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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249화 (249/712)

249화. 감정의 선물

감정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남방을 바라봤다. 마치 집중하여 무언가를 보는 듯하더니 갑자기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은 일이야.”

저채미는 더 사납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면서 욕을 했다.

“늙은이, 못된 늙다리! 내 친구가 죽었는데 좋은 일이라고 하다니. 어째서 너는 죽으러 가지 않는 거야!”

“채미야. 스승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나는 오백 년을 살았지만 아직 충분히 살지 못했으니 하늘에 오백 년만 더 빌릴 거란다.”

감정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 그럼 방금 한 말이 스승님으로서 할 말이냐고요.”

저채미는 하염없이 흐느꼈다.

“스승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

감정이 말했다.

“작년에 내가 네게 준 탈태환(脫胎丸)은 먹었니?”

“무슨 탈태환이요?”

저채미가 눈물을 훔쳤다.

“탈태환, 60년 동안 세 알만 정제해 낼 수 있는 탈태환 말이야. 원경제 그 자식이 내게 달라고 했지만, 난 탈태알환(脫胎挖丸)조차 주지 않았단다.”

감정은 더욱 화가 났다.

“아, 제 가방 안에 있어요.”

저채미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니 저도 까먹었어요. 그걸 쓸 데도 없고요.”

감정이 고개를 끄덕였고, 웃으며 말했다.

“기억해. 너는 탈태환을 허칠안에게 준 거야.”

“주지 않았어요.”

“넌 준 거야.”

“주지 않았어요. 제 가방 안에 있다고요.”

“조용히 해. 넌 준 거야. 앞으로 누군가 네게 물으면 이렇게 말하렴.”

“아.”

저채미가 또 훌쩍이며 말했다.

“스승님, 허칠안은 죽었어요.”

그녀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감정한테 와서 울며불며 하소연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부모를 찾아가서 울며불며 하소연하듯이 말이다.

“너 6품에 이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며칠간은 외출하지 말거라.”

* * *

저채미가 떠난 후에 감정은 손바닥을 폈다. 등황색의 투명한 단약이 손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어 감정은 흰 수염 한 가닥을 뽑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수염은 바람에 휘날렸고, 점점 더 높게 휘날리다가 갑자기 부풀어 올라 하얀 새가 되었다.

커다란 새는 처량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잠시 빙빙 돌더니 급하강하여 감정 손안의 탈태환을 입에 물고 갔다.

저채미는 방으로 돌아와 고개를 숙이고 허리춤의 가죽 소포를 뒤적이며 찾았다.

“스승님께서 어찌 갑자기 내게 탈태환에 대해 얘기를 꺼내신 걸까? 게다가 허칠안에게 줬다고 말하라니…….”

그녀는 흐느끼면서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탈태환이 보이지 않았다.

* * *

“자네는 그렇게 위연을 신임하는가? 갖고 있는 비밀을 모두 그에게 말하길 원하는가?”

양천환이 어두컴컴한 선실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관을 등지고 있었다.

허칠안이 위연의 사생아라는 사실은 그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믿을 수 없었다. 허칠안은 스무 살인데, 위연은 이십여 년 전에 이미 궁에서 환관이 된 몸이다.

“아빠고 자시고 농담한 겁니다. 드립이 뭔지 아세요?”

허칠안은 관 안에 누워 탄식했다.

“당연히 신임하죠. 위 공께선 제게 잘해주세요. 저를 양성하고 싶어 하시죠. 은혜가 태산과 같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 비밀을 말하는 데 좀 거부감이 있긴 해요.”

“왜?”

“글쎄요. 위 공께서는 다른 사람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너무 깊어요. 그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형은 영원히 모를 거예요. 그리고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고요.”

“그건 그렇네. 위연은 내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무서울 정도로 생각이 깊은 사람이지. 내가 이렇게 손으로 밝은 달을 움켜쥐고 별을 따는 남자일지라도 그들을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지.”

양천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자네는 어째서 나와 이렇게 속마음을 얘기하길 원하는가?”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양 사형은 적자지심(*赤子之心: 순수하고 거짓 없는 마음)이 있는 남자니까요.”

취미가 허세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다른 모든 건 대수롭지 않다.

양천환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좋은 말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경성을 떠날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어쨌든 자네는 이미 죽었고, 세상은 넓으니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제 가족이 모두 경성에 있으니 돌아갈 수 있다면 당연히 돌아갈 겁니다.”

허칠안이 탄식했다.

“저 역시 말단 관리의 복장으로 검을 쥐고 강호를 떠도는 날을 동경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하늘 아래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당황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일단 경성을 떠나면 아마 남은 생 동안은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두 사람은 그동안 함께 지내며 아마 너무 지루했는지, 처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입씨름하더니 점점 속마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네. 내가 외출하여 밖에 있을 때 사천감의 사형과 사매 그리고 스승님이 계신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만 하면 마음이 안정되었지. 정말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뿐이지.”

양천환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허칠안은 말로는 돌아가서 위연에게 의견을 구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양천환에게 대충 대답한 것이다. 그는 속으로는 솔직하게 털어놨을 때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저울질했다.

위연이 그에게 잘해 준다는 건 그도 안다. 하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은 후에 위연은 신수를 다시 봉인할까 아니면 눈감아 줄까? 참고 대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허칠안은 모험을 감행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가 위연의 친아들은 아니니깐.

하지만 그는 또 경성을 떠나기 아쉬워 졸지에 딜레마에 빠졌다.

그리고 신수 승려는 그에게 그의 존재를 누설하면 안 된다고,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허칠안이 위연에게 비밀을 털어놨을 때 신수 승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은 신마 같은 고수 때문에 시종일관 상냥한 얼굴을 하면 안 된다. 정말 그를 믿는 건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다.

“에휴, 허…… 양 사형, 장가는 가셨습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아니.”

양천환이 고개를 저었다.

“여인은 거추장스럽네. 필요하지 않아.”

‘그렇군. 네가 아내와 있을 때도 그녀가 네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네가 갈 수 있는 길은 두 갈래야. 첫째, 운록서원의 맹자처럼 영원히 아내의 뒤에 서 있는 남자가 되는 것. 둘째, 항문이 친절한 남자가 되는 것.’

생각을 하다 보니 허칠안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배 밖에서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울맨(Owlman)의 비명처럼 처량하고 쓸쓸했다.

양천환은 처음에는 멍하니 있다가 깜짝 놀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스승님의 기운이네.”

‘감정의 기운?’

허칠안은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그가 미처 물어볼 틈도 없이 눈앞에서 양천환의 모습이 사라졌다. 뒤이어 바깥의 처량한 새 울음소리도 사라졌다.

그런 뒤 백의 술사의 뒷모습이 다시 선실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허칠안을 등지고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 안의 어떤 물건을 관찰하는 듯했다.

“스승님께서 내게 탈태환을 보내셨네.”

양천환의 목소리에 망연함과 불분명함이 배어 있었다.

“탈태환?”

허칠안이 반문했다.

“아, 자네는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는 전고(典故)를 아는가?”

양천환이 말했다.

“번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는 건 전고가 아니라 케케묵은 수법 이야기입니다. 비 온 뒤 이야기처럼 익히 들어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예요. 양 사형,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허칠안은 손을 저어 양천환의 허세를 끊었다.

양천환의 허세는 난감하고 재미없었다.

“아아…….”

양천환도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는 본능에 충실하고 온화한 사람이다. 고품 무사들처럼 오만하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 다만, 허세 부리는 걸 좀 좋아할 뿐이다.

“탈태환의 주요 약재는 바로 날개가 아홉 개 달린 금나비의 번데기로, 비방을 써서 단약을 정제해낸 뒤 그걸 복용하면 장수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다네. 환골탈태는 빈말이 아닐세. 이 약을 먹으면 마치 번데기가 고치를 틀 듯이 반 시진 내에 깊은 잠에 빠지네. 체내의 모든 생기를 거두어 사람이 가짜로 죽은 상태에 빠지지. 원신조차도 소멸하네. 이 과정에서 고치처럼 옛 몸이 새 몸을 배태한다네. 그래서 탈태환이라는 명칭이 되었지. 허나 이 약은 목숨을 유지하는 영약이므로 몸에 중상을 입었을 때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만 복용할 수 있네.”

“이 단약을 먹으면 또다시 순결한 남자의 몸이 된다는 뜻입니까?”

허칠안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렇게 대단하다고요?”

“신기하긴 하나 다만 실용성이 떨어지네.”

양천환이 고개를 저었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내게 탈태환을 복용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네. 고품 무사의 전투는 언제나 뼈와 살을 깎으니.”

“그럼 정상적으로 복용하면요?”

허칠안이 물었다.

“장수할 뿐이네. 기껏해야 몸 상태를 더 좋게 해 주지. 물론 그 역시 좋지만 값비싼 정제의 대가와 비교했을 땐 아주 계륵처럼 보이지 않는가. 스승님께서는 60년 동안 한 화로에 세 알만 정제해 낼 뿐이네.”

허칠안은 문득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단약의 사용 가치는 높지 않기에 그는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감정께서 이걸 사형에게 뭐하러 준 겁니까?”

허칠안은 말을 마치고 멍해졌다.

양천환 역시 멍하니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제게 준 겁니까?”

“설마 자네에게 준 건가?”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스승님께서 내게 운주에 가서 허칠안을 보살피라고 하더니 지금은 또 탈태환을 보내셨다. 하지만 나는 이 물건을 쓸 데가 전혀 없고, 채미 사매같은 저품 술사도 까닭 없이 쓸 일이 없지. 허칠안에게 준 게 아니라면 누구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때마침 허칠안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어떻게 연유를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하필 이때에 탈태환을 보내왔다.’

양천환의 머릿속에 생각이 번쩍였다.

‘이 탈태환은 분명 나를 위한 맞춤 제작이다. 마침 눈앞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겠군. 그리고 양 사형은 이 단약을 쓸 데가 전혀 없다. 하지만 감정이 내가 탈태환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았지? 그가 현재 내 처지를 알고 있고,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걸 아는 건가? 그렇다면 감정은 아마 신수 승려의 단수가 내 몸 안에 있다는 것도 알 테지?’

이 순간, 허칠안의 머리가 고속으로 돌아가면서 상백 사건의 여러 세부 사항들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교방사 안에 요족이 잠복해 있었다. 그리고 감정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신수 승려의 단수는 상백 사건 때 곤경에서 벗어났고, 감정은 꾀병을 부리며 수수방관했다.

항혜가 경성에서 사람들을 마구 죽이며 평원백부를 멸했다.

‘물론 몸에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었지만, 술사 1품 감정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만요국 잔당이 신수 승려의 단수를 풀어주고는 내 거처에 은밀하게 보냈고, 내 몸에 기생하여 단수를 온양하게 했다. 이는 경성에서 나만이 신수 승려를 온양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내 몸의 가장 큰 비밀은 바로 기이한 운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요족은 내 몸의 기이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평생 파충류 한 마리와 회색 여우를 때린 것 말고는 요족과 접촉한 적이 없다.

잠깐!

감정은 내 몸의 기이함을 안다. 그가 내게 흑금장도를 선물하고, 또 은밀한 방식을 통해 내게《천지일도참》절학을 선물했다. 제기랄, 자세히 생각할수록 무서워 죽겠네.’

두 가지 추측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첫째, 감정은 요족과 결탁했다. 둘째, 감정은 요족의 계략을 알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수수방관을 택했다.

허칠안은 첫 번째 추측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만약 감정이 그 몸속의 비밀을 요족에게 털어놓지 않았다면 요족이 어떻게 그의 특수함을 알겠는가? 자신은 요족과 친밀한 접촉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만약 위연의 선물이라면 허칠안은 감동받을 것이고, 마음 놓고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감정의 선물은 현재 유행하는 말과 꼭 같았다.

<모든 운명이 주는 선물은 이미 암암리에 가격이 매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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