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질문
허칠안은 위연에게 빌붙어 야경꾼이 된 장점에 대해 다시금 깨달았다. 이곳에는 최고 수준의 공법(功法)이 있고, 가장 사치스러운 자원이 있다. 강호에서 한가로이 떠도는 자들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자원이지만, 허칠안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관상도 역시 최상품이다.
그가 이렇게 빨리 연신경에 들어설 수 있었던 데는 물론 자신의 놀라운 천부적인 재능도 영향을 미쳤지만, 위연이 준 자원과도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무사 체계는 정말이지 중노동 직업이다. 현대 지식으로 해석하자면 9품 연정경은 벽돌 운반사라고도 한다. 8품은 연기공(練氣功) 벽돌 운반사, 7품은 쉬지 않고 밤새우는 벽돌 운반사, 6품은 더 기가 막힌다. 직접 가슴으로 돌을 깨는 타입이다…….’
허칠안은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위 공, 끓일 필요 없고, 방망이로 두드릴 필요 없이 동피철골을 수련할 수 있는 행기(行氣) 법문은 없나요?”
“있네!”
위연의 대답은 허칠안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는 우선 기뻐하더니 반응을 떠보았다.
“꿈속에?”
위연이 그를 쳐다보며 몇 초간 잠자코 있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불문에 유사한 법문이 있네. 어떤 이가 말하길 무사의 동피철골경은 불문의 금강경(金剛境)이 발전․변화한 거라 말하더군. 또 어떤 이는 불타가 무사 체계를 참고하여 불문 체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도 말하네. 이를 무승(武僧)이라고 하네.”
‘다시 말하면 무승 체계에 끓이지 않고도 동피철골로 수련할 수 있는 법문이 있다는 것이군. 이거 쉬워지겠다. 나중에 육호에게 수작을 걸어 좀 빼 먹어야겠다…….’
허칠안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순진한 미소가 번졌다.
* * *
황제의 침전에서 원경제는 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토납하고 있었다. 침상 가장자리에는 단향목을 태우고 있었는데 가늘고 곧은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늙은 태감은 한쪽에 서서 눈을 낮게 깔고 어떠한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이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환관 하나가 침전 밖에서 멈춰 섰다.
원경제가 서서히 경지로 들어서자, 늙은 태감은 종종걸음으로 문 앞에 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무슨 일인가?”
“의부님, 도수께서 영보관의 도사를 보내어 폐하를 모셔 오라 이르셨습니다.”
환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늙은 태감은 어리둥절하며 손을 꼽아 시간을 계산하더니 속으로 말했다.
‘날짜가 틀리지 않았다. 매월 요맘때는 국사께서 몸이 편치 않아 문을 닫고 수양하시는 시기다.’
폐하조차 방해하지 못하기에 침전에서 홀로 토납하실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물러가게.”
늙은 태감은 환관을 내쫓은 뒤 느린 걸음으로 침상 가장자리로 돌아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폐하…….”
원경제가 눈을 떴다.
늙은 태감이 말했다.
“국사께서 사람을 보내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도를 깨치러 오라 하십니다.”
원경제는 좀 놀라더니 고요한 눈이 번쩍였다. 그 광채가 전에 없이 밝았다.
“가마를 대령하거라. 속히 가자꾸나!”
국사는 매달 업화로 몸을 불사 질러 모든 욕망과 감정이 끊임없이 들끓는다. 그래서 요 며칠간 국사는 문을 닫고 아무도 영보관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원경제는 알았다. 언젠가 국사가 자신과의 쌍수를 동의한다면 그건 분명 요 며칠일 거라고.
원경제는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비록 그는 지금 흑발이 다시 자라고 신체와 정신이 장년처럼 아주 건강하지만, 여전히 불로장생할 수는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으면 국사와 쌍수를 하는 방법뿐이다. 그녀의 영적인 기운을 가로채야만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하며 대봉의 영원한 황제가 될 수 있다.
* * *
원경제는 침전을 나와 용련(龍輦)에 오른 뒤 길을 재촉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영보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국사를 만났을 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전에 숙제하던 것처럼 정말 단순히 좌선하고 토납하자고 자신을 초대했다.
국사는 미간에 주사 한 알을 장식한 그림 같은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앉으세요.”
새까맣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연화관(蓮花冠)으로 묶으니 농염하고 새하얀 얼굴이 도드라졌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늘어지지 않아 아주 깔끔했다.
원경제는 달갑지 않아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국사께서 짐과 쌍수하길 원치 않는데 왜 하필 이때 짐을 초대한 것이오?”
낙옥형이 눈을 감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 달에는 업화로 몸이 타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빈도가 폐하께 오래 사는 비법을 전수해 드리기로 약조하였으니 당연히 마음에 새기고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지요.”
원경제는 잠시 묵묵히 있더니 그의 부들방석에 앉았다. 그는 바로 눈을 감고 토납하지 않은 채 말했다.
“국사, 회춘단(回春丹)의 약재가 이미 다 준비되었으니 내일 짐이 사람을 파견해 영보관에 보내겠소.”
낙옥형은 눈을 뜨고 원경제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탄식했다.
“폐하께서는 흑발이 다시 자라고 토납하며 수련하신 지 여러 해가 지나 이미 만병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사계신단(四季神丹)을 다시 제련하실 필요가 없어요.”
원경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토납했다.
원경제는 일 년 사계절 내내 사로대단(四爐大丹)을 제련한다. 각각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네 가지 계절에 단약이 완성된다.
각 화로의 대단은 가치가 매우 높다. 한 군현의 3년 치 세수(稅收)와 맞먹는데 그것도 부유한 지역에만 해당한다.
사로대단 외에도 삼십육로소단(三十六爐小丹)이 있다. 방대한 양의 은자가 소모되어 듣는 사람이 깜짝 놀라게 한다.
이 은전은 호부 금고에서 돌려쓰지 않는다. 모두 원경제 개인 금고에서 지출하는 것으로 원경제 금고의 은전이 어디서 났는지는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두 알고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 * *
원경제가 국사와 도를 깨치니 이미 해 질 녘이었다.
원경제는 기분이 좋지 않아 침전으로 돌아간 뒤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복비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참지 못하고 말했다.
“태감, 가서 내각에 성지를 내리라고 이르거라. 복비 사건을 차일피일 미루다 이미 열흘이 지났다. 삼사에서 책임지고 이틀 내로 결과를 내라고 명하거라.”
원경제가 내놓으라는 건 ‘황후가 유죄인지 아닌지’에 관한 결과였다.
“네, 폐하.”
늙은 태감은 약간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오늘 허칠안이 또 황궁에 왔습니다.”
원경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또 뭘 하러 온 것이냐. 내일 야경꾼 관아로 사람을 보내 금패를 거두거라.”
황후가 이미 죄를 인정했고, 복비 사건도 종결 직전이니 그 동라가 다시 황궁에 올 필요는 없었다.
늙은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오늘 노비를 불러 말씀을 물으실 겁니까?”
원경제가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거라!”
늙은 태감이 침전에서 물러난 지 일각도 채 되지 않아 허칠안을 감독하는 환관을 데리고 들어왔다.
공공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힌 채 얌전하게 서 있었다.
원경제는 책상에 앉은 뒤 높은 곳에서 환관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늘 허칠안이 황궁에 와서 무엇을 조사했느냐?”
“오늘 허 대인께서는 노비를 데리고 어약방을 드나든 자들의 명단을…….”
공공은 생동감 있게 명단대로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 나갔고, 원경제는 어두운 눈빛을 띤 채 잠자코 있었다. 열심히 듣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명단의 가장 마지막 사람은 경수궁에 있는 귀비마마 곁의 궁녀였는데 허 대인께서 노비를 데리고 물어보러 갔으나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원경제는 여기까지 듣더니 굳어진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의 말이 주의를 끈 듯했다.
“허 대인은 어쩔 수 없이 소음궁에 임안공주마마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공공은 머릿속에 허칠안이 당부한 말을 떠올리며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경수궁의 랑아를 심문한 뒤 허 대인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졌습니다. 마치 더는 머무르기 싫다는 듯 차조차 마시지 않았고, 노비를 데리고 황급히 떠나려는데……. 경수궁을 나서기 전에 랑아가 되돌아오더니 귀비마마께서 뜰 안으로 들어와 대화를 나누자며 허 대인을 초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복비 사건을 해결해 주어 감사하다며 말이죠. 허 대인은 본래 만나러 가길 원치 않으셨지만, 랑아가 억지로 그를 붙잡았습니다.”
환관은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런 뒤 귀비마마께서 모든 사람을 물리치셨고, 노비 역시 방에 들어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뜰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원경제의 두 눈이 완벽하게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환관의 말을 끊고 그를 주시하면서 몇 초 동안 침음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모든 사람을 물리쳤다고?”
“아뢰옵니다, 폐하. 그렇습니다.”
“그들은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던가?”
환관이 말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 서서 허 대인과 귀비마마께서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계신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경제는 오른손으로 입술을 받치고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말했다.
“자네가 방금 말하길 허칠안이 랑아를 심문한 뒤에 안색이 매우 안 좋아졌다고?”
늙은 태감은 환관이 대답하기도 전에 낯빛이 살짝 변하더니 엄하게 꾸짖었다.
“이놈아,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더냐?”
보고할 때는 절대로 주관적인 감정을 섞지 않아야 하고, 폐하를 오도하려 하면 안 되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했다.
원경제는 손짓하여 화가 난 늙은 태감의 말을 끊었다.
공공은 상황을 지켜보자니 배짱이 좀 생겼다.
“확실히 안 좋아 보였습니다.”
원경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허칠안이 가고 싶어 했는데 랑아가 억지로 붙잡았다고?”
“……그렇습니다.”
환관은 원경제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황명을 받들어 일을 처리하는 것이니 맡은 바 임무라고 하시면서 마마께서 고마워하실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랑아는 허 대인께서 만약 마마를 뵈러 가지 않으면 경수궁을 나갈 수 없을 거라고 말했고요.”
원경제는 여기까지 듣더니 눈에서 정광(精光)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이번에 그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침전 안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늙은 환관과 어린 환관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원경제를 방해할까 두려운 마음에 숨을 죽였다.
드디어 원경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칠안이 떠날 때…… 기분이 어떠했는가?”
이 말은 허칠안이 떠나기 전에 당부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환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하는 척하더니 그때서야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로 궁을 나가셨습니다.”
그는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덧붙였다.
“전에 궁을 나설 때 허 대인께서는 노비와 몇 마디 한담을 나누시곤 싱글벙글 가셨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원경제는 손을 내저었다.
“물러 가거라.”
늙은 태감이 즉시 말했다.
환관이 침전에서 물러난 뒤 원경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한참을 앉아 있더니 말했다.
“가거라. 경수궁의 랑아를 짐에게 데리고 오너라.”
환관은 대답하고, 천천히 침전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