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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08화 (308/712)

308화. 부잣집 공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났다.

허신년은 희부옇게 먼동이 트자 가족과 함께 공원(貢院)에 도착했다.

“유가 9품에게는 한 번 본 건 잊지 않는 능력이 있어요. 이번 시험은 경의니 분명 신년의 부담이 크지 않을 거예요.”

허칠안이 그의 어깨를 치며 격려했다.

허평지와 숙모는 미소를 띠었다.

신년 자신의 말에 의하면 첫째 날 책문 시험에서는 실력을 잘 발휘했다고 한다. 그는 본래 책문에 소질이 있었다. 두 번째 시험인 경의도 큰 문제없었다.

숙부와 숙모 눈에 신년이 공사(貢士)가 되는 건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다.

허신년은 아래턱을 높이 치켜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천하의 서생들 중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되니 방심해서는 안 돼요. 저보다 더 강한 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있을 수도 있다니…….’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나보다도 허세가 더 심하구나.’

* * *

그는 가족들과 작별을 고하고 공원(貢院) 입구로 걸어갔다. 줄을 서서 시험장에 들어가려는데 바로 이때 귓가에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미타불.”

허신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길가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체구가 크고 훤칠한 승려였고 한 사람은 등에 검을 멘 청삼 검객이었다.

승려와 검객은 그가 쳐다보는 걸 보고는 심오한 미소를 지었다.

허신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급한 발걸음으로 부친과 큰형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마음이 좀 안정됐다.

“아버지, 형님. 누군가 저한테 나쁜 짓을 꾸미려고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요.”

허신년이 나지막이 말했다.

허평지는 이 말을 들은 즉시 눈썹을 치켜올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누구냐?”

그는 성을 순찰하는 어도위였다. 최근에 강호 협객이 대규모로 경성에 몰려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치안으로 놓고 보자면, 아주 불안정한 요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도둑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강호의 부랑자들이 경성에서 은자를 다 써 버리고 돈을 벌 직업도 없으니 첫 번째로 선택하는 게 바로 도둑질과 강도질이었다.

“승려 한 사람과 검객 한 사람입니다.”

허신년이 고개를 돌려 뒤쪽의 어느 곳을 가리켰다.

허칠안은 잠시 보더니 말했다.

“어디에 있다는 거야?”

“???”

허신년은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저기에 있었는데요.”

“됐어. 네가 부담이 없다고 말하더니, 이제는 환각이 생겼구나.”

허칠안은 남동생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신년아, 이상한 행동하는 모르는 자들은 절대 상대하지 말아라.”

말을 하면서 허신년의 등 뒤를 손으로 받쳤다.

허신년은 자신의 등 뒤를 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형님, 이건 무슨 뜻이죠?”

“아무것도 아니다. 너 대신 짊어져 줄게.”

* * *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 초봄.

돛대 세 개가 세워진 선박 한 채가 험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갔다. 풍력이 돛 천을 받쳐 팽팽하게 부풀었다.

송정풍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한 손으로 칼을 쥐고 갑판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경성 방향을 멀리 내다보았다.

한 달 남짓이라는 시간 동안 전쟁의 불길은 그의 각진 얼굴을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고 선혈이 눈빛을 예리하게 씻어 내 그는 전체적인 체력․기력․정신력이 크게 변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송정풍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흘 있으면 경성에 도착할 걸세.”

주광효가 ‘응’하고 대답하더니 송정풍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북쪽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기질이 더 침착하고 중후해진 걸 제외하면 변화가 크지 않았다.

송정풍은 실속 없는 말만 하며 능글맞게만 굴더니 이제 환골탈태했다.

“내가 운주에서 세운 전공(戰功)이면 연신경의 관상도와 바꿀 만큼 충분해…….”

송정풍이 웃었다.

“나는 연신경으로 승직할 계획이네.”

만약 예전 같았으면 주광효는 의아해할 것이다. 그는 동료로 여러 해 동안 지내면서 송정풍에게 성취욕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송정풍은 동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해했다. 낮에는 거리를 순찰하고 밤에는 교방사를 거닐며 아주 평온한 나날을 보냈더랬다.

운주에서의 전공(戰功)을 만약 은자로 바꾼다면 그가 교방사에서 1년 동안 살기에 충분했다.

“음.”

주광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식사를 마치고 바람을 쐬러 나온 동라들이 갑판으로 왔다. 희희낙락한 그들의 눈빛에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과 기대가 서려 있었다.

“정풍, 경성에 돌아가면 함께 교방사에 술 마시러 가게.”

서로 잘 아는 동라 하나가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송정풍은 듣지 못한 듯 말없이 북쪽을 바라봤다.

그 동라는 재미없다는 얼굴로 돌아갔다.

송정풍이 탁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타고난 자질이 썩 괜찮은 듯하네. 연기 전봉에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지 않았는가. 올해 말에 연신경으로 승직하는 건 어렵지 않겠어. 그동안 나는 줄곧 생각했네. 만약 내가 그렇게 게으르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그렇게 쓸모없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운주에 올 때 이미 연신경이었다면…….”

송정풍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더는 교방사에 가지 않을 걸세. 다시는 가지 않을 거야.”

주광효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 *

춘시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처음에 허평지와 허칠안은 허신년의 상태에 매우 관심을 보이며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허칠안은 대입 시험을 보던 해에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해 준 대로 지금 허신년에게 똑같이 해 주었다.

하지만 이에 따라 치안이 혼란스러워지자, 어도위 백호의 신분인 허평지와 야경꾼 허칠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강호 사람들은 용감하고 독하게 싸우는 걸 좋아했다. 의협심을 발휘하여 의로운 일을 하는 사내대장부도 있지만, 밑바닥을 떠도는 놈들이 훨씬 많았다. 올바른 사람 중에 누가 강호를 떠돌겠는가.

그들은 수중에 돈이 없어지자 평판이 나쁜 부호를 몇 명 골라 손을 대고, 삶을 이어나가기 힘든 빈민들을 구제했다. 이 정도면 의적이었다.

이묘진처럼 진정으로 천하를 구제하고 정의를 바로잡는 여협객은 실로 소수였다.

허칠안 혼자서만 불과 사오일 만에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외지 인사를 여러 명 붙잡았다. 숙부 말에 의하면 외성은 밤마다 도둑을 잡는데 내성은 태평하다고 했다.

내성은 야간 통행 금지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 밤에 나다니면 야간에 순찰하는 경성 오위가 활을 쏴서 경고했다. 이때 만약 도망을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될 터였다.

그리고 만약 지붕 위를 걷는 수상한 인물이 있으면, 활을 쏠 필요 없이 먼저 목을 베고 사후에 보고할 권리가 주어졌다.

시비를 걸어 말썽을 일으키는 자를 맞닥뜨리면 보통은 감옥으로 압송한 뒤, 보석을 도와줄 동반자를 기다렸다. 이렇게 죽을죄가 아닌 사소한 일이 가장 성가셨다.

이날, 허칠안은 동라 둘을 데리고 거리를 순찰하다가 기루를 지나쳤는데 갑자기 ‘쨍그랑’하고 기와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강호의 떠돌이 둘이 지붕에서 대판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둘러싼 채 삿대질하면서 약을 올리거나 갈채를 보냈다.

“거지 같은 놈들. 무기를 몰수했는데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니.”

허칠안이 욕설을 퍼부으며 곁에 있는 동라를 지휘했다.

“가서 이 몸에게 끌고 오게. 전부 관아로 데려갈 것이야.”

이곳은 일반 백성이 둘러싸고 있어 징을 울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법기의 음파는 주변의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동라 둘이 몸을 날려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내성에서는 싸움질하면서 말썽을 일으킬 수 없다. 본관을 따라 관아에 다녀와야겠구나.”

상대방에게 반항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말이었다. 징을 울려 경고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강호의 떠돌이 둘이 미쳐 날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사는 홧김에 너나 할 것 없이 관아 사람들도 똑같이 때렸다.

그중에 한 동라가 음침하게 급소를 걷어차는 다리를 간신히 피한 뒤 버럭 화를 내면서 ‘쨍’하는 소리와 함께 패도를 뽑아 기기를 운행하여 휘둘렀다.

동라는 가장 낮은 등급의 야경꾼이지만, 연기경의 수련 경지는 강호에서 명수라고 할 수 있었다. 평범한 강호 떠돌이는 적수가 되지 않았다.

팅!

아래에서 기기가 튕겨 올라 동라의 칼날을 명중시켜 칼날이 빗나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호의 떠돌이는 본능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동라의 가슴을 한 발로 밀쳤다. 한 발 맞은 동라는 지붕에서 떨어졌으나 아름답게 뒤로 재주넘어서 안전하게 착지했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엄지손가락으로 흑금장도를 튕겼다.

그의 살기를 눈치챈 듯 아래층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멈추시오!”

그건 화려한 옷차림의 외지 인사 두 무리였다. 젊은 부잣집 공자와 고운 외모가 돋보이는 여협객이었다. 또한, 그들 뒤에는 중년인지 노년인지 모를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

강호 떠돌이 둘은 주인들이 멈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멈췄다.

허칠안은 한 손에 칼을 쥐고 인정머리 없는 발걸음을 내디뎌 걸어갔다.

“대인, 소생은 형주(荊州) 육씨 가문의 육순(陸淳)입니다.”

준수한 외모에 화려한 흰 옷을 입은 젊은이가 공수하며 말했다.

허칠안이 오는 걸 보고 미인 몇몇의 눈이 반짝였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무리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들은?”

그쪽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온화한 기질의 부잣집 공자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 곁에 있던 노인이 황급히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형주 조(趙)씨 가문입니다.”

육씨 가문과 조씨 가문은 형주에서 유명한 명문가로 가족 중에는 벼슬길에 오른 집안의 기둥도 있고, 강호에서 떠도는 고수도 있어 관리 사회와 강호 모두에 영향력을 미쳤다.

통속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들은 지방 권세가다. 물론, 육씨 가문과 조씨 가문처럼 규모가 큰 명문은 이미 ‘권세가’의 범위에서 벗어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집안은 형주에서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관리 사회에서는 서로 뒤통수를 때리고, 강호에서는 칼과 검을 들고 필사적으로 싸워 그 원한이 이미 오래되었다.

그들은 이번에 경성에 싸움 구경하러 왔다가 마침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쌍방이 몇 마디 비아냥거리다가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자제하고 지붕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고수 둘을 파견했을 뿐이었다.

비록 그들은 길거리에서 소란을 피우며 율법을 어겼지만, 무고한 백성을 다치게 하지 않았고 또 아주 큰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으니 두 집안의 세력으로는 충분히 공정하게 수습할 능력이 있었다.

“방금 누가 기기를 튕긴 것인가?”

허칠안이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온화한 기질의 부잣집 공자가 아래턱을 높이 치켜올렸다.

“나일세.”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두 무리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알겠네. 그대들 모두 본관을 따라 야경꾼 관아에 다녀와야겠네.”

외모가 준수하면서도 비범한 육씨 집안 부잣집 공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라고요?”

온화한 기질의 부잣집 공자가 냉소를 지었다.

“우리가 거리에서 싸운 것도 아니니 저 두 사람만 데리고 관아로 돌아가면 되네.”

“가라면 갈 것이지, 뭔 말이 이리 많은 게냐! 믿거나 말거나 이 몸이 너를 베어 버리겠다!”

허칠안이 냅다 호통 쳤다.

야경꾼을 습격했다는 죄명만으로도 그들을 한 방 먹이기에 충분했다. 이 외지 사람들은 너무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무슨 근거로? 천자의 발밑에서는 야경꾼도 법을 지켜야 하네.”

온화한 기질의 부잣집 공자는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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