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황소유(黃小柔) (1)
허칠안은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장공주의 결점 없는 얼굴을 더 쳐다보는 대신 고개를 돌려 임안에게 물었다.
“마마께서는요?”
임안은 회경을 보더니 다소 주저하며 말했다.
“이게 뭐라고. 나도 남을래.”
“알겠습니다!”
허칠안은 시원시원하게 시체를 발가벗겼다.
임안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이내 하얗게 질려 얼굴을 가리고 가버렸다.
“마마, 남아서 보지 않으시려고요?”
허칠안이 외쳤다.
임안은 얼굴을 가린 채 모기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갈래, 갈래…….”
회경은 시체를 훑어봤다. 그녀는 아주 잘 감추고 있었지만, 허칠안은 여전히 차디찬 연못처럼 맑고 투명한 두 눈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 포착했다.
이런 어색함은 허칠안이 예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TV를 볼 때와 같다. 마침 남녀 주인공이 침대 위에 있을 때 채널을 돌린 것 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회경은 곧 침착함을 회복하고 꼼꼼하게 시체를 살폈다.
“이게 뭐야?”
회경은 궁녀 황소유의 옷에서 빛깔과 광택이 선명하지 않은 노란색 비단을 발견했다. 비단에는 붉고 아름다운 연꽃과 글자 한 줄이 작게 수놓아져 있었다.
<원경 31년 봄.>
“죽기 전에 몸에 지녀 간직하고 있었다는 건 이게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임을 의미하겠지.”
회경은 허칠안을 보며 사실을 확인하는 듯 물었다.
“허 대인 생각은 어떠한가?”
허칠안은 ‘네’ 하고 대답했다.
회경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마께서 이리 총명하시니 차라리 이 시체를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가 보이십니까?”
회경은 자신을 시험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허칠안을 저도 모르게 쳐다봤다. 그녀는 자연스레 입가의 호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지기 싫어하는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시체가 창백해지고, 물에 부르튼 정도를 보니 그녀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우물에 버려진 게 아니야.”
회경이 판단을 내렸다.
“이틀 내입니다.”
허칠안이 더 정확한 대답을 주었다.
“몸에는 눈에 띄는 외상이 없으니 그녀는 아마 물에 빠져 죽은 것이겠지. 아마 누군가에게 맞고 정신을 잃은 듯해.”
그가 말을 마치자 청아하고 속되지 않은 장공주가 무의식적으로 허칠안을 쳐다봤다.
그가 무표정을 하고 대답하지 않자 공주마마는 마음이 다소 불쾌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일 때 입을 살짝 삐죽거렸다.
“더 있나요?”
허칠안이 물었다.
회경이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공주께서는 가장 중요한 걸 빠트리셨습니다. 통상적으로 여인의 시체를 검시할 때는 설령 눈에 띄는 사인이 있더라도 항상 검사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허칠안은 회경을 보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회경은 멍하니 있다가 금기된 부위에 머무르는 허칠안의 시선을 보았고, 총명하고 슬기로운 그녀는 금세 알아차렸다.
장공주는 버들눈썹을 치켜세우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허칠안, 네가 감히 본 공주를 희롱하다니!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허칠안은 딱 부러지게 잘못을 시인하며 간곡한 태도를 보였다.
“소직,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공주마마, 용서해 주십시오.”
회경은 몸을 돌려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녀는 매우 화가 났다.
‘교만하고 도도한 공주를 놀리는 게 임안을 놀리는 것보다 훨씬 더 성취감 있어……. 회경이 노발대발할 때의 모습은 남다른 재미가 있다고…….’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그녀가 물에 빠진 건 맞지만, 우물 안에서 익사한 건 아닙니다. 누군가 물속에서 눌러 참다가 죽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회경은 믿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음, 학술적인 문제에 관해 토론하기만 하면 그녀는 잠시 화를 내지 않는군……. 공부벌레도 공부벌레만의 약점이 있구나…….’
허칠안은 말없이 기억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설명했다.
“그녀의 얼굴에 자홍빛이 돌고 있는 걸 보세요. 정상적으로 익사한 사람의 얼굴은 창백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누군가에 의해 물속에 눌려 머리가 아래를 향하는 자세가 되어야만 사망할 때 머리로 혈액이 거꾸로 흘러가 얼굴이 충혈되는 것입니다.”
회경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허칠안은 시체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손을 보십시오. 주먹을 꽉 쥐고 있지요. 이건 익사의 특징과 부합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손톱 사이에 모래와 이끼는 없지요.”
회경이 정신을 집중하여 보니 아니나 다를까 손톱 사이가 아주 깨끗했다.
“그녀가 익사한 건 확실하지만, 우물 안에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그녀가 물었다.
“마마께서는 참으로 총명하십니다. 공주마마와 비교했을 때 임안공주마마는 여동생일 뿐이군요.”
허칠안은 공수하며 탄복했다.
회경은 그가 자신을 추켜세운다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 모두 달콤한 말을 좋아한다. 성인도 예외는 아니다. 하물며 회경공주는 본래 교만하여 겉으로는 알랑거리며 비위를 맞추는 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통쾌해한다.
회경은 어색하게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따라서 그녀는 멸구당한 거로군.”
장공주마마가 뒤이어 덧붙였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미세한 발소리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문밖을 쳐다보니 먼 곳에서 환관이 시체를 해부하는 도구를 껴안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환관의 다급한 발소리가 문지방으로 돌진했다. 여인의 시체를 본 환관은 ‘아!!’ 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공공, 여인을 본 적이 없지? 자, 본관이 자네에게 해부학 수업을 해주겠네.”
허칠안은 건달 같은 말투로 조롱했다.
환관은 상대하지 않고 다소 난처해하며 고개를 숙인 채 도구를 긴 탁자 위에 진열했다.
도구는 총 6개로, 크기와 굵기가 각기 달랐고, 두꺼운 삼베에 싸여 있었다.
허칠안은 입술을 쓱 핥아서 기대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습이 너무 미친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꼴을 회경 앞에서 보이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참았다.
‘참나, 나는 취미 활동을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는 거 싫어하는데…….’
그는 비수 크기의 날카로운 외날을 선택했고, 칼끝을 시체의 목구멍에 갖다 대 기관지를 그었다.
혼탁한 물이 흘러나왔다.
“우웩…….”
환관은 연홍색의 피와 살이 시야에 노출되자 입을 가렸다. 곧 그는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허칠안은 이어 큰 칼로 바꾼 다음 흉부와 폐를 갈랐다…….
“우웩…….”
환관은 도망갔다.
‘이것도 못 버틴다고?’
회경의 옥 조각 같은 얼굴에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 드러났다. 두려움과 혐오스러움이 아주 명백해 보였다. 회경은 속눈썹을 부들부들 떨며 힐끗힐끗 봤다. 그러나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폐 안에도 물이 고여있습니다. 사인은 익사로 확정 지을 수 있겠습니다.”
허칠안은 칼을 내려놓았다.
회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또 검사해야 할 게 있나?”
“없습니다. 마마, 저희 나가시죠.”
허칠안이 말하다가 갑자기 ‘잉?’ 소리를 냈다.
회경이 이미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하다 고개를 돌려 봤고, 별안간 버들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 뭐하는 거니?”
“그녀에게 상처가 있습니다.”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회경은 멍하니 있었다.
황소유라고 하는 이 궁녀는 왼쪽 흉부 아래에 깊은 흉터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흉터의 위치가 심장을 향했다.
그녀는 문득 그의 의구심도 알아챘다.
‘심장? 일개 궁녀가 어째서 이렇게 위험한 상처를 입은 것일까? 게다가 뜻밖에도 살아났다니?’
허칠안은 다시 두꺼운 삼베를 펼쳐 놓고 가장 큰 칼을 쥔 뒤, 상처를 따라 시신의 가슴을 해부했다.
회경은 보고 싶지만 못 볼 걸 볼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허칠안은 심장을 떼어내고 실눈을 뜨고 잠시 쳐다보더니 자상하게 말했다.
“흉터로 보아 상처가 아주 깊습니다. 무기는 아마 가위나 다른 날카로운 물건인 듯하고요. 심장을 건드려 대량 출혈로 죽었어야 합니다.”
회경은 고개를 끄덕였고 시선을 문밖에 둔 채 분석했다.
“이런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내궁에서는 어머니와 귀비 품계의 비(妃)만 사용할 수 있어. 나머지 자들이 생명을 구할 단약이 필요하다면, 창고에서 빼돌릴 필요 없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거나 직접 아바마마께서 하사하신 약을 쓰면 돼.”
당연히 황자와 황녀는 그녀가 말한 ‘나머지 자들’에 포함되지 않았다.
* * *
두 사람은 시체실에서 나왔다. 마당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허칠안은 깨끗한 물을 한 통 길어 꼼꼼하게 손을 씻었다.
그런 뒤 그는 여인의 시체에서 발견한 노란색 비단을 힘껏 문질러 빨더니 우물가에 널어놓았다.
“자네는 시체실을 관리하는 당차에게 본관이 아직 안에 있는 그 시체를 쓸 일이 있으니 빙고로 보내라고 통지하게.”
허칠안은 환관을 내쫓았다.
“허칠안, 본 공주에게 물 한 통 길러줘.”
생기 넘치는 회경공주가 옆으로 섰다.
허칠안은 그 호칭을 들은 순간 그녀의 기분이 썩 괜찮다는 판단을 했다. 그녀는 자신을 낯설어하며 예의를 차릴 때는 허 대인이라고 불렀고, 화가 날 때는 허칠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회경은 화가 난 말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허칠안이라는 말에는 친구를 부르는 느낌이 좀 있는 셈이다.
허칠안은 그녀에게 물 한 통을 쥐여 주었다. 회경은 쪼그리고 앉아 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새하얀 손을 물속에 담갔다. 그녀의 고운 손가락은 가느다랗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손이 참 예쁘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회경은 담갔던 손을 꺼내 비단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말했다.
“본 공주가 너를 데리고 어약방(御藥房)에 가겠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그의 마음속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시체를 해각에 던졌을까?’
황궁에는 우물이 적게 잡아도 수십 군데에 있다. 그리고 냉궁 안이나 시체실의 이 우물처럼 더 은밀한 곳이 있다.
“저희 우선 해각에 가요.”
* * *
임안은 먼 곳에 있다가 두 사람이 나오는 걸 보자 경쾌한 걸음걸이로 걸어와 맞이했다.
“뭐 발견한 거 있어?”
“확실히 수확이 좀 있긴 합니다.”
허칠안은 그녀에게 검시 결과를 알려 주었다. 임안은 아주 집중하는 얼굴로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그녀의 주의력은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게 분명했다.
임안은 우물가에 널어놓은 연한 노란색의 비단을 가리키며 기뻐했다.
“개자식, 위에 수놓아진 연꽃 말이야, 네가……?”
허칠안은 임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임안과 회경은 깜짝 놀라 황급히 물었다.
“너 왜 그래?”
“머리, 머리가 너무 아파요…….”
허칠안은 고통스럽게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는 담비 모피 모자를 떨어뜨리고 민둥민둥한 머리를 드러낼 정도로 정말이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기다려. 본 공주가 바로 가서 태의(太醫)를 데려오겠다.”
임안은 초조해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더니 돌아서서 치마를 팔랑거리며 뛰어갔다.
회경공주는 얄미운 여동생이 가는 걸 보고서야 무게를 잡지 않고 그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맥을 짚었다.
“본 공주가 의술을 좀 알아.”
그녀가 맥을 짚어 보니 확실히 박동이 빨랐다. 틀림없이 이 순간 허 동라의 심장도 아주 빨리 뛰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