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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66화 (266/712)

266화. 의구심

“폐하가 황후마마를 폐위하시려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이유가 없어. 그렇기에 신하들이 죽음으로써 간언한 거지.”

황후를 폐위하는 일과 태자를 폐위하는 일은 모두 황제의 가정사이자 국가 대사다. 사대부 계급도 아직 쉽게 아내를 내칠 수 없는데 하물며 황후는 한 나라의 어머니 아닌가.

이유가 없는데 문무백관이 어찌 원경제가 황후를 폐위하는 일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유가 없다면 원경제가 갑자기 진노하며 폐위하려 했을까?

배후에 분명 속사정이 있다.

“이 일은 원경제 몇 년에 발생했습니까?”

허칠안은 묻고 난 뒤 스스로도 너무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덧붙였다.

“복비마마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도……. 아, 그렇다고 소직이 황후마마를 의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회경공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쳐다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궁금하면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이지,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은가.”

허칠안은 좀 민망했다.

“원경 13년이야.”

회경이 시선을 거두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유에 관해서는 나도 몰라. 나중에 어머니께 여러 번 물었지만, 어머니도 대답하지 않으셨어.”

‘원경 13년이라. 어쩐지 귀에 익는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주마마.”

그는 본래 원경제가 사황자를 세우지 않은 게 태자가 비교적 우둔해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배후에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듯했다.

‘맞아. 태자가 아주 총명한 편은 아니지만 사황자도 그리 잘난 건 아니지……. 음, 사황자가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겠어……. 조만간 위 공에게 물어 봐야겠다. 그의 독한 눈으로 사황자가 어떻다고 말하면 바로 그렇다는 거니깐.’

몇 걸음 걸어가다가 회경이 갑자기 물었다.

“왜 오늘 서둘러 끝낸 거니? 네 능력으로는 집에 가서 ‘헤아려’ 볼 정도는 아닌데.”

허칠안은 회경이 그에게 솔직한 편이니 자신도 좀 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소직은 시간을 끌고 싶을 뿐입니다.”

“시간을 끈다니?”

회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허칠안은 장공주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소직은 상백 사건과 운주 사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폐하께서도 저를 좋아하지 않으시죠. 원래는 제게 자작위를 내린다 하셨는데 소직이 다시 살아나는 바람에 취소되었습니다. 그 후, 폐하께서는 복비마마 사건을 제대로 밝혀내기만 하면 저를 다시 장락현자에 봉하겠다고 약조하셨지요.”

‘나는 정말이지 너무 쉽지 않다.’

“너는 아바마마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리라 생각하지?”

회경공주가 동의하며 말했다.

“그 계책 좋네. 작위를 부여하지 않으면 너도 하루씩 미뤄.”

허칠안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역시 위연의 제자답게 생각의 방향도 일치하는구나.’

소위 군무희언(*君無戲言: 군주는 장난삼아 말하지 않는다)이라 함은 황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황제가 하달한 국책과 황명을 형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경제가 하루 작위를 부여하지 않으면, 개 같은 황제가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허칠안은 하루씩 미룰 것이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소직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허칠안이 하늘을 쳐다봤다. 지금 저택으로 돌아가면 점심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렴.”

회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편 점심 식사 반 시진 전, 원경제가 좌선을 마친 뒤 침전으로 돌아오자 태감이 기쁨에 겨워 뛰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폐하, 복비 사건에 중대한 진전이 있사옵니다, 중대한 진전이.”

놀란 원경제는 즉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말하거라.”

늙은 태감은 환관이 보고한 정보를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원경제에게 전했다. 원경제는 그의 보고를 말없이 들으며 어떠한 의사 표시도 하지 않았다.

“폐하…….”

늙은 태감이 눈을 내리깔고 공손하게 물었다.

“노비가 과감히 한 마디 여쭙겠습니다. 태자께서는 결백하신 겁니까?”

원경제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시기상조네……. 고작 이틀 만에 사건의 맥락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니. 허칠안은 확실히 인재구나. 잔꾀를 좀 부려서 그렇지.”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내각에 가서 하루빨리 조서를 작성하라고 재촉하거라. 길일은 택할 필요가 없다.”

지난번에 그가 늙은 태감에게 내각에 가서 황명을 전달하라 했다. 내각은 이미 명을 받았으나 근래에 길일이 없다는 이유로 미루던 참이었다.

“명 받들겠사옵니다.”

* * *

허평지는 순찰 업무를 맡아 투구를 안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허리춤의 패도가 발걸음을 따라 흔들렸다.

오시에는 반 시진의 휴식 시간이 있다. 백호장(百戶長) 신분의 허평지는 이때면 저택에 돌아와 식사하며 내친김에 차도 마셨다.

주방은 점심 식사 준비로 한창 바빴다. 숙모는 뒤뜰에서 새로 산 군자란을 심고 있었다. 그녀는 옅은 푸른색의 나상(羅裳)에 같은 색의 긴 주름치마 차림이었다. 그 치마에는 복잡한 회운문(回云紋)이 수놓아져 있었다.

허평지는 투구를 껴안은 채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부인, 배고프오. 부엌에 가서 좀 재촉하시오.”

숙모는 꽃을 심는 데만 집중하여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인?”

“왜요.”

숙모는 쌀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허 대인께서 오늘 저녁에 동료에게 접대하느라 돌아오지 않으실 건 아닌지요?”

허평지는 어리둥절했다.

“부인, 무슨 말이오?”

숙모는 마지막 군자란을 심고 손을 툭툭 털었다. 그런 다음 허리에 손을 얹으며 차갑게 웃었다.

“뭐랬더라. 맞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죠? 나리 친조카가 출세해도 나리를 잊지 않았더라고요. 숙부에게 몰래 은자를 챙겨줄 줄도 알고요.”

허평지는 깜짝 놀라며 속으로 말했다.

‘칠안이 내게 은자를 찔러 준 게 얼마나 오래된 일인데. 운주에 가기 전 일이라고. 어째서 이렇게 묵은 빚을 들춰내는 거야.’

“무슨 소리오? 칠안은 어제 막 관에서 튀어나왔고 그날도 밖에 나가 밤에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내게 은자를 찔러 줄 시간이 어디 있었겠소.”

허평지는 분명히 인정한 게 아니다.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허무맹랑한 일 아닌가.

숙모는 듣더니 성을 내며 버들눈썹을 치켜세우고 큰 소리로 말했다.

“허평지, 역시나 비상금 오십 냥을 챙겨서 몰래 기생집에 가고 싶은 거로구나! 신년이 오늘 아침에 허칠안이 나리한테 오십 냥을 몰래 찔러 줬다고 말하더군요. 나리께서 인정하고 공개할 줄 알았는데 정말 몰래 숨겨두려고 했는지는 생각지도 못했네요. 인정하지 않겠다 이거죠? 신년이 절 속이겠어요? 허평지 이 양심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이 몸이 심혈을 기울여 이 집을 꾸리고, 재수 없는 조카까지 키워놨더니 이렇게 저한테 보답하는 거예요?”

“신년은? 나오라고 하시오!”

허평지가 화를 내며 말했다.

숙모가 차갑게 침을 뱉었다.

“퉤, 잠자고 있으니 시끄럽게 굴어서 애 깨우지 마세요. 말 돌리지 마시고 오십 냥 내놓을 거예요? 말 거예요?”

“……줄 테니 부인은 화내지 마시오.”

허평지는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떨구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숙모가 돈을 숨겨놓은 곳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날렵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그는 침실에 들어간 뒤 곧장 허영음의 사랑채로 내달아 딸의 이불을 들추었다. 아래에는 그의 모든 비상금 팔십 냥이 있었다.

허평지는 이를 악물며 마음을 모질게 먹고 스무 냥 두 장과 다섯 냥 은표 두 장을 꺼냈다.

이때 그는 문득 침상 옆의 탁자에 청귤 한 봉지가 놓인 걸 알아차렸다.

청귤은 허평지의 눈에 단순한 귤이 아니었다. 그는 청귤에 특히 민감했고 즉시 마음속에 의심이 일었다.

“청귤은 시고 떫어서 보통은 약으로만 쓰이는데 뭐 하러 산 거지? 게다가 영음 방에 두고 말이야.”

그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번쩍였다.

* * *

허평지는 사랑채를 나와서 마당으로 돌아가 순순히 은표를 바쳤다.

숙모는 살짝 노여움이 가셨는지 콧방귀를 뀌었고, 품속에서 세련된 쌈지를 꺼내 은표를 잘 넣어 두었다.

허평지는 그 김에 물었다.

“영음이 탁자 위에 왜 청귤이 있는 것이오? 칠안이 산 것이오?”

“신년이 산 거예요.”

오십 냥이 입금되자 숙모는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신년이 샀다고? 신년이 청귤을 사서 뭐 하려고……. 그가 청귤을 산 목적이 나와는 다르겠지……. 아니다!’

허평지는 마음이 동요했다.

“신년이 어젯밤에 칠안처럼 밤새 돌아오지 않았소?”

“신년은 동창과 모임이 있었어요. 나리 조카는 어디에 가서 빈둥거리는지 누가 알겠어요.”

숙모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만약 허평지가 전에 여러 번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아내의 말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칠안이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신년 역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칠안이라면 아마 교방사에 갔을 거다. 하지만 청귤은 하필 신년이 사 온 거라니…….’

“신년 몸에서 귤 냄새가 났겠구려?”

허평지는 별생각 없다는 듯 물었다.

숙모는 자신이 심은 군자란을 감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뻔하다……. 칠안이 신년에게 가르쳐 준 것이야. 이변이 없는 한 칠안이 나를 팔아넘겼고, 이에 신년이 허무맹랑한 비상금 얘기를 지어내 나를 공격한 것이다……. 비열한 놈. 아버지마저도 음해하다니.’

허평지는 나지막이 말했다.

“신년이 요즘 골치 아픈가 보오.”

“네?”

숙모가 망연하게 쳐다봤다. 그녀는 아들의 일이라면 아주 마음이 쓰였다.

“청귤은 정신을 가다듬고 두통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장점이 아주 많소. 그렇지 않고서 시고 떫은 이 귤을 누가 펼쳐놓고 팔겠소?”

허평지가 말했다.

청귤은 확실히 약용 가치가 있지만, 두통을 치료한다는 말은 허평지가 지어낸 것이다. 어쨌든 아내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공부도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니 이를 알아채기는 불가능했다.

“분명 춘시 때문에 압박이 심할 거예요.”

숙모는 문득 가슴이 아팠다.

“부인, 신년이 아직 장가들지 않았으니 하루 종일 화초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어머니로서 정성껏 보살펴야 하오.”

허평지가 훈계했다.

“이건 신년 본인이 먹으려고 사 온 건데 어째서 영음 방에 두었소?”

숙모는 현모양처 스타일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학자 집안 출신에 본인의 미모를 믿어서 그런지 아주 오만하고 까탈스럽다.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살뜰히 돌봐주는 정도로는, 그녀가 스스로를 돌보는 정성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성가신 허영음 때문에 자주 화를 내며 빽빽거렸다. 밥을 먹을 때는 어린 딸을 녹아에게 맡겨 보살피라고 한 뒤, 자신은 아주 즐겁게 밥을 먹었다.

“신년이 직접 영음에게 준 거예요.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서당에서 돌아오면 먹으라고 영음 방에 뒀어요.”

숙모가 설명했다.

“됐소, 그만 말하시오. 얼른 주방에 청귤을 가져가서 취사부에게 푹 끓이라고 하시오. 신년이 깨어나면 마셔야 하오. 참, 칠안에게도 한 그릇 끓여 주시오.”

허평지가 말을 마치고 황급히 덧붙였다.

“이 탕은 맛이 없어서 칠안이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오. 숙모가 돼서 그를 제압하지 못하니 영월에게 같이 끓이게 하시오. 저녁에 그가 돌아오면 그가 마시지 않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숙모는 고개를 끄덕이곤 치마를 살랑대며 청귤을 가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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