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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61화 (261/712)

261화. 대리사

태양이 완전히 서산으로 질 무렵, 여종들이 식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챙겨 들어왔다. 하늘에서 나는 것,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 바닥에서 기어 다니는 것 모두 있었다.

두 사람은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내키는 대로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없었다. 부향은 꽤 식견이 넓었다.

“사실 경성 유림의 많은 지식인이 허랑을 아주 존경하고 있어요. 어제 여종이 교방사 손님의 입을 통해 허랑이 순직한 소식을 알아보았는데 그 지식인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하며 세상에 유일무이한 허칠안이 대봉 시단의 미래를 끊었다고 말했대요.”

“말하자면 내가 그날 수천의 반란군을 마주했을 때 홀로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힘이 다할 때쯤 시 한 수를 짓긴 했소.”

허칠안이 술잔을 움켜쥐었다.

부향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며 얼굴에는 매력적인 웃음을 띠고, 아주 기대에 차 말했다.

“허랑의 새로운 시를 듣고 싶어요.”

‘남의 글을 표절하는 사람이 되니 어째 늘 부끄러운 것 같군. 나는 역시나 정직한 남자야…….’

허칠안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도 허세를 부려야 할 때에는 절대로 대충대충 하지 않았다.

그는 몇 초 침묵하더니 차분하게 마음을 먹고 천천히 말했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생사를 같이 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속 꼭 지키세.”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부향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물빛이 출렁여 어여쁘면서도 게슴츠레했다.

부향은 마음속으로 이 시를 깊이 음미했다. 비록 불완전한 사(詞)이지만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천의 반란군에 맞서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녀는 이 남자에게 더욱 빠져서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멍하니 있지만 말게. 그 시는 목적이 있소.”

허칠안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목적이요?”

부향은 정신을 차리고 막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널리 퍼뜨려 주시오. 이렇게 훌륭한 사적을 떠벌리기에는 교방사가, 또 부향 낭자가 제격이지.”

장 순무는 뜻밖에도 황제에게 고하는 상소에 그의 사(詞)를 추가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멍청했다. 경성 관리 사회와 유림이 지금까지도 그의 걸작을 삼가 읽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얼마나 애가 타야 한단 말인가.

“……아.”

* * *

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자, 여종이 따뜻한 물을 끓여 허 서방님의 목욕 시중을 준비했다.

“너는 물러가거라.”

허칠안은 여종을 쫓아내고 부향 한 사람만 방 안에 남겼다.

부향이 얇은 옷을 걸치고 목욕통에 발을 들여놓자, 허칠안은 머리에 쓰고 있던 담비 모피 모자를 벗어버렸다.

“풉…….”

부향은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목욕통 가장자리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다는 거지. 비록 대머리가 됐지만 강해지기도 했다고…….’

허칠안은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아마 반년이 지나야 다시 예전만큼 자랄 수 있을 듯했다.

* * *

두 사람은 목욕을 마친 뒤 침상 위에 누워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중간, 허칠안이 입을 맞추었다. 부향은 숨 막힐 듯 답답해하며 호흡이 고르지 못하자 뾰로통하게 반질반질한 대머리를 밀어냈다.

“후!”

허칠안은 기기를 튕겨 촛불을 껐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기녀 낭자의 시중을 받아 옷을 입은 다음에 떨어지기 아쉬워하면서도 다크서클이 짙은 부향과 작별인사를 했다.

영매소각의 여종들은 마당 문을 뛰어넘는 허칠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허 공자님 정말 대단하지 않니? 아가씨 방의 침상을 바꿔야 할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지금 앉으면 소리가 나더라고. 곧 무너질 것 같아. 정말 아가씨가 고생이 많아.”

“빨리 가서 아가씨가 목욕하게 물을 끓이자. 그리고 비파 연고를 준비해. 아가씨 목이 쉬겠어.”

* * *

영매소각을 나오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정면에서 덮쳐오는 한파에 허칠안은 정신을 차리고 마구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발밑에 딱딱한 덩어리가 밟혀서 고개를 숙여 보니 쌈지였다.

‘연신경에 들어서니 바로 쌈지 줍기로 업그레이드된 건가…….’

허칠안은 기뻤고,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주워서 품 안에 넣으려 했다.

그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 쌈지는 그가 허리에 차고 있는 염낭과 똑같았다. 촘촘한 바느질 땀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수놓아져 있었다. 영월 동생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것이었다.

‘숙부?’

허칠안은 중얼거리는 동시에 마구간 방향에서 유삼(儒衫)을 입은 젊은이가 황급히 뛰어오는 걸 보았다. 이 젊은이는 입술이 붉으며 이가 하얬고, 눈동자는 마치 별 같았다. 출중한 이목구비는 어머니의 우수한 유전자를 완벽하게 물려받았다.

‘이건 내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건데…….’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외모가 출중한 젊은이의 시선이 줄곧 땅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허칠안에게로 향했고, 곧이어 바보처럼 멍해졌다.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리며 손을 들고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허신년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좋은 아침…….”

형제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자 허칠안이 주도적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그는 걸어가서 쌈지를 신년에게 돌려주었다.

“덜렁대지 말거라. 내가 쌈지를 주웠으니 망정이지.”

허신년은 차분하게 받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형님.”

형제 둘은 순간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구간으로 걸어가 각자의 말을 잡아끌어 다그닥다그닥 교방사를 나섰다.

* * *

이때는 막 동이 텄을 때라 노점 상인과 행상인을 제외하고는 행인이 드물었다.

“어제 동창과 같이 있었습니다.”

“어제 동료와 함께 있었어…….”

형제 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돌려 교방사 골목을 쳐다봤고 곁눈질로 동생을 흘겨보며 물었다.

“동창은?”

허신년이 전방을 주시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동료는요?”

형제 둘은 또 이야깃거리가 없어졌다.

허칠안은 감옥에서 나와 집에 돌아갔던 때가 떠올랐다. 허신년은 ‘긴 밤과도 같은 대봉의 오랜 세월’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여 너무 수치스러운 나머지 기절한 척했더랬다.

지금 다시 보니, 교방사 현장에서 마주쳤어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나 혼자만 성장하는 게 아니군. 신년의 낯짝도 많이 두꺼워졌네……. 음, 아마도 내 앞에서 너무 여러 번 죽다 보니 익숙해진 거겠지…….’

허칠안은 길가에 청귤 장수가 보이자 황급히 말고삐를 잡아 멈췄다.

“잠시만.”

허신년도 그를 따라 고삐를 잡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허칠안은 청귤 한 근을 산 뒤 허신년에게 말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 껍질을 벗겨 옷을 닦으면서 말했다.

“교방사 아가씨들의 분 냄새가 너무 강하잖아. 청귤 껍질 즙으로 감추면 아무리 코가 예민한 사람이라도 냄새를 맡지 못하지.”

허신년은 재빠른 솜씨로 그대로 따라 하면서 독설을 날릴 기회를 잡았다. 그가 비꼬면서 얘기했다.

“형님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학문에 정진하지 않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허칠안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숙부가 내게 가르쳐준 방법이야.”

허신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청귤 즙을 열심히 옷에 발랐다.

허칠안은 다 처리한 후 청귤을 허신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사건을 처리하러 궁에 들어가야 하니 네가 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렴.”

신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건 처리요? 또 무슨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요?”

“복비 사건 들어봤지? 황제 노인네가 나한테 그 사건을 던져 줬어.”

허칠안이 설명했다.

“이 개똥 같은 사건에 형님이 뭐하러 끼어들어요?”

운록서원에는 전문적인 정보통이 있다. 경성에서 발생한 일은 서원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다.

허칠안이 말했다.

“내가 핑계를 댈 수는 없잖니.”

허신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한테 몽둥이로 한 대 맞고 상처를 치료한다는 명분을 대면 사건은 자연스럽게 떠넘겨질 텐데요. 게다가 이 사건은 틀림없이 조사하기 어려울 겁니다.”

‘신년은 역시 벼슬길에 오르기에 적합해. 겉과 속이 다른 정도가 기준에 달했어…….’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궁 안의 사건이 제일 조사하기 쉬워.”

왜냐하면 궁 안에는 고수가 아주 많고 원경제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입만 번지르르한 체계는 끼어들 수 없다. 복비 사건은 그가 이 세계에 온 이후에 맡은 가장 ‘정상적인’ 사건인 듯했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이곤 불쾌하다는 듯 청귤을 쳐다보며 말했다.

“청귤은 시고 떫어서 집안에 먹는 사람이 없어요.”

“샀는데 낭비할 수는 없잖아. 영음이한테 주렴.”

“좋은 생각이네요.”

* * *

허칠안은 대리사의 기백이 있는 관아 입구 앞에 있었다. 그는 말 등에 앉아서 황금으로 된 ‘대리사’ 세 글자를 쳐다봤다.

대리사는 형옥(刑獄) 사건의 심사와 처리를 관장한다. 허칠안의 전생으로 치면 가장 높은 인민 법원에 해당한다. 도찰원과 형부를 아울러 삼법사라 칭한다.

황제는 통상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맞닥뜨리면 삼법사에게 야경꾼과 같이 심사하고 처리하라 이른다. 이로써 야경꾼 관아와 도찰원을 관장하는 위연이 어느 정도로 권세가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원경제는 그 한 사람만으로 문무백관을 견제하여 평형을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허칠안의 운이 얼마나 좋은지도 알 수 있다. 마침 야경꾼에 합류하였고 또 마침 위연의 총애를 받는다. 장락현 쾌수에서 경성에서 우쭐댈 수 있는 인물로 변모했다.

“속히 대리사경을 찾아가서 본관을 만나러 나오라 이르거라.”

허칠안은 금패를 내보이며 관아 입구에서 당직을 서는 아역을 향해 말했다.

“만약 그가 나오지 않는다면 본관이 황궁에 들어가 그가 고의로 난처하게 만들며 사건 처리를 방해한다고 폐하께 고해바칠 거라고 말하거라.”

아역은 총총걸음으로 들어갔다.

* * *

일각 후, 대리사경이 소경 둘과 대리사 관원들을 데리고 맞이하러 나왔다.

“허 대인, 멀리 마중 나오지 못해 미안하오.”

대리사경이 허허허 웃으며 나왔다.

허칠안은 말 등에 앉아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어찌 번거롭게 배 대인께서 직접 나오시게 하겠습니까. 소직이 송구스럽습니다.”

허칠안이 대리사경에게 나와서 맞이하라고 한 이유는 바로 그의 체면을 깎아 쪽팔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명색이 9경 중 하나인데, 그가 직접 관아 입구로 나가 동라를 맞이하는 건 아주 망신스러운 일이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는데 골탕 먹일 기회를 잡았다면 어찌 제대로 이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한 일이오.”

대리사경은 허칠안을 안으로 안내하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허 대인, 마침 잘 돌아왔소. 복비 사건은 그대가 아니면 안 되오. 하지만 본경이 허 대인에게 좀 상기시켜야겠소. 이 사건은 아주 위험하니 너무 깊이 파고들지 마오.”

그는 남의 불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가 복비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면 태자 일파의 미움을 살 것이며,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원경제의 미움을 살 터였다.

‘그래도 최소한 자작과 바꾸는 거니까 다행이다. 늙은 황제의 미움을 사는 게 뭐라고…….’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무방합니다. 훅 빠지기 전에 반드시 눈에 거슬리는 늙다리들을 함께 데리고 갈 겁니다. 어쨌든 금패가 수중에 있으니 먼저 처리하고 사후에 보고할 수 있는 권력을 쓰지 않으면 손해지요.”

대리사경이 눈을 가늘게 떴다.

“허 대인은 정말 재미있게 말씀하시는구려. 허 대인이 이번에 대리사에 온 건 태자 전하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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