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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01화 (301/712)

301화. 갑작스런 선물

양천남은 비적 토벌이 끝난 뒤 개인적으로 이묘진을 찾아가 비연군을 정규 군대로 편입시켜 운주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비연군의 병사들에게 운주에 남으라고 설득할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남기를 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투에 임해 크고 작은 산채 수백 군데를 소탕하고, 비적 수천 명의 목을 베었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서는 백성들이 비적의 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서는 상인들이 통상과 무역 활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나간 곳에서는 정의의 빛이 쏟아져 내린다…….

나는 변함없이 함께 해 준 모든 형제들에게 정말 고맙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는 법. 운주 여정은 일단락되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너희들도 집으로 돌아가 가족, 벗과 한자리에 모일 때가 되었다. 인생의 길은 끝이 없다. 평탄하지 않을 때도 있고, 순조로울 때도 있다. 쓰라리고 고될 수도 있고 기쁘거나 슬플 수도 있다. 여러분이 운주에서의 시절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초심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묘진은 여기까지 말을 마친 뒤 병사 400명을 바라보면서 읍을 올리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가는 건 좋은 일이니 앞날을 묻지 않는다!”

병사 400명이 읍을 올렸고, 그들의 함성은 마치 세찬 조수 같았다.

“그래도 가는 건 좋은 일이니 앞날을 묻지 않는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들이 충성을 다하여 추종하고 싶은 비연 여협객이다.

* * *

남강 고족이 야만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결코 원시인처럼 야만적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고(*蠱: 전설상의 독충)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수련 품계와 생활 습성 모두 고충과 부합해서다.

이렇게 해야만 고충을 기를 수 있고, 고충과 동화할 수 있다.

더 적당한 말로 형용한다면 고족이 발전하면서 걸어온 길은 ‘고본위(蠱本位)’이기에 ‘인본위(人本位)’인 대봉, 서역 그리고 동북 여러 나라와 문명의 정도를 비교할 수 없었다.

문명의 격차는 여러 방면에서 드러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문화와 건축이었다.

고족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대 시대의 상형문자를 사용하고 있었고, 건축물은 황토집과 초가집 위주며, 자기가 아니라 도기를 주로 썼다.

그런데 그들이 입은 옷은 대봉의 백성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남강 고족은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기르는 데 능해서 채집한 고치실의 품질이 대봉보다 몇 배 더 높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직에 서툴러 대봉의 상인에게 좋은 품질의 고치실을 헐값에 팔거나 이미 만들어진 옷감으로 물물교환하는 경우가 잦았다.

고족의 근거지는 백 리를 가로지르는 백산(伯山) 덕에 생산물이 풍부했다.

산중에는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약초와 산 열매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산 아래에는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고 하류가 빈틈없이 흘렀는데 역고부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역고부는 이 평원에서 수천 경(頃)을 개간하여 일부 족인(族人)은 농사를 짓고, 일부 족인은 사냥하여 서로 물물교환을 하니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쇠뿔로 만든 활을 등에 멘 막상이 병사들을 데리고 사냥에서 돌아왔다. 어떤 이는 수백 근 무게의 멧돼지를 둘러업고 어떤 이는 알록달록한 금계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은 사냥감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막상은 산기슭 밭에서 여인들을 따라 채소를 따는 여동생 리나를 봤다.

단순한 형식의 무명옷을 입고 있는 리나는 가느다랗고 고른 종아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남강은 날씨가 찌는 듯해서 이곳에서는 대봉의 비단 치마나 긴팔옷을 입고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고족 사람들은 대봉 옷을 재단하고 수선하곤 했다.

대개 치맛자락은 무릎까지만 내려왔고, 소매는 팔꿈치 정도까지만 짧게 내려왔다.

“리나!”

막상이 불렀다. 여동생이 고개를 들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천고 할머니가 어제 너더러 오늘 만나러 오라고 설응(雪鷹)을 통해 서신을 보냈잖니. 그런데 너는 왜 아직도 이곳에서 꾸물거리는 거야?”

리나는 어리둥절하더니 머리를 툭툭 쳤다.

“아이고, 잊어버렸어. 막상 오라버니, 왜 더 일찍 알려주지 않은 거야.”

막상 뒤에 있던 사내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밭에 있던 여인들도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쾌활한 공기로 가득 찼지만, 막상은 좀 창피해하며 돌아서서 사내들을 비난했다.

“뭘 웃나!”

다른 한편에서는 푹신푹신한 헝겊신을 신은 리나가 시냇가에서 손을 깨끗이 닦고 백 리 밖의 천고 부락에 갈 채비를 했다.

막상은 그 모습을 보더니 황급히 외쳤다.

“천고부 댐에 수로 입구가 부족하니 수리 도와주는 거 잊지 말거라.”

“알겠어!”

리나는 낭랑하게 대답하더니 멀리 뛰어갔다.

* * *

천고부는 역고부보다는 대봉 황조의 어느 현성(縣城)과 더욱 비슷했다. 그곳은 좀 남루하기는 하지만 초가집에서 벗어나 황토집과 기와집이 주를 이뤘다.

천고부는 낙하산(落霞山)의 산기슭에 세워졌다. 산기슭부터 산허리까지 계단식 밭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고, 산 위에는 댐이 하나 있는데 어제 갑자기 둑이 터져 계단식 밭을 무너뜨렸다.

리나는 어릴 때 여러 부락에서 자주 놀았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익숙한 낙하산을 올랐다. 그렇게 산줄기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무너진 둑을 보았다.

백발이 희끗희끗한 천고 할머니를 필두로 하여 수십 명의 천고부 사람이 댐 가장자리에 선 모습이 보였다.

리나의 시선이 그들을 스쳐 댐으로 향했다. 수면에 괴물 시체가 한 구 떠 있었는데, 뾰족한 머리에 가늘고 긴 목, 발톱에는 얇은 막이 있고, 열 장(丈)이 넘는 길이에 몸 표면은 검은 비늘 조각으로 덮여 있었다.

천고 할머니는 리나를 보더니 그녀에게 손짓했다.

리나는 암석 사이로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천고 할머니 앞으로 와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할머니, 저건 무슨 괴물이에요?”

“규룡이란다!”

천고 할머니는 상냥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둑을 부숴서 부락에서 막 심은 새싹도 다 휩쓸렸단다.”

리나는 규룡을 처음 보았지만, 이런 괴물은 남강에 밀집하여, 교차하는 수역에서 생활하는데 지하 하류를 따라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고 들었다.

듣자 하니 리나의 한 숙부가 물놀이를 하다가 규룡에게 먹혔다고 한다.

“돌덩이 좀 구해서 최대한 빨리 부서진 틈을 막으렴.”

천고 할머니가 말했다.

“네!”

리나는 막노동에 제일 자신이 있기에 즉시 뛰어갔다. 반 각(刻)도 채 안 돼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고, 모든 이들이 소리를 따라 쳐다보니 ‘돌산’ 하나가 서서히 이동했다.

이 돌산은 스무 장(16m)이 넘는 높이로 저수지에 던지면 거칠고 사나운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였다.

돌산은 스스로 움직인 게 아니라 리나가 어깨에 짊어지고 온 것이었다. 다만 그녀는 스무 장 높이의 거대한 돌과 비교했을 때 개미처럼 보잘것없었다.

천고부 사람들은 진작에 익숙해졌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역고부는 고족의 7개 부락 중에서도 괴력으로 유명한데 리나의 부친 용도는 정말로 산을 옮긴 적이 있었다. 대봉과 전쟁을 벌이던 그해 그는 산을 들쳐 메고 대군에게 투척하여 수천 명을 압사시켰다.

리나는 거대한 돌을 천천히 둑 근처로 옮겼고, 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을 내려놓았다.

모든 이들이 댐 위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았다. 리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몸을 고정시켰다. 그녀는 호흡을 몇 번 가다듬더니 갑자기 ‘헤이호우’하고 포효하면서 거대한 돌의 표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의 표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금이 빠르게 번져 가면서 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갈 덩어리로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둑을 보수할 자재가 생겼다. 천고부 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채집할 필요가 없어져 시간과 노동력을 크게 절약했다.

* * *

부락 족인들은 남아서 댐을 보수했고 천고 할머니는 리나를 데리고 하산하여 그녀의 거처로 돌아왔다. 뜨락이 있는 사합원이었다.

천고 할머니의 며느리는 마침 마당에서 보조 약재를 만드는 고충의 시체를 햇볕에 말리던 중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뒤뜰에서 고충을 사육했다.

천고 할머니는 리나를 데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궤짝에서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찰카닥’ 상자를 여니 안에 백옥 같은 벌레가 누워 있었는데 전갈처럼 생긴 것이 다리가 여섯 개 있었다.

머리 꼭대기에 달린 새까만 눈은 좀 귀여워 보였다.

“이건 할미 영감이 제련한 칠절고(七絶蠱)란다. 영감이 세상을 뜨기 전에 이 고충은 절반밖에 제련되지 않았는데 20년에 걸쳐서 할미가 드디어 완성시켰단다.”

천고 할머니는 상자를 리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제 네가 보관을 맡거라.”

“저 주시는 거예요?”

리나는 좀 의외였다.

“너한테 주는 게 아니라 네게 보관을 맡기는 게야. 앞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그걸 선물할 거란다.”

리나의 머릿속에 일련의 물음표가 스쳤다.

그녀는 일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갑자기 칠절고를 선물하더니 이제 이걸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전달까지 하라니.

천고 할머니는 상자를 닫고 말했다.

“할미가 네게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느냐? 그 두 좀도둑 이야기 말이다.”

리나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요.”

동시에 그녀는 삼호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삼호가 오랫동안 문자를 보내지 않아서 지서 단체 채팅방은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은 참이었다.

“천고부에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고신이 회생하는 날 남강 전체 더 나아가 구주까지 모두 고충의 세계가 될 거라 말하지. 비록 고족이 고충을 기르고 제련하면서 생존하지만, 고충은 단지 수단이고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란다.”

천고 할머니의 눈에 착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전설이 아니라 천고부가 대대로 추론하는 최후의 날이란다. 이 미래를 엿보기 위해 많은 연장자가 하늘의 뜻을 배반하여 해를 입었단다. 고신이 계속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수 있게 20년 전에 영감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지. 그는 물건을 하나 훔쳐서 그 물건으로 고신을 억압하여 대대손손 깊이 잠들게 만들려 했단다. 그래서 그는 남강을 떠났고 그 후로 더는 소식이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부족에 남겨 놓은 가장 좋아하던 고충의 생기가 없어졌고, 나는 그때서야 그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았단다.”

“훔친 물건이 뭐예요?”

나무 상자를 안은 리나의 바다처럼 푸르른 눈동자에 호기심이 번뜩였다.

천고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리나의 손등을 치더니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미는 나이를 많이 먹어서 하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입을 해를 견디지 못한단다.”

아니면 하늘의 뜻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어젯밤, 내가 운명의 변화를 엿보았단다. 그 물건이 곧 세상에 나올 거야. 리나, 너도 거기에 연루되어 있단다.”

천고 할머니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저요?”

리나는 푸른 눈을 깜박였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가 어째서 천고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성에 가거라. 경험이 부족할 뿐이지, 네 수련 경지로는 충분하단다. 마침 이 기회를 빌려 인간 세상에 좀 나가 보거라.”

천고 할머니는 덧붙였다.

“이 일은 네 아버지와 이미 상의했단다. 아버지도 찬성했어.”

‘경성에 간다라…….’

리나는 손에 든 나무 상자를 자세히 보며, 자신이 이 일에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우선 떠오른 건 삼호, 일호 그리고 금련 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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