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환골탈태 (2)
허씨 가족이 듣기에 칠안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건 순전히 채미 낭자가 준 기사회생의 영약 덕분이었다.
“채미 낭자, 크나큰 은혜에 감사하오.”
허평지가 읍을 올리며 말했다.
“칠안이 낭자에게 목숨을 빚졌소. 앞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분부만 하시오. 그가 원치 않는다 해도 나 이 허평지가 그를 묶어서라도 가겠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 목숨값으로 이익을 보다니. 저채미야말로 주인공 아니냐…….’
허칠안은 읍하며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표했다.
“자, 영월아. 빨리 네 큰 오라버니를 부축해서 나오거라. 너도 산 사람인데 계속 관 안에 누워 있지 말거라. 재수 없다.”
허평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네.”
허영월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바로 큰 오라버니를 부축하는 대신 그를 도와 얼굴에 말라붙은 핏덩이와 살점을 떼어냈다.
허칠안은 얼굴과 머리 위의 살점을 떼어버린 뒤 상쾌해진 듯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망했다. 이 몸이 20년 동안 길러온 고운 머리카락이 한순간에 망가졌다.
뒤이어 그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허영월을 발견했다.
“내 얼굴이 어떤데?”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하여 얼른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허영월은 머뭇거리더니 두 볼을 불그스름하게 붉히면서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관을 뛰어넘어 회경과 남궁천유 등을 향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얼떨떨해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눈앞의 이 허칠안은 얼굴 라인이 완벽하다고 할 만했다. 강인한 남자다움, 짙은 눈썹, 오뚝한 코, 생기가 넘치는 깊은 눈매, 입술의 호선과 모양 모든 것이 어우러졌다.
그의 이목구비가 변치 않고 한층 더 정교하며 완벽해졌다.
‘얘, 얘가 내가 키운 녀석인가?’
숙모는 불그스름한 입을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허칠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궁천유는 ‘쳇’하고 소리를 냈다.
저채미는 아직 애정에 눈을 뜨지 않은 나이였지만 마찬가지로 참지 못하고 몇 번을 쳐다봤다. 저채미는 허칠안이 환골탈태한 후 더 잘생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경공주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몇 초간 멈춰 있다가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눈 가리고 아웅하듯 시선을 옮겼다.
“큰 오라버니 정말 잘생겼어요.”
허영음이 기뻐하며 말했다. 비록 큰 오라버니가 안아 주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충성심과 애정은 변치 않았다.
“내가 젊었을 때 딱 이 모습이었지.”
허평지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자 갑자기 난처해하며 덧붙였다.
“비슷했어, 비슷했다는 거잖아…….”
“칠안이 죽지 않은 건가?”
허씨 가족들 중에 한 나이 든 노인이 멀리서 소리쳤다.
허평지가 즉시 다가가 가족들에게 허칠안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쁜 소식과 그 연유를 알렸다.
허씨 가족은 이제야 시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허칠안은 죽지 않았다. 사천감에서 만든 기사회생의 영험한 묘약이 그를 구했다.
경성의 일반 백성들은 사천감을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 성안의 많은 약방과 의원 모두 사천감의 산업이었다. 9품 술사는 수련을 위해 항상 의원에 가서 진료했는데 다들 의술이 뛰어나고 치료비가 저렴했다.
허평지는 설명을 마친 뒤 허칠안을 이끌고 손윗사람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허씨 가족들 역시 기뻐했다. 가족 중에 손아랫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은 그 자체만으로 기뻐할 만한 경사였다. 게다가 허칠안의 잠재력과 관계를 알아낸 가족들은 당연히 그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가길 바랐다.
순식간에 장례식에 쾌활한 공기가 가득 찼다.
허칠안은 가족들을 달랜 다음 금라 둘, 저채미, 회경공주를 배웅하고 나서 욕실로 발길을 돌렸다.
허씨 가족은 허부에 남아 장례식의 장식을 철거하는 일을 도왔다.
* * *
허칠안은 목욕통에 물을 가득 부은 다음, 두 손으로 목욕탕의 가장자리를 받치고 수면에 비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잘생겼다. 이제야 좀 몰입이 되네. 비록 내 전생과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좀 차이가 나지만 말이야.”
허칠안은 극구 칭찬했다.
지금 그의 이목구비는 어렴풋이나마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보다 더욱 정교하고 완벽하여 잘생김이 폭발했다.
허칠안은 차가운 물에 누워서 편안하게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런 뒤 그는 서글프게 자신의 대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때, 황갈색 고양이가 문틈을 들이받고 우아한 고양이 걸음을 내디디며 꼬리를 치켜올린 채 욕실로 들어왔다.
“쯧, 탈태환의 효험이 보통이 아니라고 일찍이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구먼. 평범하기 그지없던 자네가 영민하고 비범해졌다니.”
‘알고 보니 도사 마음속에 나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라였던 건가……?’
허칠안은 약간 상심하여 말했다.
“도사님께서는 고양이한테 빠져서 나쁜 습관을 들이셨네요.”
“이런 사소한 일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말게.”
금련 도사는 발톱을 들어 바닥을 내리쳤다.
황갈색 고양이는 목욕통으로 뛰어올라 깨끗한 옷가지를 두는 데 쓰이는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빈도는 처음부터 자네가 순직했다는 걸 믿지 않았네. 오늘 상을 치른다는 얘기를 듣고 보러 왔지. 아니나 다를까 몸에 생기가 없었지만, 분명히 미세한 원신의 파동이 있었네.”
무사는 이 미세한 원신의 파동을 감지할 수 없다. 오직 음신을 수련한 도문의 제자만이 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빈도는 하루빨리 자네의 원신이 돌아오길 기원하네.”
“감사합니다, 도사님.”
허칠안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표했다. 만일 도사가 우쭐대며 건들건들 걸어와서 빽빽거리지 않았다면, 그가 설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역시 선한 사람은 하늘이 돕고 어장 주인은 하늘이 보우하는 법이다.
“허나 묘진이 자네 몸에 원신의 파동이 전혀 전해지지 않아 완전히 죽은 것이라 말했네.”
금련 도사가 말했다.
‘‘완전히’란 단어가 이렇게 쓰였던가?‘
허칠안은 읊조리며 말했다.
“운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젯밤이 돼서야 어렴풋이 의식을 회복했지요.”
미세한 원신 파동이 최근에야 나타난 회생의 징조라는 의미였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숙이고 발톱으로 지서 파편을 누르며 ‘쯧’하고 소리를 냈다.
“위연이 뜻밖에도 지서 파편을 회수하지 않았네.”
‘위연이 낚시질을 한다고?’
허칠안은 어리둥절했고, 계속해서 금련 도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천지회에 자네를 들인 건 그에게 있어 손이 가는 대로 둔 한 수에 불과하네. 계략을 잘 짜는 자는 안배가 심오하지. 자네가 죽은 뒤 어쩌면 그가 낙심하여 더는 천지회의 일에 끼어들기 원치 않았을 수도 있네. 지서 파편이 자네를 따라 묻히든 내가 가져가든 모두 상관없었겠지.”
‘역시 도사와 위연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군. 하지만 내 앞에서 내가 양쪽으로 앞잡이인 사실을 까발리면 좀 난처해질 거야…….’
허칠안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참, 제가 다시 살아난 일을 우선은 이묘진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허칠안이 물보라를 튀기며 말했다.
금련 도사는 호박색의 고양이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솔직해지게. 젊은이.”
‘젠장. 인터넷에서 허풍을 떨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내가 예전에 미친 듯이 지식인에서 활보하고 다닐 때 고학력 인재인 척하길 좋아했지. 그때 내 입버릇은 이랬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미국에 있는데 방금 막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허칠안은 또 몇 번 억지웃음을 짓더니 운주에서 발생한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도사님, 운주 사건 배후에 술사가 관여한 흔적이 있고 게다가 적어도 3품 술사입니다. 도사께서는 사천감을 얼마나 아시는지요?”
그는 운주 사건 중, 그 신비로운 술사의 존재를 금련 도사에게 알렸다.
금련 도사는 이내 허칠안의 말뜻을 깨닫고 망설이며 말했다.
“사천감에 3품 술사는 한 명뿐이네. 손현기(孫玄機)라고 하지.
하지만 내 생각에 운주에서 나선 술사는 그가 아니라 다른 자인 듯하네.”
“누굽니까?”
허칠안이 얼른 캐물었다.
금련 도사가 그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알 거라 생각하는가?”
‘……네가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도사님은 제 마음속에 늘 지혜로우신 윗사람입니다.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이해하시지요.”
‘그리고 약삭빠른 인간이지.’
허칠안이 속으로 덧붙였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위로 천문을 아는 건 술사고, 아래로 지리를 이해하는 건 유생이네. 허나 틀림없이 사천감은 그 술사의 내력을 알고 있을 걸세. 다만 그 늙은이의 생각은 누구도 꿰뚫지 못하지.”
금련 도사는 말을 마친 다음 허칠안을 쳐다보며 칭찬했다.
“혈기, 기기가 몇 배나 왕성해졌고, 원기가 충만하네. 지금의 자네는 경성에 있을 때보다 훨씬 발전했네. 탈태환의 효과가 보통이 아니구먼.”
‘너무 비싸서 그렇지…….’
금련 도사는 애석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석 달 만에 연신경에 들어서니 우둔해졌습니다. 우둔해졌어요.”
허칠안이 겸손하게 말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상대하지 않고 한마디를 남기더니 돌아서서 가 버렸다.
“위연을 찾아가게. 동피철골경의 자원은 자네가 가산을 탕진해도 살 수 없을 테지만 그는 자네에게 줄 수 있지.”
허칠안은 목욕을 마치고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말을 타고 저택을 나가 야경꾼 관아로 내달렸다.
* * *
관아로 돌아온 남궁천유와 장개태는 바로 호기루에 들어섰다. 의붓아들 남궁천유가 이끌면 통전(通傳)할 필요 없이 곧바로 호기루로 올라가 위연을 만날 수 있었다.
위연은 가로로 걸린 한 장의 지도 앞에 서서 두 손을 뒷짐 지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자세를 이미 반 시진 넘게 유지했다.
이는 동북방 전체의 부감도(俯瞰圖)로 지도에는 무신교의 총본부 및 동북 각 나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런 지도는 정확도가 부족하여 거시적으로 대략적인 정보만 볼 수 있었기에 귀한 편은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한 지도는 각 나라가 머리를 깨부숴서라도 빼앗고 보호해야 하는 기밀문서였다.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이어 남궁천유와 장개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부님.”
“위 공.”
위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허칠안의 시신이 운하에서 열흘 넘게 떠다녔으니 오래 두면 좋지 않다. 그의 가족들에게 하루빨리 매장하라고 하거라.”
자세히 들어보면 나지막한 목소리에 비통함이 뒤섞여 있었다.
남궁천유는 의부가 왜 허칠안의 시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지 잘 알았다. 의부는 집권자이자 책략가였으므로 그의 마음은 단단해야 하고 냉혹해야 했다. 냉혹하고 정이 없는 사람이어야만 무적이 될 수 있다.
위연은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무적이어야 했다.
관아의 야경꾼들, 심지어 외부에서도 위연이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의부님…….”
남궁천유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허칠안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위연이 갑작스레 몸을 돌렸다. 동작의 폭이 커서 청포가 같이 펄럭였다.
이 순간, 대환관은 표정과 눈빛이 복잡했다. 경악, 불가사의, 기쁨, 희망…… 오만 감정이 뒤섞였다. 남궁천유는 의부의 얼굴에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는 걸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한순간이었다. 대환관은 침착하게 차분함을 회복하고 천천히 탁자 곁으로 걸어가 앉으며 다소 매서운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남궁천유는 즉시 허칠안의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