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예언사(預言師)
허칠안은 영문을 모르는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7층에 이르렀을 때 폭발한 연단실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이상하리만큼 활발한 연금술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무사히 팔괘대에 도착했다.
우선 감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감정은 흰옷을 입고 흰머리를 풀어헤친 채 팔괘대 가장자리에 앉아 건물 밖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감정 옆에 머리를 산발한 채 앉은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단조로운 양삼 도포를 걸치고 탁자 앞에 앉아 먹고 마셨다.
“감정을 뵙습니다!”
허칠안이 멀찌감치 멈춰서 읍을 올리고 안부를 물었다.
“좋군. 기본이 탄탄해.”
감정이 한마디로 평가했다.
이때 계단 어귀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저채미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떡 몇 봉지를 들고 올라왔다.
그녀는 떡을 탁자 위에 두고 탁자에 엎드려 미친 듯이 먹고 있는 여인에게 밀었다. 여인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더니 말했다.
“너무 적은데?”
“멍청한 아이 하나가 다 먹어 버렸어요.”
저채미가 허영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해서 먹었다.
‘오사저?’
허칠안은 이때서야 깨달았다. 그는 위연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감정에게는 제자가 다섯 명이 있는데 그중에 다섯 번째 제자는 일 년 내내 외부와 단절된 채로 홀로 수행한다. 사천감을 모르는 자라면, 사천감에 여제자는 저채미가 유일하다고 생각할 터였다.
‘그녀인가?’
허칠안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때 감정의 인정 넘치는 목소리가 울렸다.
“이 칼은 어떠한가?”
“아주 쓸 만합니다. 감정 대인 덕분입니다.”
허칠안이 공손하게 말했다.
동시에 그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이 칼은 내 천지일도참을 위해 맞춤 제작한 거 아니야? 다 네가 계획한 거 아니야? 쓸데없는 말 하기는.’
“탈태환의 효과는 어떠한가?”
감정이 또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허칠안은 깊게 생각하며 말했다.
“다만 얼굴이 격변하여 조금 곤혹스럽기는 합니다. 예전처럼 온화하고 점잖은 모습이 차라리 나은 듯합니다.”
“그렇군…….”
감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네.”
‘어? 이것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고?’
허칠안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감정께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사실 타고난 미모를 스스로 저버리기 어려운 남자가 더 감정 몰입이 잘 된다고!’
그는 감정 앞에서 저질스러운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속으로 까불 수밖에 없었다.
감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종리는 내 다섯 번째 제자네. 5품 예언사로 그녀는 당분간 자네를 따라서 수련할 것이네.”
저채미는 어리둥절하여 감정을 쳐다봤고, 다시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쳐다봤다.
‘알고 보니 술사 5품을 예언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왜 당분간 나를 따라서 수련한다는 거지?’
허칠안은 상대의 의사를 떠보았다.
“그건…… 소직이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감정이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불렀다.
“종리.”
양삼으로 된 긴 도포를 입은 여인이 일어나서 허칠안을 향해 예를 표하더니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자네 운수가 좋다더군. 자네를 따르면 내 액운이 어느 정도는 떨어질 거야. 자네가 바로 내 인연일세.”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허칠안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난잡하면서도 빽빽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어 얼굴이 완전히 가려졌다.
“액운이요?”
그는 반문했다.
종리는 잠시 적절한 어휘를 생각하더니 성의 있게 대답했다.
“예언사는 천기를 엿볼 수 있는데 하늘의 뜻을 배반하여 해를 입힐 경우 액운이 몸에 달라붙네. 3600번의 재난을 참아내야만 승직할 수 있지. 맞서지 못하면 육신과 원신 모두 사라질 것이야. 무릇 배반한 하늘의 뜻을 짊어질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대기운(大氣運)이 있는 자들이지.”
허칠안은 종리의 설명을 듣자 우선 두 가지 일이 생각났다. 첫 번째는 드디어 사천감에 6품 연금술사가 왜 그렇게 많은지 알았다. 6품 이상은 양천환밖에 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허세왕이 뜻밖에도 대기운(大氣運)이 있는지였다. 믿기 어려웠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예언사가 천기를 엿볼 수 있다고? 음, 이건 천기사 전 단계 직업인가…….’
허칠안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하늘의 뜻을 배반하여 해를 입힌다는 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 겁니까? 소위 반서(反噬)가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헤아려 봐야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그저 평범한 동라니까요.”
그의 예상이 맞았다. 감정은 자신의 몸에 기이한 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종리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말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재앙을 불러들이는 법. 때때로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실질적인 재앙으로 바뀌어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연루되곤 하네. 어떤 때는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예기치 못한 재앙을 불러오기도 하지. 게다가 그 크기는 통제할 수 없어 아마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도 생사를 결정짓는 큰 재난을 불러올 것이야.”
그녀는 말을 하면서 상징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간단한 동작 하나가 뜻밖에 발생하면, 버젓한 5품 강자조차 발밑이 미끄러져 팔괘대에서 떨어지는 것이군, 떨어지게 되는 것이야…….’
“사람 살려!!!”
허칠안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관성루는 높이가 백 미터에 달한다. 이런 높이에서 떨어지면 허칠안 자신이라도 동피철골경에 이르지 않는 한 두말할 것 없이 죽는다.
게다가 술사의 신체와 정신은 아주 평범하다. 무사와 한 데 놓고 논할 수 있는 정도조차 되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허칠안의 머릿속에 가사 한 줄이 멋대로 떠올랐다.
<너 뒷걸음치는 거 정말이니? 네가 뒷걸음치는 동작에도 내 마음이 이렇게 아파.>
감정은 한숨을 내쉬더니 넓은 소매 속의 손을 뻗어 살며시 잡았다.
건물에서 떨어지는 종리를 잡아서 끌어올린 덕에 종리는 추락하여 사망하는 운명을 피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만약 준비된 상황이라면 설령 관성루에서 뛰어내려도 나는 다치지 않을 걸세. 하지만 방금은 이유를 모르겠으나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스스로를 구해야겠단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네……. 음, 만약 다른 사람이 나서서 나 대신 액운을 해결한다면, 효과가 없네. 자신이 직접 시련을 당해야만 하지.”
‘그래서 너처럼 운이 나쁜 놈을 도와 액운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려면 이 운 좋은 놈이 필요한 거군…….’
허칠안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정이 자신을 부른 진정한 이유를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제가 곧 경성을 떠납니다.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누군가를 데리고 다니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술 한 잔이 허공을 가르고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허칠안이 손을 뻗어 잡는 동시에 귓가에 감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걸 마시면 경성을 떠날 필요 없네.”
‘감정이 내가 왜 경성을 떠나야 하는지 안다고? 그는 역시 신수 승려가 내 몸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술은 보통 술이잖아. 그가 나를 어떻게 도울 계획인 거지……?’
허칠안은 술잔을 말끔히 비우자 추측이 섰다.
천기 차단!
술사의 주특기다.
* * *
경성과 만 리 떨어진 운주, 백제성 밖 군영.
이묘진은 비연군의 군막 안에서 가벼운 갑옷을 벗고 은색 창을 거둔 뒤 천종의 도포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막 산을 내려올 때의 모습처럼.
종이 인형 소소는 영혼들을 지휘하면서 귀중품 싸는 걸 도왔다.
“주인님, 다 쌌어요.”
층층 화려한 흰색 비단 치마를 입고, 정교하게 화장을 한 경국지색의 소소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묘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허리에 찬 향낭을 열었다. 그러자 소용돌이 모양의 연기가 솟구쳐 올라 군막 안의 귀신 십여 명을 그 안으로 빨아들였다.
“정말 안타까워요. 주인님께서 아직 4품경을 넘어설 수 없다니.”
소소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아니면 인종 제자 수준으로는 주인님의 적수가 되지 못할 텐데요.”
“원영(元嬰)이 어찌 그렇게 쉽게 수련 경지에 오를 수 있겠니.”
이묘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
그녀는 금단경(金丹境)에 무려 2년을 머무르는 중이다.
운주 비적의 난은 이미 소탕이 끝났다. 이묘진은 운주 지방군 및 금라 둘과 협공하여 산채를 뿌리 뽑았다. 가장 큰 산채 몇 곳을 평평하게 밀었다. 작은 산채는 수십 개가 된다.
물론, 운주의 비적은 발목뼈의 구더기처럼 이 토지에서 번식하여 수백 년을 생존했다. 토벌한다고 해서 다 토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되살아나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것이다.
지금의 성과는 지방 군대가 할 수 있는 한계다. 이묘진은 운주가 몇 년간은 안정될 거라는 이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일을 하러 가면 된다. 천인 간의 전쟁!
천종과 인종은 일갑자(一甲子)마다 한 번씩 진리를 논해야 한다. 이 사이에 두 종(宗)의 젊은 세대 중에 뛰어난 제자가 먼저 부딪히며 천인 간의 전쟁을 예열한다.
이묘진은 이 시대에서 천종 제자 중에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묘진의 사형으로 천지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손에는 지서 파편 칠호를 쥐고 있다.
하지만 동북 지방에 있는 그 자식은 화류계를 드나들다 연락이 끊겼다.
“안타깝게도 밉살스러운 그 자식이 추락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소씨 일가 전멸 사건을 좀 조사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소소가 갑자기 말했다.
이묘진은 자신과 함께 자란 매(魅)를 보면서 마음이 동요했다. 사실 소소의 집은 경성에 있지 않다. 그 자식이 조사하고 싶다 해도 경성을 떠나서 아주 먼 길을 다니며 여러 해 묵은 옛 사건을 조사하러 가기란 불가능했다.
소소 자신도 이 이치를 알았지만,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늘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 그녀는 마치 일가 전멸 사건을 안타까워하는 듯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뻔뻔한 남자를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감정 때문에 움직이지 않아야 해.’
이묘진은 속으로 개탄했다.
친한 벗이 세상을 떠나면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원한과 증오가 뒤엉킨다……. 인간 세상의 모든 욕망과 감정은 전부 악업이다. 그렇지 않고선 깊은 정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어찌 있겠는가.
감정이 없어야만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 * *
이묘진이 소소를 데리고 군막을 나서자 비연군 400여 명이 광장에 집결하여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40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갑옷을 벗었다.
이묘진은 병사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이때의 그들은 누구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누구는 거친 베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이는 부잣집 노인처럼 입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거지처럼 남루하기도 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원래 모습이었다.
비연군은 비정규군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구성원들 중에는 거지 조직의 제자들도 있고, 천하를 집으로 삼는 강호 유랑자도 있었으며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의적도 있다.
그들은 모두 한 사람 때문에 운주에 집결하여 군대를 조직했다. 그 사람이 바로 비연 여협객이다.
현재 이묘진이 떠나려 하자, 이 군대도 자연스레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