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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81화 (281/712)

281화. 자객을 맞닥뜨리다

황혼이 되었을 때 원경제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영보관에 낙옥형을 찾으러 가서 그녀와 좌선하며 토납하고, 도교 경전을 들을 참이었다.

밖을 지키던 환관이 갑자기 보고하러 왔다.

“폐하, 진 귀비께서 밖에서 뵙기를 청합니다.”

‘이 시간에 그녀가 뭐 하러 온 거지……?’

원경제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들어오라고 전하거라.”

진귀비가 이 시간에 그의 침전에 왔다. 만약 몇 년 전이라면, 원경제는 그녀가 자신과 잠자리를 하러 온 줄 알고, 시침을 시켰을 것이다.

그가 도를 닦기 시작한 후, 10년 동안 내궁의 비빈들은 인내심을 갖고 시침을 간청했으나 원경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고집이 센 성정이라 다들 밖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면 하룻밤을 꼴딱 샜다.

비빈들은 나중에 그의 의지가 확고해 군자의 뜻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고 마음을 다잡고 얌전히 지냈다.

지금에 이르러선 이미 모든 일에 아주 덤덤해졌다.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가끔 한데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원경제의 내궁은 아마 대봉의 오백 년을 통틀어 가장 화목한 내궁일 것이다.

원경제는 환관이 물러간 뒤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토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귀비가 울면서 뛰쳐 들어왔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폐하, 신첩을 위해 태자를 위해 나서 주셔야 합니다!”

태자 때문에 왔다니. 원경제는 이 결과가 전혀 뜻밖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예상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흑발이 다시 자라는 중인 원경제는 눈을 뜨고 진 귀비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태자의 일은 아직 조사 중이오. 애첩은 돌아가시오. 사리의 옳고 그름은 자연스레 판결 날 것이오.”

“아직 조사 중이라고요? 사건의 진상이 이미 밝혀지지 않았던가요? 폐하, 저 임안에게 다 들었습니다.”

진 귀비는 비단 손수건을 쥐고 눈물을 닦으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는 누명을 쓴 겁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어요.”

‘응?’

원경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안이 뭐라고 했소?”

“그 허 대인이 이미 진상을 밝혀냈다고요…….”

원경제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오늘 해각에서 익사한 시체 한 구를 건져 올렸는데 그 시신이 바로 몇 날 며칠 실종되었던 복비의 궁녀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허칠안이 이렇게 빨리 진상을 밝혀 냈다고?’

진 귀비는 울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털어놓았다.

원경제는 정보를 다 듣자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환관에게 분부했다.

“허칠안을 감독하는 자를 불러오거라.”

망포를 입은 늙은 태감은 대답한 뒤 물러갔고, 일각이 채 되지 않아 환관을 데리고 들어왔다.

환관이 곁눈질로 힐끗 보니 침상에 가부좌를 튼 원경제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진 귀비는 침상 옆에 무릎을 꿇은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원경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사건의 진전은 어떠한가?”

환관은 마음속으로 이미 구상을 다 짜 놓은 터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허 공자가 궁에 들어온 후 바로 시체를 검사하더니 결론을 냈습니다. 누군가 궁녀 황소유를 물속으로 눌러 넣어 궁녀가 익사하였고, 누군가 다시 우물 속에 시신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검시 과정을 덧붙여서 이 논단을 증명하였다.

“게다가 허 대인은 궁녀 황소유가 가슴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본래는 몇 년 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누군가 영험한 묘약으로 살려냈다고 합니다……. 그 뒤에 해각에 가서 용 상궁에게 물었습니다…….”

경험 많은 환관은 이번에 과정만을 진술하였다. 어떠한 개인적인 견해나 허칠안과 두 공주 사이의 왕래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깨달았다. 이런 일들을 말하면 물론 허 대인을 성가시게 할 수는 있겠지만, 두 공주를 가지고 고자질하는 자신의 그런 행위가 폐하를 더 불쾌하게 할 것이다.

구태여 자기 발등을 찍을 필요가 있겠는가.

게다가 허 대인은 그에게 잘해 주고 그를 배려해 준다. 비록 성미가 좀 거칠긴 해도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니다.

“어약방의 수지 장부가 누군가에 의해 일부 훼손된 게 확실한가?”

원경제가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허 대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환관은 여전히 개인적인 견해를 발표하지 않았다.

원경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시관에게 즉시 입궁하라고 통지하거라. 궁녀 황소유의 시체를 다시 검시할 것이다. 짐은 바로 답을 알아야겠다.”

반 시진 후 늙은 태감이 검시관의 검시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결과를 허칠안의 증명과 상호 대조해 보니 의심할 바 없이 확실했다.

원경제는 불시에 정신을 잃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침전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진 귀비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말할 때까지 침묵은 이어졌다.

“허 대인은 감히 황후마마를 조사하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이 일은 폐하께서 직접 나서야만 합니다. 태자를, 그리고 신첩을 위해 폐하께서 나서 주시길 간청 드리옵나이다.”

* * *

어둠 속에서 잔영(殘影)이 된 화살은 허칠안의 시력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강대한 정신력을 사용하여, 옅은 푸른색을 띠는 그 화살을 꼼짝 못 하게 했다.

연신경은 무사 전투력의 전성기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 경지의 무사는 위험에 있어 아주 예민한 직감을 보인다.

연신경에 이르면 기본적으로 매복, 뒤에서 부리는 수작, 습격 등의 운명과 작별을 고하기 마련이다.

‘사천감의 법기 군노(軍弩)는 연신경을 쏴 죽일 수 있는 흉기…….’

허칠안은 즉시 상대 무기의 내력을 판단해 냈다. 그 역시 같은 법기를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는 말 등에서 뛰어올라 화살을 피하고 싶었다.

‘안 돼. 내 말을 여기서 죽게 할 수는 없지…….’

그는 갑자기 생각을 바꿔 오른손을 허리 뒤에 올렸다. 예리한 칼이 칼집에서 나오는 맑은소리와 함께 그는 손을 뒤집어 칼을 휘둘렀다. 정확하게 화살을 베어 끊어버렸다.

우르르……. 검은 옷의 두 사나이가 기와 조각 위를 미끄러지는 미세한 움직임 소리와 함께 용마루에서 뛰어 올라 좌우에서 허칠안을 공격하였다.

그들이 손에 제식장도를 쥐고 쉴 새 없이 휘두르자 공기가 뒤틀렸다. 그들은 허칠안과 말을 한 번에 베려 했다.

“이랴!”

허칠안은 위기를 감지하자 즉시 말의 배를 움켜 쥐고, 아끼는 암말을 재촉해 앞으로 내달려 두 사람의 협공을 피했다.

쿵!

검은 옷의 두 사나이는 허공에 칼날을 휘두르다가 지면에 깊은 칼자국을 냈다.

‘연신경…….’

허칠안은 고개를 숙이고 보더니 마음속으로 판단을 내렸다.

그를 더 신경 쓰게 한 건 전방 골목에 숨은 그 검은 옷의 사나이였다. 그자는 분명 연신경보다 더 강할 것이다.

‘전략적 철수다!’

‘이곳은 내성이다. 야경꾼이 순찰을 돌고 황성의 오위가 교대로 순찰한다. 세 명의 킬러가 아주 오래 머물기란 불가능하다. 중국 국가 대표 축구팀에게 남은 시간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더 한정적이다. 내가 격추전을 벌이지 않는 이상, 그들은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잡지 못할 것이고, 저절로 물러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바로 망기술을 시전한 뒤 야경꾼을 데리고 세 사람을 사냥하여 상황을 반전시킨다.’

이때 허칠안의 머릿속에 또다시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검은 옷 사나이가 기이하게도 자신의 뒤에서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광경이었다.

‘제기랄. 그가 언제 내 뒤에 나타난 거지……?’

허칠안의 몸은 머리보다 빨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택으로 돌진하여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이와 동시에 주먹이 공기를 격파하는 소리가 귓등에 들려왔다. 마치 묵직한 천둥소리 같았다.

쿵!

주먹이 휩쓴 기기가 공중에서 잔잔한 물결 모양의 대기층으로 폭발했다.

그 고수는 일격이 물거품이 되자 아주 놀란 듯했다. 그는 막 연신경에 들어선 동라의 영각(靈覺)이 이렇게 날카로울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고수가 막 땅으로 내려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연신경 둘의 칼이었다.

팅팅……. 그는 칼을 휘둘러 날아온 칼 두 자루를 쳐내 땅에 떨어트린 후 재빨리 도망쳐 숨었다.

지붕 위로 이동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교묘하게 작은 골목, 집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는 게 비교적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가 몇 걸음 채 뛰기도 전에 뒤에서 공기를 가르며 재빠르게 바싹 접근했다. 머릿속에는 검은 옷의 사나이가 습격하는 장면이 되돌아왔다.

허칠안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비튼 뒤, 돌아서서 정면을 향해 벴다.

팅!

흑금장도가 주먹을 베어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터졌다. 허칠안의 오른손 손아귀가 파열되었다. 또 땅에 붙은 두 다리가 십여 미터 미끄러져 가면서 두꺼운 신발 밑창이 찌지직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신발이 분리되었다.

6품 무사, 동피철골이다.

허칠안은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여전히 무거웠다.

‘배후의 주모자가 내 실력을 알고 있다. 그래서 파견된 킬러가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 동선 역시 알고 있다. 그러니 꼭 지나가야 하는 길에 매복한 것이다. 누가 나를 죽이려 하는 거지?’

지금 그는 이렇게 많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연신경 고수 둘의 습격이 바짝 뒤따랐다. 세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는 대오임이 분명했다. 동피철골경이 선봉을 맡고 연신경 둘이 협조하여 더없이 긴밀한 공격을 퍼부었다.

‘오십 수 안에 나는 죽고 말 거야…….’

허칠안의 마음속에 무서운 자각이 스쳤다.

그는 촉박함 속에서 몸을 가누고 왼쪽에 있는 자의 공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른쪽에 있는 자와 함께 죽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괴상하게도 오른쪽의 그자가 태연하게 그와 같이 죽고자 했다. 그리고 분명히 습격할 수 있었던 오른쪽의 그자는 칼을 거두고 수비 태세를 취했다.

허칠안은 돌연 돌아서서 왼쪽의 검은 옷 사나이에게 칼을 휘둘렀으나 마침 그가 가로막은 칼끝을 베었다.

훅……. 오른쪽 검은 옷 사나이의 긴 칼날이 허칠안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쳇!”

허칠안은 남몰래 욕을 내뱉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왼쪽의 검은 옷 사나이였다. 오른쪽의 검은 옷 사나이와 함께 죽고자 했던 건 단지 흉내만 낸 것이었다. 상대 역시 연신경이니 어떻게 미리 위기를 감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돌아온 꼴이다.

허칠안은 오른쪽의 검은 옷 사나이를 발로 걷어찼다. 몸에서 칼날을 빼내니 따뜻한 선혈이 흘러나왔다.

이때 동피철골경의 그 고수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그가 주먹으로 기기를 응집하여 허칠안의 가슴을 세차게 내리쳤다.

쿵!

허칠안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그는 대형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아갔다.

“콜록콜록…….”

허칠안은 몸을 가누고 있다 피를 토해냈다. 가슴에서 파열된 건 야경꾼 관아에서 나눠 준 법기 동라와 송경의 호심경(護心境)이었다.

그는 이중 방어 덕에 동피철골 고수의 혼신의 일격을 막아내어 하찮은 목숨을 지켜 냈다.

“제식무기와 사천감의 법기 궁노로 감히 내성 길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너희들은 어느 거물이 키운 결사 대원이겠군.”

그는 말을 하면서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주위를 훑었다.

세 명의 검은 옷 사나이는 허칠안의 말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악역으로서의 자각은 조금도 가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우측의 비좁은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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