면 된 거지……. 자네 부족도 참. 꼬마 아가씨가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대봉에 간다는데 마음이 놓인다고 하는가? 동행할 웃어른을 파견할 줄 모르는가?]
[일: 대봉 율법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네.]
[구: 아이고, 오호. 만약 남강에서 멀지 않다면 돌아가게.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럽네. 강호는 복잡해.]
‘모두 오호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군…….’
허칠안은 손가락으로 거울을 몇 번 툭툭 치더니 다시 오므렸다.
‘참 괴롭다. 한마디 참견하고 싶어 죽겠어.’
* * *
리나는 천지회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 가져 주는 걸 보자 감동에 겨워 자신이 사기당한 일을 감칠맛 나게 이야기했다.
[오: 여러분의 관심에 고맙네. 나는 옹주(雍州)에 있네. 오늘 아침에 늙은 도사를 마주쳤는데 내 골격이 남다르다면서 보기 드문 천재라고 말했네. 나는 그가 진정한 고수라고 생각하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중생 중에서 나의 특수함을 발견했겠는가…….]
‘아니, 사기꾼 오프닝 멘트일 뿐이잖아. 너 정말 바보구나. 아니면 스스로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허칠안은 전서로 빈정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이: 그러고 나서 자네는 무방비 상태로 그에게 사기당한 건가?]
이묘진은 다소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녀가 이런 불공평한 일을 당했는데 자신은 달려갈 수도 없고, 무능력하게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다. 이런 기분은 너무 재수 없었다. 그녀는 화가 난 나머지 책상을 쾅쾅 쳤다.
리나는 얼른 문자를 보내 변명했다.
[오: 나는 물론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네.]
‘네가 멍청하지 않으면 누가 멍청하니?’
천지회 모든 이들이 속으로 비아냥댔다.
[오: 이 도사는 정말 능력이 있네. 그는 내가 천재라는 걸 발견했을 뿐 아니라 남강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챘네. 내가 남강을 떠날 때 대봉 옷으로 갈아입어서 완전히 대봉 여인으로 위장했는데도 말이야.]
[사: 사투리는? 사투리도 바꿨는가?]
[오: 무슨 사투리?]
지서 단체 채팅방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항원 대사가 문자를 보내 말했다.
[육: 괜찮네. 오호 계속해서 말하게.]
[오: 늙은 도사가 말하길 밖에 나가면 노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네. 그가 내게 어디 갈 거냐고 물어서 내가 그에게 경성에 갈 거라고 말했네. 늙은 도사는 또 내게 은자를 얼마나 갖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육십 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 그는 여기서 경성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니 육십 냥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네.]
사람들은 여기까지 듣자 사기꾼의 농간이 시작됐다는 걸 깨달았다.
[오: 늙은 도사가 자기에게 보물단지가 하나 있는데 은자를 더 많이 불릴 수 있다고 말했네. 일 문(文)을 넣으면 격일마다 대야 한가득 동전을 수확할 수 있고, 일 냥(兩)을 넣으면 격일마다 은자 한 대야씩이라고 했지.]
[사: 믿었나?]
[오: 처음에는 믿지 않았네. 하지만 늙은 도사가 내 앞에서 한 차례 시범을 보였네. 그가 내게 부스러기 은전 한 알을 넣으라고 했네. 그리고 헝겊으로 보물단지를 덮었지. 한 시진 후 역시나 부스러기 은전이 여러 알 더 생겼네. 늙은 도사가 그의 법보는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거라고 말하며 은자 육십 냥에 내게 싸게 팔았네……. 나는 나한테 남은 돈 두 문(文)을 보물단지에 넣었는데 이미 두 시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은자로 바뀌어 나오지 않는군.]
‘오호의 IQ는 정말이지 감동적이다…….’
허칠안은 웃기 시작했다. 과연 난폭한 계집애 손에서 은자를 낚다니. 훔치고 빼앗는 건 소용없다. 속이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다.
[이: 오호, 법보의 가치가 귀중하나 바라거나 강요해서는 얻을 수 없네. 왜 아무런 까닭 없이 누군가가 자네에게 주겠는가. 자네는 이 교훈을 기억해야 하네.]
[오: 하지만 금련도사가 내게 지서 파편을 보냈잖나. 그가 애당초 법보는 인연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고 말했네.]
[이: 다 도사 탓이군.]
“…….”
“하하하하하.”
허칠안은 돼지 울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금련이 천지회를 설립한 초심은 서로 비웃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서로 돕기 위함이네.”
갑자기 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숙한 여성의 매력이 어려 있었다.
순간 돼지 울음소리가 막혔다. 허칠안은 다소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낙옥형을 바라보았고, 황급히 일어서서 예를 갖췄다.
“국사.”
낙옥형은 뒤에 태극도(太極圖)가 그려진 화려한 우의(羽衣)를 입고 있었다. 오옥도(烏玉道) 비녀로 묶은 새까맣고 아름다운 머리카락, 마치 자옥(瓷玉)처럼 희고 고운 얼굴, 그림처럼 청초한 이목구비는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미간의 주사(朱砂)가 신선의 기운을 더했다.
그녀의 시선이 지서 파편으로 향했다. 그녀가 눈동자에 웃음기를 숨기고 태연하게 말했다.
“오호는 남강 고족 사람인가?”
‘당신 이것도 알아? 내 뒤에서 얼마나 지켜본 거야…….’
허칠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역고부인 듯합니다.”
낙옥형은 이 말을 듣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평가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괴력이지.”
허칠안은 조용히 국사의 앵두같이 빨간 입술을 훑어보곤 말했다.
“무사보다 강합니까?”
마치 백옥을 조각한 듯한 미인 낙옥형은 도도한 자태로 자신의 부들방석으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힘만 놓고 보자면 무사와 역고부의 고수를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네. 고족 7개 부락의 수법은 지나치게 단일하지. 어떠한 부락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7개 부락이 손을 잡으면 설사 불문일지라도 두려워할 걸세.”
‘듣자 하니 내 《천지일도참》과 같잖아. <덕지체미로(*德智體美勞: 중국 사회의 교육 목표)>로 전면적인 발전을 하는 게 아니라 모두 극단적인 길을 가는군…….’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미녀 국사는 오늘 극히 뛰어난 매력을 뽐내다 이어서 얘기했다.
“방금 초원진이 자네에게 상고 시대 신마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네. 고신은 확실히 세상에 존재하는 신마네.”
“정말 신마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요족과 인족을 제외하고 구주에 현존하는 기이한 짐승은 모두 신마의 후예네. 자네 운주에 간 적 있지 않은가? 백제성 전설 속의 그 기이한 짐승이 바로 신마의 후예지. 남강의 교룡, 황성의 영룡……. 그것들 모두 신마의 후예네.”
‘신마가 마치 공룡처럼 들리는데…….’
허칠안은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하며 물었다.
“신마는 어떻게 멸종된 겁니까?”
‘화산이 폭발했다거나 운석에 부딪힌 건 아니겠지.’
낙옥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반쯤 감은 채 조용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