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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68화 (268/712)

268화. 허영음의 분노

약 한 달 전에 이병의 선생이 평생의 적을 만났다. 이 적은 그가 한평생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이었다.

“허영음, 일어서거라!”

이 선생은 대나무 회초리를 쥔 채 교탁에 서서 탁자를 탁탁 쳤다.

글방에는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올림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동쪽 구석에서 얌전하게 일어났다.

그녀는 찐빵처럼 동그란 얼굴에 평범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고, 두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삼자경을 쭉 외워 보거라.”

이 선생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차분한 어조로 분부했다.

“인지초, 성본선, 성상근(人之初, 性本善, 性相近)…….”

여자아이는 여기까지 외웠을 때 막혔다.

이 선생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그는 화를 내는 대신 미간을 문지르며 탄식했다.

“왜 보름이 지났는데 아직도 세 마디 밖에 할 줄 모르는 게냐?”

이렇게 멍청한 아이한테는 화를 낼 가치도 없다.

허영음이 응석을 부렸다.

“저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재능 한 가지만 갖추면 어디서든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 말을 이럴 때 쓰는 거였니……?’

이 선생은 멍하니 있다가 이 아이의 부친이 저속한 무사라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러자 그는 더는 화가 나지 않았다.

“매일 삼자경을 읽잖니? 넌 제일 큰 소리로 읽고 글자도 읽을 줄 알면서, 왜 내가 외우라고 하면 외우지 못하는 게냐? 공자 말씀이 격물치지라고 하잖니. 너는 스스로 반성해 본 적이 있는 게냐?”

허영음이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세 구절만 가르쳐주셨잖아요.”

글방 전체에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이 선생은 마음이 지쳐 손을 내저었다.

“앉거라.”

이 아이의 집안에서 둘째 오라비만 지식인이다. 그런데 운록서원의 서생이다. 어떠한 환경과 교육으로 이렇게 차이가 어마어마한 아이가 둘이나 나왔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이 선생은 고개를 돌려 해시계를 보니 곧 식사 시간이라 기침 소리를 내며 말했다.

“30분 동안 식사 시간이다. 밥을 먹을 때는 말하지 않는다는 걸 꼭 기억하거라.”

그는 말을 마치자 학당을 나섰고, 뒤뜰을 돌아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은 단숨에 해이해져 히죽거리며 떠들기 시작했고, 각자 분분히 작은 보따리에서 음식을 꺼냈다.

허영음의 오늘 점심은 아주 푸짐했다. 물만두, 매화 전병, 어묵 그리고 계월루의 몇 가지 일품 떡.

그녀의 음식량은 다른 아이보다 두세 배 더 많았다.

허영음은 음식을 아주 감각적으로 늘어놓은 뒤 침을 삼켰다. 그녀는 오전 내내 보따리 안의 음식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학당 전체에서 허영음보다 더 푸짐하고 비싼 밥은 없었다. 물론, 허영음의 점심 식사가 이렇게 푸짐한 덴 이유가 있었다.

어제는 허칠안을 조문하는 날이었다. 허부에서는 최고급 식자재를 대량으로 사들여 거창한 장례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나. 허씨 가족을 다 대접하고도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많이 남았던 것이다.

“나도 네 음식을 먹을래.”

뚱보 하나가 허영음 책상 곁으로 걸어와 목을 뻣뻣이 세우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뚱보는 학당 내에서 아이들의 왕이었다. 가장 키가 크고 가장 건장하며 허영음보다 한 살 많아 올해 7살이었다.

뚱보는 가장 키가 크고 가장 건장할 뿐만 아니라 집안 배경도 가장 빵빵했다. 부모가 비범한 건 아니지만 작은 할아버지가 이부 문선사(文選司)의 낭중으로 정5품이었다.

이부는 공인된 육부(六部)의 수장으로 문선사는 인사 임명을 담당했기에 이부 사사(四司) 중에서 고공사(考公司)만이 문선사와 어깨를 겨룰 수 있었다.

“안 줘!”

허영음이 음식을 감싸면서 표독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너 또 맞고 싶구나?”

뚱보가 눈을 부릅떴다.

허영음의 팔찌를 뺏은 게 바로 이 뚱보였다. 허영음은 처음에 주지 않았지만, 그가 바닥에 밀치고 두 번 때린 뒤에 억지로 가져가 버렸다.

이 멍청한 계집애는 울지도 떼쓰지도 않았다. 팔찌가 없어지면 없어지는 거지, 별 큰일도 아니라는 듯 치부했다.

뚱보는 집에 돌아간 후에 어머니에게 팔찌를 주워왔다고 거짓말했다. 모친은 전당포에서 그 팔찌를 은자 8냥 어치에 저당 잡아 아주 기뻐했다.

나중에 멍청한 계집애의 어머니가 학당으로 달려와 시시비비를 가렸다. 하지만 허영음이 고자질하지 않았기 때문에 표독스러운 어머니는 선생에게 저지당해 돌아갔더랬다.

그래서 뚱보는 이 ‘동료’의 팔찌를 빼앗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은자도 생기면서 어른들에게 혼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는 처음 며칠 동안 줄곧 허영음의 손목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가 그때 때린 후로 그녀는 더 이상 팔찌를 차지 않았다.

이 멍청한 계집애는 아주 만만하지만, 전에는 괴롭힐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뚱보는 그 떡이 한눈에 계월루 떡이라는 걸 알아봤다. 계월루에 가서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뚱보는 그녀의 음식을 먹고 싶었다. 반드시 먹어야 했다. 학당 내의 아이들은 모두 그를 무서워해서 반항하는 아이가 없었다.

“저리 가!”

허영음은 소리치며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지키는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

뚱보는 멍해졌다. 만만하고 멍청한 이 계집애가 뜻밖에도 갑자기 세게 나오며 그에게 사납게 굴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무진장 화가 났다.

“죽고 싶은 거지?”

그는 주먹을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기합 소리를 낸 뒤 젖 먹던 힘을 다해 허영음의 머리를 두 차례 묵직하게 내리쳤다.

허영음은 고통스럽게 머리를 감싸 안았다.

뚱보는 그녀를 힘껏 밀어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만족스럽다는 듯 도시락 안의 떡을 빼앗아 품속에 넣은 뒤 우쭐대며 말했다.

“진작에 눈치껏 굴었으면 이렇게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었잖아. 너희 집에 맛있는 음식 더 있으면 내일 가져와.”

그는 당당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아이들은 이 광경을 보고 좀 부러웠다. 그들은 만약 방금 자신도 함께했다면 지금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영음은 6년 인생 중에 다시 없던 분노가 차올랐다.

그녀는 묵묵히 일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이 선생의 교단으로 걸어가 단단하면서도 두꺼운 대나무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쟤가 스승님의 대나무 회초리를 들고 너를 때리려고 해.”

뚱보 옆의 한 아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깨워 주었다.

뚱보가 고개를 들어 보니, 괴롭힘당해도 아무 말도 할 줄 모르는 꼬마 아가씨가 대나무 회초리를 높이 쳐들고 작은 가슴에서 충만한 기를 내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탁!

꼬마 아가씨는 대나무 회초리로 뚱보의 머리통을 매섭게 찍었고, 회초리는 거대한 힘에 의해 소리가 나자마자 끊어졌다.

뚱보는 두 눈이 하얗게 뒤집혀 의식을 잃었다. 그는 뒤로 고꾸라졌는데 입에는 여전히 떡을 물고 있었다.

허영음의 작은 손은 대나무 회초리가 반동하는 힘 탓에 벌게졌다.

학당 안의 꼬마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멍하니 있었다. 두려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기지가 넘치는 꼬마 아이는 짧은 다리를 내디뎌 뒤뜰에 있는 이 선생을 찾으러 뛰쳐나갔다.

이 선생은 마침 부인과 밥을 먹던 중이었다. 하녀 둘이 옆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스승님, 스승님……. 그 멍청한 계집애가 사람을 죽였어요!”

한 남자아이가 뛰어 들어와 숨을 헐떡이며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리쳤다.

가슴속에 정기를 키우는 지식인 이병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 된 일이냐?”

“멍청한 계집애가 스승님의 대나무 회초리로 뚱뚱한 자식을 때려죽였어요.”

남자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밖을 가리켰다.

“보러 가야겠구나.”

이 선생이 밥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남자아이를 데리고 학당으로 돌아갔다.

* * *

이 선생이 안뜰을 지나 대당에 들어서자 뚱보를 둘러싼 아이들 한 무리가 보였다. 뚱보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 큰대자로 누워 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선생은 깜짝 놀라 안뜰에 가서 부인에게 뚱보를 돌봐달라고 소리쳤다. 그는 허영음을 혼낼 겨를도 없이 하인을 보내 가까운 약방에 가서 의원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다행히도 학당 위치가 좋아 약방이 멀지 않아서 의원이 빨리 왔다.

의원은 뚱보를 진찰한 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다만 침상에서 며칠 쉬어야겠네요.”

이 선생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 홀가분해졌다.

“이 아이는 어떻게 다친 건가요?”

의원이 물었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다가…….”

“아이들끼리 장난치는데 이렇게 심각하다니요?”

이 선생 역시 더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허영음의 뒷덜미를 들고 끌어오더니 큰소리로 호통쳤다.

“허영음, 왜 악의를 갖고 동창을 다치게 한 거니?”

허영음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걔가 제 먹을 걸 빼앗았어요!”

이 선생은 더 화가 났다.

“고작 그런 일이라니! 너 하마터면 사람을 때려죽일 뻔했어!”

허영음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

“걔가 제 먹을 걸 빼앗았어요.”

이 선생이 멍청하고 고집스러운 여자아이 때문에 분노 상태에서 벗어나 막 꾸짖으려고 하던 그때, 밖에서 고함이 들려 왔다.

“저희 공자님은요? 저희 공자님을 누가 괴롭힌 거예요?”

신체가 건장한 사내종 둘이 뛰어 들어왔다.

이 선생은 두 사내종을 알았다. 그들은 뚱보 저택의 하인으로 뚱보를 서당으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밖에서 ‘정탐꾼’의 밀고를 듣고, 자기 공자님이 누군가에게 맞아서 다쳤는데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글방에서 의원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 * *

그들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안뜰로 뛰어 들어와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의식을 잃은 뚱보가 침상 위에 누운 모습이 보였다.

“공자님…….”

그중에 한 하인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침상 가장자리로 달려들어 코밑에 손을 대 봤다……. 뚱보는 죽지 않았다.

하인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다. 공자님이 서당에서 맞았다. 하지만 나리와 마님은 사건을 심의하는 관리가 아니시다. 그들은 단지 공자님이 공부하다가 다쳤다고 생각할 것이니, 그러면 공자님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하인들이 벌을 받아야 한다.

두 하인은 분노에 찬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본 다음, 이 선생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저 새끼가 우리 공자님을 때렸습니까?”

이 선생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이 일은 오해다. 너희들은 먼저 그를 데리고 돌아가거라. 그 후에 내가 직접 방문하겠다.”

그는 먼저 허영음의 가족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찾아가서 사죄하라고 협의할 작정이었다.

그는 중재하여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다.

어쨌거나 그의 글방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악질적인 폭행 사건이 커지면 그의 명성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허나 하인은 무사보다 더 비열한 존재다.

“나리 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저는 저희 공자님이 맞았다는 사실만 압니다. 누군지 말씀해주십시오. 이 몸이 관아에 신고하러 가겠습니다.”

하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른 하인은 뜰 입구를 막아서서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 선생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봉율소의․명례(奉律疏議․名例)》규정에 따르면 열다섯 살 이하 및 불구가 저지른 유죄 이하는 금전으로 속죄한다. 열 살 이하가 반역을 저지르거나 살인하면 황제에게 주청한다. 약탈하거나 상해를 입힌 자는 금전으로 속죄한다. 글방에서 나가 오른쪽으로 꺾어 반 시진 정도 걸어가면 관아이니 두 사람은 빨리 갔다 빨리 돌아오거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어린이가 죄를 지은 경우 배상금으로 형벌을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두 하인이 법을 논한다면 분명 이 선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화가 난 나머지 소매를 걷어 이 선생을 흠씬 때리고 싶었다.

이때 한 남자아이가 허영음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쟤가 때렸어요. 쟤가 대나무 회초리로 사람을 때려서 죽였어요!”

“너로구나!”

이 순간 하인들은 이 선생이 무심코 꼬마 아가씨를 막아서는 걸 보았다. 사실 그들은 그 아가씨를 이제야 본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건장하고 다부진 남자아이한테만 지나치게 주의를 집중했을 뿐이었다.

그 계집아이는 아주 못생기고,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 보였다. 뚱보를 때린 사람이 그녀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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