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252화 (252/712)

252화. 시체가 벌떡 일어나다

빈소 안에서 숙모, 신년, 허영월 자매는 말없이 관을 주시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허평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떤 일들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그는 가장 먼저 조카의 시신을 직면하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직면해야 했다.

그가 관 뚜껑을 천천히 밀어젖혔다. 허칠안은 관에 누워 있었다. 그의 피부는 메말라 윤기가 없었고 입술은 색이 바랬다.

그가 죽은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음속의 한 줄기 요행 심리가 와장창 무너졌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 순간 세찬 조수처럼 밀려오는 슬픔은 가족 전체를 집어삼켰다.

숙모와 허영월은 관을 짚고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허평지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입술을 계속해서 떨었다. 허신년은 고개를 돌려 형님의 죽은 모습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의 소매 속 손은 주먹을 쥐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허영음은 작은 몸뚱아리를 앞으로 약간 기울였다. 그녀는 고개를 내민 채 두 손을 뒤에서 펼치고 관을 향해 ‘엉엉엉’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 시끄럽다. 누가 잠자는 나를 깨운 거야.’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그는 마치 끝이 없는 허공에 떠서 하늘에도 땅에도 닿지 않아 기댈 곳이 없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귓가에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아마 집으로 돌아왔나 보군. 이 울음소리는 숙모인가? 허, 숙모가 나 때문에 운다고? 그녀의 말버릇 아니었던가? 허칠안 너 이 새끼, 네가 바로 내 전생의 원수지. 이번 생에 빚을 독촉하러 온 원수…….’

허칠안은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그는 숙모와 두 여동생의 울음소리를 분별해냈다.

울음소리가 오래 지속되더니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고 훌쩍훌쩍 우는 소리로 바뀌었다.

* * *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두워졌다.

이는 허칠안이 숙부와 신년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점이었다.

허씨 집안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내일에서야 허칠안의 죽은 모습을 배웅하러 올 수 있었으니, 오늘 밤은 가족들이 그의 관 곁에서 밤을 샐 터였다.

‘이번이 아마 내가 두 번째로 죽은 걸 거야. 첫 번째는 알코올 중독이었지……. 이 세계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없어서 다행이다. 그랬으면 수치사했을 거야.

내일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겠군. 회경과 임안은 공주 신분이라 편치 않으니 아마 오지 못하겠지. 채미는 틀림없이 오려고 할 거야. 만약 그녀가 오지 않으면 깨어난 후에 절교해야겠어……. 부향은 올까? 아, 그녀는 나의 죽음을 아직 모르겠구나.’

“어머니, 먼저 방으로 돌아가서 쉬세요. 저와 둘째 오라버니가 이곳에 남아 큰 오라버니 관 곁에서 밤을 새울게요.”

허영월이 울먹거렸다.

그다음은 숙모가 한 말이다.

“네 큰 오라버니가 강에서 이렇게 오래 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를 다시 외롭게 만들 수는 없지. 어머니는 괜찮으니 이곳을 지키겠다. 애당초 네 아버지가 그를 내게 맡겼을 때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 그때 나한테 아이를 돌봤던 경험이 어디 있었겠니? 군인이었던 네 아버지는 돈도 별로 없어서 유모를 구하지도 못했단다. 양젖을 끓여 그를 먹이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그를 돌봤지.”

숙모는 여기까지 말을 마친 뒤 진심으로 슬퍼했다.

허칠안은 갑자기 숙모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비록 나중에 숙모와 조카 둘은 경직되어 유쾌하지 않은 사이가 됐지만 말이다.

허칠안은 울컥 감동했다.

“크면 클수록 점점 더 얄미워졌다. 너희 셋 중에 그가 가장 못생기고 나쁜 짓을 가장 많이 했지.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너와 신년을 살뜰하게 돌보면 그는 질투했단다. 자신은 엄마가 없는 아이라 내가 그한테 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만 얘기하시오.”

허평지가 괜히 화를 내며 말했다.

“왜 말하지 못하나요?”

숙모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내가 똥오줌 받으면서 고생스럽게 키웠는데 이렇게 사라지다니. 진작 알았으면 애당초 쥐를 키우는 게 나을 뻔했어요.”

그녀가 대성통곡하자 허평지도 머쓱하게 침묵했다.

“나리, 부인.”

문지기 장씨가 황급히 달려와 빈소 밖에 서서 말했다.

“밖에 소저가 하나 왔는데 대공자의 관 곁을 지키며 밤을 새우겠다고 합니다.”

허칠안의 마음속에 의혹이 스쳤다. 동시에 숙부와 숙모 등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같은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말하길 부향이라고 하더군요.”

문지기 장씨가 말했다.

허평지와 허칠안의 안색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기루에 가지 않은 허칠안, 성인군자 허신년, 가정을 보살피며 아내를 사랑하는 허평지…….’

허칠안은 속으로 허허 쓴웃음을 지었다.

허평지는 아내를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내가 나가서 그녀를 좀 만나겠네.”

숙모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고 곁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신년아, 부향이 누구니?”

이름만 들어도 점잖은 집의 소저가 아니었다.

허신년은 짙은 콧소리로 말했다.

“부향은 교방사의 기녀예요. 듣자 하니 형님의 시재를 아주 흠모한다죠.”

마음씨가 곱고 순수한 허영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밤중에 남의 집을 찾아와 큰 오라버니의 관 곁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하니 보통 사이가 아닌 듯했다. 오라버니에 대한 인식이 약간 바뀌었다.

* * *

허평지는 바깥 대청에서 부향을 만났다. 그녀는 흰색 긴 치마에 머리에 흰색 꽃을 달아 아주 소박한 차림이었다.

부향을 본 찰나 허평지는 마음속의 울분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 여인의 슬픈 얼굴과 붉어진 눈시울, 미간의 슬픔은 거짓일 수 없었다.

“부향 낭자, 늦은 밤에 무슨 연유로 찾아왔소?”

허평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허 대인, 저는 허랑의 관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부향이 일어나 예를 갖췄다.

“그건 적절하지 않소.”

허평지가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허씨 집안이 비록 선비 가문은 아니지만 규율이 있는 번듯한 집안이다.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는 부향이 무슨 근거로 칠안의 곁을 지킨단 말인가.

“제가 저택에 들어올 때 교방사의 수행원을 내쫓았습니다. 지금 내성에서 돌아갈 수도 없고 외성은 안전하지도 않죠. 허 대인께서 만약 저를 꼭 내보내셔야겠다면 가겠습니다.”

부향이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평지는 탄식했다. 이 여인은 확실히 칠안에게 품은 정이 깊고 두텁다.

* * *

부향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빈소에 이르러 허칠안의 죽은 모습을 본 찰나 드디어 무너졌다. 그녀는 오늘 막 교방사의 기생 어미로부터 소식을 듣고 허칠안이 순직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깨어난 후에는 한참을 울다가 허칠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로 마음먹었다.

허영월은 부향의 처량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 여인과 큰 오라버니의 관계를 알아차렸다.

부향은 허부에 남아 관 곁을 지키지 않았고, 분별력 있게 판단하여 자리를 떠났다. 허평지는 본래 그녀에게 저택에 남아 밤을 새우게 할 생각이었는데 부향이 방금 한 말에 그가 속았다는 걸 알았다. 교방사에서 어찌 기녀를 시야에서 이탈하게 하겠는가.

부향이 그렇게 말한 건 허씨 집안에서 허칠안의 마지막을 보게 허락하지 않을까 봐서였다.

* * *

이튿날, 허씨 집안의 친척들과 지인들이 조문하러 왔다.

허칠안의 조부에게는 아들 둘뿐이었다. 허씨 집안의 첫째는 전쟁터에서 전사한 지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현재 그 아들도 순직하면서 그 자손의 맥이 이렇게 끊겼다.

허씨 가족들은 서로 손목을 쥐고 탄식했다.

허씨 가족 외에도 허칠안의 예전 직속상관인 장락현 주 현령과 왕 포두 등의 쾌수들도 왔다.

주 현령은 영정을 참배한 뒤 탄식했다.

“칠안, 젊은 나이에 일찍 죽어 안타깝구려. 안타까워.”

왕 포두 등의 일행도 슬픈 얼굴을 하고 탄식했다.

“칠안이 유언을 남기지는 않았는지요?”

주 현령이 물었다.

허평지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다면 부활 한 번 체험해 보고 싶다.’

허칠안은 아주 유머러스하게 비아냥거렸다. 그는 의식이 점점 회복되고 있었지만, 몸은 아직 가짜로 죽은 상태에 있었다.

“채미 소저, 뭐 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허신년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저채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좀 괴롭게 들렸다.

금라 남궁천유와 장개태 역시 조문하러 왔다. 영정을 참배할 때 장 형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렇게 재능을 타고난 자가 중도에 요절하다니. 위 공께서 요즘 기분이 좋지 않으신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장개태는 허칠안의 자질을 잘 아는 몇 안 되는 금라였다.

“나쁜 놈! 나쁜 놈!”

허영음은 남궁천유를 향해 포효하더니 이내 녹아에게 이끌려 갔다.

이때 허칠안은 갑자기 깜짝 놀랄만한 소리를 들었다.

“소직, 회경공주마마를 뵙습니다.”

빈소가 안팎으로 조용해지더니 이어 ‘공주마마를 알현합니다’라며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허씨 가족은 너무 놀라 얼이 빠졌다.

‘무슨 상황이지? 칠안의 장례식에 당조 대공주가 왔다고?’

이 순간, 허씨 가족의 애석한 감정이 전에 없이 강렬해졌다. 알고 보니 칠안이 공주와도 아는 사이라니! 만약 뜻밖의 사고를 겪지 않았다면 나중에 단번에 출세했을 것 아닌가.

허씨 가문이 경성의 명문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가 되면 조상을 빛내고 가족 전체가 권세를 얻을 수 있다.

‘임안은 오지 않았군. 음, 그녀는 새장에 갇혀 길러지는 카나리아이니 회경만큼 자유롭지는 않지. 나의 죽음이 단번에 세 사람을 집합시켰군. 영월, 회경, 채미. 다만 너희 절대로 서신 얘기는 하지 마. 그러면 내가 살아나도 의미가 없어지니깐.’

허칠안은 초조했다.

하지만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으레 벌어지기 마련이다.

저채미는 좀 슬퍼서 중얼거렸다.

“그가 청주에 있을 때 내게 서신을 보내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얘기해 주었어. 서신을 다 본 후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젓가락으로 그를 찔러 죽이고 싶었지. 하지만 그가 정말로 죽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허영월은 저채미의 말을 듣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고, 울다가 빨개진 코를 문지르며 흐느껴 울었다.

“큰 오라버니는 저한테도 썼어요.”

회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받았어.”

말을 마친 세 여인은 동시에 침묵했다.

“…….”

회경은 문득 의심이 들어 눈빛을 번쩍이며 물었다.

“그럼 그가 지금…….”

바로 이때, 처량하고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와 빈소 안팎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들고 사람들을 지나쳐 빈소로 들어와 허칠안의 관으로 달려들었다.

허씨 가족 중 한 사람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서 고양이를 막아. 고양이가 죽은 사람 위로 뛰어오르면 시체가 벌떡 일어날 거라고!”

나머지 허씨 가족들의 낯빛이 변했다.

회경, 영월, 저채미 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이 말에 딱히 동의하지 않아 바로 저지하지 않았다.

“야옹.”

황갈색 고양이가 허칠안의 머리 꼭대기로 날아올라 처량하고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허칠안의 머릿속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칠안, 깨어나!”

‘금련 도사가 왔군.’

허칠안의 원신이 진동하더니 영혼과 육신이 뒤섞여 하나가 되었다.

다음 순간, 그는 지각을 회복하고 육신을 장악하여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가 얼굴이 근질근질해 손을 들어 긁으니 말라붙은 피와 살이 한 움큼 잡혔다.

‘내가 움직일 수 있다니…….’

허칠안은 기쁜 마음에 관에서 일어나 앉았다.

빈소 안팎이 정적에 휩싸였다.

‘일, 일, 일어났다?!’

사람들의 눈에 이 광경은 놀라우면서도 공포스러웠다.

“세, 세상에나……! 정말 시체가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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