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06화 (306/712)

306화. 뛰어난 인재

“허랑!”

허칠안은 부향의 깜짝 외침에 사회적 매장이 그의 상상보다 더 빨리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청 안에서 술손님들과 기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고, 허칠안은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현재 일촉즉발의 형세에 놓인 사호와 이호의 상황을 보면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겠지. 우선은 경거망동하지 말자…….’

허칠안은 순간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대청으로 들어서 읍을 올리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관원들을 잇따라 미소를 지으며 그를 ‘자작 대인’이라 불렀다. 그들은 마치 허칠안과 친분이 두터운 듯 자리에 앉는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기녀들은 더욱이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랑.”

부향은 꽃처럼 웃는 얼굴을 하고 자리에 앉은 그를 잡아당겨 정성스럽게 술을 따랐다.

허칠안이 자리에 앉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보니 종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나한테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길. 아니면 오늘 밤에 교방사가 불에 타서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며 대범하게 사호를 바라보았다.

사호는 훤칠한 외모의 핸섬가이였다. 이마 앞의 흰 머리 한 가닥은 그의 매력을 더했고, 온몸에 소탈함이 벤 그는 예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초 장원 역시 허칠안을 주시했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겉모습만 보고 그는 눈앞의 이 야경꾼이 삼호의 사촌 형이라고 믿었다.

형제 둘 모두 뛰어난 인재로 인물이 훤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지…….’

초 장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초원진(楚元縝), 자는 자진(字眞)입니다.”

허칠안이 공수하며 말했다.

“허칠안, 자는 녕연입니다.”

이어 그들은 주령을 하기 시작했다. 문학청년인 기녀 소아가 사회자 역할을 맡아 대구(對句)부터 시사까지 골패 놀이를 하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허칠안이 직접 참석하지 않고 곁에 있는 부향한테 시킨 채 본인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허칠안이 이번에 교방사에 온 건 부향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혈기 왕성하고 혈색이 좋은 걸 보니 정말 감기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실해 보였고,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날도 좋고 경치도 아름다운데 허 대인께서 정말 시 한 수 선물하지 않으시렵니까?”

한 사람이 달갑지 않은 듯 허칠안이 시를 짓도록 종용했다.

허칠안은 문사(文思)가 고갈되어 핑계를 댔다.

자리에 있는 관원들은 실망했다. 뿐만 아니라 기녀들 역시 애석함을 금치 못했다.

사실 그는 시를 짓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적합한 시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 위연이 그에게 임무를 주었다. 그건 바로 중간에서 사호와 이호의 목숨을 건 승부를 저지하여 그들의 육탄전을 즉시 멈추게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니 그는 먼저 사호한테서 호감도를 좀 끌어 올려야 했다.

“초 형, 어제 관아의 동료에게 들으니 천인 간의 전쟁이 곧 시작되어 천종 제자 이묘진이 곧 경성으로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 형께서는 인종의 검수(劍修)…….”

허칠안은 잠시 멈추더니 말을 계속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말속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사호 초원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인종을 대표해서 천종 제자와 맞붙어 싸우는 걸세.”

그는 허칠안을 잘 알았다. 이자는 운주에 있을 때 이묘진과 친구가 되었고, 그 자신은 위연이 중시하는 동라다. 이런 내막을 알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내친김에, 술상 옆에 비스듬히 기댄 장검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우가 이 검의 예리함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초원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해 장개태에게 패한 후로부터 이 검을 칼집에서 뽑은 적이 없네.”

“그럼 됐습니다. 이 검은 칼집 안에서 녹슬었겠군요.”

허칠안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뭐라고?”

사호가 멍해졌다.

“아우의 말은 왜 칼집에서 검을 뽑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초원진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검기를 수양하고 있네. 이 검을 뽑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뽑으면 아주 날카롭지.”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영감이 왔다. 그는 술잔을 쥐고 미간을 찌푸린 채 일부러 고심하는 척했다.

“뭐 안 될 거라도 있는가?”

사호가 물었다.

허칠안은 느긋하게 말했다.

“종전에는 문사가 고갈되어 좋은 시를 지을 수 없었지만, 초 형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문사가 샘솟아 시 한 수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술손님과 기녀들의 눈이 솨라락 반짝였다. 그들은 밝게 빛나는 눈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사호는 좀 의외면서도 놀라웠고, 단정하게 앉아서 말했다.

“경청하겠네.”

허칠안은 베끼는 시가 점점 늘어날수록 차츰 지식인이 ‘현성(顯聖)’하는 비결을 모색해 갔다. 남이 묻는 대로 대답하는 일은 멍청이나 하는 짓이었다.

반드시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충분히 관심을 끌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사호부터 술손님까지 술손님부터 기녀까지 기녀부터 술자리에서 시중드는 여종까지 모두 그를 쳐다보며 기대에 찬 눈으로 기다렸다.

허칠안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나 대청 안을 느릿느릿 걸었고, 일곱 보 걸은 뒤 멈추고 느긋하게 말했다.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 십 년을 한 검만 갈고닦았네).”

초원진은 넋을 놓았다. 그가 방금 검을 수양하는 중이라고 말했더니 허칠안은 바로 한 구절을 지었다. 달아나지 않았다. 이 시는 바로 그를 위해 지은 것이었다.

초원진, 사호는 문득 감동하였다. 그는 허칠안과 일면식 없이 술자리에서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인데 그를 위해 시를 짓길 원하다니. 허칠안이 이렇게 호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사람을 대해 주다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삼호는 용기 있고 의리가 넘치는 지식인이다. 비록 이익에 밝다는 단점이 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사귈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의 사촌 형은 그보다 더 인정이 두텁고 정의감이 넘쳤다. 역시 친형제다웠다.

또한 초원진은 자양거사의 사례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좀 뜨거워졌다. 그 역시 지식인으로서 시사를 사랑했다. 이렇게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를 맞닥뜨리니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허칠안은 모든 이를 둘러보면서 두 번째 구절을 읊었다.

“상인미증시(*霜刃未曾試: 번쩍이는 칼날은 아직 휘둘러보지 못했네).”

‘십년마일검, 상인미증시라…….’

자리에 있는 관원들은 미소를 머금고 반짝이는 눈으로 이 시를 음미했다.

이 대구(對句)는 아주 짜임새 있다. 함축된 의미든 정취든 허칠안이 예전에 지은 몇 수만 못했지만, 시사의 매력은 함축된 의미와 정취에서 그치지 않는 법!

십년마일검, 상인미증시!

짧고 간결한 한 마디에 웅대한 뜻과 호방한 감정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십년마일검, 스스로 뛰어나다고 자화자찬하는 의지와 기개 역시 그처럼 젊은 나이에 뜻을 이룬 인물만이 유일하게 써낼 수 있는 것이었다.

초원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탁자로 몸을 반쯤 숙였다. 그는 전체적으로 앞으로 기운 자세를 취하고 다음 대련(對聯)을 기대했다.

‘참 적절하다. 정말이지 참으로 적절하다.’

그는 요 몇 년 간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검기를 수양했다. 인종의 일등품 법기는 시종일관 칼집에 숨어 꺼내 보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칼집에서 나올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 검을 뽑아 들지는 초원진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 인종 도수가 비검(飛劍)으로 서신을 보내 돌아와서 천종 제자 이묘진과 맞서 싸우라고 그를 불렀다. 초원진은 그때서야 문득 깨달았다. 알고 보니 이 순간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다만 가슴속에 아쉬움이 좀 있었다. 이 검을 칼집에서 뽑으면 분명 세상이 깜짝 놀랄 텐데 이걸로 이묘진을 베는 건 원치 않았다.

‘다음 대련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서 십 년 동안 갈고 닦은 검 한 자루를 칼집에서 뽑을까?’

초원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본보기로 삼고자 하는’ 갈망에 가득 찼다.

이때, 허칠안이 고개를 돌리며 탄식했다.

“다음 대련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이, 이게 어떻게 없어집니까? 없으면 안 되지요. 시 한 수에 어떻게 상련(上聯)만 있을 수 있습니까?”

“허 대인, 멋대로 굴지 마시오. 저희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련(下聯)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 보십시오. 좀 더…….”

대청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허칠안은 손을 펴서 술잔을 쥐고 술자리로 돌아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먼저 반 수를 지었으니 나머지 반 수는 나중에 초 형에게 채워 드리겠습니다. 어떠신지요?”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사람들은 억지로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주령은 계속 진행됐다. 아령은 비록 고상하고 우아하지만, 분위기가 다소 심심하여 부향이 화권을 제안했고 만장일치로 모두의 찬성을 얻었다.

기녀들은 술손님과 함께 화권을 하며 아주 재미있게 놀았다.

“아니면 우리 투호(*投壺: 화살을 던져 병 속에 많이 넣는 수효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를 합시다.”

옆에 미인이 동석하지 않는 초원진이 제안했다.

이번 술잔치는 오로지 그를 위해 연 환영회였다. 그가 술잔치의 주인공이므로 그가 말하는 대로 했다.

투호는 투호만의 규칙이 있는데 아주 간단하다. 대청 가운데 주전자 하나를 놓고 술손님 한 사람당 화살 세 개를 갖는다. 주전자에 넣지 못한 사람은 벌주를 마시고, 주전자에 넣은 사람은 자리에 있는 한 사람에게 술을 마시라고 명령할 수 있다.

몇 바퀴 돌자 신분이 낮지 않은 관원들은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고, 그들은 점점 게임 참가자에서 방관자로 변했다. 나중에는 방관자에서 박수갈채로 응원하는 군중이 되었다.

허칠안과 초원진만이 투호를 했다. 던지는 화살마다 명중하였다. 두 사람은 화가 난 듯 그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기녀들은 옆에서 큰 소리로 응원했다. 허칠안과 초원진 중 누구라도 명중시키면 그녀들은 큰 소리로 환호했고, 흥분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멋들어진 투호 대결은 아주 보기 드물었다.

처음에 기녀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공평하게 대할 수 있었는데 서서히 기녀 열두 명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한쪽은 초원진을 지지하고 한쪽은 허칠안의 팬이 되었다……. 그들은 전부 허칠안과 동침한 적 있는 여인들로 부향, 명연, 소아 등이었다.

“이렇게 하면 승패를 가릴 수 없으니 눈을 가릴 것을 제안합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초원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눈을 가려도 매번 명중할 것이니 내가 다른 제안을 하겠네. 한 사람당 화살 20개를 가지고 먼저 다 넣는 사람이 이기는 걸세.”

‘놀 줄 아는군!’

술손님과 기녀들은 눈을 반짝이며 잇달아 찬성했다.

부향이 여종에게 명주 수건을 가져오라고 명했으며, 두 사람은 눈을 가렸다. 명주 수건이 성긴 덕에 빛도 잘 통하고 주전자의 윤곽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말없이 돌아서서 경기장을 등졌다.

초원진은 어리둥절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역시 등지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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