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검시(檢屍) (1)
밖에서 기다리던 환관이 그가 나오는 걸 보자 바로 따라왔다. 하지만 그는 곧 허칠안이 뒷간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 보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허칠안은 뒷간에 들어가 옥석경을 꺼내어 전서 내용을 살폈다.
[육: 금련 도사님, 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차단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 삼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항원, 나를 찾아서 뭐하려고…….’
천지회 구성원들은 육호의 전서를 보자 기분이 제각기 달랐다. 예전 전서를 통해 삼호가 운주에서 순직한 허칠안의 사촌 동생이라고 짐작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마 오호만이 잔잔한 물처럼 차분한 마음과 맑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쪽만은 ‘잡념’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사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허칠안이라는 동라가 막 순직했는데 항원이 삼호를 찾아 밀담을 나누려고 하는 걸 보니 그 역시 삼호의 정체를 짐작한 것 같군.’
이호 이묘진은 이 전서를 보고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들은 삼호가 허칠안의 사촌 동생인 줄 알지만 사실 삼호는 그 본인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운주에서 순직했다. 천지회에 더는 삼호가 없다.
일호는 염탐할 뿐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호는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기에 전서 내용을 훑어보더니 지서 파편을 한쪽에 내팽개쳤다.
[구: 알겠네.]
이묘진은 어리둥절했다가 문득 깨달았다. 금련 도사는 아마도 비공식적으로 육호에게 이 일을 설명하려는 듯했다.
천지회에서 금련 도사만이 유일하게 모든 사람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허칠안이 몇 초 기다리자 옥석경에 항원의 전서가 보였다.
[육: 삼호, 나 허 대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네.]
‘만나려면 만날 것이지, 나한테 문자를 보내서 뭐하게……. 음, 항원은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점을 아직 모르는군.’
허칠안은 고민하고 답장을 보냈다.
[삼: 그는 이미 다시 살아났네. 그를 만나고 싶으면 야경꾼 관아에 찾아가면 되네.]
채팅방에 아주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항원이 세 글자를 보내왔다.
[육: 정말로?]
허칠안은 짧은 세 글자에서 항원 대사의 감격과 기쁨 그리고 믿기 어려워하는 감정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오래 참다가 세 글자를 토해낸 것이다.
[삼: 그렇네.]
허칠안의 답장 역시 간단하고 힘이 있었다.
[육: 어쩐지 자네가 나를 만나려 하지 않더라니. 빈승은 방금까지조차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네. 정말 송구스럽군. 허 대인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보답이 따르는 법이지. 나무아미타불. 빈승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네. 더할 나위 없이 기뻐.]
바로 허칠안은 ‘사촌 형’이 다시 살아난 과정을 항원 대사에게 간결하게 말해주었다.
[삼: 대사, 제 신분이 공개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나중에 저희가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웃어 줄 수 있길 바랍니다.]
[육: 빈승 알겠네.]
‘음, 신년이 보고 웃으세요. 죄송합니다, 대사님. 예전에는 선택권이 없었다면 지금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싶지 않아요.’
* * *
허칠안이 지서 파편을 거두고 대청으로 돌아가니 임안이 불평했다.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방금 사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하다 보니 정신이 팔렸지 뭐예요.”
허칠안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설명했다.
“전하, 저 이제 복비마마의 시신을 보러 가려는데 가실 겁니까?”
임안은 바로 일어났다.
“응응. 그래.”
* * *
복비의 시신은 황궁의 빙고(氷庫)에 안치되어 있었다. 원경제의 태도를 보니 사건을 명확하게 규명하지 않으면 복비는 편안히 묻히기 어려울 듯했다.
허칠안은 손에 금패를 쥐고 임안과 환관의 인솔하에 빙고에 이르렀다. 당직을 서는 환관이 몇 사람을 이끌고 들어갔다.
복비는 차가운 빙고 안에서 흰 천을 덮은 채 나무판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임안은 추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갖옷을 꽉 여몄다.
“공주마마, 밖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허칠안은 그녀가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면서도, 임안이 시체를 본 적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안은 고집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이 사건에 참여하고 싶고, 태자 오라버니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허칠안은 환관에게 흰 천을 들추라고 분부했다. 그런 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공주의 보드라운 손을 덥석 잡고 기기를 끊임없이 주입했다.
임안의 연약한 몸이 굳어지더니, 마치 전갈에 쏘인 듯 무의식적으로 손을 뿌리치는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거칠고 따스한 큰 손이 마치 무쇠 띠처럼 손을 꽉 움켜쥐었다. 수줍은 마음이 임안의 가슴속에서 용솟음쳤다. 위풍당당한 이공주의 고결하고 천금 같은 몸이 언제 한 남자에게 닿은 적이 있던가.
‘어째서 이러는 거지…….’
임안은 민망하면서도 화가 나고 억울했다.
뒤이어 따뜻한 기류가 손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 팔뚝을 타고 흘렀고, 온몸을 따뜻하게 하여 빙고의 추위를 전부 몰아냈다.
그녀는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심지어 나른하게 허리를 펴고 싶기까지 했다.
그녀의 귓가에 개자식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빙고는 몹시 춥습니다. 만약 가지 않으실 거라면 소직은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 수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전하의 천금 같은 몸과 비교하면 말할 가치가 전혀 없지요.”
‘그가 내 손을 잡은 건 추위를 쫓기 위함이었구나……. 나의 몸과 비교하면 사건 수사는 말할 가치가 없다니……. 당연하지.’
임안은 달콤한 말을 좋아해서 화가 단숨에 풀렸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여전했다.
그녀는 도둑이 제 발 저리 듯 눈앞의 환관 두 명을 보더니 ‘퉤’하고 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아무 내색 없이 허칠안에게 다가와 널찍한 외투를 이용하여 시선을 차단하면서 그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감췄다.
‘시체를 본 적 없어서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임안은 의외로 겁이 별로 없구나. 생각보다 의연하군.’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를 꼬실 때는 반드시 상황을 보아 대담하게 공격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집적거리면 시간이 흐른 뒤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무척 더러운 인상을.
물론 이런 방법은 단순한 여자에게만 적합하다. 만약 상대가 킬로미터 수가 높은 자동차고 차에 비상 타이어가 가득하다면 이 방법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허 대인, 보십시오.”
환관이 흰 천을 들추더니, 복비의 시신을 더는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듯 한 편으로 물러났다.
허칠안은 임안의 보드라운 손을 놓고, 시체 곁으로 걸어가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한 비(妃)를 쳐다봤다.
그녀는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비록 창백한 얼굴이 그녀의 미모를 깎아 먹긴 했지만, 이목구비가 아주 고왔으며 하얀 홑옷은 고귀한 신분을 부각하였다.
허칠안은 손을 뻗어 복비의 옷을 벗기려 했으나 환관에게 저지당했다. 그는 질겁하여 고개를 저었다.
“허 대인, 안 됩니다.”
‘역시나 안 되는군. 나는 그녀를 해부하고 싶은 생각까지 있었는데…….’
허칠안은 생각이 있었고, 빙고를 지키는 환관을 보며 말했다.
“검시 항목표와 권종을 꺼내와 내게 좀 보여 주게.”
환관은 즉시 떠났고 이내 항목표를 들고 와 허칠안에게 건넸다.
‘모욕당한 흔적이 없다. 손목과 팔에 꼬집혀 생긴 시퍼런 멍자국이 있다. 죽을 때 옷차림이 단정치 않았다는 건 폭력에 의해 찢어진 현상이다. 죽을 때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는 건 폭력에 저항하는 특징에 부합한다. 강간미수에 추락사라…….’
허칠안은 첫 판단을 내렸다.
계속해서 보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기록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죽을 때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응? 죽을 때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니?’
일반적으로 사람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면 지면을 바라보고 몸을 훌쩍 날린다. 드라마에서 군중을 향하여 번지르르하게 뒤로 젖혀 뛰어내리는 건 사실 흔치 않다.
그렇기에 추락하여 사람은 죽은 뒤에 하늘을 등지고 땅을 향하고 있다.
물론 높은 빌딩이라면 사람 몸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공기의 저항이나 풍력의 영향을 받아 뒤집힐 수 있다.
하지만 복비가 떨어진 각루는 권종의 기록에 의하면 2층 반 높이이므로, 뛰어내릴 때의 자세는 땅에 떨어졌을 때의 자세와 같을 확률이 높았다.
‘태자가 민 것인가? 이건 복비가 모욕을 당하기 원치 않아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판단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 복비를 아래층으로 밀 이유가 없다. 음, 수치심에 성질을 부렸다는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술에 취한 뒤의 폭력적인 성향이 있지.’
허칠안은 다시 손을 복비의 시체로 뻗었다.
“허 대인!”
환관이 막아서며 경고했다.
“복비마마의 시신을 욕보이시면 안 됩니다.”
폐하의 여인은 죽더라도 신하가 그 시신을 모독할 수 없다.
“꺼지게.”
허칠안은 한 발로 그를 걷어차고 말했다.
“이 몸은 황명을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것도 만지지 말라, 저것도 만지지 말라. 내가 뭘 만진다는 거냐.”
허칠안은 가장 기본적인 소양은 있었기에 변태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환관은 걷어차이고 나자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칠안은 복비의 뒷목을 받쳐 들고 그녀의 뒤통수를 더듬은 뒤, 양손을 아래로 향했다. 그는 어깨부터 등허리까지 더듬어 보았다.
인체의 구조에 근거하여 보자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건물에서 떨어졌을 터였다. 가장 먼저 지면과 닿는 것이 머리와 어깨고 그다음이 가장 튀어나온 둔부다.
필경 황실의 여인이니 옷을 벗길 수는 없었기에 허칠안은 둔부가 손상됐는지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하게 옷 위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건물에서 떨어졌어…….”
그는 확인을 마쳤다.
이로써 그는 누군가 복비의 일이 벌어진 뒤에 시체를 이동시켜 현장을 위장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개자식, 뭘 발견한 거야?”
임안이 바로 물었다.
허칠안은 자신의 발견과 생각을 임안에게 말했다. 사실 그를 감독하는 환관에게 들으라고 말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복비가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게 아니란 말이야?”
임안은 바로 핵심 내용을 짚어냈다.
‘이런 걸 보면 아주 멍청한 건 아니네……. 그냥 평소에 머리를 많이 안 쓰는구나.’
허칠안은 탄복하며 말했다.
“공주마마 아주 총명하십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알 수 없을 텐데요.”
임안은 이 말을 듣자 아주 기뻤다.
* * *
허칠안은 빙고를 나서서 환관의 시중을 받으며 손을 깨끗이 한 다음 임안을 데리고 떠났다.
“마마,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우선 여기까지 조사하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허칠안은 해시계를 한 번 보았다.
신시 일각.
대봉의 제도에 따르면 춘분 후에는 관리의 퇴근 시간이 신시 정각이다. 추분 후에는 퇴근 시간이 신시 초다.
비록 춘제(春祭)가 이미 지났지만 춘분은 아직 오지 않아 퇴근 시간이 여전히 신초(申初)였다. 그리고 지금, 퇴근 시간이 이미 일각이나 지났다.
‘원경제가 이 몸에게 초과 근무 수당을 주지 않으니 퇴근해야지, 퇴근…….’
그는 손을 흔들며 임안과 작별인사를 했다.
* * *
이때 원경제는 마침 침전에 앉아 도교의 경전에 몰두하며 경전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미건조한 상소문과 영원히 다 처리하지 못하는 정무와 비교하자면, 장생의 진리를 내포한 손 안의 도교 경전은 무척 흥미로웠다. 원경제를 더욱 동경하고 빠져들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이 무엇인가?
권력이다!
무릇 사람의 수명은 한정적이라 수십 번의 여름과 겨울에 지나지 않으니 설령 권력을 손에 쥐고 온 천하를 굽어본다고 한들 어쩔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시간에게 패배하여 한 줌의 흙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불로장생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장 동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권력을 영원히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