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예상 문제 찍기
정오, 포근하고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허부는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안마당에 술상이 하나씩 펼쳐져 있었다. 왼쪽 탁자에는 허씨 가족이, 오른쪽 탁자에는 허평지와 허칠안의 동료, 벗이 있었다.
장락현의 현령과 포반(捕班)의 쾌수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물론, 부아의 총포두 여청 또한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옥춘, 송정풍 등은 운주에 있기에 술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다.
허평지는 허칠안을 데리고 탁자를 순서대로 돌면서 술을 권했다. 허칠안은 본래 대충 대응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축하해주면서 자작 대인이라고 부르자…… 문득 이런 감각이 좋아졌다.
주 현령 탁자에 이르자 피둥피둥하게 살찐 현령 나리가 개탄하며 말했다.
“본관에게 조카딸이 있는데 나이는 16세고 외모가 아주 빼어납니다. 본래는 칠안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는데 지금 보니 안 되겠군요.”
주 현령의 딸은 이미 시집갔다. 그렇지 않았으면 허칠안과 억지로 엮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조카딸은 글렀다. 신분이 딸린다.
왕 포두가 웃으며 말장단을 맞췄다.
“칠안이 지금은 자작이니 그와 어울릴 수 있는 여인은 대갓집 규수나 부잣집 따님이지요.”
모든 이가 하하하 크게 웃었다.
옆 탁자의 여청은 이 말을 듣자 마음이 참 섭섭하고 서운했다.
원래 부아 총포두의 신분인 그녀는 야경꾼과 혼인하기에 굉장히 넉넉했다. 게다가 같은 업에 종사하니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봉작되면서 귀족 계층으로 들어서니 여 포졸을 본처로 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해졌다. 예법에 어긋났다.
* * *
연회는 미시 이각이 되어서야 파했다. 허칠안과 허평지는 손님 배웅을 책임지고, 숙모는 하인들을 지휘해 뒷정리하였다.
신시 삼각, 허신년은 하인과 여종을 데리고 돌아왔다.
숙모는 친엄마답게 점심에 남은 음식을 신년에게 데워 주라고 취사부에게 분부했다.
“신년, 다 먹고 푹 쉬렴. 내일 일찍 일어나서 공원(貢院)에 시험 보러 가야 하잖니.”
숙모는 정성스럽게 아들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
이때는 아직 식사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허신년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미리 식사하고 일찍 쉬어야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내일 있을 시험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
허칠안이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물었다.
“신년, 회시(會試)에서는 무엇들을 시험 보니?”
허신년이 음식을 먹으며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책문(策問), 경의(經義), 시사(詩詞)요.”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선황(先皇) 때부터 시사가 과거에서 없어졌다가 원경제 12년에 내각에 들어간 왕정문이 추진해서 다시 과거에 포함됐어요.”
200년 동안 유가의 정통 다툼이 지속되면서 시단(詩壇)이 쇠약해져 이미 과거 무대에서 퇴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형님이 만약 과거에 참가하신다면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시단은 다시 뒤흔들 수 있을 거예요.”
허신년은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서서 부친을 쳐다보더니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작년 연말 이래로 형님이 시단에서 명성을 떨쳐, 아버지도 점점 유명해지셨어요.”
허평지가 허영음을 무릎에 앉히고 막 딸을 골려 주려던 차에 어리둥절하더니 희색을 띠며 하하하 크게 웃었다.
“사실 칠안 자체가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거지, 아버지로서 딱히 양성해주지도 않았는걸. 지식인들은 별일 아닌 걸로도 요란스럽게 구는 걸 좋아한단 말이야……. 그들이 나를 어떻게 칭찬했는데?”
허신년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버지가 사람 구실을 못 한다고 칭찬했어요.”
“???”
허평지는 화가 나서 탁자를 치며 말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들이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냐?”
허신년은 큰형을 쳐다보더니 허허허 웃기 시작했다.
“형님이 지은 시가 많을수록 아버지의 오명이 더 자자해져요. 앞으로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 *
그날 저녁, 허평지는 근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숙모가 호통 쳤다.
“사람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몇백 년 후의 명성을 고려하다니,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부인의 의견일 뿐이오.”
허평지는 콧방귀를 뀌더니 근심 걱정에 싸여 말했다.
“신년은 재상의 자질이 있고, 칠안 역시 장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테니 후손들이 그들을 평가할 때 모두가 칭찬하겠지. 허나 내 차례가 되면 고작 사람 구실 못한다는 말뿐이겠지.”
숙모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쨌거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거잖아요……. 참, 나리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신년이 추후에 타지로 파견되면 어떡하죠? 나리께서 그가 경성에 남을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볼 수 없어요?”
“꿈도 꾸지 마시오. 그는 운록서원의 제자이니 타지로 파견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오. 너무 멀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허평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운록서원의 제자는 기본적으로 경성 관리 사회의 권력 중심과는 인연이 없다. 대부분 각 주(州) 각지로 배치되고, 설령 경성에 임명된다 해도 말단 관리일 뿐이다.
“아니면 나리가 칠안을 찾아가서 좀 얘기해보세요. 그는 야경꾼이고 공주마마와도 알고 지내니 틀림없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숙모는 다리를 굽히고 침상에 앉아있었다. 촛불 빛에 그녀의 눈썹이 약간 찡그려졌다.
“이건 예부의 일인데 야경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허평지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야경꾼은 문무백관을 감찰하여 문관의 미움을 가장 많이 사오. 칠안이 나서면 역풍을 맞을 뿐이오.”
숙모는 침상에 엎드려 베개를 껴안은 채 양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 * *
쿵쿵쿵…….
허신년은 흰색 홑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문을 열어 보자 허칠안이 문밖에 서 있었다.
“형님이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어요?”
허칠안은 붉은 입술에 치아가 하얗고 용모가 준수한 남동생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예상 문제를 뽑아 보자.”
“예상 문제를 뽑자고요?”
허신년은 당혹스러운 마음에 반문했다. 하지만 그는 똑똑했기 때문에 허칠안의 말뜻을 바로 알아챘다.
허신년은 큰형에게 여유롭게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주더니 외투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말했다.
“괜찮아요. 서원의 대유 몇 분께서 이미 저희에게 예상 문제를 찍어 줬어요.”
국자감이 세워진 후에 학자들의 사상은 사서오경에 갇혀 더는 선인들의 재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대봉에 시사가 없는 게 바로 후유증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 가지 장점은 예상 문제를 찍기에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소위 예상 문제 찍기란 사실 허칠안 전생의 선생님이 칠판을 두드리며 요점에 선을 긋는 것과 같은 행위다. 범위와 문제 풀이 방식을 한정했기 때문에 과거 시험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예상 문제 찍기 외에 또 다른 재밌는 행위가 바로 문제 구매다.
그리고 문제 구매보다 더 기발한 행위는 ‘내정(內定)’이다.
소위 내정이라는 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터무니없게 썼을지라도 순조롭게 관문을 통과하여 공사(*貢士: 회시에 합격한 사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조작은 바로 주임 시험관을 매수하는 것이다. 어떻게 ‘암호’를 짤지 사전에 다 협의를 끝낸다. 예를 들어 첫째 줄 끄트머리가 ‘노(老)’이고, 둘째 줄 끄트머리가 ‘철(鐵)’,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는 ‘666’이다.
주임 시험관은 그걸 보자마자 자기 사람임을 안다.
이름에 붉은 종이를 붙이거나 옮겨 적는 건 이런 부정 행위를 막을 수 없다.
허칠안은 이런 기발한 조작을 위연에게서 들은 뒤 감탄했다. 선인들의 지혜를 얕보아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시험관을 매수하는 행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허신년은 운록서원의 서생으로 그가 장원(壯元), 방안(榜眼), 탐화(探花)와 인연이 없는 건 확실했다. 심지어 일갑(一甲) 안에 들 수 있는지의 여부도 꼭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종리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신년을 도와 커닝 페이퍼를 만들고, 시험을 감독하는 나팔수를 속일지 생각했다. 그가 머리를 쥐어 짜낸 후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글을 어딘가에 베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년의 오만함이라면 때려죽여도 그렇게 하지 않겠지…….’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럼 시사는?”
허신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시사는 고려하지 않으려고요. 제가 원래 시사에 재능이 없잖아요.”
그는 시험 준비를 책문과 경의에 무게를 두었다. 물론 다른 서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사라는 건 인연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유비무환이잖니. 형이 온 이유가 바로 시사 예상 문제를 뽑기 위함이야.”
허칠안이 말했다.
“형님이 어떻게 알아맞히시게요?”
“제비를 뽑으려고.”
허칠안이 미스터리하게 웃었다.
* * *
“어머니, 저 귤 먹을래요.”
콩알이가 서로 통하는 안방에서 헐렁한 홑옷을 입고 걸어 나왔다.
“저녁에 무슨 귤을 먹는다고 그러니. 이빨 괜찮겠어? 귤은 대청에 있으니 직접 가지러 가렴.”
숙모는 아들의 장래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한 참이었다.
콩알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나가 바깥 복도에서 귤을 먹더니 매우 흡족해하며 방으로 돌아와 졸았다.
숙부와 숙모는 계속해서 허신년의 앞길 이야기를 나눴다. 숙모는 말하다 보니 자신이 애당초 허신년을 왜 운록서원으로 보냈는지 후회했다.
신년은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기억력도 좋아, 운록서원에서 서생을 모집할 때 허평지가 아들을 데리고 청운산에 시험을 보러 갔다가 한 번에 합격했다.
“애당초 국자감에 보냈으면 얼마나 좋아요.”
숙모가 괴로워하며 말했다.
“부인의 생각일 뿐이오. 운록서원이야말로 유가의 정통 아니오.”
허평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 * *
허신년은 선지 한 장을 네모난 종이 십여 장으로 잘라 그 위에다 ‘화조어충(花鳥漁蟲)’ 등의 주제를 썼고 그다음에 아무렇게나 긁어모았다.
“형님, 하시죠.”
허신년은 큰형이 법석을 떤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이렇게 열성적이니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빨리 밉살스러운 큰형을 내쫓고 푹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큰형이 그 자리에서 시를 지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그도 눈을 좀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허칠안은 눈을 감고 닥치는 대로 잡았다.
“두 개?”
허신년이 보니 큰형은 한 손에 종잇조각 두 개를 쥐고 있었다.
“두 개면 두 개라지. 나머지 하나는 예비용인 셈 치면 되니까.”
허칠안은 말하면서 종잇조각을 펼쳤고, 그 안에는 각각 ‘영지(咏志)’와 ‘애국(愛國)’이 쓰여 있었다.
허신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음음음……. 잘 생각해보고 내일 말해 줄게.”
허칠안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 * *
허칠안은 허신년과 작별 인사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촛불을 밝히고 탁자에 앉아 고개를 들고 대들보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예언가 아닙니까? 춘시 문제를 직접적으로 예언할 수는 없는 건가요?”
대들보 위에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이 누워 있었다. 그녀가 단조롭고 긴 양삼 도포를 걸친 채 대답했다.
“예언사는 더욱이 비밀을 지킬 줄 알아야 하는 법. 나는 대기운을 지닌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춘시 시험 문제를 누설했다가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네.”
“제가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정께서 저는 대기운을 지닌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허칠안이 부추겼다.
“자네가 대기운을 지닌 이상, 제비 뽑기로 문제를 뽑으면 틀림없이 춘시 시험 문제가 뽑힐 걸세.”
종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구태여 내가 모험할 필요 있겠는가.”
‘일리 있군…….’
허칠안이 또 반문했다.
“그럼 왜 또 제가 책문과 경의 예상 문제를 찍지 못하게 하는 겁니까?”
“단순할수록 알아맞히기가 수월하지.”
종리가 말했다.
허칠안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초․중․고에서 배운 시사를 쥐어 짜내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해가 흘렀지만 어떤 시사는 여전히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물론 문어문(文語文)과 편폭이 비교적 긴 시사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기억났다. 예를 들어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는 ‘황하지수천상래(黃河之水天上來)’ 등 몇 마디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춘효(春曉)》같은 시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영지가 가장 유명한 건 아마 조조(曹操)의 구수수(龜雖壽)일 테지만, 장생을 향한 원경제의 갈망을 생각한다면 이 시를 썼다간 원경제의 미움을 살 것이다. 애국과 관련된 시는 적지 않은데 다만 내 기억 속의 애국시(愛國詩)는 전부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때 지어진 것이다. 철마빙하입몽래(鐵馬氷河入夢來)라든가,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든가, 상녀부지망국한(商女不知亡國恨)이라든가……. 어렵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