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63화 (263/712)

263화. 사건 발생 현장

임안은 손에 금패를 쥐고 거침없이 황궁으로 들어가 소음원에 이르렀다. 허칠안이 함께 사건을 수사하러 가기 위해 임안을 데리러 왔다.

임안공주는 오늘 붉은색의 궁장을 입었다. 색깔이 어제와 같았지만 디자인이 달랐다. 그녀는 기뻐하며 깡충깡충 뛰어왔다. 계란형 얼굴에 달콤한 미소,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화안.

허칠안은 임안을 안 후로 미인이 반드시 뾰족하고 갸름한 얼굴형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계란형 얼굴의 여인 역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임안이 깡충깡충 뛰어와 나긋나긋 몸을 돌리니 치맛자락이 펄럭였다. 일부러 허칠안 앞에서 미모를 과시하기 위함이었지만, 아마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칠안이 궁금해하며 말했다.

“공주마마께선 어째서 늘 붉은색 치마만 입나요……?”

임안은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흥, 개자식. 본 공주가 치마를 입을 때 아주 예쁘다고 말하지 않았어?”

허칠안이 갑자기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임안이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왜 그래?”

“마마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우셔서 소직의 눈이 멀어버렸지 뭐예요.”

허칠안이 큰 소리로 아부했다.

임안은 이 말을 듣자 화가 기쁨으로 바뀌었다. 허칠안은 말을 참 듣기 좋게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마마, 저 오늘 청풍전에 가서 좀 보려고 합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임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본 공주는 한 사람 더 기다려야 해.”

그녀의 미간 사이에 득의양양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래턱을 높게 치켜드니 새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가 드러났다.

허칠안은 공연히 가슴이 철렁했고, 속으로 말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내 생각과 같지 않겠지?’

* * *

일각 뒤, 하얀색 치마에 도도하면서도 화려하고 걷는 자태마저 아름다운 회경이 왔다.

“…….”

임안공주는 기세등등한 암탉처럼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위세를 부리며 말했다.

“회경이 굳이 우리 주인과 종을 따라서 식견을 넓혀야 한다잖아. 본 공주가 나서서 그녀의 요구를 만족시켜줬지. 개…… 허칠안, 네 생각은 어때?”

그녀는 특별히 ‘주인과 종’이란 말을 또박또박 발음하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소유권을 선언하는 듯했다.

허칠안은 속으로 울부짖었다.

‘내 생각에는 뭐 같거든! 내가 언제 네 종이 된 것이냐…….’

그러나 그는 겉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직은 상관없습니다.”

회경공주는 맑고 투명한 눈으로 둘을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본 공주가 허 대인의 은혜를 받겠네.”

‘장공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나와 임안은 결백하다고. 나는 여전히 너의 소이자 말이야. 그냥 황궁의 노비라고.’

허칠안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는 회경이 복비 사건에 참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회경은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다만 명색이 귀한 신분인 공주라 예전에는 접촉할 명분도 환경도 갖춰지지 않았다.

회경은 상백 사건 때 종종 허칠안을 궁으로 불러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묻고, 그와 함께 사서에 머리를 처박고 단서를 찾았다.

지금 궁 안에서 이렇게 큰 사건이 발생했으니 회경에게 강한 흥미가 생기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종전의 주관 기관은 삼사였기에 회경이 끼어들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석 수사관이 허칠안으로 바뀌었으니 회경이 자연스레 온 것이다. 물론, 허칠안은 임안의 꿍꿍이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의심이 들었다.

예를 들어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회경 앞으로 뛰어가 말하는 것이다. 본 공주의 개자식이 돌아왔어. 회경. 개자식은 본 공주의 말을 가장 잘 들어…… 등등. 어쨌든 내키는 대로 뽐내면 된다.

허칠안은 변덕스럽고 의리 없는 사람이라, 너무 난처한 나머지 청풍전으로 가는 길 내내 아무 말 없이 두 공주의 뒤에 있었다. 그는 침묵으로 존재감을 떨어뜨렸다.

‘임안은 늘 이런 식이야. 나는 언젠가 양다리를 걸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 거야…….’

그들은 도중에 당직을 서는 시위에게 어제 동행한 환관을 찾아오라 일렀다.

환관은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회경과 임안에게 공손하게 예를 갖춘 후 그는 허칠안을 향해서도 예를 갖추며 말했다.

“허 대인, 어제 노비가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을 언짢게 여기지 마십시오. 허 대인의 호의, 노비가 모두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허칠안은 어리둥절하여 속으로 말했다.

‘나한테 호의가 어디 있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지만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그래’하고 대답했다.

일행은 청풍전을 향해 걸어갔다. 두 공주는 가장 앞에서 걸었다. 백의 vs 홍의. 모두 빼어난 미인으로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외모와 품격뿐만이 아니었다.

허칠안은 처음으로 이렇게 조용히 꽃송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감상하다 보니 역시 회경공주가 한 수 위임을 알 수 있었다. 소리 없이 걷는 회경은 공주로서의 품위가 대단했다.

하지만 걷는 동안 허리를 좌우로 비틀대며 치맛자락을 흔드는 건 임안이 좀 더 위였다. 이는 임안이 회경보다 더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라는 걸 의미했다.

* * *

이내 일행은 청풍전에 도착했다.

청풍전은 이미 궁중 시위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고, 궁녀와 환관들은 안뜰에 갇혀 외출이 금지되었다.

임안과 회경 두 공주의 얼굴은 쓸모가 없었다. 허칠안이 금패를 내보이며 신분을 알리자 시위가 그제서야 비켜주며 공손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소위 청풍전이라 하면 사실 한 채에 두 동인 궁원으로 앞마당에는 하등 궁녀와 환관이 머물고, 뒤뜰에는 복비의 심복이 살고 있었다.

주전(主殿)은 2층 높이의 각루로, 높게 솟아오른 처마는 기백이 넘쳤다.

2층 조망대의 난간은 토막 나 있었는데 복비가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허칠안은 눈대중으로 높이를 헤아렸다. 약 6~7미터로 이런 높이에서 떨어지면 대체로 염라대왕이 받아줄지 말지 지켜봐야 한다.

복비처럼 후두부가 땅을 대고 있는 경우에는 염라대왕이 그녀의 미색을 노리고 그녀를 아래로 불러들여 누구도 구해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전 역시 폐쇄되었고, 시위 네 명이 입구를 지키며 현장을 보호했다.

“당시 복비께서 어느 위치에서 돌아가셨는가?”

허칠안이 시위 소두목(小頭目)에게 물었다.

소두목은 임안의 발치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복비마마께서는 저 위치에 떨어지셨습니다.”

임안은 기겁하여 날렵한 토끼처럼 ‘탁’하고 뛰어올랐다.

허칠안은 복비의 시체가 떨어진 위치에 서서 고개를 들어 각루를 쳐다봤고, 시선을 거둔 뒤 말했다.

“각루에 다녀간 사람이 없었는가?”

“삼법사 사람들이 들어갔습니다.”

“가져가거나 훼손한 건 없는가?”

“없습니다. 소직이 줄곧 옆에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끊어져 갈라진 난간 역시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삼법사 사람이 가져가지 않았고요.”

‘누군가 옆에서 감독한다라……. 현장 증거물은 가져가면 안 되지……. 원경제는 역시 권모술수 고수답다. 태자 일파, 태자당이 태자를 도와 뒷수습할 가능성을 직접 차단한 것이다.’

허칠안이 말했다.

“문을 열게. 본관이 올라갈 것이네.”

그들은 각루에 들어서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했다.

허칠안과 회경공주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임안은 두 사람을 보더니 ‘진지하게 수색하는’ 시늉을 했다.

우선 그들의 시선을 끈 건 탁자 곁에 뒤집혀 있는 둥근 의자, 이미 차가워진 차가 담긴 탁자 위의 찻잔, 마구 흐트러진 침상, 한쪽이 찢어진 침상 휘장, 동쪽 벽에서 떨어진 서화 등이었다…….

허칠안은 코를 킁킁거리며 사방의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를 맡는 거야?”

허칠안이 하도 이상하게 굴어 임안은 더 이상 수색하는 시늉을 하지 못했다.

“공주마마, 조용히 해 주세요. DNA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디 뭐 에이?”

임안은 멍해졌다.

허칠안은 상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저 공기 중에 어떤 냄새가 잔류하고 있는지 맡아 볼 뿐이었다. 꼭 DNA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며칠이 흘렀으니 냄새가 남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해야 하는 판별은 그래도 해야 했다.

“DNA가 뭐야?”

회경이 주도적으로 물었다.

공부벌레의 본능적인 지적 욕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허칠안은 집중하느라 대답을 미뤘다.

허칠안은 침실의 침상을 가리키며 소두목에게 물었다.

“침상은 원래 저렇게 어지러웠는가?”

“삼법사 사람들이 들춘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처음 왔을 때도 이렇게 어지러웠습니다.”

소두목이 대답했다.

‘DNA를 검사할 수 없어 애석하다. 검사만 할 수 있으면 바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건데……. 역시 전생의 기술과 과학이 좋구나…….’

그는 빈정대면서 요망청에 갔다.

난간의 끊어진 부분을 검사한 허칠안은 요망청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강대한 정신력으로 그의 프로파일 능력을 폭발시켰다.

그는 현재 현장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에 근거하여 머릿속에 동적인 영상을 묘사해 냈다.

태자가 곤드레만드레 취해 건물을 올랐고, 복비는 그의 숙취 해소를 도우려 탁자 옆에 앉아 그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다. 하지만 태자는 찻잔을 건드리지 않고 복비의 작은 손 혹은 다른 곳을 만졌다. 복비는 이에 아연실색하여 의자가 뒤집어졌다.

그런 뒤 태자는 그녀를 강제로 추행하려 했다. 복비를 침상으로 잡아당겼고, 격렬한 떨림 속에 침상이 어지러워지고 침상 휘장 한쪽이 찢어졌다. 복비는 태자의 제압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몰라 요망청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려 했는데 도중에 부딪혀 그림이 떨어졌다.

태자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보자 분노에 차올라 대담하게 복비를 요망청에서 밀었다. 이어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척 가장하기 위해 외실(外室)에 들어가 죽은 듯이 잤다.

허칠안은 눈을 뜨고 숨을 내쉬었다.

시종일관 그를 지켜보던 회경과 임안이 바로 입을 열어 물었다.

“뭘 발견했어?”

“사건은 사실 어렵지 않지만, 몇 가지 우선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확인해야 할 몇 가지라…….’

회경은 또박또박 캐물었다.

“뭔데?”

회경은 입술을 오므렸고, 허칠안을 주시하면서 그가 어떤 걸 발견했는지 고민하였다. 회경은 그와 똑같이 방을 샅샅이 수색한 지금 오히려 얼떨떨했다. 아주 쓸모 있는 단서를 찾지도 중대한 발견을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복비가 정말 태자에게 수모를 당했다면 분명히 도움을 요청했을 겁니다. 그런데 청풍전의 당차와 궁녀들이 왜 듣지 못했죠? 저희 우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자네 내부에 있는 궁녀와 당차를 모두 불러 모으게.”

마지막 말은 소두목에게 한 말이었다.

그들은 즉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마당에는 청풍전의 모든 당차와 궁녀들이 소집됐다. 총 스무 명으로 궁녀 네 명과 당차 여덟 명이었다.

“너희들은 잘 들어라. 이분은 황명을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는 허 대인이시다. 이분이 전권을 맡아 복비께서 화를 입으신 사건을 처리하실 것이다. 허 대인께서 지금 물으실 게 있다고 하니 반드시 숨김없이 대답해야 할 것이다.”

소두목이 나지막이 말했다.

“네!”

모든 이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소두목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허칠안을 쳐다봤다.

허칠안은 청초한 궁녀 하나를 특정 짓고 손짓했다.

“이리 오거라.”

궁녀는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좀 더 오거라.”

궁녀는 허칠안 앞에 다가왔고, 그는 귓속말로 몇 마디 속삭이더니 말했다.

“가거라.”

궁녀는 종종걸음 치며 각루로 들어갔다.

‘뭐 하려는 거야?’

임안과 감독하는 환관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여 실의에 빠졌고, 회경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허칠안은 나머지 궁녀와 당차를 둘러보며 말했다.

“본관이 너희들에게 묻겠다. 그날 복비께서 사고를 당했는데 왜 각루 안에서 모시던 궁녀가 없었던 것이냐?”

궁녀와 당차는 서로 쳐다보며 주눅이 들어 말을 하지 못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