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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67화 (267/712)

267화. 고집스러운 아이

저택의 점심 식사가 마침 다 차려졌고, 허칠안이 돌아왔다. 그는 동라와 패도를 벗어 바닥에 내던진 뒤 탁자에 앉아 알은체했다.

“숙부, 이제 집에 와서 점심 드시는 거예요?”

“앞으로도 와서 먹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막 임명돼서 내일부터는 외성에서 순찰하지 않는구나. 내성으로 바뀌었다.”

허평지는 탕을 마시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외성에서 내성으로 옮기면 직위는 변하지 않지만 한 품계가 올라간다.

“좋은 일이네요, 좋은 일!”

허칠안은 녹아가 건넨 그릇과 수저를 받으면서 속으로 말했다.

‘숙부가 오늘 왜 그러지? 시무룩한 표정인데.’

이때 허신년이 막 잠에서 깨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왔다. 그가 형님을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했다.

“아버지, 오늘 어머니와 싸우지 않으셨어요?”

허신년은 떠보면서 앉았다.

“흥, 하나같이 걱정을 덜어 주지 않는구나. 그래도 신년이 낫구나. 아무래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으니.”

숙모는 숙부와 조카를 노려보았다.

허신년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허평지는 아무런 내색 없이 숙모 곁에서 시중드는 여종을 쳐다보며 말했다.

“녹아, 부엌에 가서 탕이 다 끓었는지 좀 보거라.”

녹아는 얌전하게 대답하더니 종종걸음으로 편청을 나갔다.

“무슨 탕이요?”

어젯밤에 천금을 다 써 버린 허칠안이 흥이 나서 물었다.

“너와 신년에게 몸보신을 해 주려고.”

허칠안과 허신년은 서로를 쳐다봤고, 묘한 기분이 되었다.

‘숙모(어머니)가 우리한테 몸보신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았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녹아가 대접에 담긴 탕을 받치고 들어왔다. 짙은 신맛이 확 풍겨 왔다.

녹아는 사기 대접을 탁자 위에 두었다. 누르스름한 국물에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 잘게 썬 청귤이 떠 있었다.

숙모는 직접 허신년에게 탕을 떠 주며 볼멘소리를 했다.

“신년아, 두통이 있으면서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니? 이제 곧 춘시인데. 엄마가 잘못했구나. 엄마가 너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어. 이 청귤탕은 엄마가 특별히 널 위해 끓인 거란다.”

‘청귤탕?! 이, 이건 내가 사 온 청귤 아니지?’

허신년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청귤을 어떻게 탕으로 끓일 수 있는 거지? 마시고 죽으라는 거 아니야?’

“어머니, 머리가 아픈 건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요. 어젯밤에 동료들과 모임이 있어서…….”

허신년은 제 발 저리는 듯 형님을 쳐다보았다.

‘청귤로 탕을 끓였다니……. 어떤 인재가 이런 괴상한 요리를 생각해 냈을까?’

허칠안은 하마터면 소리 내어 웃을 뻔했지만 정색하고 말했다.

“청귤 보신탕이구먼. 신년, 꼭 많이 마셔야 해.”

“네 것도 있단다.”

허평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탕은 영월과 네 숙모가 고생해서 끓인 거야.”

?아주 큰 물음표가 허칠안의 머릿속에 나타났다.

“패기 넘치는 연신경 무사가 이런 걸 뭐하러 마셔요?”

허칠안이 반문했다.

“큰 오라버니!”

허영월이 상냥하게 말했다.

“한 그릇만 마셔요. 제가 아주 오랫동안 끓였단 말이에요.”

허칠안은 참지 못하고 남동생을 쳐다봤다.

남동생 역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형제 모두 상대방이 반기를 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

동동동동…….

결국 그 둘 모두 한 그릇씩 마셨다.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눈물이 흐르고 위가 뒤집어졌다.

“하하하하! 밥 먹자, 밥 먹어.”

허평지는 술을 마시며 소박한 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신년, 틀림없이 걔한테서 문제가 생긴 거야. 그렇지 않고선 숙부가 그렇게 날 아끼는데 이런 이상한 걸 마시게 할 리가 없다고.’

허칠안은 그릇을 내려놓고 사레가 들려 흐른 눈물을 닦았다. 그는 얼굴에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욕을 퍼부으며 허신년을 쳐다보았다.

‘전부 형님 탓이야. 그가 잔꾀를 부리지만 않았어도. 기어코 나한테 청귤을 가지고 가서 영음에게 먹이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나 허신년이 제 발등을 찍다니…….’

허신년은 은근히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악담을 퍼부었다.

형제 둘은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으며 신물이 넘실대는 위를 채웠다.

“봐봐, 형제 둘이 단숨에 활기차졌잖니. 음식을 먹어도 배로 맛있고 말이야.”

허평지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허칠안과 허신년은 겉만 후덕하지, 사실 심보는 못된 중년 남자를 상대하지 않았다.

허신년은 음식을 보고 구토 욕구가 가라앉자 천천히 한숨을 내쉬더니 식사 속도를 늦췄다.

“신년, 형이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허칠안은 형제간의 우애가 위태로운 걸 참작하고는 예의를 갖춰 말했다.

“무슨 일인데요?”

허신년은 그의 어머니를 빼다 박은 얼굴을 뽐내며 오만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랐는지 덧붙였다.

“이유 없이 행패 부리는 일이라면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형이 하고 다니는 난봉질 같은 일들 말이다. 그는 고고한 학자였으므로 이러한 일에 낄 수는 없었다.

“너는 사서를 통달했잖니. 원경제가 황후를 폐위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허칠안이 물었다.

“아이고!”

허평지가 젓가락으로 그릇 가장자리를 두드리니 맞부딪치면서 쟁쟁한 소리가 났다. 그가 급히 허칠안을 타일렀다.

“비록 집 안이지만, 폐하라고 존칭해야 한다. 밖에서 무의식 중에 내뱉어 골칫거리 만들지 않도록 습관 들이거라.”

원경은 연호다.

황제를 연호로 부르는 건 불경죄다. 마치 강호에서 많은 사람이 위연을 위 청의라고 칭하길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경제 폐후(廢后) 사건이야 알죠. 듣자 하니 당시에 꽤 큰 소동이었다고 하더군요.”

허신년이 말했다.

“에헤이, 너…….”

허평지는 아들을 쳐다봤다.

하지만 조카와 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왜 황후를 폐위하려 했다던가?”

“모릅니다. 사서에도 적혀 있지 않아요. 하지만 당시에 꽤 난리가 났지요.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목숨을 걸고 간언하였고, 어사와 급사중이 도처로 뛰어다녔죠. 원경제의 머리 꼭대기에 기어올라 똥을 싸고 오줌을 누어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지 못한 점이 한스럽습니다.”

허신년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결국, 죽음으로써 간언하여 돌이켰습니다. 황후가 폐위되지는 않았지만, 황후는 냉궁에 갇히고 원경 14년에야 나왔죠.”

평소 황제의 일거수일투족, 조당에서 황제의 행동 모두 사관에 의해 기록된다.

원경제가 도를 닦는 그 일도 처음 몇 년 동안은 사관들이 기록을 남겼다. 황제가 도를 닦느라 국정을 소홀히 한다며!

원경제가 이를 본 후에 격노하며 고치라고 요구했으나 사관은 끝끝내 죽음을 불사하며 버텼다. 하지만 연달아 세 사람이 곤장을 맞고, 한 사람을 파면하니 사관들은 굴욕적으로 무릎을 굽히고 다음과 같이 고쳤다. 황제가 도를 닦으나 국정도 그르치지 아니한다!

하지만 몇 년 후 후손들이 이 역사를 다시 수정하면 아마 원경제의 진면모가 드러날 것이고 심지어는 먹칠 당할 것이다.

“그럼 나중에 어떻게 풀려났지?”

허칠안은 당시에 차마 회경에게 캐묻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건 회상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혼하겠다고 난리친 적 없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해에 위연이 북방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승리하여 돌아왔고, 원경제가 전국적으로 사면 조치를 내린 김에 황후도 사면하였습니다.”

허신년이 말했다.

‘원경 13년이 어찌 그렇게 귀에 익숙하다 했더니, 알고 보니 위연이 단번에 천하에 이름을 날렸던 해였군……. 죄송합니다, 위 공. 고의로 무례하게 군 건 아닙니다.’

알고 보니 그해는 위연이 처음 두각을 나타냈던 해였다. 운주로 가는 도중에 사호가 말한 적 있었다. 원경 13년, 위연이 추수 후 재난의 시기에 임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여 한 달 반 만에 북방 오랑캐의 기병을 격파했다고 말했다.

‘어쩐지 회경이 위연의 제자가 됐더라니. 알고 보니 황후가 위연의 은혜를 입었던 거였군.’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

비록 그는 폐후 사건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명탐정 허 색마는 정황을 추리해 낼 수 있다. 황후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아주 큰 잘못은 아닐 터였다. 그렇지 않고선 원경제가 못 이기는 척 황후를 특별히 사면했을 리가 없다.

“칠안, 밥 먹고 시간 있으면 영음을 데리러 가거라.”

숙모는 재수 없는 조카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사람을 부리는 데에는 가차 없었다.

유치하게 계몽하는 두세 권의 책이라도 하루 동안에 다 익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천성이 고집스러운 아이를 종일 교실에 가두는 짓은 꼭 이로운 일만은 아니다.

그래서 보통 교육 기관은 오시 일각이면 마친다.

“왜 신년이 가지 않고요?”

허칠안이 책임을 미뤘다.

“신년은 오후에 서재에 가서 공부해야 하거든.”

숙모가 불쾌한 듯 말했다.

“너한테 하라면 할 것이지,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니?”

허칠안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숙모, 비단 다시 다 돌려주세요.”

숙모는 달콤한 미소를 짜내며 말했다.

“아이고, 칠안아. 한 집안 식구니 스스럼없이 대하는 거지. 자, 반찬 먹으렴, 반찬. 숙모가 네게 닭고기 집어 줄게.”

허칠안이 승직하고 부자가 되어 새 저택을 산 이후로 숙모는 그의 앞에서 허리를 펴지 못했고, 말을 할 때도 떳떳하지 못했다.

허칠안은 주소를 물은 후 또 말했다.

“영월 동생도 함께 가자꾸나. 너희 자매 둘을 데리고 내성을 구경하면 딱이겠다. 장신구 같은 것도 좀 사고.”

숙모가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칠안, 아니면 숙모도 같이 가자꾸나.”

‘내 돈으로 쇼핑하고 싶은 거지……?’

허칠안은 의혹의 눈초리로 숙모의 아리따운 얼굴을 주시하며 말했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장신구는 사지 않을래요.”

‘이 자식 자린고비가 따로 없네…….’

숙모가 정색하며 말했다.

“안 갈란다.”

“숙부, 보세요. 숙모가 저한테 빈대 붙으려고 하잖아요. 가엾은 저는 아직 마누라도 들이지 못했다고요. 돈 모아서 장가가야죠.”

허칠안이 바로 일러바쳤다.

허평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방금 오십 냥을 주지 않았소?”

“저한테 뻔뻔하게 그 오십 냥을 들먹이시는 거예요?”

숙모가 화를 내며 탁자를 쳤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은자가 났어요? 누군가 준 게 아니라면?”

허칠안은 상황을 이해했다.

‘숙부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비상금을 숙모에게 몰수당했던 거로군……. 그렇다고 나한테 성질을 부리면 안 되지 않나?’

그는 속으로 불평했다.

* * *

청운당(靑云堂)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단번에 출세한다는 의미고, 또 다른 하나는 경성 밖 청운산의 은혜를 입는다는 의미다.

글방을 차린 자는 늙은 서생으로 이병의(李炳意)라고 한다. 그는 쉰 살의 고령으로 두 눈은 이미 침침해지기 시작했기에 마침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낮추어 아이의 계몽을 지도하는 것이다.

이곳은 속수(*束脩: 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물)가 아주 비쌌는데 석 달에 한 번씩 냈다.

이병의 선생은 나름의 규칙이 있다. 가족 중에 문인이 있는 사람은 속수를 절반만 내도 되고, 가족 중에 관직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절반이 더 줄어든다.

물론 전제는 문관이다. 무사는 제외다.

이병의 선생은 이 규칙에 따라 청운당을 ‘귀족 소학교’로 만들었고, 가정형편이 풍족한 대부호들은 이 규칙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냈다. 물론 이병의 선생도 가르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대부호들은 자신의 아이를 계몽시킬 시간이 없을 경우 아이를 청운당으로 보내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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