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유골 운송
위연이 도포를 휘감고 임안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코가 얼어서 빨개졌지만 피부가 뽀얀 덕분에 분홍빛이 되어 좀 귀여워 보였다.
위연은 온화하게 말했다.
“저 전하께 여쭤볼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권신 중 황실의 자제 앞에서 감히 자신을 ‘저’라고 칭할 수 있는 이는 위연을 포함해 극소수였다.
임안은 다소 탁한 눈동자를 움직이더니 말했다.
“위 공, 말씀하시지요.”
“공주마마와 태자 전하께서는 진 귀비마마의 처소에 자주 가십니까?”
“저와 태자 오라버니는 어머니의 동무가 되어 드리러 자주 갑니다.”
임안이 코를 훌쩍거렸다.
“술도 마셨습니까?”
“네.”
“자주 취하시나요?”
“자주는 아닙니다. 하지만 태자 오라버니가 술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요.”
“예전에 복비마마와 왕래한 적이 있습니까? 태자 전하께서는 후궁의 다른 처소에도 자주 가셨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임안이 큰 소리로 말했다.
“태자 오라버니는 스스로 적자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늘 조심히 처신하였는데 어떻게 이처럼 대역무도한 일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이윽고 위연은 읍을 올리고 돌아서서 떠났다.
형부상서와 대리사경도 따라갔다.
임안은 쌩쌩 부는 찬바람에 덜덜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앙상한 어깨에 걸친 불같은 붉은 옷은 새하얀 눈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장면은 아름다우면서도 처량했다.
이렇게 그녀는 두 시진을 기다렸다.
그녀의 몸이 점점 얼어붙어 두 다리는 감각을 잃어 갔고, 입술은 새파래졌다. 임안의 마음 역시 얼어붙는 듯했다.
“너 왜 아직도 여기에 있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뻣뻣하게 목을 비틀어 고개를 돌려 보니 얄미운 회경이 보였다.
회경은 매화가 한 송이씩 수놓아진 아름다운 흰 궁장(宮裝)을 곱게 차려입었다. 그녀의 도도한 기질은 새하얀 눈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그녀는 마치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는 초연한 선녀 같았다. 비록 구리거울은 없지만 임안은 자신이 마치 찬바람에 벌벌 떠는 가엾은 메추라기 같다는 걸 알았다. 명암의 대비가 현저했다.
“내 우스운 꼴을 보려고 왔어?”
임안은 억울한 듯 고개를 다시 돌려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했다.
회경은 싸늘한 표정으로 두 궁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는 이공주를 어떻게 모시는 게냐. 여봐라. 끌어내어 곤장을 치거라.”
“네!”
회경의 뒤에 있던 시위들이 즉시 앞으로 나왔다.
“멈춰!”
임안은 급히 고개를 돌려 저지하려 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 두 다리가 얼어붙어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임안은 성질을 부리며 울부짖었다.
“회경, 감히 내 사람을 죽일 셈이냐? 그래?”
회경은 걸어와서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궁녀들을 본 공주가 지금 죽인다 해도 아바마마께서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네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여기에 계속 서 있든가. 나도 너를 신경 쓰기 귀찮지만, 그렇다면 궁녀들은 내가 벨 것이다. 아니면 여기서 웃음거리가 되지 말고 썩 돌아가거라.”
임안은 궁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회경 앞에서 지기 싫었는지 그녀는 눈물을 닦고 두 궁녀를 밀쳐 낸 뒤에 회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태자 오라버니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믿지 않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회경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임안은 말문이 막혔고, 입술을 깨문 채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몇 걸음 가다가 멈춰서더니 돌아서지 않고 달갑지 않은 듯 말했다.
“만약 그가 있었다면, 분명 태자 오라버니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을 거야.”
붉은 옷이 갈지자걸음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회경공주는 점점 멀어져 가는 임안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 이공주마마께서 호의도 몰라주는데 구태여 이러실 필요가 있나요?”
시위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녀가 구태여 호의를 알아줄 필요가 있나?”
회경이 콧방귀를 뀌었다.
“폐하께서도 참 독하십니다. 이공주마마를 밖에 이렇게 오래 세워두다니요.”
시위대장이 말했다.
회경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돌아가면 따귀 50대다.”
시위대장은 문득 깨달았고, 한겨울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소직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 *
눈이 녹을 때, 순직한 야경꾼의 유골을 운송하는 관선이 경성 밖의 세관에 도착했다. 관선은 검사를 거친 뒤 운하를 따라 경성으로 들어서서 부두에 정박했다.
관선의 동라 셋은 동료의 시체를 실은 관을 배에서 내렸고, 화물을 운반하는 짐수레 몇 대와 짐꾼 몇 명을 고용했다.
은라 민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부두 위에 서서 여전히 번화한 경성을 조망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달라진 사람들에 관한 탄식이 북받쳐 올랐다.
운주에 한 번 다녀오니 옛 친구가 또 몇 명 없어졌다.
인간 세상의 복(福)과 화(祸)가 끊임없이 변하고, 운명이 바뀌는 일은 사람으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관아로 돌아가는 길에 순직자를 전문적으로 접수하는 부서에 관 다섯 짝을 맡겼다. 그리고 은라 민산은 편청(偏廳)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 한잔을 따랐다.
관을 안치한 내당에서 하급 관리 몇 명이 관을 밀어젖히자 썩은 냄새가 옅게 풍겼다.
날씨가 무척 추워 시체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하급 관리 몇몇은 시체를 보는 데 익숙했다. 그들은 귀신을 물리치고 독을 없애는 환약을 복용한 뒤, 땀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려 당사자인지 확인하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한꺼번에 은라 셋이 죽었네. 피해가 참 막심하구먼.”
“운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 정도면 작은 피해지. 허나 허 동라가 아깝구먼.”
“그러게 말이야. 비록 야경꾼에 들어온 지 고작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관아의 풍운아 아닌가. 위 공께서 총애하는 그가 이렇게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에휴, 교방사의 기녀들이 허 동라가 순직했다는 소식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나?”
“남녀 간의 정사를 다루는 장소의 여인이 논할 수 있는 정이 있겠는가?”
“허나 허 동라는 부향의 연인 아닌가.”
“왜 부향이 허 동라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자네조차 아는 겐가?”
“경성에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던가.”
“엇…… 허 동라의 시체가 가장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네. 썩은 냄새가 연해서 맡아지지도 않아.”
“내가 좀 보겠네…… 아이고, 피부는 닦자마자 벗겨지네. 다시 덮게, 다시.”
* * *
일주향 후, 하급 관리는 손과 얼굴을 깨끗하게 닦은 후 민산을 찾아가 말했다.
“민 은라, 유품의 수와 표가 일치하며, 당사자 확인도 마쳤으니 가셔도 됩니다.”
민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돌아서서 떠났다.
* * *
호기루에서 쿵쿵쿵쿵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검은 옷을 입은 하급 관리가 건물에 올라와 밖에서 지키고 있던 동료와 귓속말로 몇 마디 주고받고는 돌아서서 내려갔다.
밖에서 당직을 서던 하급 관리가 들어와 공손히 보고했다.
“위 공, 운주에서 온 관선이 이미 도착했습니다. 은라 셋과 동라 둘의 유골이 이미 관아로 보내졌습니다. 당사자를 확인하니 착오는 없었다고 합니다.”
위 공이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각자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게.”
그는 지서 파편이 허칠안에게 있다는 걸 알았지만, 유품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 * *
관성루, 팔괘대에 낭랑하면서도 깊은 음송(吟誦)을 동반한 백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니, 세상에…….”
그는 소리가 갑자기 꽉 막혀 어떻게 해도 뱉어낼 수 없었다.
잠시 뒤, 양천환은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스승님, 저 돌아왔습니다.”
“그래.”
감정은 돌아보지 않았다.
사제 둘은 서로 등을 진 채로 포옹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이미 순조롭게 경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운주행은 놀라웠지만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천환이 말을 마치더니 감정이 입을 떼지 않는 걸 보자 물었다.
“허칠안은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그가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다니. 스승님께서는 그를 왜 그렇게도 중시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뜻밖에도 운주에 고품 술사가 있었습니다. 음, 적어도 3품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저희 사천감을 제외하고 그런 경지의 술사가 어디에 또 있단 말입니까?”
감정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허칠안의 일은 자네가 신경 쓸 필요 없네. 내가 결정한 걸세.”
‘채미 사매가 한 말이 맞다. 너는 아주 못된 늙은이야…….’
양천환은 남몰래 투덜거렸다.
“운주의 그 자식은 자네가 상관할 필요 없네. 설령 내가 자네에게 알려준다 해도 자네 역시 들리지 않을걸세.”
감정이 말했다.
양천환이 막 떠나려던 참에 뒤에서 감정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대신해 송경을 풀어주게.”
“송경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그가 사람을 만들었네.”
“…….”
양천환은 쯧쯧쯧 혀를 차며 기묘함에 탄복했다.
“연금술로 이런 경지까지 개발할 수 있다니. 송경은 예나 지금이나 그 부분에서 일인자입니다.”
그는 뒤이어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성격적인 결함이 너무 큽니다. 고집이 세서 승직하려 하지도 않고요.”
‘너도 그리 좋지는 않아…….’
감정이 입을 삐죽거렸다.
“자네가 나 대신 그를 밀착 감시하게. 그가 다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해. 며칠 뒤, 자네 오사매가 관문을 나갈 걸세. 둘째가 경성에 있지 않으니 자네가 사제와 사매를 잘 보살펴 주게.”
감정이 말했다.
“오사매가 관문을 나간다고요? 그녀도 저처럼 4품 승직에 성공해서 진법사가 되었나요?”
양천환은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아직 멀었네.”
“그렇다면 다섯째는 목숨이 필요 없대요?”
양천환이 깜짝 놀랐다.
“그녀에게 승직할 동기가 생겼네.”
감정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 * *
허부 대문의 편액 위에 하얀색의 초혼(招魂) 깃발이 걸렸고, 붉은 초롱은 흰 초롱으로 바뀌었다.
유족 위로금을 받은 후 허부는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만 허칠안의 유골이 경성에 오는 정확한 시간을 몰라 저택 사람들은 아직 상복을 입지 않았다.
요 며칠 저택의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다. 나리는 말수가 적어졌고 부인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으며, 신년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수시로 넋이 나갔다. 영월 아가씨는 완전히 기력이 빠졌고, 영음 아가씨는 야위어서 얼굴이 갸름해졌다.
처음 이틀 동안, 콩알이는 늘 한밤중에 울다가 깨어 큰 오라버니를 찾겠다고 울부짖었다.
아이의 세계는 아주 작다. 가족 몇 사람이 전부인데 갑자기 한 사람이 줄어드니 세계가 불완전해져 버렸다.
이날 아침, 허부의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 기다리던 허칠안의 유골이 드디어 왔다. 그는 관 속에 누운 채 짐수레에 실려 저택으로 돌아왔다.
허평지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는 막상 짐수레 위에 있는 관을 보자 갑자기 앞으로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평지는 관 옆으로 걸어가서 손을 뻗어 관 뚜껑을 눌렀다.
유골 운반을 담당하는 동라는 그를 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허 대인, 우선 저택에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허평지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한 뒤 ‘응’하고 대답했다.
칠안의 유골을 보면 집에서 아마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대문 입구에서 통곡하자니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관을 빈소로 가져왔다. 이곳의 분위기에 그 야경꾼은 숨이 막힐 듯하여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읍을 올리며 말했다.
“허 대인, 소생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허평지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배웅하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