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86화 (286/712)

286화. 의학 상식 (2)

일각 후, 허칠안은 마당에서 두 손을 물통에 넣고 끊임없이 비볐다. 끊임없이 문지르다 보니 네모난 쥐엄나무 열매가 점점 작아졌다.

늘씬한 키에 흰색 궁장을 입고 있는 장공주 회경이 옆에 서 있었다. 찬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티 없이 맑고 청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얼마나 더 씻으려고?”

회경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껍질이 한 층 벗겨질 때까지 씻을 겁니다.”

허칠안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다 그 늙은 상궁 탓이에요. 별 능력도 없으면서 제 은자 5전(錢)을 탐내다니. 마마께서 제게 정산해 주셔야 해요.”

회경은 그의 푸념을 주체적으로 무시하고 물었다.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말했는데 무슨 근거로?”

“많습니다. 여자가 임신한 후에는 배와 허벅다리에 불꽃 모양의 잔주름이 생기는데 이걸 임신선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방금 그 늙은 상궁은 어째서 발견하지 못한 거지?”

“몸조리를 잘하면 임신선은 사라집니다. 황소유 몸의 임신선은 아주 옅은 데다가 시체가 물에 불었으니 임신선을 더 분별하기 어려웠겠죠. 소직조차 확답을 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데 늙은 상궁도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허칠안은 손을 문지르며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어제 검시할 때 제가 마마께 황소유 가슴 아래의 흉터를 보여드렸지요…….”

회경은 좀 민망했다. 이 자식은 늘 그녀 앞에서 거침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그녀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공주다.

“그럼 왜 방금은 또 직접 검시하려고 한 거지?”

회경이 물었다.

허칠안은 침묵했다.

여인이 출산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임신선 외에도 자궁 경부의 모양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너무 학술적이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처음에 그가 허영음에게 다 자란 남자아이와 다 자란 여자아이의 차이를 가르칠 때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어른과 아이에게 모두 적합한 방식을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허칠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공주마마, 의서(醫書)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회경이 그를 쳐다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어제 검시할 때 네가 갑자기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하여 본 공주가 네 맥을 짚으면서 의술을 좀 안다고 말했잖니.”

“아아, 그럼 간단합니다.”

허칠안이 손바닥을 마주치고 웃기 시작했다.

“아직 출산하지 않은 여인은 태궁구(胎宮口)의 모양이 ‘O’자라면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는 여인은 ‘一’자 모양으로 바뀝니다.”

총명한 회경공주는 몰랐던 사실을 이 설명으로 갑자기 깨달았다. 다만, 회경은 더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사황자는 의술에 정통하지 않은 터라 아리송해하며 개탄했다.

“허 공자는 박학다식하구먼.”

이 지식 포인트는 허칠안이 전생에서 치정 사건에 얽혔을 때 안 정보다. 죽은 사람은 양다리를 걸친 인간쓰레기였다.

그래서 그는 이 지식 포인트를 챙겨 나올 수 있었다.

“제가 사람을 시켜 황소유를 조사해 보았는데요, 그녀는 원경 28년에 궁에 들어왔습니다…….”

허칠안이 두 분 전하를 쳐다보았다.

암시된 뜻은 누군가 원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원경 28년에 늙은 황제는 진작에 금욕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그는 경국지색의 황후, 당대 제일의 진 귀비조차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궁녀 따위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누구란 말인가?”

사황자가 생각에 잠겼다.

허칠안은 묵묵히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 뭐 하러 본 황자를 보는 건가?”

사황자는 상대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허칠안은 시선을 거두고 분석했다.

“이 사람은 사실 아주 찾기 쉽습니다. 그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죠. 하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이 내궁을 드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종실이 이 점에 부합하지요. 둘, 겁이 없고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궁녀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겠지요.”

이때 갑자기 회경이 끼어들었다.

“황형, 본 공주가 허 동라와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사황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친여동생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겠네.”

회경은 사황자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원경제의 눈과 귀인 환관을 차갑게 흘겨보았다.

“꺼져라.”

환관은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나갔다.

회경은 모든 사람을 내보낸 뒤 허칠안을 주시하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허 대인, 황소유가 자결하고 어마마마가 죄를 인정한 건 아마 이 남자와 관련이 있는 듯해.”

허칠안은 초점 없이 풀린 눈동자로 통 속의 물을 튀기며 말했다.

“공주마마께서는 너무 주관적이십니다. 사건 수사는 반드시 냉정해야 합니다. 단서에 근거하여 가설을 세워야 하지요. 저희는 지금 황소유가 일찍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남자가 폐하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겠지요. 황소유가 자살하고, 황후마마께서 그녀를 구하고 죄를 인정한 게 모두 그 남자 때문이라고 치겠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부합해야 합니다. 이 남자는 황후마마와의 관계가 친밀하되 폐하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내궁을 드나들 수 있지만, 만약 내궁을 어지럽히는 일을 저지른다면 폐하께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를 벨 것입니다. 사황자께서는 폐하의 적자입니다. 궁녀를 괴롭혀 폐하께서 아무리 화가 나신다 해도 그를 죽일 정도는 아닙니다. 황후께서는 자연스레 ‘죄를 인정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필요 없기 때문이지요.”

그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회경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마마, 마음속에 떠오르는 후보가 있으십니까?”

회경은 찡그린 얼굴을 하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한 사람이 생각났어.”

아니나 다를까, 명색이 딸인 회경이 황후가 이렇게 중시하고 기꺼이 냉궁에 갇히면서까지 지키려 하는 남자에 관해 갈피를 잡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만약 내가 셜록 홈즈라면 회경 너는 왓슨이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캐물었다.

“누구입니까?”

본래도 고고한 회경의 얼굴에 점점 더 표정이 사라졌고, 냉담하고 거리감이 드는 어조로 두 글자를 내뱉었다.

“국구(國舅)야.”

‘국구(國舅)’라는 두 글자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처럼 허칠안의 속을 뻥 뚫었다. 모든 단서를 관통시켜 드디어 복비 사건의 맥락이 정리되었다.

“이 국구는, 아버지는 무리겠고, 황후마마의 친남동생이거나 친오라버니겠지요?”

허칠안이 혀를 내둘렀다.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를 둔 친남매라는 사실만이 황후가 죄를 뒤집어쓰더라도 그를 보호할 수 있게 한다.

회경공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국구는 어마마마의 친남동생이야.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부잣집 공자로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이 미색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봉서당의 궁녀 모두 그를 아주 싫어해. 매번 그가 어마마마를 뵈러 갈 때마다 항상 그녀들한테 집적거렸거든.”

그녀의 말에서 친외삼촌에 관한 혐오와 불쾌감이 느껴졌다.

“본 공주가 지금에서야 떠올랐는데 국구가 예전에 가끔 어마마마를 뵈러 궁에 들어왔거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발길이 뜸해졌어. 지금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구나.”

종실을 제외하고 황후, 황귀비, 귀비의 가족들은 미리 궁에 보고하기만 하면 그녀들을 보러 궁에 들어올 수 있었다.

허칠안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두 손을 물통에 담그고 45도 각도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궁녀 황소유가 국구 나리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다. 그래서 떨치지 못하고 자살하려 했지만, 황후가 그녀 곁에 심어놓은 사람이 제때 발견하여 그녀를 구해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회경은 정반대로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가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럼 유산은? 유산도…… 태궁구가 닫혀 있나? 궁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속일 수 없어. 하지만 황소유가 지금까지 버텼다는 건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걸 의미해.”

허칠안은 ‘음’하고 소리를 냈다.

“서너 달 되었을 때 임신선이 생기고, 유산한 후에 태궁구가 닫혔을 겁니다. 저는 황후께서 아이를 지웠다는 데에 더 기웁니다. 아이는 태어나면 안 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국구께서는 끝장나지 않습니까.”

회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궁녀 황소유가 마음에 앙심을 품고 배후의 그자와 손을 잡아 겉으로는 태자를 모함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황후와 위 공을 넌지시 가리켰다는 거네?”

“만약 그렇다면 황소유는 황후마마를 뼈에 사무치도록 원망하겠군요. 음, 그것도 맞습니다. 아이를 죽인 원수 아닙니까. 하지만 황소유가 과연 그 아이를 아끼는 마음에 그랬을까요? 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뭘 묻고 싶은 거지?”

“마마께서는 역시 총명하십니다……. 황후마마께서는 왜 황소유를 죽이지 않고, 이렇게 일을 해결하시는 걸까요?”

“어마마마께서는 마음이 어질어서 모질지 못하셔.”

회경은 유감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황후를 딱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한편으로는 약한 면모에 화가 난 듯 보였다.

‘이렇게 보니 황후도 마음이 여린 여인 같군……. 회경이었다면 아마 그때 황소유를 죽여 후환을 영원히 없애버렸겠지……. 회경이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인정이다.’

허칠안은 아래턱을 쓰다듬고 싶어 손을 들었는데 반 정도 들다가 멈추고, 다시 물통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럼 사건은 명백해졌습니다. 황후마마께서도 틀림없이 복비 사건을 주시하고 계실 겁니다. 복비를 살해한 사람이 황소유라는 걸 알아차린 그 날, 본관이 황후마마를 찾아가 질문했었지요. 그녀는 배후의 그자가 국구를 이용하여 그녀를 음해할 계획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국구를 희생시키든지 자신을 희생시키든지 말이죠. 그러고 보니 황후마마께서는 정말 부제마(*扶弟魔: 남동생 바라기)시군요.”

회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부…… 무슨 뜻이냐?”

“쓸모없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냉궁에 갇히시다니요. 허나 그녀가 폐위되면 사황자께서는 더 이상 적자가 아니니 진정으로 장차 제위와는 인연이 없어집니다.”

회경은 그를 쳐다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내궁의 비빈들과 냉궁에 있는 어마마마와 무슨 차이가 있겠니?”

“그것도 그렇습니다.”

허칠안은 회경의 눈빛을 보았다. 공주마마가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원경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었다.

“어마마마께서 내궁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건 황후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야. 황후의 지위를 국구의 목숨과 바꾸는 것 역시 진심으로 원하는 일일 테고. 하지만 사황형은 분명 원망하겠지.”

“그래서 마마께서 사황자를 따돌리신 거군요?”

회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노란색 비단 옷감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원경 31년 봄은 아마 궁녀 황소유가 정조를 잃은 때일 겁니다……. 아니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황소유가 자결한 건 4년 전인데 원경 31년은 5년 전입니다. 원경 37년은 이제 막 시작했으니 저희 우선 계산하지 않을게요. 상궁이 증언한 건 원경 36년 기준이니까.”

허칠안은 별안간 미간을 찌푸렸다.

회경공주는 허칠안의 말뜻을 이해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에 따라 추산하면 유산을 강요당한 후에 자결한 거야. 어마마마가 황소유 복중의 태아를 없앤 뒤 그녀를 돌볼 수 있도록 하아를 보낸 거야.”

“확실히 그렇네요. 저희가 조사한 결과와 대응됩니다. 하지만 마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임신과 출산은 내궁에서 숨길 수 없는 일입니다. 일개 궁녀인 황소유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 말이죠.”

“아바마마는 아니겠지?”

회경은 고개를 저었다.

이에 허칠안은 동의 의사를 표했다.

원경제의 장생을 향한 갈망과 수련을 향한 집착을 봐서는, 궁녀 하나한테 임행할 가능성은 절대로 없어 보였다.

“저희 국구 나리께 좀 여쭤보러 가요. 여기에서 엉터리로 추측해 봤자 의미 없습니다.”

허칠안의 제안에 회경공주도 찬성했다. 그녀 역시 그러고자 했던 듯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