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58화 (258/712)

258화. 총애

석가산에서 나와 임안은 칼을 시위에게 돌려주고 허칠안을 데리고 대청으로 들어왔다. 그 당차는 뒤에 따라와 이상한 눈빛으로 이공주를 훑어보았다.

이공주의 예쁘고 날렵한 눈매가 벌겋게 부은 걸 보니 방금 운 게 분명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궁녀가 찻물과 요깃거리를 받쳤고, 허칠안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공공, 자네 먼저 물러가게. 본관이 공주마마와 의논할 비밀스러운 일이 있네.”

“그건…….”

환관은 다소 망설였다.

“꺼져, 꺼져!”

임안이 버들눈썹을 치켜올리고 떼를 쓰며 말했다.

“본 공주가 허 대인과 할 얘기가 있는데 네가 옆에서 들을 일이 뭐가 있느냐? 계속 여기 있으면 너를 끌어내 볼기 백 대를 칠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 너에게 달렸다.”

임안의 횡포에 환관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물러났다.

“그가 어째서 네 곁을 따라다니는 거야? 너 어떻게 살아서 돌아온 거야? 회경은 네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

임안은 문턱을 뛰어넘어 사라지는 환관의 뒷모습을 본 뒤, 시선을 허칠안에게로 옮겼다. 그런 다음 아름다운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는 소직을 감시하러 왔습니다.”

허칠안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간식을 먹었다. 그는 어서방에서 한 시진 넘게 기다리느라 점심 식사를 놓쳤다.

“어떻게 살아 있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자면 깁니다.”

그는 운주 사건의 경위를 살짝 각색하여 임안공주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각색을 제멋대로 한 건 아니었다. 허칠안은 그저 자신의 역할을 미화하고 부각해서 다른 사람의 존재감을 낮추었다.

임안은 이야기 듣는 걸 가장 좋아했기에 흥미진진하게 시작하여 점점 그 상황에 몰입했다. 허칠안이 밤을 새우며 자지 않고 첩자 주민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작은 손으로 갑자기 탁자를 치며 큰소리로 ‘잘 한다!’라고 외쳤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뺨을 괸 채로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이윽고 여자 귀신이 허칠안 일행을 미혹하러 왔다. 임안은 두 동료가 처참하게 미혹됐는데 허칠안은 자신의 굳은 의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자 그를 아주 높이 사며 칭찬했다. 신나게 깔깔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역시 본 공주가 중시하는 사람이야! 본 공주가 애초에 너를 만났을 때 네가 남의 밑에서 일할 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

허칠안은 공주마마의 통찰력과 안목에 감사를 표하면서 속으로는 비아냥거렸다.

‘승부욕에 눈이 멀어 회경과 다투기 위해 억지로 나를 끌어온 거 아니니?’

마지막으로 허칠안은 자신이 혼자서 천군만마를 직면한 상황을 서술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천 명의 사람에게 포위되었다고 말했다. 또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과 빽빽한 창을 마주했는데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이백 명의 목을 베어 결국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텼다는 얘기를 전했다.

임안은 듣다가 눈물을 흘렸고 울어서 코가 벌게졌다.

“마마, 그 당시의 장면을 보지 않으셨죠. 소직이 울부짖으니 천 명이 넘는 반란군이 놀라서 간담이 서늘해졌고, 눈 딱 감고 저와 격전을 벌였더랬죠. 제가 그때 상태가 좋았더라면 그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임안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믿었다.

그녀는 어쨌거나 전에 허칠안의 사적을 황형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허칠안이 장렬하게 순직하여 순무와 야경꾼 관아의 금라를 구했다고 했다.

허칠안은 허세를 다 부린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참, 제가 이번에 궁에 들어온 건 폐하의 황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비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러 왔습니다.”

임안의 눈이 갑자기 밝아졌고, 금세 기쁨에 겨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네가 돌아오면 태자 오라버니의 누명을 깨끗이 벗겨 낼 수 있을 줄 알았어.”

“저는 영원히 공주마마께 충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허칠안이 간곡하게 말했다.

그는 임안의 호감도를 확 끌어올렸다.

“공주마마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복비마마께서는 어떻게 생기셨습니까?”

“당연히 완전 아름답지.”

‘원경제는 정말이지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망가뜨리는군.’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하며 다시 물었다.

“태자 전하께서는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당연히 아니지.”

임안은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태자비 외에 태자 오라버니의 측비(側妃), 적비(庶妃), 희첩(姬妾) 등등 더해봤자 16명뿐이라고.”

“…….”

허칠안은 속으로 아우성쳤다.

‘난 역시 좋은 남자라니까. 좋은 남자는 바로 나야. 나는 바로 허칠안이고!’

“태자 전하께서 술을 마신 뒤에 소란을 피웠던 선례가 있나요?”

“없어.”

“무슨 술을 마셨습니까?”

“백일춘이라고 신장을 보양하고 양기를 북돋는 술이야. 황후께서 우리 어머니한테 보내주신 거야. 설마 너, 황후께서 모함했다는 말이야?”

임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은 잠시 읊조리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임안은 크게 기뻐하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알았다는 거야? 허칠안, 네가 사건을 해결한 거야?”

* * *

허부.

심신이 지친 허신년은 즉시 서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늘은 2월 10일로 5일만 지나면 춘시기 때문에 서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허신년은 요 며칠 마음 편히 집에 머물며 과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부친 허평지를 도와 허씨 가족을 배웅했다. 심신이 지친 허신년은 조금도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고, 방으로 돌아가 한숨 푹 자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문지기 장씨가 부리나케 뛰어 들어와 말했다.

“공자님! 문밖에 승려 한 분이 오셨습니다. 자신을 항원이라 칭하며 공자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항원?”

허신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이 좀 귀에 익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유가의 제자로 부처를 믿지 않았고 불문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

“그가 말하길 공자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군요.”

문지기 장씨가 덧붙였다.

허신년은 ‘허’하고 소리를 내더니 허평지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 아마도 저희 집에서 장례식을 치른 걸 보고 법사(法事)를 행하러 왔나봅니다. 아버지께서 동전을 좀 준비해서 내쫓아주세요. 저는 방에 돌아가 쉬겠습니다.”

문지기 장씨가 은자 한 전을 챙겨 저택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훤칠한 중년의 승려에게 은자를 건네며 말했다.

“대사님, 저택에 법사를 행할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 주십시오.”

항원 대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빈승은 동냥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성실하게 은자를 받으며 말했다.

“저택의 이공자께서 정말 빈승을 만나지 않겠답니까?”

‘삼호가 어찌 된 일이지?’

비록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여러 번 상부상조한 은혜가 있고, 그의 사촌 형 허칠안과의 정분도 있지 않은가.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을 한 번 만나 봐야 했다. 또한 허 대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게 들여보내야 했다.

‘음, 그는 어쩌면 자신의 신분이 여전히 비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빈승이 아직 그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가? 허, 빈승의 지혜를 정말 얕보는군.’

항원 대사는 양손을 합장하고 예를 갖춘 뒤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음 품속에서 지서 파편을 꺼내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냈다.

“금련 도사님, 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차단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 삼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 * *

‘네 태자 오라버니가 여색을 밝히는 놈이라는 걸 알겠다고…….’

한편, 허칠안은 얼떨결에 한마디 대답했을 뿐인데 임안은 그가 사건을 해결했다고 착각했다.

“태자 전하께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신 것인지 지금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소위 술주정이라는 게 그렇다.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시면 쉽게 들떠서 평소에 감히 하지 못하던 일을 하기 마련이다. 만약 정말 임안이 묘사한 대로라면, 태자는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했을 것이다. 사람의 성정은 억눌릴수록 술에 취한 뒤 더 사납게 폭발하는 법이다.

“왜 전하께서는 사황자와 황후가 태자를 모함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허칠안이 이 말을 물은 이유는, 재미있는 구경도 하면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함이었다.

사황자는 회경의 친오빠로 모두 황후의 배 속에서 나왔다. 게다가 사황자는 적장자다. 이치대로라면 어떻게 해도 임안의 친오빠보다 더욱 명분이 섰다.

하지만 이백 년 전의 국본 쟁탈전은 지금까지 역사에 기록되어 대봉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강렬한 한 획을 그었다. 그들은 국본 쟁탈전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원경제가 서장자를 태자로 삼았어도 별 탈이 없었다.

“황후께서는 당연히 사황자를 태자로 삼고 싶으셨겠지. 말하건대 황자 오라버니들 중에서 사황자와 태자 오라버니가 국사에 가장 관심이 많아. 사황자가 만약 태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렇게 열성적일 수 있을까?”

“허나 적자가 있는 상황에 폐하께서 서출 장남을 내세우신 건 확실히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허칠안은 임안 앞에서 의심받을 만한 발언을 가려서 하지 않았다.

설사 명을 받고 사건을 수사한다는 후광을 입고 있어도 이런 말들은 묻기에 쉽지 않은 화제였다. 하지만 임안 앞이라면 거리낌 없이 입을 열 수 있었다.

모두 같은 편 아닌가.

“내 어머니께서 그해 가장 총애를 받으셨고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임안은 거만하게 아래턱을 치켜들었다. 그 얼굴이 그림처럼 예뻤다.

‘내가 제사 대전에서 본 바에 의하면 명백히 황후가 진 귀비보다 한 수 위였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나이를 진작에 지났다 해도 그 기질과 외모, 두 눈 사이의 우아한 정취는 여전히 평범한 미인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황후가 만약 스무 살만 더 젊었다면 그 자태는 아마 임안과 회경을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총애를 받는 일은 외모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지. 여러 방면의 요소가 작용한다. 예를 들면 성격과 외모, 또 유머 감각과 지혜로움……. 요컨대 그 요소는 아주 복잡하다. 원경제는 그렇게 황후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서출 장자를 태자로 삼을 정도로?’

허칠안이 속으로만 읊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자 임안은 갑자기 경계심이 생겼다.

“회경이 이 일의 배후에서 암암리에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아?”

허칠안은 복숭아꽃처럼 매력적인 이공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만약 그렇다면요?”

임안은 씩씩한 암탉처럼 먼저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다시 기가 죽더니 쳐진 눈썹을 하고 말했다.

“본 공주가 인정해야겠지. 회경은 의뭉스럽고 비열하고 염치없어…….”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녀를 당해낼 수 없어.”

‘음, 내 앞에서 숙적 회경을 당해낼 수 없다고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건 공주마마가 나를 점점 더 신임한다는 의미지…….’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이때 갑자기 그의 가슴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는 지서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마, 저 뒷간에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허칠안은 일어나서 대청을 곧장 나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