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78화 (278/712)

278화. 영보관 방문

“원경제 32년, 사천감과 영보관에서 총 364가지의 단약을 보내 왔고, 총 개수는 789병입니다. 그중 1등급 단약은 세 가지뿐인데 각각 원경 32년, 33년, 36년에 폐하께서 외국 사신에게 하사하셨습니다.”

허칠안은 접본을 덮고 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소유를 구한 단환을 찾지 못했습니다.”

똑똑한 임안은 이 말을 듣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물었다.

“단약이 어약방에서 난 게 아니라면?”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시야를 넓혀 본다고 해도 대봉에서 단약을 정제할 수 있는 건 영보관과 사천감뿐입니다. 그렇다면 단약은 틀림없이 이 두 곳에서 났을 겁니다. 황소유는 일개 궁녀입니다. 만약 배후에 그녀를 구해 준 사람이 없으면 그녀는 두말할 것 없이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궁에 어느 누가 어약방을 거치지 않고 사천감과 영보관에 손을 뻗어 단약을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오로지 하나뿐, 원경제다!

‘그치만 불가능하다. 어약방은 원경제 것이고, 황궁 전체 모두 그의 것이다. 어약방은 그가 단약을 얻는 기관이니 어약방을 우회할 이유가 없다. 마치 내 월급 카드는 월급을 모으는 데 쓰는 것이니 내가 은행 카드 하나를 다시 발급받아서 몰래 용돈을 숨길 필요가 전혀 없는 것과 같다…….’

허칠안은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공공, 본관을 도와 ‘하아’라는 궁녀를 찾아 주게.”

허칠안은 접본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감독하려 원경제가 파견한 환관에게 분부했다.

환관은 순순히 나섰다.

허칠안은 환관이 나간 뒤 접본을 다시 펼치고 한 쪽 한 쪽 진지하게 살펴봤다.

‘나는 정말 고대 장부는 못 보겠어……. 글씨도 작고 획수도 너무 많아. 눈이 다 아프군…….’

허칠안은 한 시간을 투자해 연간 수입과 지출을 꼼꼼하게 다 보았다.

그는 접본을 덮고, 사무를 관장하는 늙은 태감을 쳐다보며 말했다.

“뒷간이 어딘가?”

늙은 태감이 대답했다.

“뒤뜰에 있습니다.”

* * *

허칠안은 바로 뒷간으로 갔다. 그는 지서 파편을 꺼내서 대유들이 그에게 선물한 유가 버전 마법서를 찾았다.

그러고는 망기술을 한 장 뜯어 다 태웠다.

그의 눈에서 푸른 청광이 뿜어져 나오다가 이내 서서히 사라졌다.

허칠안은 자신에게 망기술을 시전한 뒤 편청으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늙은 태감에게 물었다.

“본관이 접본에 문제를 발견했네. 공공이 내게 설명해야 할 것이네.”

“대인, 말씀하십시오.”

늙은 태감이 태연하게 말했다.

“원경 32년에 아마 매일 국고로 단약이 들어왔을 테지?”

“그건…… 4년이나 지난 일이라 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늙은 태감은 이 동라의 깊은 눈빛이 마치 소용돌이를 감추고 있는 듯 의미심장해 보여 아주 불편했다.

‘거짓말이 아니군…….’

허칠안은 계속해서 물었다.

“접본을 검사할 때 그해 2월 10일과 2월 20일의 수지 기록이 빈 걸 발견했네. 이 며칠간 단약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늙은 태감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대인께 아뢰옵니다. 이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거짓말은 아니군. 늙은 태감한테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을 리는 없고……. 나이가 들면 역시 쓸모가 없어져. 건망증만 심해서는…….’

허칠안은 늙은 태감에게 접본을 돌려주고 분부했다.

“5일 동안의 어약방 출입 기록을 내게 주게. 협조할 사람을 안배할 것이네.”

소위 협조란 늙은 태감을 감시한다는 말이었다. 허칠안은 후보도 이미 다 생각해 놓았다. 바로 원경제가 그를 감독하라고 파견한 환관이다.

이 공공은 원경제의 밀정이라 그의 진행 상황 모두를 원경제에게 낱낱이 보고할 것이다.

임안은 허칠안 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누군가 접본을 찢어 버릴까 봐 의심하는 거야?

“늙은 태감이 접본을 찾을 때 표지에 분명히 먼지가 쌓여 있었고, 그 위에 지장이 몇 개 있었는데 날인 흔적이 새 거였습니다. 제가 감히 단정하는데 닷새도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훌륭하다!’

임안공주는 속으로 칭찬했고, 허칠안을 향한 확신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때 환관이 보고하러 황급히 왔다. 환관은 안색이 아주 안 좋았고,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네 먼저 내려가게.”

허칠안은 어약방을 관리하는 늙은 태감을 내쫓았다.

환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임안을 쳐다봤다.

“본 공주도 들으면 안 되는 것이냐?”

임안은 눈썹을 번쩍 치켜올리며 화를 냈다.

‘역시 임안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횡포 부리는 공주병은 타고났어. 나를 좀 편애할 뿐이지…….’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하게.”

환관은 침을 삼키고, 몇 초 동안 생각을 가다듬더니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는 황후마마 전(殿)의 사람입니다.”

그 순간 편청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하아가 황후 궁전의 사람이라니. 회경이 하아의 이름을 듣고 기분이 이상해질 만도 하군……. 다시 말해서 애초에 황소유를 구한 사람이 황후마마라는 뜻이다……. 바꿔 말하자면, 황소유는 황후의 은혜를 크게 입은 적이 있다는 셈이야. 그리고 그녀가 이 사건에서 맡은 역할은 복비를 음해하고 태자를 곤경에 빠트리는 것이니……. 황후도 곤란하겠군.’

“후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이 그는 옆에 있던 임안의 낮고 힘 있는 호흡 소리를 들었다.

‘망했다…….’

“아바마마를 찾으러 가야겠어.”

임안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한마디 내뱉더니 벌떡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

허칠안은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마마, 지금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뻔하지 않니? 하아는 황후의 사람이고, 황소유는 황후의 은혜를 입은 궁녀야. 황후는 줄곧 우리 태자 오라버니를 해치고 싶어 했다고. 그녀의 아들이 태자 자리를 이어받길 바라니까. 동기도 아주 충분한 거 아니야?”

임안이 고개를 돌리고 화가 난 눈으로 허칠안과 마주봤다.

“네가 지금 나를 막는 건 회경을 염두해서 그런 거니?”

그녀가 가리키는 건 ‘직장을 옮긴’ 그 일이었다. 어쨌거나 허칠안은 그녀가 회경한테서 뺏어온 사람이니까.

‘제기랄, 마치 내가 회경을 홀리고 또 너를 홀린다는 말로 들리거든. 원경제 귀에 들어가면 내 목을 베라고 명령하겠지…….’

허칠안은 환관을 쳐다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황후와 연관된 일에 고작 궁녀 하나 밝혀내고 한바탕 소동을 부리려 하시다니요. 복비를 살해하고 태자를 해하려 했다는 죄명을 황후에게 억지로 덮어씌웠다 칠게요. 만약 사후에 황후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게 밝혀지면요?”

임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상관 안 해, 상관 안 한다고. 태자는 내 친오라버니야.”

“마마!”

허칠안은 그녀를 노려보며 어조에 힘을 실었다.

“……흥!”

임안은 성질을 거두었으나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그녀의 성격에 익숙한 사람이 자리에 없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공주는 제멋대로 횡포 부리는 성격이었지만 지금 동라 앞에서는 아주 얌전했다.

“계속 조사해야죠. 공주마마께서는 가만히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임안은 또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 게 분명했지만, 계속해서 성깔을 부리지는 않았다.

허칠안은 환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늘의 수확에 관해 공공은 반드시 낱낱이 폐하께 아뢰어야 하네. 허나 명심하게. 간단하게 사건만 얘기하고 다른 건 얘기하지 말게.”

‘나와 임안의 왕래는 생략하길 바라네…….’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환관은 그날 양아버지의 경고를 떠올리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허 대인이 비록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 같이 하찮은 사람을 위해 걱정할 줄도 알고. 마음씨가 참 곱다.”

“허 대인, 안심하십시오. 노비는 사건만 얘기하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환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 공공 걸려든 거야……?’

허칠안은 ‘응’하고 대답한 뒤 다시 얘기했다.

“이따가 어약방을 관리하는 공공을 찾아가서 그한테 명단 하나를 받아오게. 5일 사이에 어약방을 출입한 사람들의 명단이네. 그런 뒤 몰래 수위를 찾아가 대조해보게.”

“알겠습니다.”

* * *

그들이 어약방을 나서니 시간은 오시 초였다. 임안은 어머니와 식사하러 갈 거라 말하며 출가하지 않은 약혼남을 모질게 버렸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환관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어선방에서 만드는 건 주인들의 음식이고, 태감과 궁녀들의 ‘식당’은 소선방이라고 불렀다.

반쯤 먹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허 대인…….”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남색 도포를 입은 도사가 황급히 와서는 기뻐하며 말했다.

“허 대인, 드디어 찾았군요.”

그는 허칠안이 소선방에 가서 식사할 거란 걸 알고, 일부러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허칠안은 그에게 붙잡혔다.

황궁을 출입할 수 있는 건 영보관 도사임에 틀림없었다. 허칠안은 공수하며 말했다.

“도사님.”

“별말씀을요, 부끄럽습니다.”

그 도사는 가까이 걸어와 공손하게 답례하였다.

“허 공자님, 도수께서 부르십니다.”

“그건…….”

허칠안은 주저했다.

낙옥형은 원경제가 마음에 둔 여인이다. 이미 그의 딸과 얽히고설켰는데 ‘미녀 국사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라는 이유로 원경제를 또다시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낙옥형은 2품 강자다. 허칠안은 가까운 사이가 아닌 최고급 강자와 너무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만일 별안간 신수 승려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아아, 알고 보니 허칠안 너도 이미 승려의 모습이구나! 자, 상백에 다시 봉인되면 오백 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하니 나중에 어느 승려가 천축에 가서 불경을 구해오면 그때 너를 풀어 주마.’

이런 전개가 될 수도 있었다. 불사불멸의 신수 승려는 오백 년 동안 살아남는 데 당연히 문제없지만, 허칠안은? 하늘에 대고 오백 년을 더 빌려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사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허 공자님을 식사에 초대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도사가 말했다.

“좋습니다!”

허칠안이 대답했다.

‘중요한 건 낙옥형 그 여인은…… 그, 그녀는 너무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 * *

허칠안은 영보관에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금련도사 대신 단약을 구하기 위해 낙옥형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인종 도수는 그에게 매우 호의적인 듯했다. 그때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허칠안은 성인군자라 그녀의 암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바로 정실로 안내됐다. 부들방석 두 개, 탁자 하나 그리고 그 곁에는 작은 화로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생동감 넘치는 ‘도(道)’자가 걸려 있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배치로 쓸데없는 물건이 없었다.

꼬마 도사가 흑미, 옥수수, 좁쌀 등의 곡물이 섞인 절밥 한 통과 야채 요리 세 접시를 날라 왔다.

“허 대인 맛있게 드십시오. 도수님께서는 곧 오실 겁니다.”

꼬마 도사는 공손히 물러갔다.

허칠안은 먹지 않고, 탁자 위에 놓인 그릇 두 개, 젓가락 두 쌍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 밥을 그더러 혼자 먹으라고 했다면 지금쯤 그는 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