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64화 (264/712)

264화. 사건의 중대한 돌파구 (1)

허칠안은 매서운 눈빛을 하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

“사건의 내막을 감추고 속이는 자는 복비마마를 살해한 용의자로 간주하여 야경꾼 감옥에 가둘 것이다.”

한 환관이 즉시 말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저희는 각루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각루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허칠안은 자신이 맹점을 발견한 것 같았다. 어떤 남정네가 복비의 침궁에 들어갔는데 하인들이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경제를 놔두고 바람피운다는 걸 의미한다.

허칠안은 은근히 기대에 찼다.

환관이 설명했다.

“복비마마께서는 술을 좋아하십니다. 마마께선 술에 취하는 날에는 걸핏하면 청풍전 하인들을 때리고 욕하셨지요. 저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을까 봐 두려워 마마께서 술을 드시는 날에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매번 그랬는가?”

허칠안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환관이 대답했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이냐.”

환관은 이 질문을 듣고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비가 청풍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러셨습니다.”

‘기생오라비 같은 놈, 네 스펙으로는 안 되겠다…….’

허칠안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복비마마 곁에서 시중드는 궁녀가 누구냐.”

“노비입니다…….”

다소 나이가 있는 궁녀가 대열 앞으로 나왔다.

“본관이 방금 한 질문에 네가 대답하거라.”

허칠안은 그녀를 주시했다.

“그, 그건…….”

나이 있는 궁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요 몇 년간 마마의 성격이 점점 이상해졌어요. 혼자서 자주 각루 위에 서 계셨는데 뭘 보고 계셨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술을 드실 때는 애수에 잠겨서 감성적인 시사를 읊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그녀는 모호하게 얘기했다. 복비와 황제의 가정사에 참견할 엄두가 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허칠안과 회경 모두 똑똑한 사람이라 숨은 뜻을 알아들었다.

‘외로운 부인의 슬픔이구나. 에휴, 원경제는 사람 자식도 아니다. 후궁이 이렇게 많고 게다가 전부 이리 예쁜데 도를 닦으러 가서는 금욕을 하다니…….’

허칠안은 탄식하며 다시 물었다.

“사고가 난 그날, 복비께서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를 들은 자가 있느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허칠안은 아무 말 없이 각루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든 이들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방금 각루에 들어간 궁녀가 조망대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궁녀는 허칠안의 지시를 받은 즉시 요망대 쪽의 격자문을 닫았고, 이내 안쪽에서 미약하게나마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쯤 되자 그다지 총명하지 않은 임안도 허칠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뻔뻔한 것들 같으니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살려달라는 소리가 이렇게 똑똑히 들리지 않는가!”

임안이 분노했다.

마당에 있던 하인들이 깜짝 놀라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허칠안은 손을 아래로 저어 그들에게 조급해하지 말라는 의사를 나타냈고, 돌아서서 소두목에게 분부했다.

“끊어진 난간을 가져오게…….”

그리고 그는 나이가 있는 궁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남고 다른 사람들은 물러가거라.”

나이가 있는 그 궁녀는 당황한 나머지 두 손을 불안하게 휘저었다.

“공공, 자네 먼저 바깥뜰에 가 있게. 잠시 뒤에 부르면 다시 오게.”

허칠안은 본래 그다지 눈치 없는 이 태감이 반박할 줄 알았다. 사실 그는 회경과 임안을 내세워 그를 압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환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꺼이 돌아서서 떠났다.

“뭘 발견한 거지?”

사람들이 간 후 회경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도도하고 오만한 공주마마는 그녀 스스로 추리를 했다. 그녀는 방금 궁녀가 각루 안에서 살려달라고 외칠 때 미약하긴 했으나 밖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복비는 살려달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둘째, 복비는 누군가에 의해 제압당했다.

“태자 전하의 수련 경지는 어찌 됩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몇 년간 무예를 익혀 말타기와 활쏘기에 모두 능숙하네.”

회경이 대답했다.

‘아, 약골이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의 수련 경지는 연정경만도 못 하다. 사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황자에게는 혈통을 잇고 대를 이어가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개인의 무예가 별거 있나? 황제는 전투에서 용맹을 떨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또한 자신이 미색을 마주해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는지 역시 중대한 시험이다.

더욱이 명색이 황자인 태자 곁에는 아리따운 노비가 아주 많다. 그는 어린 시절 충동적인 시기에 몸가짐을 깨끗하게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허칠안은 자신이 그렇게 굳센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에 19년 동안 모태솔로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자께서는 수련 경지가 깊지는 않으나 연약한 여인에게 힘을 쓰기는 식은 죽 먹기지요. 그래서 복비께서도 구해달라는 소리를 낼 기회가 전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우리 태자 오라버니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어.”

임안은 즉시 반박했다. 이는 친여동생으로서의 마지막 고집이었다.

허칠안은 동글반반한 얼굴을 찐빵처럼 부풀린 임안에게 대꾸하지 않았고, 나이가 있는 궁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친 궁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노비가 드린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절대 거짓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인께서 고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부 다 말하지도 않았지. 아니냐?”

허칠안이 칼자루로 그녀 근처를 치며 말했다.

“본관은 인내심이 없으니 네가 말하지 않겠다면 야경꾼 관아의 감옥에 가서 진술하거라. 안의 옥졸들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구나.”

궁녀와 태감들은 꾀는 많고 담은 작아서 위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궁녀가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모질게 먹은 뒤 말했다.

“마마 두 분 그리고 허 대인,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녀는 돌아서서 각루로 들어갔고 허칠안과 회경, 임안이 그 뒤를 따랐다.

* * *

궁녀는 각루로 돌아온 뒤 곧장 침상 밑으로 가 나무 궤짝 하나를 힘겹게 당겨서 열었고, 낡은 옷가지들 밑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궁녀는 고개를 숙이고 겁을 먹은 채 나무 상자를 받쳐 들었다.

허칠안은 받아서 나무 상자를 열어 봤다. 그는 안에 있는 물건을 똑똑히 본 후 머릿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우후!’

그는 지금 곁에 임안과 회경이 있지 않았다면 괜히 휘파람을 불었을 것이다.

나무 상자 안에는 옥으로 조각된 물건이 놓여 있었다.

허칠안은 문득 왜 궁녀가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했는지 이해됐다.

이 물건은 궁전에서 금품에 속한다.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일단 이곳은 궁전이다. 비(妃)는 황제의 여인이니 틀림없이 안 될 일이다.

황제가 체면은 필요 없다던가?

일단 들키면, 심하게는 냉궁(冷宮)에 들어가고 가볍게는 지위가 떨어진다.

‘이로써 복비가 왜 하인들을 각루 밖으로 내쫓아야 했는지 설명된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눈앞의 이 물건은 별개이긴 한데……. 환관을 내쫓았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원경제가 나를 죽여 멸구해야 했어…….’

허칠안의 표정이 복잡했다.

“이게 뭐야?”

임안공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칠안은 그녀를 쳐다보고 다시 회경을 쳐다봤다. 도도한 공주는 무표정으로 옥 조각품을 빤히 쳐다보았는데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지? 아니지? 임안이 일자무식인 건 그렇다 치고, 경전을 많이 읽은 회경공주 너도 모르는 거야?’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공주들에게 설명했다.

임안은 ‘아이고’하고 소리를 내더니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동글반반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목과 귀까지 전부 빨개졌다.

회경공주는 감전된 듯 눈동자가 수축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금세 전후 사정을 납득했는지 침착해졌다.

“복, 복비께서…… 이런 물건을 몰래 숨기고 있었다니. 아니, 수치스러움도 모르는 건가. 빨, 빨리 거두어들여라…….”

임안이 말을 더듬으며 나무랐다.

허칠안은 상자를 덮고 궁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두 마마의 눈을 더럽히지 말고 도로 거두거라.”

궁녀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허칠안이 물었다.

“그날 복비께서 떨어졌을 때 이 물건은 침상 위에 있었나 아니면 상자 안에 있었나?”

“당연히 상자 안에 있었을 겁니다.”

궁녀가 말했다.

‘만약 침상 위에 이 물건이 있었다면 권종에 쓰지 않을 리가 없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물었다.

“실종된 그 궁녀는 너처럼 곁에서 복비를 시중들던 아이더냐?”

궁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내려가거라.”

허칠안은 그녀가 나간 뒤, 탁자에 앉아 ‘옥여의(玉如意)’를 가지고 화학 검사를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일자무식 두 공주에게 분석해 주었다.

“복비께서 추락한 그 날, 뜰 안에 있던 하인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자께서 그녀를 제압했든지 복비께서 기꺼이 태자와 사통하기를 원하셨던 거겠죠.”

회경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기꺼이 사통하기를 원했다면 어째서 방 안에 저항하고 발버둥 친 흔적이 있는 것인가?”

‘딱 보니 경험이 없구나…….’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역시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 복비께서 처음에는 원치 않아서 저항했으나 태자께서 어떤 방법을 써서 그녀를 협박한 것입니다. 둘째, 때때로…… 그건 꼭 누워서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두 공주는 동시에 얼굴이 빨개지면서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럼 복비께서 왜 추락한 거지? 네가 말했듯 누군가 그녀를 밀어서 떨어진 거잖아.”

회경이 냉정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당분간 해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허칠안이 분석했다.

“사건 발생 당일, 복비께서는 술을 드셨지요. 제가 만약 태자라면 이 일로 협박해서 장기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겁니다. 복비께서는 오랫동안 홀로 지내신 몸이라 못이기는 체하셨을 수도 있지요. 그녀를 아래로 밀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설령 태자께서 술이 깬 뒤에 죽여서 멸구하려 했어도 잠자리를 한 뒤는 아니어야 합니다. 현자 시간에 남자는 가장 냉정하기 때문이죠. 결단코 충동적으로 굴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복비께서 그 일을 하려고 각루 안에 있던 궁녀와 당차를 내쫓았죠. 그렇다면 더더욱 곁에서 시중드는 궁녀를 보내 태자를 초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두 사람이 진작부터 떳떳하지 못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말이죠. 하지만 삼법사의 조사 그리고 당차와 궁녀들의 진술에 따르면 복비마마와 태자는 예전부터 왕래하던 사이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태자 오라버니가 정말 죄를 뒤집어썼다는 거네.”

임안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아직 결론을 내릴 시기는 아닙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경이 물었다.

“너는 궁녀가 감추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챈 것이냐?”

그녀는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허칠안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가르침을 청하는 것 같지만 체면이 서지 않을까 봐 주저하고 있었다.

‘표정의 심리학을 배워야겠군…….’

허칠안이 말했다.

“사람의 표정과 몸짓은 어느 정도 속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입보다도 더 정직하죠.”

회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본 공주는 그런 지식이 담긴 책을 본 적이 없네.”

“이건 제가 직접 탐구한 것입니다.”

회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했다.

“너는 역시 사건 수사의 천재야.”

‘……사실 사건 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이라고. 그게 없으면 네가 설령 추리 천재라 해도 문턱을 넘을 수 없지.’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마마, 과찬이십니다.”

이때 시위 소두목이 아래층에서 소리쳤다.

“허 대인,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허칠안이 바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제 추측을 검증해봐야겠습니다. 복비께서 어떻게 죽었는지 곧 진상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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