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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74화 (274/712)

274화. 여인의 시체

허칠안은 석양 속에서 말을 타고 고대의 널찍한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교방사로 들어갔다.

부향은 병이 났다. 감기에 걸려 혼미한 정신에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향은 허칠안이 오는 걸 보자 너무 기쁘고 놀란 나머지 힘겹게 일어나려 했다.

허 색마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부향의 어깨를 누르고 자책하며 말했다.

“내가 나빴소. 내가 미인을 힘들게 했어.”

부향은 정신이 몽롱하여 자고 싶은지 아름다운 눈동자를 반쯤 감은 채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랑께서 뜰에 있는 낭자들 중에서 마음대로 고르세요. 그녀들이 저를 대신해 허랑을 시중들 겁니다.”

침실 안에 있는 청아한 하녀 셋의 눈이 반짝였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거절했다.

“낭자가 감기에 걸렸는데 내가 어찌 향락을 추구할 기분이겠는소? 내가 낭자에게 기기를 전해주겠네.”

허칠안은 말을 마친 뒤 부향의 손목을 잡고 작은 물줄기 같은 기기를 한 줄기씩 주입했다.

기기는 맥을 잘 통하게 하여 체내의 생기를 활성화하고 오장육부에 영양을 공급하여 사람의 면역력을 배로 증가시킨다. 고작 감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콜록콜록…….”

부향은 심하게 기침을 하여 아름다운 얼굴이 새빨개졌다.

일각 후, 그녀의 안색이 과연 크게 호전되었다.

“허랑, 저 많이 좋아졌어요.”

부향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애정을 가득 담아 쳐다봤다.

세 여종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가씨가 약을 마셔도 낫지 않았는데 허 공자가 오자마자 혈색이 금방 좋아졌으니 말이다. 이렇게 의지하는 기분은 참 좋다.

“잘 쉬게. 내일 다시 보러 오겠네.”

허칠안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영매소각을 떠났다.

그가 떠난 걸 확인한 뒤 부향은 눈을 뜨고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너희 모두 나가거라. 방 안에 사람을 둘 필요는 없다.”

세 여종은 소리 내어 대답하고 나갔다.

침실 문이 천천히 닫히자 잠깐 호전됐던 부향의 안색이 빠르게 나빠졌다.

침실 안, 가벼운 탄식이 메아리쳤다.

* * *

허칠안은 돌아서서 청지원에 갔다. 이곳에는 다른 기녀 명연이 살았다.

명연 기녀는 전형적인 남방 아가씨로 몸이 작고 깜찍했다. 지난번 만남 이후에 두 사람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많이 털어놓았다.

명연은 강남 출신으로 어릴 적에 영전하는 부친을 따라 상경했다. 본래는 그대로 벼락출세의 길을 걸을 줄 알았으나 결과적으로는 파멸의 결말을 맞았다.

이듬해 그녀의 부친은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숙청당했고, 삼천리 밖으로 유배됐다. 이때부터 소식이 끊겼고, 명연도 교방사에 들어왔다.

“허 대인!”

그녀는 문지기 하인이 전하는 말을 듣고 허칠안이 왕림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옅은 푸른색의 화려한 긴 치마를 입고 진귀한 머리 장식을 꽂아 아름답게 치장하였다. 어여쁜 기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허칠안을 보자 미소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다.

“하루를 못 봤는데도 3년을 떨어져 지낸 것 같소.”

허칠안이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크게 변한 외모에 관해선 이따가 다시 얘기하겠소. 명연 낭자와 한 달이 넘도록 만나지 않았는데 마치 세 번 다시 태어난 것 같소……. 아, 알고 보니 우리 전생․현생․후생의 연이 정해져 있었나 보오…….”

‘참 듣기 좋다…….’

명연 기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가가 촉촉해졌고, 정이 넘치는 미소는 점점 달콤해졌다.

‘아이고, 이런 무책임하고 달콤한 말들이 점점 입에 달라붙네…….’

허칠안은 심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교방사 같은 곳에선 본래 능구렁이여야만 운이 흥할 수 있다. 융통성 없는 남자는 생존할 공간이 없다.

명연 기녀는 허칠안을 자리로 안내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허 공자께서 어째 영매소각에 묵지 않으셨습니까?”

그녀는 말을 하며 한 손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 손에는 술주전자를 들고 허칠안에게 술 한잔을 따라 주었다.

“명연 낭자가 그리워서 그랬소.”

허칠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명연 기녀는 몹시 흐뭇해하며 고개를 돌리고 여종에게 분부했다.

“뜰 문을 닫아라. 오늘 밤에는 다도회를 열지 않겠다.”

그 김에 그녀는 허칠안의 품에 기대 아름답고 정교한 얼굴을 치켜들고 넋이 나간 듯 그를 바라봤다. 한 달 넘게 만나지 않았더니 허칠안의 용모 변화가 천지개벽이라고도 할 만했다.

명연 기녀는 예전에 그의 재주가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은 그의 몸이 좀 탐났다.

허칠안은 운주에서 발생한 일을 간단하게 전한 다음,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당시 반란군 8천 명이 운주 관아를 포위하고 공격했소. 사방팔방 전부 군사들에 둘러싸였고, 순무 대인은 당 안에 갇혀서 생명이 아주 위독했지.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칼 한 자루를 들고 8천 반란군 앞을 막아섰소. 한 놈이 오면 한 놈을 죽이고, 두 놈이 오면 두 놈을 한꺼번에 죽였소.

누가 전장에서 용감하게 맞설 수 있겠소? 나는 나 허칠안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나는 무려 반 시진 동안 목을 베면서 눈 한 번을 깜짝하지 않았고, 마침내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텼소.”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청에서 침실로, 그러다가 목욕통으로 옮겨갔으며 종래에는 침상으로 굴러갔다.

“허 공자님, 노비가 공자님께 춤을 바쳐도 된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명연이 입을 삐죽 내밀고 기분 나쁘다는 듯 응석을 부렸다.

“그럼 라틴 댄스 한 번 춰보시오.”

허칠안이 껄껄 웃었다.

청지원.

명연 기녀의 침상은 한밤중까지 흔들렸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혈기왕성한 상태로 청지원을 나서서 말을 타고 황궁으로 갔다.

그를 감독하는 환관이 궁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엇? 공공, 오늘 유달리 예의가 바르군그래.”

허칠안이 말 등에 앉아서 웃으며 그를 조롱했다.

“허 대인, 드디어 오셨습니까?”

환관이 성큼성큼 걸어오며 말했다.

“큰일 났어요, 큰일. 어젯밤에 누군가가 우물 속에서 여인의 시체 한 구를 건졌습니다.”

“여인의 시체?”

환관이 다급하게 외치며 궁 입구에서 기다렸다면 긴급 사건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허칠안과 그의 접점은 복비 사건뿐이니 그렇다면 여인의 시체는 분명히 복비 사건과 관련 있었다.

허칠안은 마음이 동요하여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복비 사건에서 실종된 그 궁녀인가?”

환관은 멍해지더니 내심 깊이 탄복했다.

“대인께서는 참으로 신통방통하십니다. 노비는 감복해 마지않습니다.”

이 말은 아첨이면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상이기도 했다. 공공은 이틀 내내 감독한 결과, 허칠안이 겉으로는 허풍 떠는 것처럼 보여도 지혜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명포(名捕)라는 걸 알아챘다.

‘신통방통한 게 아니라 아주 간단한 추리일 뿐인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게.”

환관은 서둘러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시체가 어느 우물에서 발견됐는가?”

“해각(蟹閣) 뒤뜰입니다.”

“해각?”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무슨 이름이 이래?’

“해각은 궁녀들이 사는 곳입니다.”

환관이 대답했다.

궁녀도 여러 등급으로 나뉜다. 지위가 높은 궁녀는 여관(女官)이라 부르는데 심지어 품계와 칭호가 있다. 예를 들면 첩여(婕妤), 미인(美人), 재인(才人), 어녀(御女), 채녀(采女) 등등이다.

이런 궁녀들은 황제가 임행(*臨幸: 왕이 친히 그곳에 가다)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길 바란다. 물론, 원경제 재위 기간에는 누구도 두각을 나타낼 거란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다음 등급은 비빈 곁에서 시중드는 궁녀다.

가장 낮은 등급이 바로 큰 숙소에 머무는 잡부다.

해각은 바로 궁녀의 숙소다.

* * *

그들은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빠르게 황궁 내의 시체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남쪽에 있는 외진 소원(小院) 안에 있었는데 이곳은 궁에서 처형당하거나 병으로 죽거나 뜻밖의 사고로 사망한 시체를 안치하는 데 쓰였다.

허름한 널빤지 침상 위에 몸이 다소 부르튼 시체가 누워 있었다.

“자네는 가서 도구(刀具)를 가져오게. 시체를 해부할 것이네.”

허칠안이 분부했다.

그는 옛 솜씨를 발휘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는 전생에 관청에서 말단 관리로 있을 때, 종종 파견 가서 법의학자가 해부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조수 노릇을 했다. 그렇게 전문 지식과 경험을 아주 많이 쌓았다.

맨 처음에는 질겁하여 구토하다가 서서히 받아들였고,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거들었다. 허칠안은 자신이 해부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남몰래 발견했더랬다.

그는 이 세계에 온 후에 적잖은 사건을 맞닥뜨렸지만 해부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복비는 황제의 여인이니 내가 건드릴 수 없지만, 잡부는 흉부를 열고 복부를 가를 수 있겠지……. 좀 더 신선하면 좋을 텐데.’

그는 한 편으로 생각하면서 한 편으로는 궁녀의 옷을 풀었다.

“개자식, 개자식. 궁에 들어왔으면서 왜 사람을 보내 통지하지 않은 거야…….”

임안공주의 유쾌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고, 곧이어 붉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와 입구에서 멈췄다.

“너 뭐하니?”

임안은 여인 시체의 복대를 손에 쥐고 있는 허칠안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던 환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뒤로는 회경이 흰 치마를 펄럭이며 뒤따라 문턱을 넘었다. 그녀는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시선을 복대로 옮겨갔다.

‘좀 거북하네…….’

허칠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시체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부할 예정이에요.”

“너 그렇게 구역질 나는 건 건드리지 마.”

임안은 발을 동동 구르며 벌거벗은 시체의 상반신을 훑어보더니 바로 시선을 피했다.

회경공주도 이에 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제안했다.

“왜 검시관더러 하라고 하지 않는 것이냐?”

‘내가 해부학을 좋아하니까…….’

허칠안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두 분 마마, 마마들께서는 소직이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직접 하는 걸 아실 겁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조그마한 것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을 겁니다. 남들 눈에는 근면 성실하고 품성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소직이 생각하기에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평범한 일입니다.”

임안은 허칠안의 업무 태도에 아주 감탄했다. 회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허튼소리를 믿지 않는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두 분 마마께서는 먼저 돌아가셔서 차를 드시며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이곳에 머물지 마시고요.”

허칠안은 이들을 내보내고 싶었다.

회경은 이 말을 듣더니 가지 않고 도리어 시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시체는 어젯밤에 건져 올렸고, 황소유임을 판명한 뒤에 공공이 데려온 것입니다.”

회경이 말했다.

“나는 남아서 보고 싶구나. 어쩌면 시체에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잖니?”

‘회경은 머리를 쓰는 일에 아주 관심이 많나 보군. 바둑, 사서 편찬 그리고 현재의 사건 수사…….’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장공주의 청량한 눈동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회경은 다소 딱딱한 눈빛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얼음 덩어리가 부딪치는 질감이 느껴지는, 매우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이단순한 ‘응’ 에는 ‘자네, 이견 있나?’란 의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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