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의학 상식 (1)
회경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허칠안을 따라 빛깔과 광택이 선명하지 않은 노란색 비단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절박함이 섞인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뭘 발견한 거야?”
허칠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현묘한 이치가 바로 이 천에 있다고 짐작됩니다. 하지만 어떤 기를 감추고 있는지는 저도 모르지요.”
회경의 아름다운 눈에 ‘?’가 스쳤다. 그녀는 그가 방금 왜 그렇게 박력 있게 얘기한 건지 납득가지 않았다.
노란색 비단에 시선이 꽂힌 위연이 말했다.
“이건 궁에서 정3품 이상의 비빈만이 쓸 수 있는 옷감이네.”
궁중의 비빈들에게도 서열이 있다.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건 황후, 황귀비, 귀비다. 복비처럼 고정된 호칭이 있으면 정1품이다.
밑으로 부인, 귀희(貴姬), 소의(昭儀) 등이 있는데 모두 정3품 이상이다.
후궁 미녀들의 등급 구분은 허칠안의 지식 사각지대를 건드렸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가 물었다.
“그러하니 궁녀에게 어찌 이런 옷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황자가 대답했다.
“귀인이 하사했거나 훔친 것이지.”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연은 세월이 좀 흘러 빛깔과 광택이 선명하지 않은 노란색 비단을 받아 쭉 살펴보더니 말했다.
“원경 31년 봄이라…….”
“이 해에 무슨 일이 발생했습니까? 소직이 말씀드리는 건 궁 안에서요.”
허칠안은 기지를 발휘하여 그해 큰 사건이 발생했는지 직접 물었다.
이건 그가 지난번 황후의 폐위에서 얻은 영감이다.
원경 13년, 황후는 냉궁에 가둬졌다.
이듬해 위연이 출정하여 북방 오랑캐를 통렬하게 쳐부수고 승리하여 돌아왔고, 황후는 냉궁에서 나왔다. 허칠안은 만약 이 일을 알지 못했다면 머리를 쥐어 짜내도 원경제가 옛정을 생각하여 황후를 사면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원경 31년이라고 수놓아진 궁녀 황소유가 남긴 옷감은, 어쩌면 그해 기사(紀事)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위연과 회경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좀 더 생각해 보십시오.”
허칠안은 달갑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두 공부벌레가 손을 맞잡고 부인하니 가망이 없다고 봐야겠군……. 하긴, 일개 궁녀가 큰 사건에 연관될 리가 없지.’
허칠안은 다소 흥분하여 혀를 핥았다.
복비 사건은 이제 드디어 어려운 단계로 접어든 셈이다. 이전의 단서는 모두 배후 검은손이 일부러 흘렸기 때문에, 사건 자체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설령 그가 사건을 인계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 역시 밝혀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즉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의 차이다.
그리고 지금, 배후 검은손의 이끌림에 벗어나 드디어 허 색마가 실력을 뽐낼 차례가 됐다.
‘잠깐…….’
허칠안의 머릿속에 갑자기 번개가 번쩍였다. 그는 자신이 간과했던 세부 사항이 떠올랐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위 공, 소직이 가르침을 청할 일이 있습니다.”
위연은 자신이 총애하는 동라의 진지한 태도를 보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부드럽게 말했다.
“말하게.”
“소직이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복비 사건이 줄곧 지체되고 있었죠. 삼사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조사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만약 소직이 정말 죽었다면 이 사건은 태자가 한 짓으로 확정됐을까요?”
허칠안은 맨 처음에 이 사건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삼사가 인계하길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마침 다시 살아나서 이 뜨거운 감자를 받은 것이다.
그날 태자를 만났을 때 대리사경 역시 그가 앞잡이라고 은근히 비웃었다.
위연은 다시 찻잔을 받쳐들고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 폐하께서 황후를 폐위하신다고 하니 삼사와 제공들 모두 동의하지 않았네. 먼저 삼사의 승인을 거친 뒤에 폐후에 관해 다시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지. 폐하께서 폐위하겠다고 말씀하신다고 폐위해서는 안 되지.
제공들의 생각은 세 가지에 지나지 않네. 하나, 황후를 폐위하는 건 중대한 사안이니 절차를 밟아야지 경솔해서는 안 된다. 둘, 제공들은 이렇게 갑자기 닥쳐오는 사달을 싫어하네. 그들의 조당 장악력이 부족해 보이게끔 하기 때문이야. 셋, 그들은 황후를 폐위한 후 그 뒷일을 따져볼 시간이 필요하네.”
‘이래서 군주와 신하는 자고로 적대 관계라고 말하는 거군…….’
허칠안은 이해했다.
“그래서 태자 일 역시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의 일은 국본과 관련되네. 폐하께서 3일이라고 말씀하시면 3일인 것인가? 삼사가 조사하지 않은 게 아니라 폐하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네.”
“……그럼 사실 제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군요. 설령 제가 돌아오지 않았다 해도 며칠 지나면 누군가 이 사건을 맡았을 테니, 그 후에는 배후 진범이 주는 단서를 좇아 서서히 황후마마를 범인으로 지목했겠군요.”
허칠안의 말에 사황자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위연은 어떤 생각에 잠긴 듯했다.
“네가 어젯밤에 자객을 맞닥뜨린 이유는 배후의 그자는 네가 계속해서 조사하길 바라지 않아서겠구나. 그는 두려운 거야.”
회경공주가 일침을 가하며 허칠안 마음속의 추측을 말로 내뱉었다.
“두렵다니?”
사황자는 이해되지 않았다.
“허 동라가 다시 살아난 일은 배후에 있는 자의 예상을 뛰어넘었겠지요. 게다가 그의 명성이 너무 멀리 퍼져 배후의 그자는 그가 계속해서 조사하는 게 두려웠을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단서가 어마마마를 가리키자 배후의 그자는 허 동라를 제거할 작정으로 즉시 살수를 보낸 겁니다.”
회경이 친오라버니에게 설명했다.
“그렇구나.”
사황자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어떻게 조사하지?”
위연과 회경이 말없이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모두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사건 수사는 전문 인사에게 맡겨야 했다.
허칠안이 자신의 IQ가 아인슈타인과 비교할 만하다고 자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원자 폭탄을 제조하는 이런 작은 일에 전혀 재능이 없어서 전문적인 과학자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명탐정 허칠안은 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관을 열어 시신을 검시하겠습니다.”
* * *
사황자와 회경공주는 허칠안을 데리고 황궁으로 들어갔다. 마차가 궁 안으로 들어서자 허칠안이 발을 젖히고 제의했다.
“아무래도 그 공공에게 알려야 할 듯합니다. 어쨌거나 이건 폐하께서 정해주신 규칙이니까요.”
사황자는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허 대인은 역시 규율을 준수하는 자군. 대봉과 아바마마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해.”
‘오버하지 마. 나는 단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니깐…….’
허칠안은 감동에 겨워 말했다.
“사황자께서는 안목이 참 좋으십니다.”
회경은 다른 마차에 있었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공주와 젊은 남자가 함께 마차에 타는 일은 분명 허용되지 않았다.
만약 눈에 거슬리는 사황자 처형이 없었다면 허칠안은 어쩌면 뻔뻔하게 공주마마와 함께 타도 되는지 요구해 봤을지도 모른다.
사황자는 즉시 사람을 보내 통지하였고, 일각 뒤 옅은 남색의 비어복(飛魚服)을 입은 공공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허칠알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 대인, 사건은 이미 끝난 거 아닙니까?”
허칠안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금패를 도로 거두시지 않는 이상, 본관은 계속해서 조사할 것이네.”
“알, 알겠습니다…….”
환관은 사실 이 공무를 더는 맡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몇 년은 더 살고 싶었다.
하지만 회경과 사황자 모두 곁에 있으니 그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허칠안의 뒤를 따랐고, 그와 함께 빙고로 갔다.
빙고에 가까워지자 허칠안이 갑자기 분부했다.
“자네는 상궁을 모시고 오게.”
* * *
환관을 내쫓은 뒤 허칠안, 회경공주 그리고 사황자가 빙고로 들어가니 궁녀 황소유의 시체가 보였다.
그녀의 목과 가슴에 해부한 흔적이 이미 봉합되어 있었다.
“폐하께서 다시 검시하셨습니다.”
허칠안이 궁녀 황소유의 시신을 주시하며 말했다.
사황자는 부르트고 창백한 시체를 보자 연신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했다.
“뭘 더 검시해야 하는데?”
회경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어제 검시할 때 소직이 전하께 말했던 ‘규칙’에 대해 기억하십니까?”
허칠안이 빙고를 관리하는 환관에게 오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그녀를 들어 올려 마당에 두게. 이곳은 빛이 너무 어둡네.”
회경은 어리둥절하다가 허칠안의 뜻을 알아차렸고, 새하얀 뺨에 홍조를 살짝 띠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무얼 하려는지 알았다.
환관 두 명이 밖에서 들어왔다. 그들은 허름한 나무판을 들고 빙고를 나와서 시체를 마당에 두어 햇빛에 노출시켰다.
허칠안은 시체를 햇빛에 잠시 가만히 두고, 공공이 상궁을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렸다. 허칠안은 상궁을 보자마자 기뻐하며 일어섰다.
그보다 더 용의주도한 그 늙은 상궁이었다.
늙은 상궁이 회경과 사황자를 보더니 황급히 예를 갖췄다.
뒤이어 허칠안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대인, 어째서 또 늙은 노비더러 검시하라고 하십니까. 저는 검시관이 아닌데 허구한 날 여기저기 검시하러 다니느라 밥도 못 먹는다고요.”
늙은 상궁은 가까이 다가가 몸이 다 부르튼 흉한 시체를 보자, ‘아’하고 소리치며 눈을 가렸다.
“못 해요, 못 합니다. 대인, 부탁드립니다. 늙은 노비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사황자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꾸짖는데, 허칠안이 손을 내저으며 대략 5전(錢)짜리의 부스러기 은전을 꺼내 손바닥 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웃으며 말했다.
“상궁, 검시할 수 있겠소?”
“노비가 대인을 위해 충성을 다해 기꺼이 도와드리지요.”
늙은 상궁이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대인께서는 무얼 살펴보고 싶으신 겁니까?”
허칠안이 여인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녀가 폐하의 여인이 맞는지 아닌지 살펴보시오.”
늙은 상궁이 굵은 천으로 손을 휘감고 시체를 살폈다.
사황자와 회경은 동시에 돌아서서 다음 행동을 보지 않았다.
십여 초 뒤, 두 사람은 늙은 상궁이 ‘잉?’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여인은 처녀가 아닙니다.”
‘처녀가 아니다…….’
회경과 사황자는 서로 쳐다보며 경악을 금치 못해 몸을 떨었다.
소위 후궁의 아리따운 미인 삼천 명 중에는 사실 궁녀도 포함된다.
역대 황조에서 황제가 임행한 궁녀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대봉이 개국한 지 500년 이래, 역사적으로 궁녀 출신의 비(妃)들이 적지 않다.
황소유는 눈에 띄지 않는 궁녀지만, 그녀는 본질적으로 황제의 여인에 속했다. 원경제의 사유 재산인 셈이었다.
내궁의 모든 여인은 모두 황제의 사람이다. 임행하든 임행하지 않든 마찬가지다. 제도가 그러하다.
허칠안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마치 자신의 추측이 입증된 듯,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상궁, 궁녀가 임신한 적이 있는지 다시 한번 보시오.”
“그건…….”
늙은 상궁이 부르튼 여인의 시체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분간해 내지 못하겠습니다.”
‘너를 어디다가 쓰니. 은자나 돌려줘…….’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소. 비키시오. 내가 하겠소.”
그리하여 그는 늙은 상궁을 대신하여 검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