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80화 (280/712)

280화. 심검 (2)

낙옥형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기검은 심검과 반대로 최고의 공격 기술이네. 심오한 경지까지 도를 닦으면 검기가 끝없이 이어지며 어떠한 것도 다 부술 수 있지.”

허칠안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검기종횡삼천리, 일검광한십구주(*劍氣縱橫三千里 一劍光寒十九州: 뛰어난 검기로 열아홉 주를 쓸어버릴 수 있음)라는 겁니까?”

낙옥형은 참다못해 곁눈질했다.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한참 동안 허칠안에게 머물렀다. 그녀는 그를 칭찬하며 말했다.

“허 대인의 시재가 당대 최고라고 거리에서 수군거리던데 역시나 그렇군. 방금 그 시구는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며 그 기백이 하늘을 찌르는군.”

‘내가 지은 게 아닌데. 한 글자, 한 행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은 원고료를 전문적으로 받고 쓰는 대작가가 한 말이라고…….’

“어검술(御劍術)에 관해서는…….”

낙옥형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창문이 순식간에 열렸다. 곧 그녀의 소매에서 검광이 솟구치더니 휙휙 소리를 내며 정원 상공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세찬 천둥소리처럼 날렵하고,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민첩했다.

허칠안은 감탄하며 말했다.

“어검술은 과연 신선의 수단이군요. 따라서 저는 심검을 선택하겠습니다.”

낙옥형이 잠시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검술이 화려하고 세련되면서도 살상력이 낮지 않지만, 허칠안은 심검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천지일도참은 아주 과격한 도법이다. 세상에 베지 못할 게 아무것도 없다. 만약 있다면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쳐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도를 닦을 때 수단을 늘리기보다 천지일도참의 보완을 먼저 고려했다.

불문의 사자후를 얻은 후 이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통제 기능도 물리적인 손상도 생겼다. 현재 가장 부족한 건 원신 영역의 출력이다.

낙옥형은 《기검》과 《어검술》을 거둬들이고, 《심검》 견본을 그에게 밀어주며 말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영보관에 나를 찾으러 오면 되네. 허 공자의 의문을 세 번은 풀어 드리지.”

“감사합니다, 국사.”

허칠안은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했다.

이어 낙옥형은 소매에서 옥 그릇을 꺼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집더니 허칠안 앞으로 밀었다.

그릇은 찻잔 크기의 세 배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다. 허칠안은 마음이 좀 안정됐다. 그는 허영음이 밥 먹을 때 사용하는 큰 그릇인 줄 알았다.

낙옥형은 선혈을 얻은 후 피가 식기 전에 단약을 정제하러 나갔다.

정실 안에는 황갈색 고양이와 허칠안만이 남았다.

“도사님, 다른 사람 좀 차단해 주십시오. 이묘진과 사적으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허칠안은 이 기회를 틈타 이호에게 자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알릴 계획이었다.

허칠안의 요청에 금련도사가 대답했다.

“허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허칠안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묘진이 봄이 되면 경성에 온다고 한 적이 있네. 지금 운주 상황을 보면 비적 토벌이 끝나길 기다려야 하겠지만 어쨌든 얼마 안 있으면 그녀가 올 텐데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가.”

금련도사가 말했다.

그는 허칠안이 다시 살아났다는 걸 안 이묘진이 분노하며 악착스럽게 그를 찾아오고, 이로 인해 상황이 혼란스러워져 천인 양종(兩宗)의 걸출한 제자와의 갈등이 해소되기를 기다렸다.

“그것도 그렇네요!”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영보관을 나서니 이미 미시 삼각이었다.

허칠안은 황궁에 들어가 시위에게 통전(通傳)하라고 부탁한 뒤, 궁 입구에서 일각을 기다렸고, 미시 사각이 돼서야 환관이 왔다.

“허 대인, 저희 이제 어떻게 수사합니까?”

“봉궁(鳳宮)에 황후마마를 뵈러 갈 것이네……. 황후마마를 뵈기 전에 폐하께 통보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허칠안이 말했다.

환관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인께서는 내궁에서 가고자 하는 곳에 가시면 됩니다. 물론, 전제는 노비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귀비마마와 황후마마를 뵐 때는요.”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여인을 뵐 때는 당연히 사적으로 만나서는 안 됐다.

* * *

봉궁의 전체 명칭은 봉서궁(鳳栖宮)으로 내궁에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궁전이다. 물론 황제의 침전은 제외하고 말이다.

봉서궁에 오니 황후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허칠안이 밖에 있는 회랑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니 청아한 외모의 궁녀가 와서 통전했다.

“황후마마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허 대인, 가시지요.”

허칠안이 그녀를 따라 전(殿) 안으로 들어가니 사치스럽게 꾸며진 바깥 대청에 한 나라의 어머니인 황후가 있었다. 그녀는 금실을 수놓은 짙은 색의 봉포(鳳袍)를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풍관(風冠)을 쓰고 있었다.

그림 같은 눈썹, 두툼하고 윤이 나는 입술. 그녀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얼굴에 콜라겐이 가득해 조금도 늙어 보이지 않았다. 흠잡을 데 없는 그녀의 절세 미모에 성숙한 여인의 우아한 멋을 더했다.

‘그녀는 내가 만나 본 미인 중에 2위다. 낙옥형이 1위이긴 해도 국사는 본인의 매력에 버프가 들어갔다면 황후는 본인의 하드웨어로만 승부하니깐……. 이런 여인이 황후가 되면 내궁에 이길 자가 없겠지.’

허칠안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신하가 갖추어야 할 예의와 법도를 유지했다.

“과연 소년 영재로구나.”

황후 역시 얼빠임이 분명했다. 그녀는 허칠안을 살펴보더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경이 본궁 앞에서 자주 자네 얘기를 꺼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네. 자네가 경성에서 기이한 사건을 여러 차례 해결했다는 사적에 대해 본궁도 들은 바 있네.”

양측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허칠안 자신이 스스로 좋게 좋게 착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황후는 그를 아주 좋게 보며 조금도 남처럼 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연이 자네처럼 뛰어난 부하를 둘 수 있는 건 그의 운이야.”

황후마마가 부드럽게 말했다.

“허 대인에게 차를 내어 드려라.”

궁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물을 받쳤고, 허칠안은 두 손으로 받아 마시지는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소직은 복비 사건으로 황후마마께 여쭈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서 왔습니다.”

“물어 보게.”

“궁녀 황소유를 아십니까?”

“본궁은 모르네.”

황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마마의 궁에 하아라는 궁녀가 있습니까?”

“있네.”

황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각의 용 상궁이 말하길 4년 전에 황소유가 까닭 없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와 같은 방을 쓰던 궁녀가 그녀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 궁녀가 바로 마마 궁의 하아입니다.”

“하아는 지금껏 해각에 간 적이 없네.”

황후는 바로 부인했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소직이 검시 후 궁녀 황소유의 치명상을 발견했사온데 절대로 한낱 궁녀나 태의서(太醫署)의 태의가 살릴 수 있는 정도의 상처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기사회생의 영약을 먹었을 겁니다.”

황후는 허칠안을 주시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허 대인의 말에 증거가 있는가?”

“시체가 바로 증거입니다.”

“그럼 단약은?”

“……없습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어약방의 기록을 파기한 자가 황후인가?’

황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피곤하네. 허 대인을 배웅해 드려라.”

‘방금 낮잠 잔 거 아니야……?’

허칠안은 입술을 몇 번 우물대다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궁녀를 따라 봉서궁을 나왔다.

* * *

허칠안은 해를 보며 말했다.

“공공, 수집하라는 명단은 다 마련했는가?”

환관이 품속에서 잘 접어놓은 선지 한 장을 꺼냈다.

“마침 허 대인께 드릴 참이었습니다.”

‘좋아. 일 처리 효율이 높구먼. 역시 황궁에서 길들여 낸 놈다워.’

허일안은 명단을 펼치고 한번 훑어봤다. 명단에는 궁녀, 당차, 시위 십여 명이 열거되어 있었다.

“우리 명단대로 하나씩 조사해 보게.”

허칠안이 말했다.

“그럼 황후 쪽은…….”

“당연히 조사할 수 없겠지.”

허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경제가 아주 큰 특권을 주었기에 그는 조사하고 싶은 사람을 조사하면 되었지만, 황후마마는 때려죽여도 비협조적이니 허칠안 역시 강제로 추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황후에게 꿍꿍이속이 있다는 점이다.

‘정말 황후가 한 건 아니겠지? 그럼 회경이 너무 가엾은 거 아니야? 계속 조사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하지만 조사하지 않으면 임안이 불쌍한 거 아니고? 왔구나, 양자택일의 아수라장이…….’

허칠안은 속으로 말없이 탄식했다.

‘그나저나 황후는 진짜 예쁘다. 나이 들었는데도 그렇게 우아한 자태를 뽐내다니. 젊었을 때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황후가 될 수 있었을까.’

회경과 황후는 미간 사이에 닮은 구석이 좀 있었다.

‘비교하자면 나는 그래도 낙옥형이 더 한 수 위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나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거든……. 아, 소소도 괜찮지.’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금련도사가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낙옥형은 중생상을 가지고 있어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본 건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여자, 서른 살의 젊은 부인, 마흔 살의 성숙한 여인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여색을 밝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 시진 동안 허칠안은 명단에 있는 사람을 순서대로 조사했다. 시간에 제약이 있기에 그는 궁성이 닫히기 전에 황궁을 떠나야 했다. 그래서 1/3만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성문이 닫힘을 알리는 우렁찬 소리 속에 그는 순조롭게 황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우림위 손에서 말의 고삐를 건네받고, 감정이 선물한 흑금장도를 챙긴 뒤 유유자적하게 황성을 나왔다.

이때 석양에는 잔광만이 남아 있었다.

* * *

야간 통행 금지가 시작되자 거리의 행인들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허칠안은 야경꾼 제복을 입고 또, 몸에 금패를 지니고 있어서 황궁 내부를 제외한 다른 곳은 막힘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다그닥다그닥…….

허칠안은 인적 없는 거리를 서서히 달리는 암말 위에 올라타 복비 사건의 맥락을 생각했다.

복비는 사건 전체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자 태자를 음해하는 데 이용된 희생양이다. 손을 쓴 사람은 이미 멸구된 황소유다.

황소유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지만, 황후가 잘 치료해 주었다. 황후는 그녀의 은인이다.

그리고 황후의 사황자는 적자인데 현재 태자는 서출이다. 황후는 태자의 직위가 남의 손 안에 들어가는 게 달갑지 않아 태자를 모함하여 동궁의 자리를 빼앗아오려고 한다.

동기가 분명하고 사건의 전체적인 경위 역시 합리적이지만, 증거가 부족할 뿐이다.

맞다. 황후의 죄라고 단정 짓기에는 현재 증거가 부족하다.

“용 상궁 말이 맞아. 심궁내원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너무 많다. 한 번 발이 빠지면 빼낼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시간을 끌 기회조차 사라졌다. 개 같은 원경제. 여전히 작위를 부여하는 조서를 내리지 않는군. 이 몸, 내일은 휴가를 내야겠다.”

이때 허칠안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왼편 용마루 뒤에 검은 옷의 사나이가 엎드려 있고, 오른편 용마루 뒤에도 마찬가지로 검은 옷의 사나이가 매복하고 있었다.

칼을 든 검은 옷의 사나이가 전방 골목에 서 있었다.

연신경 무사의 특수함으로 그는 즉시 위험을 알아차렸다.

‘매복됐다…….’

이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고, 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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