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항원 대사
경기장의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눈을 가렸을 뿐만 아니라 돌아서 있었다. 그들은 여태껏 이런 놀이법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러면 어떻게 하나요.”
명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맞출 수 있겠어요!”
다른 기녀가 깔깔깔 교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두 대인 중에서 이기시는 분을 명연이 오늘 밤 시중든답니다.”
명연은 얼굴이 빨개져 ‘쳇’하더니 은근슬쩍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습관적으로 허풍을 떨며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웃었다.
“안 되오, 안 되오. 1등인데 너무 적소. 나는 낭자들 모두를 원하오.”
기녀들은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헤죽거리며 대답했다.
“허 대인께서 내일 담을 짚고 관아에 점호하러 갈까 봐 두렵지도 않으신가 봐요.”
웃음소리가 ‘푸하하’하고 퍼지더니 기녀들이 깔깔깔 웃었다.
‘삼호가 내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한 걸로 보아 여태껏 교방사에 가지 않은 바른생활 사나이인데 그의 큰형은 정반대구먼.’
초원진은 속으로 개탄했다. 허칠안은 아니나 다를까 방탕한 자였다. 물 만난 고기인 양 교방사에서 어떤 지식인보다도 거리낌이 없었다.
당대 사대부들에게 교방사와 기루는 주로 접대하는 장소다. 동료, 동창과 술을 마시며 응대하는 곳이다. 주루는 평민들이나 가는 장소로 진짜 신분이 있는 사람은 우선 교방사를 선택한다.
술자리에서 사회자를 맡는 재주가 뛰어난 기녀가 있고, 술을 따르며 시중드는 예쁘고 얌전한 여종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체면치레다.
하지만 사대부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체면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허칠안은 달랐다.
“모란꽃 밑에서 목숨 걸고 장난질하는 것도 풍류지!”
허칠안은 부향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명언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남몰래 찬탄했다. 이자의 천부적인 재능은 어찌 이렇게 무서울까! 입만 열면 좋은 글귀, 좋은 시가 나왔다.
이자가 만약 글공부를 했다면 반드시 이 시대의 대유가 되었을 것이다.
‘사람 구실 못하는 허평지.’
퉁!
화살 하나가 정확하게 주전자에 들어가면서 뭉게뭉게 피어나는 사람들의 생각을 끊고 주의를 돌렸다.
한 자루를 던진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초 형, 시작입니다.”
“좋네!”
초원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말을 하는 동시에 손에 잡히는 대로 화살 하나를 뒤로 던져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와…….”
명연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퉁퉁퉁…….
허칠안과 초원진이 한 사람씩 화살을 던질 때마다 명중했고, 명중할 때마다 기녀들은 견문이 넓어지는 느낌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투호는 놀이일 뿐이지만 두 사람에 의해 다양한 놀이법이 생겼다.
한 자루씩 던지던 허칠안이 열 번째 화살을 던졌을 때 초원진은 이미 열세 번째 화살을 던져서 손에는 일곱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허칠안 손에 다섯 자루밖에 남지 않았을 때 초원진의 손에는 두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승부가 이미 갈린 듯했다.
부향과 명연 등 허칠안을 지지하던 기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초원진을 지지하던 기녀들은 미리 손뼉을 치며 원경 27년의 장원랑에게 박수를 보냈다.
주위에서 방관하던 관원들은 진작에 이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오히려 가장 옅은 미소를 지었다.
초원진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아직 서생이던 해, 그는 이미 동창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으로 재주와 외모가 뭇사람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그가 이후에 글을 버리고 도를 닦는다고 하여 모두가 그를 좋게 보지 않았고, 가장 친한 벗은 화를 내며 그와 절교하였다.
허나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하늘을 찌를 듯 훌륭하게 금의환향하여 금라 장개태에게 도전했다. 비록 패했지만, 영광스럽게도 위연에게 경성 제일의 검객이라고 칭송받았다.
이런 당대 최고의 천재이니 그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사건을 수사할 줄 아는 허칠안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때 초원진은 이미 끝에서 두 번째 화살을 던져 정확하게 주전자에 넣었다.
부향은 입술을 오므리고 주전자에서 시선을 거두어 허칠안을 한번 쳐다봤다. 그때 그녀는 놀랍게도 이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표정을 잘 알았다. 허칠안은 득의양양할 때마다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곤 했다.
‘자신 있는 건가?!’
부향은 이런 생각이 막 들자마자 허무맹랑한 광경을 보았다. 허칠안이 손에 든 화살 다섯 개를 동시에 던졌고 화살들이 공중에서 가지런한 호선을 그리더니 완벽하게 주전자로 들어갔다.
다섯 개의 화살이 들어갔지만, 소리는 한 번뿐이었다. 퉁!
대청 안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것도 된다고?’
“이야……!”
명연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흥분하여 허칠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허 대인, 사랑해 죽겠어요!”
부향이 연신 눈살을 찌푸렸다.
“훌륭한 솜씨입니다.”
한 어사가 찬탄했다.
“알고 보니 투호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군요. 덕분에 견문이 넓어졌습니다.”
다른 관원이 웃으며 맞장구쳤다.
허칠안을 보는 기녀들의 눈빛은 순간 숭배로 가득 찼다.
초원진이 명주 수건을 벗고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네, 대단해.”
다도회는 해시 초까지 이어진 뒤에야 끝났다. 기녀들은 연신 하품을 해대며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나긋나긋한 몸짓에 치맛자락이 나풀거렸다.
미인들은 비록 좀 피곤했지만 아직 흥이 다하지 않았다. 허칠안과 경성 제일의 검객이 있는 연회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애석하게도 이렇게 양질의 손님을 매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연은 몰래 허칠안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그가 자신의 청지원으로 오게끔 유인했지만, 부향에게 애매하게 몇 마디 듣고 쫓겨났다.
초원진은 교방사에서 묵지 않고 작별 인사한 뒤 떠났다. 허칠안은 직접 그를 배웅했다.
‘사호는 사람이 참 담박하고 소탈하다. 게다가 지식인의 풍격도 지니고 있고 말이야…….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기회를 전혀 찾을 수 없겠어.’
허칠안은 청삼 검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매우 아쉬워했다.
하지만 지식인은 지식인만의 약점이 있다. 예를 들면 시사처럼.
그는 우선 하련(下聯)을 숨겼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다시 꺼낼 예정이었다.
* * *
여종들은 남아서 뒷정리했고 부향은 허칠안의 팔짱을 낀 채 침실로 들어갔다. 허칠안이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다 귓바퀴를 움직이자 종리의 음성이 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병풍을 보니 촛불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그림자가 병풍 위에 드리워졌다. 그녀는 윗옷과 치마를 하나씩 벗고 가볍고 얇은 망사 옷으로 갈아입었다.
목욕할 때 허칠안이 갑자기 말했다.
“며칠 뒤에 자네를 속신하겠네.”
부향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녀의 우수에 찬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치더니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막 자작이 되셨는데 지금 첩을 들이시면 명성에 좋지 않아요.”
“그렇긴 해.”
허칠안은 매끈한 허리를 감싸 안고 웃으며 말했다.
목욕을 마친 그와 부향이 침상에서 뒹굴며 애절한 몸부림을 치던 중 갑자기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감각이 전해졌다.
침상이 무너졌다.
부향은 깜짝 놀라 허칠안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은 모두 식겁했다.
‘……종리, 이 몸이 감정을 찾아가서 반품하겠어!’
허칠안은 아주 화가 났다.
* * *
영매소각을 나온 초원진이 검을 휘두르자 등에 있던 장검이 마치 되살아난 듯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속박에서 벗어나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초원진은 검집을 밟아서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가자.”
장검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밤하늘로 날아가는 순간, 초원진은 경성에서 무수한 눈빛이 자신의 뒤를 바짝 따르는 것 같아 바로 그 자리를 떴다. 그중에 그의 등에서 가장 식은땀 나게 한 시선은 높이 솟은 관성루에서 비롯됐다.
그는 아주 빠르게 내성을 떠나 외성의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육호 항원이 양생당에 있다. 그는 고도를 낮추고 한참을 찾다가 드디어 남성의 양생당을 찾았다.
초원진은 경성에서 나고 자란 경성 토박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국자감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진사에 급제하여 줄곧 내성에서 생활했다. 빈민이 모여 사는 외성에는 지금껏 온 적이 없었다.
그는 검 끝을 눌러 양생당 뜰 안으로 가뿐하게 낙하했다. 그리고 그는 검집에서 뛰어오르는 동시에 처마 밑에서 불호를 외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미타불.”
초원진은 검자루를 잡고 검을 등 뒤의 검낭(劍囊)에 다시 꽂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처마 밑 어둠 속에 푸른색의 소박한 무명옷을 입은 승려가 서 있었다. 승려는 크고 훤칠한 체구에, 짙은 눈썹과 큰 눈, 억센 얼굴선을 지녔다.
“항원 대사?”
초원진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바로 빈승입니다. 시주께서는 사호인지요?”
항원이 양손을 합장하며 조용히 그를 주시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평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았지만 낯설지도 않았다. 항원은 초원진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그는 등잔에 불을 붙이고 침상 밑에서 술 한 단지를 끌어냈고, 자기 그릇 두 개를 꺼내더니 소매로 간단하게 먼지를 털었다.
초원진은 여태껏 술을 거부한 적이 없었고 마시면 끝을 보지만, 단지 좀 궁금했다.
“불문의 제자께서 술을 드실 수 있습니까?”
항원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무승은 육식과 채식 모두 꺼리지 않습니다.”
이 말에는 또 다른 속뜻이 있었다.
<무승은 수계(守誡)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저 오늘 삼호를 만났습니다.”
초원진은 땅콩을 챙겨 오지 않은 걸 좀 후회했다. 술은 있고 안주가 없으니 계속해서 뭔가 좀 부족한 듯했다.
항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호가 저를 모르는 척하더군요……. 그의 총명함과 지혜로 그때 나를 알아볼 거라 믿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으나 모르는 체했습니다.”
초원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8품 수신경의 수련 경지는 좀 얕지요.”
하지만 그는 삼호의 비밀을 알았다. 삼호와 아성전(亚圣殿)의 청기 충천은 연관이 있었다. 삼호를 대할 때는 단순하게 겉모습만 보면 안 됐다.
항원 대사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침음했다.
“삼호에 비해 빈승은 허 대인과 더 인연이 있습니다. 아직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는 운주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초원진은 허칠안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에 관해 육호의 설명을 다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탈태환이 좋기는 해도 제약이 아주 크지요.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운 덕분입니다. 그나저나 저 방금 교방사에서 허칠안을 만났습니다. 인상이 괜찮더군요. 아마 여러분이 지서 파편에서 여러 번 논의하는 걸 들어서 그런지 그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칫하다가 사호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삼호와 왕래한 적은 없지만 허칠안은 확실히 제 취향이더군요.”
초원진은 단지 안에 든 탁주를 다 마신 뒤 그 아이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아이를 본 뒤에 우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비록 불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고, 중생은 고해에서 허덕인다는 이 말은 아주 옳습니다.”
초원진이 개탄했다.
항원 대사는 그를 쳐다봤다.
초원진이 황급히 말했다.
“무례하게 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항원은 그때서야 시선을 거두었다.
“3일 뒤에는 회시 2차입니다. 저희 함께 삼호를 보러 가시죠.”
항원이 말했다.
“삼호는 저희에게 신분을 공개하길 원치 않을 겁니다. 그가 만약 서로 만나면 서로 웃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렇군요.”
초원진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