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전설적인 인물
허칠안은 시뻘건 저녁노을이 하늘 끝에 걸려 있는 석양 볕 속에 종리를 데리고 교방사에 왔다.
“부향의 병이 다 나았는지 모르겠군. 이 나이 때 여인은 몸이 약해서 툭하면 감기에 걸린단 말이야.”
허칠안은 종리를 데리고 부향을 보러 가서 확실하게 진단해 줄 계획이었다.
종리는 여전히 긴 양삼 도포를 걸친 채였다. 그녀는 목욕한 뒤에도 엉망진창으로 산발하여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허칠안은 그녀가 추녀이거나 얼굴에 무슨 흉터가 있어서 남들에게 본모습을 보이지 않는 거라고 추측했다.
“부향이 교방사에 있는 자네 벗인가?”
종리가 물었다.
허칠안은 깜짝 놀라 물었다.
“오사저가 어찌 아시죠?”
종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고개를 숙이고 여유롭게 걸으면서 말했다.
“얕지 않은 관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에게 진찰을 봐 달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자네는 대기운을 지닌 사람이니 다른 남정네들처럼 기녀 치마 속에서 허우적대는 그런 자는 아닐 테고.”
‘오사저, 탐정으로서의 잠재력도 있네……?’
허칠안이 ‘응’하고 대답했다.
“부향은 제 홍안지기(*紅顔知己: 여사친)인 셈이죠. 제가 어릴 때부터 재능이 출중하여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타고난 지식인 재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숙부께서 일찍이 제 인생을 계획하셔서 대봉 시단의 거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해 저는 14살이었는데 사촌 동생을 데리고 국자감 지식인들이 조직한 문회(文會)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렸는데……. 문회 아십니까? 학술 교류하는 모임으로 교방사의 여인들을 초대해 곡을 연주하고 흥을 돋우곤 하지요. 그리고 부향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저는 문회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시를 잘 짓는다고 칭찬했고 부향 역시 그날 문회에서 저를 향한 마음에 싹 틔웠죠. 그때부터 저희는 자주 서신으로 왕래하며 플라토닉 사랑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플라토닉은 정신적인 연애로 결코 저속한 육체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종리가 담담하게 말을 끊었다.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서 뭐 하는가.”
“약속해 주십시오. 채미에게 말하지 마세요.”
“아.”
종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잠시 보더니 시선을 거두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영매소각에 다다르자 말했다.
“난 망기술을 할 줄 아네.”
“…….”
그가 영매소각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관현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잉? 오늘 영매소각에서 이렇게 일찍 다도회를 열었다고?’
그가 종리를 데리고 뜰 문 앞으로 걸어가니 옻칠을 한 뜰 문 두 짝이 굳게 닫힌 게 보였다. 그리고 안에서는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허칠안은 뜰 문을 두드렸다.
“영매소각 대관했습니다.”
문 안쪽에서 청의(靑衣) 시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일세.”
허칠안이 말했다.
뜰 문이 열리고 얼굴에 희색을 띤 청의 사동이 연거푸 말했다.
“허 공자님, 오셨군요. 오늘 저녁 교방사에 대단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방 안에 계십니다.”
허칠안은 이 말을 듣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단한 손님?”
허칠안이 보기에는 정3품 이상이어야만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신분, 이 지위의 관원은 대체로 교방사에 오지 않는다.
조당 제공들은 각자 나름의 느낌이 있었다.
“네. 교방사에 오시자마자 영매소각으로 곧장 달려와서는 저희 아가씨의 칠현금 솜씨를 좀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아가씨는 본래 술시중을 들 계획이 아니어서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청의 사동은 ‘후’하고 소리를 내며 고의로 신비감을 조성했다.
“어떤 것 같나요?”
허칠안이 째려보자 그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직접 나서서 문을 닫고 부향 아씨와 한참을 얘기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시곤 마지못해 나와 곡을 바쳤지요. 가장 불가사의한 일은 청하지도 않았는데 교방사의 기녀들이 한꺼번에 열두 명씩이나 스스로 찾아왔다는 겁니다.”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그는 속으로 왕 재상 그 늙은이라도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왕 형은 이미 나이가 많아서 아마 교방사에 향락을 추구하러 갈 마음과 정력도 없을 테지만.
“제법이구먼. 경성에 또 이런 인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안 되겠어. 교방사에서는 나 혼자만 잘나야 하는데 말이야. 그 자식을 좀 만나러 가야겠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하게.”
* * *
이때, 부향이 손님에게 술을 접대하는 대청 안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칠현금을 켰다. 분위기는 부드러우면서도 농염하고 향이 짙었다.
그녀가 칠현금을 켤 때는 특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녀는 교방사의 기녀들과는 다른, 시집 못 간 과년한 대갓집 규수 같았다.
술손님들은 탁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마 앞에 흰 머리 한 가닥이 흘러내린 청삼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손님들 곁에는 동석하는 기녀가 한 명씩 있었다.
한 곡이 끝나자 부향은 사뿐히 일어나 예를 갖추고 말했다.
“부끄럽습니다.”
“부향 낭자 너무 겸손하오. 경성 교방사에서 칠현금 솜씨를 논하자면 낭자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낭자들이 거의 없지 않소.”
염소수염에 평복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얼른 앉으시오, 저희 초(楚) 대협객이 기다리고 있소.”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다른 남자가 덧붙였다.
자리에 있던 술손님들이 잇달아 떠들썩하게 굴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떤 이는 바로 딱 잘라 말하며 비웃었다.
“영매(詠梅) 절구가 나온 뒤로 부향 낭자가 더는 술 상대가 되어주지 않더군요. 허나 기왕 초 형이 돌아왔으니 또 달라지겠죠. 부향 낭자, 초 형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시오.”
부향은 나긋나긋한 눈빛으로 모든 술손님을 훑어보았다. 이 사람들의 신분은 단순하지 않았다. 다들 육부에서 실권을 장악한 관원이거나 한림원의 서길사, 도찰원의 어사 등 직위는 높으나 실권을 쥐고 있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호탕한 청삼 남정네는 신분이 더 남달랐다. 원경 27년의 장원으로 지금 경성 제일의 검객이다.
재자가인(才子佳人)에 대한 교방사 여인의 갈망을 충족시키고, 강호 협객에 대한 환상을 만족시키는 그에게서는 이중으로 후광이 비쳤다. 그렇기에 그가 교방사에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기녀 열두 명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나와 자발적으로 술시중을 든 것이다.
“나리들,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녀가 몸이 편치 않아 오늘은 술을 마시기 어려울 듯합니다.”
부향이 어색하게 웃더니 돌아서서 아무도 없는 술상으로 갔다.
몇몇 관원은 언짢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부향의 명성이 더는 경성 교방사에 국한되지 않고 널리 널리 퍼진 지 오래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너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듯했다. 그녀한테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술자리를 함께 하자고 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오히려 청삼 검객은 소탈하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리에 있는 술손님은 모두 원경 27년 출신의 진사들로 그와 관계가 아주 좋았다. 이번에 교방사에 와서 술을 마시는 것도 첫째는 회포를 풀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대봉에서 명성이 자자한 기녀를 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초(楚) 장원이 보기에 외모는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그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명연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저희 부향 낭자는 허 대인과 잘 된 이후로 더 이상 술시중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허 대인께서 속신하길 기다리고 있으니 나리들께서는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마시어요.”
비록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 실권을 손에 쥔 관원이지만, 야경꾼 앞에선 모두 아우였다. 막 봉작된 야경꾼 허칠안 앞에서는 아우 중에도 아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술손님들은 언짢은 기색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술을 마셨다.
초 장원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허 대인? 어느 허 대인인가?”
그는 어떠한 이유로 ‘허’라는 성씨에 아주 민감했다.
동시에 그는 처음으로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이호가 일호에게 허 동라의 자료를 물었을 때 일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자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여색을 좋아한다는 것이네. 교방사의 여러 기녀들과 잠자리를…….’
그리고 연락이 닿아 막 만났을 때 자신은 삼호와 모르는 사이인 척했더랬다. 시재가 뛰어난 사촌 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암향부동월황혼’을 지어 부향의 명성을 퍼뜨린 자였다.
명연은 잠시 기다렸으나 앞다투어 대답하는 이가 없는 걸 보자 그때서야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허 대인에 관해 얘기하자면 정말 불가사의한 인물이지요. 그는 작년 10월 세은 사건 때 출세하여…….”
그녀는 마치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듯 허칠안의 행적을 블라블라 얘기했다.
“운주에 있을 때 혼자서 칼을 쥐고 적군 팔천 명 앞을 막아서서 홀로 반 시진 동안 필사적으로 싸웠다지요…….”
교방사 기녀들은 이 행적을 이미 여러 번 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쏟아 아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부향은 다소 거만하게 좀 우쭐대며 아래턱을 높이 치켜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랑이 힘이 빠지는 그사이 적군 수천 명을 마주했죠.”
다른 기녀 소아(小雅)가 이 광경을 보더니 황급히 말을 가로채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사를 같이 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 꼭 지키세.”
“좋은 시로구나!”
큰 소리로 칭찬하는 동시에 초 장원의 마음속에는 의구심이 스쳤다.
‘이호가 포정사사를 포위하고 공격한 반란군이 사백여 명이고 허칠안이 이백 명의 목을 베다가 힘을 다 써서 죽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팔천 명으로 늘어났지?’
한 관원이 말했다.
“확실히 좋은 시로군.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가 학문을 닦지 않는다니 안타깝구먼. 허평지 그자는 사람 구실을 못 해.”
나머지 술손님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찬성하더니 또 말했다.
“안타깝게도 허칠안은 오늘 교방사에 오지 않았네. 그러지 않았으면 분명 그가 우리 장원랑의 재능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초 장원은 이 말을 듣자 머릿속에 일련의 ‘?’가 떠올랐다.
‘허칠안은 운주에서 전사한 게 아닌가? 한 달 넘게 시간이 흘렀으니 경성 쪽에서 소식을 듣지 못했을 리는 없다.’
바로 이때 부향이 깜짝 놀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허랑!”
* * *
청의 사동은 허칠안을 안내하며 마당으로 들어왔고, 대청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소인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나리는 공자님보다 훨씬 환영받으시더라고요. 제가 뜰에 누님들을 찾아가서 알아봤는데요. 후, 이 나리는 전설적인 인물이더라고요. 원경 27년에 장원 급제했는데 나중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벼슬에서 물러나 강호의 떠돌이가 되었대요. 그 후에 크게 빛을 발해 경성에서 이렇게 크게 명성을 떨치며 위 공에게 경성 제일의 검객이라고 칭송받고 있습죠.”
허칠안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속으로 말했다.
‘제기랄, 사호가 안에 있다고? 대봉의 장원이 어찌 된 일인가? 하나같이 다 교방사의 배테랑이야? 사호는 내가 신년의 사촌 형인 걸 알고, 내가 이미 운주에서 죽은 줄 아는데……. 지금 내가 죽지 않은 걸 보면 이따가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말하겠고…… 이묘진은 또 자신이 삼호한테 사회적 매장을 유도당한 그 일을 떠올리겠지…….’
허칠안은 사회적 매장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