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제압하다
하지만, 생각을 전환한 뒤 하인들은 문득 이 계집애의 튼튼한 몸, 동그란 얼굴, 동그란 배, 동그란 손과 발을 발견했다.
‘어깨 힘…….’
“데려가자!”
그중 한 하인이 뚱보를 들쳐 안았고, 다른 하인은 허영음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뭐 하려는 것이냐!”
이 선생이 눈을 부라리며 화를 냈다.
“가자!”
하인이 그를 밀치며 성을 냈다.
“이 몸은 율법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때렸으면 책임을 져야죠. 이 몸이 지금 이 아이를 데리고 저택에 돌아가 나리와 마님께 넘겨 처분토록 할 것입니다. 눈치껏 얼른 이 계집애의 가족들에게 조부(趙府)로 속죄하러 오라고 통지하십시오.”
그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늦었습니다. 불구가 되더라도 저희를 탓하지 마십시오.”
어쨌든 이 계집애가 한 대밖에 때리지 않았다 해도 그들 집안의 공자님을 다치게 했으니 은자를 주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계집애는 저택에 돌아가면 한바탕 매질을 당할 것이다.
“안 갈 거예요, 안 갈 거예요. 저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
콩알이는 손에 들린 채로 두 다리를 마구 뻗으며 분노의 저항을 했다.
“퉤퉤…….”
콩알이가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얌전히 있어라.”
하인들이 분노를 억누르면서 손바닥을 뒤집어 귀싸대기를 날리려 했다.
하지만 하인들은 손바닥이 볼에 닿기도 전에 눈치가 빠르고 민첩한 이 선생에게 가로막혔다. 그는 긴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발끈했다.
“이 늙은이는 수재야. 공명을 떨치는 수재지. 감히 그 아이를 건드리면 감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다.”
하인은 이 선생을 하찮게 여기며 말했다.
“수재면 어쩔 건데요? 수재는 고사하고 명절 때마다 저택에 와서 연줄을 대려는 벼슬아치들이 산더미입니다. 당신 같은 늙다리가 뭐라고. 꺼지시오.”
그는 이 선생을 밀치며 동료와 함께 밖으로 걸어갔다.
* * *
허칠안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다그닥다그닥 말을 달리면서 투덜거렸다.
“그까짓 팔찌가 뭐라고!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서 왜 숙부에게 처리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숙모는 그냥 따라왔다. 자신이 허영음에게 사 준 팔찌가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이 돌아와 기댈 구석이 생겼으니 그녀는 글방의 선생을 찾아가 한 차례 시비를 가릴 작정이었다.
“신년이 돌아왔잖아요?”
허칠안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녀는 조카에게 눈총을 주면서 말했다.
“신년은 춘시에 참가해야 하는데 마음이 여기에 있겠니? 게다가 신년은 지금 관직도 없고 너희 무사처럼 잘 싸우는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곤 고작 입밖에 없잖니.”
허칠안은 속으로 반박했다.
‘신년이 그 입으로 무사를 열 받게 해서 그 자리에서 폭발하게 할 수도 있어요. 살상력이 아주 놀랍다고요.’
생각해보면 신년도 안타깝다. 숙모는 ‘신년은 춘시에 참가해야 해’, ‘신년, 엄마가 잘 돌봐줄게’라는 류의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숙모는 평소에 아주 편하게 지낸다.
그녀는 기껏해야 밥을 먹을 때 신년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말로만 관심 가져주는 정도다.
‘숙모처럼 이렇게 개성 있는 어머니는 이 시대에 정말 보기 드물지……. 하지만 오히려 저런 방임이 편해.’
허칠안은 더는 말하지 않고, 길가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는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외조부는 숙모를 숙부에게 시집보낼 때, 자신의 딸이 명문 세가의 귀부인이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던 듯했다.
그래서 그녀의 미모에 힘입어 명문 세가에 가서 업신여김을 당하느니 집안은 평범하지만, 딸을 아낄 줄 아는 시댁에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외조부는 그녀에게 글을 너무 많이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숙모는 창문의 휘장을 치고 허영월 옆에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조금 이따가 영음을 데리러 갔다가 칠안을 데리고 장신구 점포에 구경하러 가렴. 그리고 간 김에 어머니 장신구도 좀 사 주겠니?”
허영월이 곁눈질로 모친을 쳐다봤다.
“괜찮다. 나 혼자 고를 것이다.”
숙모가 말했다.
“…….”
허영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사실 어머니는 그래도 큰 오라버니가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큰 오라버니가 돌아오자마자 지체할세라 그한테 정의를 구현해 달라 하신 거죠?”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구나.”
숙모는 끝까지 잡아뗐다.
허영월은 입을 오므리고 웃었지만, 까발리지는 않았다. 둘째 오라버니는 물론 이 집에서 전도유망한 인물이기는 해도 아직 출세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요 몇 년간 관리 사회의 능구렁이가 돼서 쉽사리 화를 내지 않았고, 적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가 팔찌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얼굴을 붉히길 기대하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큰 오라버니만이 펄쩍펄쩍 뛰며 무뢰한처럼 굴 수 있다. 하필이면 큰 오라버니는 또 야경꾼이라 실권을 쥐고 있다. 게다가 그는 관리 사회에서 인맥이 넓어 일이 생겨도 걱정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큰 오라버니와 여러 해 동안 다투었으니, 자신이 재수 없는 조카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해봤자 어림없다.
* * *
일행은 글방에 도착했다. 길가에 마차를 세우고 마부는 나무 의자를 챙기며 말했다.
“부인,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숙모와 영월이 발을 젖히고 내렸다.
허칠안이 말했다.
“제가 먼저 가서 말을 매고 영음에게 줄 간식을 살 테니 숙모와 영월은 먼저 들어가세요.”
“데리고 나와서 사러 가면 안 되니?”
숙모가 딸의 손을 당겼다.
‘서프라이즈잖아요. 더욱이 먹보한테는…….’
허칠안은 웃으며 해명하지 않았다.
숙모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허영월과 함께 글방으로 들어갔다.
* * *
숙모는 막 들어가자마자 어린 딸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딸아이가 한 건장한 사내에게 들린 채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허영음은 필사적으로 반항했지만 상대가 성인이라 당해 내지 못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내 딸을 납치해서 무얼 하려는 것이냐!”
숙모가 패기 넘치게 두 하인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다.
“어머니, 어머니. 저들은 나쁜 사람들이에요, 나쁜 사람들. 큰 오라버니한테 그들을 때려달라고 하세요!”
허영음이 소리치며 하인들에게 퉤퉤퉤 침을 뱉었다.
“부인께서 이 계집애의 어머니십니까?”
하인은 숙모를 주시하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는 한평생 이렇게 예쁜 여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허영월에게 옮겨갔고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하인은 숙모와 영월 뒤에 따르는 사내종이 없는 걸 보자 갑자기 안심됐고, 우락부락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 댁 계집애가 저희 공자님을 때렸습니다. 저희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갈 겁니다.”
숙모는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인이 가지 못하게 막아섰지만, 그는 더 무지막지했다. 하인은 일부러 숙모에게 몸을 부딪치며 그녀가 물러나도록 힘을 가했다.
다른 하인도 마찬가지로 허영월에게 몸을 부딪쳤다.
두 사람이 비틀거리자 두 하인은 거리낌 없이 크게 웃었다.
허영월은 절절매며 뒤로 물러섰고, 뜰 입구까지 내몰리다가 문턱에 걸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그녀는 넘어지면서 따뜻하고 단단한 어깨에 부딪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보니 허칠안이 있었다. 허영월은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울먹였다.
“큰 오라버니…….”
허칠안은 튀긴 어묵과 고기 전병을 손에 들고 허영월을 안정감 있게 부축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두 하인을 훑으며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여동생이다.”
숙모는 남자가 와서 제압해 주니 한시름 놓았고, 조카 옆으로 다가갔다.
하인들도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나 여전히 떳떳한 태도로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당신 여동생이 우리 공자님을 때려서 숨만 간신히 붙어있습니다.”
사실 방금 나올 때 의원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인들은 분명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터였다. 그들도 명분이 있어야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골 촌놈들은 다 아는 수법이다.
“선비를 욕보였습니다. 선비를 욕보였어요.”
이때 이 선생도 쫓아 나왔고 숙모를 보더니 한시름 놓았다.
“이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숙모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 선생이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읊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일은 확실히 부인 댁이 도리에 어긋납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원만하게 해결해 주세요.”
‘알고 보니 먹을 걸 뺏겼구나…….’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너희는 여동생을 내려놓고, 이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러오거라.”
그는 보상해 줘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하지만 콩알이가 음식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그걸로 됐다.
허칠안은 언제나 상식적인 사람이다.
“놔주긴 XXXX…….”
허영음을 든 하인이 폭언을 퍼부으며 말했다.
“만일 너희가 도망가면 어떡하지? 우리는 이 계집애를 반드시 데리고 갈 것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오더라고 소용없다.”
“흥분하지 말게, 흥분하지 마. 아니면 이렇게 합세. 내가 당신들과 함께 조부에 가겠…….”
늙은 이 선생은 분위기를 풀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앞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젊은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 뒤에서 요란하게 뺨을 갈기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빠직’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 쓰러진 듯했다.
이 선생이 바로 고개를 돌려 보니 젊은 남자가 허영음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고, 발밑에는 하인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깨진 이가 튀어나왔으며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쳇, 하인 놈이 감히 이렇게 방자하게 굴다니. 네 주인이 뭐 하는 자들인지 이 몸이 봐야겠다.”
허칠안은 언제나 상식적인 사람이다.
다른 하인은 품에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허칠안은 나서서 훈계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썩 가서 네 주인을 찾아오거라.”
하인은 두려운 기색이 묻어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뛰어나갔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이 울음을 뚝 그쳤다. 그녀는 허칠안의 겨드랑이에 상반신이 끼인 채 마치 물고기처럼 버둥거렸다.
숙모는 그가 딸을 거칠게 대하는 게 불만스러워 허영음을 가로채 꼼꼼하게 살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니?”
허영음은 그다지 개의치 않으며 머리를 문질렀다.
“머리가 아파요. 걔가 주먹으로 두 대 때렸어요!”
숙모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누가 너를 때린 거니? 그 뚱보야 아니면 어른들이?”
“뚱보가요.”
허칠안은 ‘아’ 하더니 이병의 선생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선생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는 우선 ‘학교 선생’에게 자문을 한번 구하고 싶었다.
이병의는 망설이며 말했다.
“조천(趙玔) 그 아이가 다쳐서 며칠 동안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듯합니다. 호의적인 태도로 돈을 좀 배상해주고 일을 마무리하시죠. 그 아이의 작은 할아버지가 이부 문선사의 낭중입니다.”
이 말의 숨겨진 뜻은 그 집의 배경이 너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니 일을 크게 만들어 봤자 무조건 진다는 것이었다.
“저희는 보상하지 않습니다.”
숙모는 허리춤에 두 손을 얹더니, 겨우 체면치레하는 조카를 등에 업고 매섭게 말했다.
“낭중이든 뭐든 상관 안 합니다.”
“정5품입니다.”
이병의가 말했다.
“칠안,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숙모가 돌아서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쫄면 어쩌자고…….’
허칠안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어딜 돌아가요. 저택에서 소란을 피우면 더 창피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여기서 해결하는 게 나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