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큰 오라버니, 제가 큰 오라버니의 보배예요?
허칠안은 숙모와 여동생들을 데리고 서당을 나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오늘은 놀지 못하겠구나. 야경꾼 관아에 돌아가서 이 일을 처리해야 해. 숙모, 저와 함께 가실래요? 아니면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실래요?”
숙모는 콩알이를 쳐다보았다. 어쨌거나 딸의 일이지 않은가.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관아에 가겠다.”
방금 그 부부는 너무 가증스러웠다. 그러니 그들이 지금 저택에 돌아가서 마음을 가라앉힌대도, 생각할수록 화만 더 날 뿐이다.
* * *
이 선생은 사람들이 떠난 후에 방금 자신의 대응을 곰곰이 회상하며 스스로가 실수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이 좀 안정되었고, 여전히 그곳에 무릎을 꿇고 있는 포두에게 걸어가 말했다.
“나리, 방금 그…… 대인은 어느 관아에 계십니까? 관직은 몇 품이신지요?”
“모르오.”
주 포두는 너무 후회스러워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고 싶었다. 그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말했다.
“관직이 몇 품인지 무슨 의미가 있겠소? 이건 금패오, 금패. 아시겠소?”
‘금패…….’
이 선생은 몸이 휘청거리고 손이 벌벌 떨렸다.
‘그 바보의 집안에 그런 인물이 있다고?!’
그는 자신이 일을 그래도 공평하게 처리했고, 조씨 집안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스러웠다. 그러지 않았으면 노년의 생활도 늙은 목숨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 포두를 바라보는 눈빛이 연민으로 가득 찼다.
* * *
야경꾼 관아로 가는 길, 말 등에 올라탄 허칠안 품에는 허영월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왼손에 고기 전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튀긴 어묵 한 봉지를 든 채 아주 즐겁게 먹고 있었다.
“방금 일…… 영음이 생각에는 분이 풀린 것 같니?”
허칠안이 떠보았다.
“큰 오라버니가 그들을 때려 줄게. 죽지는 않더라도 크게 혼쭐날 거야.”
이런 갑질이 가장 화가 나는 이유는 맞아서 아프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의 어린 마음에 트라우마가 생긴단 점이 문제였다.
“영음, 영음?”
허칠안이 여동생을 쿡쿡 찔렀다.
허영음은 음식에 파묻은 고개를 들어 올려 흑백이 분명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큰 오라버니 뭐라고요?”
“너 분이 풀렸니?”
“응.”
“분이 풀린다는 게 뭔지 아니?”
“응.”
“큰 오라버니가 너 대신 그 뚱보의 부모를 혼내 줄까?”
“응.”
“네 둘째 오라버니 죽었어.”
“응.”
“…….”
‘완전히 건성건성이구먼. 내가 참 바보다, 정말. 이렇게 바보 같은 아이의 심리적 건강에 관심을 갖다니.’
허영음은 오는 길에 간식을 다 먹고 얼굴을 쳐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큰 오라버니, 저…….”
허칠안은 고개를 숙이고 친절하게 말했다.
“왜 그러니?”
허영음은 그의 품에 ‘웩’하고 구토한 뒤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저 토하고 싶어요.”
“좀 더 일찍 얘기할 수는 없었니?”
허칠안이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어차피 토하고 얘기해도 마찬가지잖아요.”
“전혀 다르거든?”
“제 생각에는 같아요.”
“네 생각 말고, 내가 생각할 거야. 말이 흔들려서 힘들면 진작에 얘기하지 그랬니……. 됐다. 집에 돌아가면 혼날 줄 알아.”
허칠안은 미쳐 날뛰었다.
“그럼 도로 먹을래요.”
허영음이 눈동자를 깜박이며 큰 오라버니의 의견을 물었다.
“너…….”
허칠안은 원망스러움이 극에 달했다.
“우리 허씨 집안에 어째 너처럼 이렇게 멍청하고 식탐이 많은 아이가 나타났을까?”
그는 고개를 돌려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숙모, 숙모 딸이 제 몸에 토했어요. 어서 손수건을 꺼내주세요.”
숙모는 발을 젖히고 쳐다보더니 불쾌해하며 손수건을 건넸다.
허영월이 크게 놀랐다.
“어머니, 그건 제 손수건이잖아요.”
“알아. 영음이 토해서 칠안이 닦아야 하잖니.”
“……왜 어머니 손수건을 쓰지 않고요?”
허영음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비위가 약하잖니.”
“…….”
숙모는 말을 돌리면서 괴로움에 말했다.
“방금 내가 너무 마음이 약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 그 막돼먹은 여자가 내 뺨을 갈겼을 때 서너 대는 더 때려줬어야하는데. 지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구나.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많은 사람이 사후에 남몰래 분노하곤 한다. 방금 분명히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가장 최선의 대처를 하지 못하면 생각할수록 달갑지 않다.
허영음은 자신이 토해낸 음식물을 깨끗하게 닦는 큰 오라버니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걔들이 스스로 뛰쳐나왔어요.”
“괜찮아. 너 벌었어.”
허칠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따가 점심을 또 한 번 먹을 수 있잖니. 평소에는 한 번밖에 먹지 못하는데 지금은 두 번이나 먹을 수 있겠구나. 앞으로 한 입 먹고 한 입 토하면 네 배는 영원히 배부르지 않을 거고, 영원히 먹을 수 있어.”
“정말이에요?”
허영음은 듣자마자 기뻐했다. 그녀는 큰 오라버니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먼저 네 어머니한테 반죽음당하겠지.’
“큰 오라버니, 제가 큰 오라버니의 보배예요?”
허영음이 물었다.
허칠안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이 말은 큰 오라버니의 민머리보다도 갑작스럽구나.”
콩알이가 대답했다.
“어젯밤에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보배라고 부르는 걸 들었는데 여태껏 저한테 보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어요.”
“너는 보배가 아니기 때문이야.”
콩알이는 실망했다.
“그럼 저는 뭐예요?”
허칠안은 고개를 숙인 채 통통한 어린 여동생을 살펴보며 말했다.
“너는 지방간이란다.”
* * *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야경꾼 관아에 도착했다.
백성은 예로부터 관아에 선천적인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숙모와 허영월은 패기 넘치는 관문, 칼을 찬 채 진지한 표정을 짓는 수위, 마구 드나드는 야경꾼들을 보자 좀 무섭고 두려웠다.
숙모는 처음으로 관아에 온 거라 긴장했다. 그래서 그녀는 허영음을 품속에 껴안고 힘껏 주물러 긴장을 늦추었다.
콩알이의 얼굴은 숙모의 손에 맞춰 여러 가지 형태로 변했다.
허영월은 말없이 허칠안에게 다가갔다.
“칠안…….”
잘 알지 못하는 동라 하나가 인사를 하러 오다가 숙모와 허영월에게 시선이 옮겨 갔다. 그는 숙모와 여동생의 미색에 이끌린 게 분명했다.
“내 동생이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허영월을 소개했다.
그 동라는 바로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하더니 다시 숙모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분은 누이인가?”
숙모는 처음에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싱글벙글 눈웃음을 치니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허칠안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36살의 누이를 본 적 있는가?”
“허칠안!”
숙모는 화를 내며 온몸을 떨었다.
그녀는 뜻밖에 나이가 까발려지는 바람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으로 말했다.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당장 달려들어 조카의 얼굴을 잡아 뜯을 수는 없다.
동라는 다시 숙모와 허영월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몹시 아쉬워하며 떠났다.
허칠안은 세 사람을 데리고 춘풍당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는 길에 잘 아는 동료를 많이 마주쳤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숙모를 허칠안의 누이로 착각했다.
이는 방식만 바꾸어 그녀가 젊고 예쁘다고 칭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허칠안은 곧 춘풍당 편청에 이르렀고 하급 관리에게 차를 내오고 물을 따르라고 분부했다. 숙모는 긴장감이 싹 걷혀서 웃으며 말했다.
“야경꾼들은 모두가 훌륭한 인재로구나. 말도 듣기 좋게 하고 말이야.”
‘숙모의 말이 참 이상하게 들리네요…….’
허칠안이 말했다.
“저는 관아 입구에 가서 좀 기다릴게요.”
* * *
그가 관아 입구에서 일각을 기다리니 부아의 포수 셋과 조신 부부 둘이 왔다.
“대인, 범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젊은 포수가 읍을 올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래!”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뻗어 밧줄을 잡으며 말했다.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범인을 감옥에 집어넣고 다시 나와서 밧줄을 돌려주겠다.”
조신 부부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경성 사람 중에 야경꾼의 명성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야경꾼 감옥은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는 곳 아닌가!
운이 좋게 나온다 해도 몸이 성하지 않을 것이고, 이후에는 괴로움 속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
이는 모두 남궁천유의 잘못이다. 그는 혼자서 야경꾼 지하 감옥의 악명을 끌어올렸다.
조신의 아내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불고 생떼를 썼다.
“나는 야경꾼 관아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때려죽여라. 때려죽여.”
딱 봐도 이 여인은 집에서 생떼 쓰는 게 습관임을 알 수 있었다.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그녀는 야경꾼 관아에 왔어도 여전히 무지막지하게 억지를 부렸다.
허칠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수위의 칼집을 빼앗아 부부를 각각 한 대씩 갈겼다.
푹……. 그들은 각기 치아 세 개를 내뿜었고, 입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멍해졌다.
“죽는 것도 쉽지 않아. 조금 이따가 네 바람을 이루게 해주지.”
허칠안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을 업신여길 때 어찌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 말을 마치고 밧줄을 세차게 잡아당겨 부부 둘을 억지로 끌고 관아로 들어갔다.
포수 셋은 제자리에 남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갑자기 물었다.
“저 대인 좀 눈에 익지 않는가?”
“……허 대인? 여 포두가 총포두로 승직하시기 전에 그녀 곁을 따라다니며 일을 처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허 대인을 한 번 본 적이 있네. 너무 많이 변했네.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더라고.”
“나도 본 적이 있네. 어쩐지 낯익다 했네. 그는 죽은 게 아니었나? 한동안 여 포두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잖나. 툭하면 성질을 부리고 말이야.”
* * *
그는 가는 중에 이따금 동라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들은 웃으며 조롱했다.
“허 대인이 어떤 범인을 압송하길래 이렇게 울고불고 야단인가?”
허칠안이 대답했다.
“주인을 믿고 사납게 굴던 개들이네. 오늘 그들에게 사회의 매운맛을 맛보게 하려고 하네.”
곧 그는 야경꾼 독점 지하 감옥에 이르렀다. ‘콰당……’ 하며 감옥문이 열리니 어둡고 습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조신의 눈에는 절망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본래는 별일도 아닌데 자신이 이렇게 큰 화를 당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여인은 마침내 무너졌고, 울면서 말했다.
“그 팔찌는 제가 전당포에 저당 잡았어요. 제가 배상해드리겠습니다, 배상해드릴게요. 지하 감옥에만 집어넣지 말아 주세요…….”
조신은 눈을 부릅뜨고 아내를 쳐다봤다. 그는 마침내 이 신비로운 대인이 왜 분노하였는지 깨달았다. 알고 보니 자기 아들이 정말로 그의 여동생을 여러 차례 괴롭혔던 것이다.
알고 보니 팔찌를 빼앗아간 것도 진짜고, 알고 보니 아내는 다 알고 있었다.
‘망했다. 야경꾼한테 약점을 잡혔으니 설령 품계가 높은 관원이라도 위축될 텐데 하물며 그자라니. 숙부가 날 위해 야경꾼의 미움을 살 리가 있나?’
그는 저도 모르게 후회됐다. 왜 먼저 확실하게 일을 확인하지 않은 것일까. 왜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왜 머릿속으로 숙부의 권세만 생각하며 시정잡배들과 하찮은 관리들을 괴롭혀 무엇을 얻었는가.
조신은 오열하며 중얼거렸다.
“망했다, 망했어…….”
그는 갑자기 격노하여 분노에 차 아내를 힐난했다.
“다 부인 탓이오, 부인 탓이야…….”
그는 바닥을 걷어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만 있다면 너무나도 아내를 내쫓고 싶었다. 자기객관화가 전혀 안 되었다.
여인은 목을 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