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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91화 (291/712)

291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다 (1)

이 순간, 허칠안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뒤덮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망기술이 탐지해 낸 결과는 그의 마음속에 별안간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가지 생각이 서로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재빨리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첫째, 랑아는 사실 녹두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좋아한다고 한 이유는 진 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다.

둘째,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망기술이 가려내지 못했다는 건 그녀에게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다는 의미였다.

첫 번째 가능성은 당분간 판단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 가능성이 맞다면 허칠안은 두피가 저리고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될 것이다.

경수궁의 궁녀한테 어찌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겠는가?

그녀가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를 몸에 지니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녀가 요 며칠 법기를 써서 암암리에 기만행위를 해야 하지 않는 이상 혹은 자신이 조만간 심문당할 걸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녀는 며칠간 무얼 한 것일까?

어약방에 갔지!

‘다른 사람 대신 희생당한 건가? 사실 눈앞에 서 있는 랑아가 외모를 바꾸어 변장한 외부인이라면……?’

허칠안은 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탈을 썼다면,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고단수 강자의 ‘변환(變幻)’ 기술은 더욱 불가능하다. 이곳은 황궁이다. 절대 고단수 강자가 침입할 수 없는 곳이다.

“허 대인?”

랑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실눈을 뜬 채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는 허칠안을 주시했다.

‘쉽사리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어쩌면 그녀는 녹두떡을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다.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허칠안은 당황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망했다’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랑아를 주시했고,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랑아 낭자는 진 귀비마마의 주변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성깔이 좀 있는 듯하오. 본관은 조정을 위해 피를 흘리며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적도 있는데 랑아 낭자의 태도가 이렇게 오만불손하니 혹 본관에게 불만이 있는 것이오?”

랑아가 그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허 대인, 생각이 지나치십니다. 노비는 오만불손하지도 않고 대인께 불만도 없습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예를 갖추며 말했다.

“노비는 귀비마마의 시중들러 서둘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문지방을 넘어 떠났다.

허칠안은 궁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주 무거워졌다.

방금 망기술의 피드백을 보아하니, 랑아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칠안은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감추면서도 랑아가 펄쩍 뛰게끔 무덤을 파기 위해 가장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우선 랑아는 이번 심문을 매우 귀찮아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좋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최대한 빨리 내쫓고 싶어 했다……. 허칠안은 이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사람은 ‘나 미워하지?’라는 둥의 질문을 받으면 예의가 없어 보일까 봐 무의식적으로 얼버무리면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망기술이 준 피드백에 의하면 랑아의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기에 거짓말을 탐지하지 못했다.

이로써 이 궁녀가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를 지녔다는 점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제 발 저려 이런 수단으로 용의주도하고 교묘하게 심문을 피하려 했다는 걸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여기까지 이르자 생각할수록 골치 아픈 실체 하나가 드러났다.

배후의 그자는 그녀다!

‘진 귀비?!’

그 순간, 허칠안의 머릿속에 수많은 세부 사항과 단서들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페로몬이 들끓는 호숫물처럼 분비되었다.

‘이건 정말 나도 생각지 못했다……. 이곳을 얼른 벗어나서 위 공과 회경에게 내 발견을 보고해야겠어…….’

허칠안은 한시도 경수궁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마치 칠흑 같은 한밤중에 어느 야산에 있는 여관에 들어갔다가 알고 보니 이곳이 귀신의 집이라는 걸 알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접대원은 악귀라서 얼굴에 눈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온통 썩은 얼굴 위를 구더기가 마구 기어 다닌다.

탁자 위에 있는 음식물은 구더기, 똥, 썩은 고기, 사람 머리…….

허칠안은 무심결에 귀신의 집의 비밀을 꿰뚫어 본 산 사람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저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악귀가 반응하기 전에 얼른 떠나고 싶을 뿐이다.

“다 물어봤네. 공공, 우리 돌아가세.”

허칠안은 심호흡을 한 뒤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네!”

환관은 아무런 의심 없이 아주 가볍게 대답하더니 허칠안의 뒤를 따라 편청 문턱을 넘었다.

‘잠깐!’

허칠안은 발걸음이 갑자기 경직됐다. 만약 진 귀비가 배후의 그자라면, 황후가 당한 모든 일은 인과응보 격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라 할 수 있다. 직위를 박탈당하고 냉궁에 들어가는 것 말이다.

태자가 폐위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태자가 어찌 되든 허칠안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신경 쓰는 사람은 임안이다.

그녀는 오늘 사건이 곧 해결되어 태자가 무죄로 석방될 일만 남았다고 기뻐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장차 자기 손으로 직접 그녀의 어머니를 깊은 연못으로 밀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 일을 알면 아마 나를 증오할 것이다.

회경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임안 같은 소녀의 멘탈이 더 약하다. 어머니는 냉궁에 갇히거나 심하게는 목이 매달리거나 독이든 술을 받을 가능성 모두 존재한다.

귀비와 황후는 황제의 총애를 떠나서 직위만 놓고 봐도 천지 차이다.

황후는 황제의 정실이기에 어쩌면 비(妃) 한 명 죽였다고 사약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귀비는 다르다. 귀비에게 이런 대우를 하겠는가?

“허 대인, 허 대인?”

환관은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는 허칠안을 보다 참지 못하고 몇 차례 불렀다.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쌍방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여전히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는 동시에 좀 곤혹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배후의 그자가 진 귀비라는 사실을 안 후에도 여전히 모든 의혹을 풀지 못했다.

‘우선 돌아가자……. 이 일은 우선 위연에게 말하지 않아야겠다. 임안을 위해 나를 위해 다시 한번 여러모로 따져 봐야겠다…….’

* * *

그가 마당 입구에 이르자 문지기 환관이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허칠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금세 감정을 추스른 다음 온순하고 공손하게 굴었다.

“참, 자네가 내 은자를 받고 안으로 들어간 뒤에 통전을 해주었나?”

허칠안이 문지기 환관 앞에 멈췄다.

“물론이지요!”

문지기 환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소인이 통전했으나 랑아 누이가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노비는 욕심이 생겨 은표를 돌려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대인께 사정을 설명드리기 어려워서 그만…….”

‘그래서 그녀가 준비할 수 있었던 거로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나려는 참에 뒤에서 갑자기 랑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대인!”

“랑아 낭자.”

허칠안은 등 근육을 살며시 팽팽하게 조이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스럽게 돌아섰다.

“무슨 일이오?”

아름다운 궁녀가 멈춰 서서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 복비 사건을 해결하여 태자 전하께서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된 점에 마마께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게 잠깐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허칠안은 막 느슨해진 근육을 다시금 팽팽하게 조였다. 어쩌면 ‘도둑이 제 발 저려’ 머리털이 곤두서는 건지도 몰랐다.

“본관은 아직 중요한 일이 있는 터라 남기에 마음이 편치 않소. 복비 사건은 황명을 받들어 처리하는 것이니 본관의 맡은바 임무요. 마마께서 고마워하실 필요 없소.”

그는 지금 진 귀비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허 대인께서는 정말 예의 바르시군요.”

랑아는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더니 농담하듯 말했다.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허 대인께서 만나러 오지 않으면 경수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XX!!’

허칠안은 공연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은밀하게 원신을 발산해 주변을 감지하여 ‘위험 신호’가 없다는 피드백을 확인한 뒤에야 한시름 놓았다.

‘나는 조금 전 발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랑아 역시 단서를 눈치채지는 못했으니 내가 이미 그녀의 계략을 간파했다는 걸 진 귀비가 알기란 불가능하다. 아마 단순히 나에게 감사하는 시늉을 하고 싶은 거겠지…….

한 발짝 물러서서 말한다면 이곳은 황궁이다. 밖에는 대내시위(大內侍衛)가 있고, 안에는 임안 그리고 곁에는 원경제가 나를 감독하기 위해 파견한 밀정도 있다. 진 귀비도 이곳에서는 감히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옥춘 둘을 합쳐 놓은 수련 경지에 이르렀으니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좋소. 번거롭겠지만 랑아 낭자가 길을 안내해주시오.”

허칠안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환관에게 말했다.

“자네도 따라오게.”

* * *

두 사람은 연두색 궁장을 입은 랑아 뒤를 따라 바깥뜰의 회랑을 지나 뒤뜰로 들어갔다.

경수궁의 안채는 정교하게 지어진 2층짜리 각루였다. 겹겹이 쌓인 검은 기와와 높게 솟아오른 처마가 있었으며, 네모난 용마루에는 열두 마리의 첨수(檐獸)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2층에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요망대가 있었다. 그래서 꽃이 피는 따뜻한 봄이나 공기가 상쾌하고 하늘이 높은 가을에 술을 마시고 풍경을 감상하기에 적합했다.

허칠안은 의도를 알아차리고 뜰 가운데에서 멈췄다.

랑아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허칠안은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를 포착했다.

“마마, 허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진 귀비는 ‘응’하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허 대인과 할 말이 좀 있으니 너희들은 모두 바깥뜰로 물러가거라.”

그런 뒤 임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애교스럽게 말했다.

“네? 임안도 가야 해요? 저는 안 갈래요, 안 갈래요.”

“임안 착하지.”

“……흥.”

‘……진 귀비, 이게 무슨 뜻이지? 왜 다른 사람을 물리치는 거지? 무슨 말이길래 밝은 데서 얘기할 수 없단 말인가?’

허칠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어 임안과 방 안에 있던 궁녀 둘이 문턱을 넘어 허칠안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임안이 은근슬쩍 혀끝을 내밀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따가 본 공주에게 보고하는 거 잊지 마.”

환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몰라 하는 와중에 랑아의 말이 들려왔다.

“마마께서 다른 사람은 다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너는 귀가 없니?”

“아이고.”

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더니 돌아서서 그들을 따라갔다.

“잠깐.”

허칠안은 그를 불러 세워 꾸짖었다.

“폐하께서 나를 감독하라고 자네를 파견하였으니 자네는 ‘흠차대신’이라는 자각을 갖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야 할 것이야.”

그리고 곧바로 큰 소리로 말했다.

“본관은 필경 신하이니 귀비마마와 사적으로 만나기는 불편하오. 그리고 이 공공은 폐하의 의도를 받들어 본관을 감독할 책임이 있소.”

그는 겉으로는 랑아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사실 안에 있는 진 귀비에게 한 소리기도 했다.

몇 초 침묵이 흐르더니 방안에서 진 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밖에서 기다리게.”

“좀 멀리 떨어져 서게…….”

허칠안은 손을 흔들었다.

환관은 고분고분하게 멀리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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