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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76화 (276/712)

276화. 황소유 (2)

“마마…….”

허칠안은 회경의 보드라운 소매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소직이 연신경에 들어선 이래로 시도 때도 없이 두통에 시달리는데 위 공께서 말씀하시길 원신이 쉬지 않고 움직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언제 원신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죽을지 모르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회경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 일을 모르고 있었기에 바로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임안이 시위에게 태의를 모셔 오라고 분부한 다음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허칠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의 먼지를 털고 있었다.

얄미운 회경은 나무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씻고 있었다.

“괜찮니?”

임안이 놀라서 물었다.

“괜찮습니다. 진통이었으니 조금 있으면 좋아질 겁니다.”

허칠안은 지친 얼굴로 손사래쳤다.

‘후……. X될 뻔했네. 이 몸의 반응이 재빨라서 다행이지, 만약 내가 자매 둘에게 같은 연애편지를 쓰고 같은 연꽃잎을 선물했다는 걸 알면, 회경이든 임안든 참지 못했을 거야……. 호감도가 분명 바닥을 치겠지……. 허칠안 잘했다. 핸들을 잘 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회경의 손도 잡았잖아. 소매지만…….’

그는 속으로 자신에게 갈채를 보냈다.

회경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훑어보았다.

* * *

해각은 황궁의 서쪽에 있었다. 그곳은 아주 큰 사합원(四合院)으로, 비(妃)들이 한데 모여 있는 궁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때 궁녀들은 진작에 해각에서 나와 황궁 곳곳으로 일하러 갔다. 집사 상궁만이 큰 의자에 누워 초봄의 아침 햇살을 쬐고 있었다.

그녀 얼굴의 검버섯이 햇빛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살이 쪄서 몸은 불었고, 희끗희끗한 머리에는 단출하게 옥비녀 하나를 꽂고 있었다.

“용 상궁, 용 상궁……!”

환관이 몇 차례 소리치자 늙은 상궁은 느물느물하게 잠에서 깼다.

‘용 상궁?!’

허칠안의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머릿속에 명대사 하나가 저절로 떠올랐다.

<폐하, 대명호반의 용 상궁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두 분 마마 오셨습니까.”

환관이 말했다.

용 상궁이 눈여겨보니 과연 황궁에서 가장 예쁜 두 공주가 손을 맞잡고 왕림했다.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민첩한 속도로 몸을 일으켜 예를 갖추며 큰소리로 외쳤다.

“노비! 두 분 마마를 뵙습니다!”

회경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 공주가 허 대인과 함께 사건을 수사하러 왔네. 오늘 우물에서 건져 올린 여인의 시체와 관련된 일이네. 자네 아는 대로 말하게.”

용 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

허칠안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물었다.

“시체는 누가 건져 올린 것이며 언제 발견된 것이오?”

“소옥(小玉)이 발견했습니다. 오늘 아침 그녀가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갔다가 통에 물이 담기는 소리가 이상한 듯해 좀 찝찝해서 우물 어귀에 엎드려 한참을 보니 아이고, 시체 한 구가 있었답니다.”

허칠안은 홰나무 밑의 우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우물이오?”

“그렇습니다.”

그가 우물가로 걸어가 안을 들여다보니 우물 깊이가 아주 깊었다. 시야가 어둡고 우물물은 마치 거울 같았다.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 이렇게 어두운 우물 안에서 시체를 발견하려면 아주 오랫동안 분별해야 했다.

“어제 발견한 사람은 없었소?”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궁녀 황소유의 시체가 물에 있었던 시간은 무조건 24시간이 넘는다.

“이 일을 얘기하자면 화가 납니다. 오늘 아침에 우물 안에서 죽은 사람이 발견됐는데 그 망할 계집애가 그때야 말하더군요. 어쩐지 그저께 물을 길 때 소리가 이상했다고요…….”

늙은 상궁은 이 일을 얘기하자면 화가 난다며 욕을 퍼부었다.

“눈깔을 후벼서 집어넣어 본 년이 없었으니 늙은 노비가 이틀 동안 시쳇물을 먹었지 뭡니까.”

임안의 얼굴에 불쾌함이 가득했다.

허칠안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상궁은 그 황소유를 알고 있소?”

늙은 상궁은 어리둥절했다.

“황 누구요?”

허칠안이 말했다.

“황소유.”

상궁은 눈을 부릅뜨고 되물었다.

“무슨 소유요?”

허칠안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마동매(馬冬梅)를 묻는 게 아니니 이렇게 대답할 필요 없소.”

상궁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노비는 다시 한번 확인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황소유 압니다. 알고말고요.”

회경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허칠안이 해각에 온 이유를 깨달았다.

이 동라는 어찌 된 일인지 머리가 아주 빨리 돌아간다.

“그녀를 아는가?”

허칠안이 일깨우며 말했다.

“그녀는 복비 곁에 있던 궁녀인데 당신이 어떻게 그녀를 아는 것이오?”

“노비는 당연히 알지요. 소유는 예전에 해각에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청풍전에서 궁녀 셋을 내보내고 사람이 부족해졌는데 소인이 보기에 얼굴이 반반하고 손도 빨라 추천하여 들여보냈지요…….”

“시체를 건져 올릴 때 나와서 보지 않았소?”

허칠안이 갑자기 물었다.

“감히 어떻게 보겠습니까. 노비는 나이가 많아 죽은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아, 계속해서 황소유에 관해 얘기해 보시오.”

용 상궁은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감정의 변화가 심했다. 그녀는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죽일 계집애는 각박하고 무정했습니다. 그해 제가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복비마마 곁의 궁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 해 동안 노비를 보러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 없는 남자들도 양아버지한테 효도할 줄 아는데, 하, 이 여인이 야박하고 의리 없기 시작하면 가장 실망스럽지요.”

허칠안이 이어 말했다.

“본관이 검시할 때 황소유의 왼쪽 가슴에 입은 치명상을 발견하였는데 무슨 상황인지 아시오?”

용 상궁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기억을 떠올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상처를 입었다라……. 이런 적은 있습니다. 아마 소유가 청풍전으로 옮겨 가기 일 년 전에 왜인지 모르겠으나 밤에 일어나 가위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었지요. 다행히 그녀와 같은 방을 쓰던 궁녀가 일찌감치 발견하고, 태의를 불러와 목숨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허칠안과 회경은 동시에 양미간을 찌푸렸다.

늙은 상궁의 말에는 허점이 있다. 그 상처는 심장을 관통하는 치명상이다. 치료의 대가는 결코 궁녀가 지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옛말에 큰 재난에도 죽지 않으면 반드시 훗날에 복을 받을 것이란 말이 있지요. 소유가 운 좋게 목숨을 건진 덕에 이듬해 더는 허드렛일을 할 필요 없이 청풍전에 가게 됐습니다. 그녀는 반반하게 생겨 본래 폐하의 은혜를 받을 기회가 있었지요.”

허칠안은 죽은 뒤 부르튼 황소유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누가 황소유를 구했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히 할 수 있다. 출혈이 심할 경우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그 배후에 있는 자는 어떻게 한밤중에 궁녀 하나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닌 이상.

용 상궁이 속이지 않았다면, 문제는 바로…….

“그 궁녀의 이름이 무엇인가?”

회경이 허칠안보다 한 발짝 앞서서 질문한 뒤 덧붙였다.

“황소유와 같이 살았던 그 궁녀 말이다.”

“마마께 아뢰옵니다.”

용 상궁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확실치 않은 어조로 말했다.

“아마도…… 하아?”

허칠안은 갑자기 회경의 눈동자가 수축되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녀가 그 하아라는 궁녀를 안다…….’

허칠안은 속으로 판단했다.

“저는 다 물었습니다. 두 분 전하께서 보충하고 싶으신지요?”

허칠안이 회경과 임안을 바라보았다.

임안은 협조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회경은 걱정이 태산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허칠안이 막 철수하고 어약방을 조사하러 가려던 참에 별안간 용 상궁이 말했다.

“대인, 노비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을 하며 용 상궁은 몸을 일으켜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허칠안도 따라갔다. 용 상궁은 회경 일행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대인, 심궁내원(深宮內苑)에는 감추지 못하는 사실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발이 끼는 순간 계속해서 가라앉을 것입니다.”

“용 상궁, 나는 자네가 단순하지 않은 줄 알았소. 자네는 마치 캄캄한 밤의 개똥벌레 같소. 자네의 희끗희끗한 머리, 얼굴의 검버섯, 두툼한 뱃살에 나는 깊이 반했구려.”

허칠안이 감탄하며 말했다.

‘또 무슨 비밀이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나한테 얘기해.’

“대인께서는 말을 참 듣기 좋게 하시는군요. 대인이 외모가 준수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늙은 상궁은 느릿느릿 긴 의자로 돌아가서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가지 않고, 의아해하며 말했다.

“끝이오?”

용 상궁은 고개를 저었다.

“노비가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심궁내원의 일 중에 알면 안 되는 건 알지 못합니다.”

‘……헤이, 이 늙은 하녀가 내 감정을 낭비하다니! 나는 또 뭘 좀 아는 줄 알았네.”

허칠안은 늙은 상궁이 기왕 그와 따로 얘기한 이상, 뒤에는 틀림없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경고 한마디에 그치다니!

* * *

그가 해각의 마당을 나오니 화려한 붉은 치마를 입은 임안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회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공주마마는요?”

임안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입만 열면 회경, 회경. 자신이 누구의 사람인지 잊은 게냐? 본 공주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못 본 셈 치는 것이냐?”

햇살 아래 그녀의 동글반반한 계란형 얼굴은 빛나면서도 부드러웠다. 새하얗고 투명한 뺨에 분홍빛이 감돌아 마치 결점 하나 없이 훤히 뚫린 아름다운 옥 같았다.

그녀가 눈썹을 치켜올린 탓에 어여쁜 도화안에 울분이 일렁거렸다.

그녀는 화를 내도 아주 귀여웠다.

“장공주마마가 드디어 가셨군요. 저희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자가 아무도 없네요.”

허칠안이 기뻐하며 말했다.

임안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좀 빨개졌다. 그녀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위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개자식, 본 공주한테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

그녀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공주라서 사탕발림 공세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들으면 부끄러우면서도 곤혹스러워했다.

“마마 너무 겸손하십니다. 마마께서는 마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찬란하시니 태양조차 마마의 눈부심을 감출 수 없네요…….”

허칠안은 문장 형식을 바꾸어 임안공주 앞에다 대고 말했다.

임안은 기쁘면서도 난처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점점 이 동라를 제어할 수 없었다.

임안이 막 그를 회경 손에서 뺏어왔을 때 그는 아주 얌전하고 말을 잘 들었다. 그는 회경과 단호하게 관계를 끊고 그녀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해 모든 정성을 쏟겠다고 맹세했다.

임안은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이 남자를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겉으로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예를 갖추지만 사실 둘만 있을 때, 자신은 늘 을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교롭게도 이런 만남 형태를 여태껏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 알아야 할 건, 그녀는 설령 회경 앞이라도 앞서기 위해 힘쓰는 기이한 여인이라는 점이다.

임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호선이 아름다운 아래턱을 치켜올리고 물었다.

“회경이 있을 때 왜 말하지 않았니?”

‘이런 말을 어떻게 너희 둘 앞에 대고 할 수 있겠니……. 만약 회경이라면 나는 표현법을 바꿔야겠지. 마마는 마치 눈보라 속의 티 없이 하얀 설련화 같습니다. 공주마마의 경국지색 미모에…… 놀라 매료되었습니다.’

허칠안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장공주마마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본 공주가 어찌 알겠니?”

임안은 눈을 희번덕이고 싶은 듯했지만, 예의와 교양을 고려하여 억지로 참고 말했다.

“우리 얼른 어약방에 가자. 사건 수사는 불을 끄는 것처럼 지체하면 안 돼.”

허칠안이 그녀를 쳐다보며 짐작했다.

“마마께서는 회경이 증거를 인멸할까 봐 걱정되시는 거죠?”

임안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나긋나긋 발걸음을 내디뎌 앞장서서 걸어갔다.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지혜를 가득 뿌렸을 때 이 공주는 영음처럼 기지가 형편없었겠지……. 그녀를 상대하는 건 확실히 회경을 상대하는 것보다 간단하고 수월하다……. 다만 너무 임안스러워서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을 뿐이지.”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공주를 모시고 어약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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